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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11.07 09:19

심야병원 "반칙을 일삼는 허준, 드라마에 몰입하기 힘들다!"

최광국과 구동만의 은밀한 사정에 관심을 두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드라마의 재미는 동의에서 나온다. 허구에 대한 동의다. 동의를 통해 드라마의 허구는 현실이 되고, 현실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공감은 마치 현실에서처럼 드라마의 인물과 사건에 대해 판단하도록 만든다. 판단이 곧 감정이다. 연민이고 두려움이고 긴장이다.

문제는 그러면 어떻게 시청자로 하여금 드라마의 인물과 상황에 동의하도록 할 것인가? 먼저 이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청자가 기꺼이 자기 대신이라 삼을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선해야 하고 정의로워야 한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선한 동기이고 정의로운 이유여야 한다. 누구나 자기가 옳다고 믿고 싶어 한다.

제약을 둔 것은 좋았다. 일주일이라는 시간.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 그러나 폭력조직인 동방파의 보수 구동만(최정우 분)을 살려내지 않으면 그토록 뒤쫓는 아내를 죽인 살인범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주인공 허준(윤태영 분)은 꼼짝없이 구동만을 살릴 때까지 '심야병원'이라는 병원에서 의사로 있어야 한다. 아내를 죽인 살인범에 대한 증오와 의사로서 한계를 느끼는 절박한 상황, 그리고 제한된 시간과 기회들. 그것은 더욱 시청자로 하여금 주인공 허준에 집중케 함으로써 보다 수월하게 동의를 끌어낼 수 있는 장치일 터였다.

그러나 드라마의 선택은 달랐다. 그렇게 충분히 주인공 허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온갖 장치를 마련해 놓고서 이내 그것을 허무는 것을 선택했다. 주어진 제약 안에서 더욱 절박하게 칼날 위를 걷는 듯한 아슬아슬함을 보여주었어야 했을 허준이 자꾸만 그 제약의 한계를 부수려 드는 것이다. 멋대로 동방파와 관련한 진료기록을 경찰에 넘겨주겠다 협상을 꾀하고, 다시 난데없이 최강국(김희원 분)이 일하는 업소로 쳐들어가고, 겨우 최강국에 의해 구함을 받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그조차 여기고 진료기록을 미끼로 최강국이 다짐시킨 경찰을 끌어들인다. 나중에는 그 경찰마저 배신하고 혼자서 한중섭을 쫓으려 든다. 아내를 죽인 범인을 쫓으려는 간절함은 인정하지만 그 행동에는 어떠한 원칙도 신의도 없다. 과연 그런 인물에 대해 시청자는 기꺼이 자기의 대신으로 이입하려 할까?

허준이 당한 비극은 허준이라고 하는 인물에 비례하는 것이다. 그가 선할수록. 그가 정의로울수록. 그가 더욱 성실하고 도덕적인 인물일수록. 그런 일을 당할 사람이 아닌다. 절대 그런 일을 당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말했듯 선해야 한다. 정의로워야 한다. 성실하며 도덕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그 과정에서의 사소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도덕적인 면죄부가 씌워진다.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내를 죽인 범인을 쫓는 당위를 인정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하는 거짓말들은? 사소한 배신들은? 배신은 예능일 때에나 재미있다. 설사 그 상대가 흉악한 조직폭력배라 할지라도 배신에 동의하고 싶은 사람은 그다지 없다. 허준의 동분서주와는 달리 전혀 아무런 연민도 긴장도 없이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다.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의 일에 대한 관심은 자기에 대한 관심과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재미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빛과 어둠의 경계였을 것이다. 허준도 홍나경(류현경 분)도 역시 빛과 어둠의 경계에 속하는 사람들이었을 터다. 그러나 허준은 이미 어둠으로 깊이 빠져들어 버렸고, 홍나경은 불안한 빛 속에 남겨져 있다. 심야병원이라는 당위를 잃는다. 왜 하필 제목처럼 <심야병원>이어야 했던가? 그것은 잠시잠깐 스쳐지나가는 후두염을 앓는 노인 정도를 뜻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 노인조차 진짜 잠시 스치고 지나가고 만다. 오로지 허준과 그의 아내를 죽인 범인을 쫓는 과정만 나오며. 빛은 빛으로, 어둠은 어둠으로, 그 사이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과연 무엇을 추구하려는 드라마인가? 무엇을 시청자들에 보여주고자 하는 것인가? 드라마가 보여주려는 주제는 무엇인가? 말은 필요없다. 화면을 통해 보여지는 것이다. 상황을 통해, 사건을 통해, 인물을 통해, 그 유기적 관계에 의해. 그것이 실망스러운 것이다. 다른 그 어떤 것보다 드라마가 보이지 않는다. 동의를 할 여지조차 없다.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홍나경처럼 허준의 캐릭터에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어설펐다. 하필이면 그 시간에, 그 장소에서, 더구나 넘어지는 모습도 너무나 어색했다. 필요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다시 홍나경과 허준을 화해시켜야 했다. 다만 그 노력을 하고서도 이내 다시 홍나경과 허준이 갈등을 빚는 것은 너무 지나쳤다. 여유를 둘 필요가 있다. 환자들조차 마치 짜 맞춘 듯 그들을 위해 등장한다. 허구의 사실이라는 극적 개연성조차 없이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기대하기조차 어렵다.

처음 기대와 너무 달랐다. 의사 허준과 아내를 죽인 범인을 촟는 추적자 허준이라는 이중성을 통해 반전을 기대해 볼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로써 긴장은 더욱 타이트하게, 일상은 더욱 여유롭게, 그러나 작위조차도 기대와 많이 달랐다. 재미없었다. 도대체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이대로 범인을 잡는다고 과연 허준과 함께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을 것인가?

은근히 허준이 수술에 실패하기를 기대하고 허준을 돕는 최광국. 그리고 최광국이 털어놓은 과거 죽은 그의 연인의 이야기. 구동만은 병에 걸렸고, 해바라기 그림을 그린 여자는 죽었다. 기대해 보는 것이다. 어쩌면 이쪽에 걸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나마 재미있다. 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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