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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5.04.16 08:45

[김윤석의 드라마톡] 착하지 않은 여자들 15회 "오랜 망각 너머 진실의 잔혹함, 김철희 떠나다"

만만치 않은 여자들, 위기란 없다

▲ '착하지 않은 여자들' 포스터 ⓒK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거울을 보기 전까지 사람은 자기가 어떤 모습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신경도 쓰지 못한다. 바람에 헝클어지고, 있는대로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온갖 잡동사니와 오물들이 덕지덕지 엉겨붙어 있다. 무심코 거울을 보았을 때 그 모습이 얼마나 황당하고 끔찍할까. 비로소 그때서야 먼지를 털고 오물을 떼어낼 생각을 한다. 자신을 야단친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 장모란(장미희 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결혼도 하고, 딸도 둘이나 낳았다. 그럼에도 김철희(이순재 분)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장미란에 대한 생각 뿐이었다. 주위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자기가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 전혀 관심조차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비로소 그때의 자신을 한 발 떨어져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탄식처럼 흘러나오는 한 마디,

"왜 그랬어? 이 못난 사람아!"

물론 사고로 머리를 다친 탓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고 당시의 기억만이 아닌 자신의 삶 전체를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말았다. 무의식적으로 배우자를 두고 다른 이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과연 누구를 향한 것이었을까? 우연한 계기로 모든 기억을 되찾았음에도 김철희는 모두에게 그 사실을 밝히기보다 혼자서 떠나가기를 선택한다. 먼 과거에 두고 온 또다른 자신에게 왜 그랬는가 타박한다.

오래전 자신이 버린 남자를 동생을 통해 찾는다. 다시는 먹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수제비를 일부러 동생을 시켜 만들어 먹는다. 부쩍 외로움을 느낀다. 문득 돌아본 자신의 주위에는 오로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역시 앞만 보고 살아왔다. 분노를 에너지삼아. 억울함을 동력으로 삼아. 그러나 과연 지금 자신에게 남은 것이란 무엇인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폭행죄로 고소당했으니 피해자와 합의하지 않는다면 형사처벌까지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자칫 그로 인해 교육자로서 자신이 지금껏 쌓아온 커리어를 한 번에 허물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 대상이 김현숙(채시라 분)임에야 결코 조금이라도 자신을 낮추거나 양보하는 일따위 있을 수 없다. 고집이기 이전에 자존이다.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 자신은 분명 옳았다. 그래서 더 미운 것인지도 모른다. 잊고자 하는 많은 것들을 그로 인해 떠올리고 만다. 그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런 점에서 어쩌면 김현숙이야 말로 작가의 의도에 매몰되어 버린 경우는 아닐까. 과정이 생략되었다. 어떻게 김현숙은 청소년상담사의 꿈을 가지게 되었던 것일까? 청소년상담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았더라도 그것을 자신의 목표로 삼는 것과는 전혀 별개일 수밖에 없다. 청소년상담사라는 직업으로부터 자신이 바라는 가치와 보람을 찾는다. 문득 지금은 완전히 모습을 감춰버린 왕따당하던 고등학생 국영수(채상우 분)의 존재가 그 열쇠가 되었지 않았을까. 자신과 같이 상처입고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다른 청소년들을 돕는 것이야 말로 진정 자신을 치유하는 길이다. 아버지가 진실한 기억을 찾을 수 있도록 최소한 지켜보자는 제안을 했을 때 그 계기가 되어주었던 나현애의 꿈 또한 지나칠 정도로 작위적이었다. 처음의 강요하지 않는 공감의 이야기들이 작가의 노골적인 의도에 묻혀 버리고 만다.

그저 왁자하게 일상적으로 나누는 대화들 속에 깊은 주제를 담아낸다. 아무렇지 않은 말들과 행동들 속에 더 속깊은 주제들을 감추어 놓는다. 그저 인물들과 함께 웃고 화내고 떠들며 자연스럽게 그들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바들을 공유한다. 일상의 이야기와 연기들이 좋았다. 그러면서 어느새 공감하게 되는 깊은 감정과 생각들에 빠져들고 있었다. 하기는 분량에 대한 고민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벌써 15회다. 그동안 벌려놓은 이야기들을 예정된 분량 안에서 무리없이 마무리지어야 한다. 어째서 보다 분량에 여유가 있는 주말드라마가 아니었을까. 대사들처럼 인물들의 표정 역시 여유를 잃고 가쁘게 달리고 있다. 절정으로 치닫고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겨우 돌아온 아버지가 다시 떠나려 하고 있다.

기계적 중립의 한계다. 역시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김현숙은 자신을 낳은 친엄마다. 나현애는 사랑하는 이루오(송재림 분)를 낳아준 친어머니다. 일방적으로 어느 한 쪽의 편만을 들 수도, 그렇다고 다른 어느 한 쪽만을 비난할 수도 없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부당하게 괴롭힘당하고 심지어 학교에서 누명까지 쓰고 내쫓겨야 했던 김현숙이 원인 제공자처럼 되어 버렸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기에 괴롭혔고, 그럴만한 원인을 제공했기에 학교에서도 내쫓았다. 물론 그조차도 나현애는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자기는 잘못하지 않았다. 자신의 행동에는 조금의 오류도 실수도 없었다. 무의미하게 친엄마 김현숙의 절박함만을 흠집내고 만다.

피해와 책임의 정도라는 것이 있다. 누가 더 큰 피해를 입었는가. 누구에게 더 큰 책임이 지워지는가. 교사와 학생이었다. 어른이었고, 아직 어린 청소년이었다. 아무리 김현숙으로 인해 불쾌했다고 어른인, 그것도 담임교사인 나현애가 평정을 잃어서는 안되었다. 그러고서도 아직까지 김현숙은 나현애의 인정과 사랑을 기대한다. 아버지를 위한 꿈이면서 김현숙 자신을 위한 꿈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일방적인 관계의 두 사람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한다. 집단괴롭힘의 피해자들을 괴롭히는 객관적이고도 이성적인 어떤 충고들을 떠올린다. 하필 그 말들이 다름아닌 나현애를 향해, 그녀를 위해 들려지고 있었다.

과연 만만치 않다. 전혀 예상을 벗어난다. 하기는 혼자 힘으로 그만한 부를 이루고 있었다. 그만한 성공을 거두기까지 위기 한 번 없었겠는가. 아무리 박은실(이미도 분)이 독기를 부려봤자 장모란이 보기에 아직 세상 넓은 것 모르는 애송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폭로를 하든 협박을 하든 마음대로 하라. 차라리 마음껏 가져다 쓰라 돈을 쥐어준다. 배포에 주눅이 들어 버린다. 어떤 위기가 닥칠 것이라 여겼건만 강순옥(김혜자 분)이나 장모란이나 그리 녹록한 상대들은 아니다. 차라리 나현애와 박은실 쪽이 더 불안하고 더 약해 보인다. 그런 만큼 처음과 같은 일상의 드라마들이 필요한데 조금은 힘에 부치는 듯한 모양새다. 숨이 가쁘고 버겁다.

답은 지문안에 있다. 장모란과 만난 기차에서 김철희는 떨어졌다. 떨어지기 전 두 사람 사이에 몸싸움이 있었고, 장모란은 무언가를 애써 감추려 하고 있었다. 장모란의 출생에 대해 익명의 편지를 보낸 범인에 대해 강순옥 자신마저 의심하고 있었다. 김철희는 기억을 찾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찾지 않은 것인가. 당연함만 있다. 명쾌하다. 이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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