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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3.14 07:36

남자의 자격 - 라면은 철학이다!

라면에 담긴 인생을 논한다!

 
예전 누군가 내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라면은 철학이다!"

철학은 보편적이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개별화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개개의 삶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끓일 수 있는 것이 바로 라면이다. 내가 라면을 처음 끓인 것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주방에는 얼씬도 않는 김국진, 이윤석도 라면만큼은 직접 끓인다.

"빵은 전문가가 만들지만 라면은 아무나 끓일 수 있잖아?"

과연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라면 한 번 끓여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쩌면 식품으로써 민주주의를 가장 가까이 실천하고 있는 것이 바로 라면일 것이다.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레시피대로만 끓인다면 누구나 같은 맛의 라면을 즐길 수 있고 거기에는 어떤 경계도 없다. 더구나 싸다.

하지만 또한 그렇기 때문에 가장 각자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것이 라면이다. 파스타를 만들면서 자기만의 개성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파스타를 만드는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오랜 전통과 역사, 그리고 한국인이라는 보편적인 공감대는 밥을 지으며 변화를 주려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자칫 넘어서면 그것은 밥이 아니게 된다.

그에 비하면 라면은 쉽다. 그리고 밥처럼 역사와 전통을 통해 고정되어 있지도 않다. 쉽게 만들 수 있고 얼마든지 그 안에서 변화를 추구할 수 있다. 밥을 지으면서 치즈를 넣는 것은 반칙이지만 라면을 끓이면서는 치즈든 버터든 세상에 없는 어떤 것도 허용된다. 심지어 포테이토칩과 비위만 허락한다면 커피와 초콜릿도 넣을 수 있다. 그런 만큼 그 안에 자신의 개성을 담아내기가 쉽다.

꼬들꼬들한 면을 좋아해서 1분만 끓이고 남은 열로 익힌다. 꼬들꼬들한 면과 퍼진 면을 둘 다 먹고 싶어서 면을 나누어 시간차를 두고 차례로 넣어 익힌다. 3분동안 뚜껑을 닫고 익히다가 먹기 직전 면을 들어 공기와 마찰을 시켜 탄력을 유지한다. 온갖 비법이 등장한다. 면만 삶아 둥들게 뭉치기도 하고, 아예 면을 푹 익힌 다음 가닥가닥 잘라 죽처럼 먹기도 한다. 누가 그 법을 정했는가? 단지 자기가 먹고자 하는 바에 맞출 뿐.

계란을 넣는 것도 풀어서 넣는가, 넣어서 푸는가, 아니면 윤형빈처럼 국물이 어느 정도 식은 연후에 익지 않도록 풀어 국물을 만드는가. 아니면 그냥 모양 그대로 유지하도록 가볍게 라면 위에 떨구는 방법도 있다. 이때도 반숙인가 완숙인가로 나뉜다. 아니면 김성민이 했던 것처럼 계란프라이를 만들어 그 위에 올릴 수 있다.

라면이라는 보편 속에 그렇게 개인의 개성과 취향이 들어간다. 누구나 쉽고 간편하게 끓일 수 있는 라면이 개인과 만나 개별화되며 그의 개성과 취향 - 그의 삶을 담아낸다. 어떤 음식을 먹어 왔고, 어떤 것을 맛있게 먹으며, 어떤 것을 먹고 싶어 하는가. 다시 말해 어떤 라면을 어떻게 끓이는가에 그 자신의 많은 부분이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다.

지나칠 정도로 꼼꼼하게 하나하나 재료를 준비하고 마지막까지 마무리하는 사람은 그만큼 치밀하고 꼼꼼한 사람일 것이다. 대충 있는대로 재료를 넣어 단지 풍성하게만 꾸미려는 사람은 상당히 대범한 성격일 것이다. 단지 한 끼를 먹더라도 보기 좋게 꾸미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미적인 감수성이 발달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어떤 사람들은 라면 자체의 순수한 맛을 추구하려 라면봉지에 적힌 레시피에만 충실하여 끓이려고도 할 것이고. 건강에 신경써서 스프의 양을 줄이거나 아예 스프를 배제한 채 자기만의 방식으로 만들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당장 이경규만 하더라도 정작 내놓은 꼬꼬면은 단순히 닭고기국물에 면을 말고 역시 닭고기 고명을 얹은 아주 단촐한 라면이었다. 그러나 그 라면을 완성하기까지 시중에 판매하는 닭고기국물 가운데 적당한 것을 고르고, 그것을 물에 섞는 비율을 찾고, 닭고기 국물 특유의 비리고 느끼한 맛을 잡기 위해 어느 정도의 고추와 파가 필요한가를 일일이 실험을 통해 찾아내고 있었다. 결과물은 라면의 본질에 가까운 단순한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의 치밀함과 집요함과 체계는 그가 어떻게 50대의 나이에도 현역으로써 최고의 MC가운데 한 명으로 꼽힐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반면 그리고 그와 비교해서 단지 라면에 우엉을 잘게 썰어 넣었을 뿐인 김태원의 라면은 그다운 호쾌함과 단순함을 보여준다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은 잡스런 꾸밈새 없이 단촐하다. 정직하게 밴드의 사운드마저 절제한 채 순수한 멜로디 그 자체로 승부하려 든다. 맛을 더 내기 위해서 다른 재료를 넣고. 더 맛있어 보이게 하기 위해서 굳이 꾸미고. 어쩐지 그런 김태원이나 그의 그룹 부활은 어울리지 않지 않은가? 단지 하나를 끓이더라도 정성을 들여서. 최선을 다해서. 그러면서도 굳이 다듬어지지 않은 우엉을 들고 오는 대범함은 예능인으로서의 김태원 자신을 보여준다 할 것이다.

다만 그래서 아쉽다는 것은 라면이되 라면이 아닌 라면들이 너무 많더라는 것이다.

"라면 맛을 기본으로 좀 해 줬으면 좋겠어요."

라면이되 면만 라면면을 쓰고 스프는 하나도 안 쓰고. 굳이 라면이어야 할 필요가 무에 있겠는가? 그냥 아무 다른 면을 써도 되는 것이고. 어떤 것은 라면보다는 소면이나 파스타가 어울리기도 한다. 단지 라면면을 썼을 뿐이니 라면이라. 지나치게 비싼 재료, 지나치게 맛난 재료, 지나치게 손이 많이 가는 조리법들. 라면은 요리가 아니다.

"라면이 편하게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식품 아닙니까? 그래서 시중에 나와 있는 육수를 서치해서 적용하는 것도 상당히 힘든 작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가산점을 주었습니다."

이경규의 라면이 면만 라면면을 쓴 다른 라면들과 차별화되는 점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라면이 추구해야 할 원점을 놓치지 않았다. 그것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더 오랜 노력을 요구하는 부분이었고, 그것이 전문가인 심사위원들마저 그의 라면에 감탄케 한 이유였을 것이다. 어쩌면 더 맛있는 라면도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라면다운 라면이었다. 그것은 김태원의 우엉라면이 그 허술함에도 불구하고 높은 점수를 받았던 이유일 것이다.

어쩌면 이런 것도 라면의 철학과 닿아 있지 않겠는가. 더 크게 더 화려하게 더 멋있게. 더 맛나게 꾸며서 더 다양하게 먹기보다는, 때로는 그 본질을 추구하며. 어쩌면 가장 단순하면서도 간단한 그 본질에 다가가려는 노력이야 말로 가장 어려운 것이 아니겠는가. 쉽게 하는가. 어렵게 하는가. 그러고 보면 김태원의 우엉라면은 그가 쉽게 내뱉는 명언과도 닮아 있다.

하긴 어디 방송에 나온 참가자와 레시피 뿐일까?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레시피를 떠올리며 비교해 보고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얼마전 야심차게 개발하던 라면 하나가 끝내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굴은 라면스프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따로 살짝 데쳐서 얹어 먹어야지, 라면스프의 강한 향신료의 맛은 굴의 향기를 완전히 죽여버린다. 굴향이 나는 것도 아니고, 굴이 굴맛이 나는 것도 아니고. 이경규가 비장의 무기라며 들고 왔던 전라면도 명절이 지나 전이 남아돌면 가끔 끓여먹고는 한다. 5천만이 라면전문가라는 말 그대로 5천만의 레시피가 있지 않겠는가. 5천만의 서로 다른 취향과 5천만의 서로 다른 개성과 5천만의 서로 다른 추구들. 5천만이라고 하는 서로 다른 개인들.

참 라면 한 가지로도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가능하구나. 정작 라면대회에 들어가기 전에 토크만 거의 절반 가까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 사이에도 뭔 이야기가 이리 많은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며, 어느새 공감하는 이야기며, 전혀 모르고 무릎을 치게 되는 이야기들. 이미 라면이란 단순한 즉석식품을 넘어서 우리의 일상이며 문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문화라는 건 삶의 양식이다. 양식화된 삶이 곧 문화다. 라면 또한 그런 문화의 하나다. 라면이라고 하는 우리의 삶의 양식이다. 삶이 한계가 없이 다양하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처럼 라면 또한 무궁무진하여 그 바닥이 보이지 않는 것일 게다. 얼마나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을까. 더구나 남자라면. 제아무리 가부장적인 남자라도 주방에 서게 만드는 것이 라면 아니던가.

정말 집중하면서 보았다. 때로 공감하며 웃었고, 때로 놀라며 감탄했고, 때로 흐뭇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이런 게 남자의 자격 아니던가. 우리네의 작은 일상들. 그 일상 속에 존재하는 작은 놀라움과 감동들이. 아마 그것이 이번 <남자의 자격 - 남자, 그리고 아이디어>편이 보여주고자 한 바였을 테지만 말이다. 단지 작은 아이디어 하나로도 사람들은 라면을 통해 즐거울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 이 또한 삶의 진리 아니겠는가. 그래서 라면은 철학이다.

아무튼 라면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그렇게 사람마다 라면에 대한 입장이나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5천만이 라면전문가다. 5천만이 바로 라면철학자다. 라면을 궁리하고 탐구하고 고민하는. 라면이라고 하는 보편의 세계와 라면이라고 하는 개별의 존재. 삶과 그 양식. 이 순간에도 우리는 - 나는 철학을 한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철학일 것이다. 유용하고. 의미있고.

다음주를 기대해 본다. 아직 보여주지 못한 것들이 많다. 나머지 김국진, 이윤석, 이정진, 윤형빈이 보여줄 그들의 라면은? 많은 다른 일반인 출전자들이 들고 올 그들만의 개성과 취향들은 또? 라면을 먹고 싶어진다. 라면을 갖다 놓고서 직접 끓여먹으며 봐야겠다. 라면은 진리다. 그 진리를 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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