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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5.04.24 05:51

[김윤석의 드라마톡] 착하지 않은 여자들 18회 "박총의 폭주, 새로운 위기가 다가오다"

과거의 원망보다 지금의 행복, 장모란 웃다

▲ '착하지 않은 여자들' ⓒK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결국 스스로에게 지고 만다. 스스로의 열등감에 먹히고 말았다. 악의라기보다는 차라리 심술이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원망을 다른 대상에게로 돌려 잊고자 한다. 모두가 그의 탓이다. 그들이 잘못한 탓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더 스스로가 환멸스럽고 증오스럽다. 그렇게 인간은 스스로 타락해간다.

채찍질을 하면 더 빨리 달리는 말이 있고, 채찍질을 당하면 오히려 주저앉아 버리는 말이 있다. 심지어 어떤 말들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발광을 하기도 한다. 말이야 그러면 쓸 수 없으니 당연히 버려질 테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버려야 한다면 일찌감치 버렸어야 했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 강순옥(김혜자 분)의 실수다. 좌절과 열등감에 짓눌린 군상들의 일그러진 심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방아쇠를 당겨 버렸다. 김현숙(채시라 분)의 재능을 칭찬하며 수제자로 삼으라 권하는 장모란(장미희 분)의 행동이 그녀의 역린을 건드리고 말았다.

분명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으니 제자로 두고 직접 가르치고 있는 것일 게다.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으니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것이라 장담도 하고 있었던 것일 터다. 하지만 박은실(이미도 분) 자신이 스스로를 믿지 못한다. 우연찮게 확인한 김현숙의 재능이 더욱 그녀를 궁지로 내몬다. 자신은 어떻게해도 김현숙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선생님이 말한 그날은 자신에게는 오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같은 비틀린 그녀의 내면이 그녀의 성장을 저해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항상 주눅들어 주위를 살피고 의식하며 맞추려 한다. 조금 더 당당하게 자신을 가지고 자기 일을 즐길 수 있었으면, 김현숙은 굳이 박은실처럼 누군가를 의식하고 요리할 필요가 없다. 박은실에게는 박은실에게 어울리는 교습법이 있었을 텐데도.

벌써 수십년 전의 일이다. 그에 반해 고맙고 반가운 마음은 지금의 진행형이다. 수십년의 원망을 지금의 행복과 바꾼다. 김철희(이순재 분)를 용서한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강순옥이라는 언니를 얻어 마음든든한 지금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마음껏 원망하고, 이해하고, 이해받는다. 오랫동안 그럴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다. 꿈꾸어 왔을 것이다. 솔직하게 자신의 모든 감정을 털어놓고, 야단맞고, 그리고 용서받는 관계가 되기를. 용서받았기에 용서할 수 있다. 이해받았기에 이해할 수 있다. 더 이상 김철희 따위 장모란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오로지 강순옥과 그녀의 딸들만을 생각한다.

작가의 힘이면서 또한 배우의 역량이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을 어느새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게 되는 과정이라는 것은, 위태할 정도로 날선 감정들이 서로 부딪히며 조금씩 마모된다. 차라리 죽이라. 죽이겠다. 죽일 수 없음을 안다. 용서할 수밖에 없음을 안다. 여린 상처가 속살을 드러냈을 때 그들은 울 수밖에 없다. 자신이 서글퍼서. 서로가 안쓰러워서. 어째서 고작 편지 한 장에 여자를 버린 남자를 여직 잊지 못하고 있는가.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무엇보다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저버린 남자를 지금껏 그리워하며 살고 있었다. 사람이 슬픈 것은 약하기 때문이고, 사람이 아픈 것은 그럼에도 강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상처위에 돋아난 새로운 시간들이 그녀들을 강하게 만들어준다. 강순옥은 그런 남편이랃 받아들이려 한다.

하나의 위기가 해결되고 새로운 위기가 찾아온다. 하나의 과제를 남기고 다시 그 계기를 만든다. 아버지이자 남편 김철희는 모두로부터 용서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아내 강순옥과 화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장모란과의 관계도 이것으로 끝은 아니다. 이문학(손창민 분)이 김현정(도지원 분)에게 김현숙을 돕겠다 말하고 있었다. 이도진(김지석 분) 역시 정마리(이하나 분)에게 아직 김현숙을 돕고자 하는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나현애(서이숙 분)가 김현숙에게 사과하지 않는다면 정마리는 이루오(송재림 분)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가면 그 폐허 위로 여린 새싹이 자라난다.

서로 상처 입어가며 상처줄 정도로 믿고 의지하고 있다. 그런 것이 가족이다. 뻔히 상처가 될 줄 알면서도, 그래서 그것이 자신에게도 상처가 되고 있음에도, 그런데도 속엣말을 거침없이 내뱉고 만다. 그래도 괜찮을 것이다. 그래도 받아들여줄 것이다. 엇갈림이나 헤어짐이 두렵다면 말도 행동도 조심스럽다. 김현숙 만큼이나 나현애에 대한 김현정의 반응이 격렬하다. 나현애에 대한 불편함보다 언니 김현정에 대한 염려가 앞선다. 싸울 정도로 사이가 좋다. 김현정이나 김현숙이나. 불혹을 넘겨서까지 아이처럼 툭탁거리며 싸울 수 있다. 시샘이 날 정도다.

결국 과거가 족쇄가 된다. 과거에 사로잡혀 현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과거의 자신을 보느라 정작 현재의 자신은 보지 못한다. 하지만 결국 자신이 살아가는 것은 현재다. 지금이고, 바로 이곳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오로지 지금의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려 한다. 비로소 과거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난다. 아직 진통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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