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10.30 18:43

심야병원 "깊은 밤 병원에서 일어나는 심상치 않은 이야기들..."

일주일짜리 높은 긴장과 흥분이 무척 짜릿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그런 경우가 있다. 제대로 잘 알아보지도 않고 단지 제품 이름과 우연히 보게 된 이미지만으로 기대를 가지고 제품을 구입하는 경우다. 당연히 실망하게 된다. 원래 그렇게 못 만든 물건이 아니건만 처음부터 다른 기대를 가지고 구입했기에 전혀 엉뚱한 실망만 커지게 된다.

심야병원이라는 제목이 특이했다. 그리고 말기암을 앓고 있는 노숙자를 위해 진통제를 몰래 훔쳐 처방했다는 홍나경(류현경 분)의 캐릭터가 흥미로웠다. 하필 병원이 문을 열고 처음으로 찾아온 환자가 싸움을 하다 다친 조직폭력배와 근처 어디선가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였다. 문득 이미지가 그려졌다. 밤이라는 시간과 병원이라는 공간과 특별한 사람들. 그런 드라마겠구나.

밤이란 상당히 특별한 시간이다. 낮에 활동하던 이들이 잠들고 나면 이제 밤을 낮삼아 움직이는 이들이 깨어나게 된다. 어둠고 춥고 습하며 불길하다. 낮과는 전혀 다른 가치와 기준으로 사람들은 깨어나고 움직이고 살아가게 된다. 더구나 병원일 것이다. 밤에 다쳐서 병원으로 달려가는 사람은 낮과는 또 상당히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빛과 어둠의 경계에 선 의사 허준(윤태영 분)과 홍나경이 있다. 구동만(최정우 분)의 지시로 허준을 감시하고 있는 윤상호(유연석 분) 역시 빛을 동경하는 어둠 속에 있을 것이다. 그림이 나온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필자의 섣부른 착각에 불과했다. 심야란 그저 밤이라는 시간이었다. 병원이란 그들이 머무는 공간이었다. 허준에게는 아내를 죽인 범인을 찾아내야 한다는 절박한 이유가 있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허준과 함께 머물게 된 홍나경에게는 아직 모든 것이 혼란스러울 뿐이다. 폭력조직 동방파의 보스 구동만의 비밀스런 수술과 그를 둘러싼 은밀하면서도 위험한 이야기들. 밤은 그래서 필요한 것이었다. 병원이란 그래서 필요한 것이었다. 철저히 스릴러의 정석을 밟는다. 한정된 시간,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생각으로 얽히고 부딪혀간다. 가리워져 있던 진실이 불길한 위험 속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조금은 허무했다. 그럴 것이면 왜 그리 안달하게 만들었을까? 병원에 방치되어 있던 차트 가운데 아내를 죽인 범인의 그것으로 여겨지는 차트를 발견하고, 그리고 최강국(김희원 분)의 상태는 그 차트에 쓰여진 것과 상당히 유사하다. 구동만이 찾아오겠다는데도 무시하고 정신없이 달리고, 부딪혀 싸우고, 그 앞에 조금은 허무한 진실이 밝혀진다. 오해였다. 잔뜩 긴장하며 두 사람의 충돌을 기대했던 것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허준은 무모하고 맹목적이다. 생각을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이유에서 병원이라는 공간을 선택한 것일 테니까. 의사로서의 지식과 경험에 의지해, 그의 홈그라운드라고 할 수 있는 병원을 통해 범인을 쫓고 진실을 밝힌다. 다행히 그에게 병원을 맡긴 동방파는 그 범인이 누구인가를 알고 있다. 문제라면 그들이 요구하는 수술을 하기에는 그의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것. 허준은 손을 떨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홍나경에게 모든 것을 걸고 그녀에게 수술을 가르치려 한다. 손을 떠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허준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메스로 찢는다. 피로 흥건한 수술장갑속 손과 영문도 모르고 간이식에 매달리는 홍나경의 모습이 드라마의 비극이며 간절함이다. 반드시 수술에 성공해야 하고 그러나 아직은 그럴 수 없는 절박한 사정이 있다. 안타까움이 있다.

다가오는 수술시간과 여전히 미숙한 홍나경의 수술솜씨, 그리고 갈수록 오리무중인 사건의 진실, 허준의 심정 만큼이나 보는 사람도 다급하다. 이제는 심야의 병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상관없다. 바로 지금 보이는 것이 심야병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납득해 버렸다. 원래 이런 드라마였을 것이다. 그리고 기대한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상당한 완성도로 긴장과 즐거움을 주고 있다. 홍나경의 허준에 대한 미묘한 감정과 그런 홍나경을 바라보는 윤상호의 서툰 감정은 드라마를 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일 것이다. 낮의 세계에서는 홍나경은 어둠에 속하고, 밤의 세계에 있는 윤상호에게 홍나경은 누구보다 밝은 빛이다.

물론 필자의 입장에서 밤이라는 시간과 병원이라는 공간에 어울리는 에피소드가 있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지금도 여전하다. 굳이 깊은 밤 절박하게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들로 구동만을 비롯한 동방파와의 갈등과 아직도 오리무중인 사건의 진실을 향한 간절함의 넓은 사이를 채워 볼 수 있지 않을까. 울고 웃고 아우성치는 모습에서, 그럼에도 그 시간 그 장소에 병원은 있어야 한다. 허준과 홍나경과 윤상호와 이광미(배슬기 분)은 그 장소에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추구하는 바가 그런 것이 아니었을 테니까. 밤이라는 시간과 병원이라는 공간은 빌리되 <심야병원>은 다른 밤의 다른 병원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한결 더 은밀하고 한결 더 위험하다. 어릴 적 자다가 깨어 보게 되는 문밖 어두운 하늘과 같을 것이다. 어둠 속에 보이는 병원의 하얀 불빛은 여전히 불길하다. 그리고 그것은 충분히 재미있고 완성도 있다. 즐겁다. 굳이 다른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속도감이 상당하다. 긴장을 조이는 방법을 안다. 드라마란 비극이다. 비극이란 긴장이다. 연민과 공포. 어느새 드라마 속의 인물과 상황에 동요하여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함께 두려워한다. 진실을 두려워하고 닥칠 일들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이겨내기를 꿈꾼다. 주인공은 승리하는 사람이다. 조금씩 감춰져 있던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에따른 위험도 커진다. 주인공은 앞으로 나아간다.

재미있다. 불안요소는 있다. 하지만 특히 여느 드라마와는 달리 일주일에 한 번 방영되는 제한된 분량은 높은 수준의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지치지 않게 하는 효과마저 발휘한다. 일주일동안 흥분하며 기대하며 기다리고 보기에 딱 적당하다. 일주일짜리다. 이 짜릿한 흥분과 긴장은. 좋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