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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10.26 09:12

계백 "의자왕의 비극, 이것은 계백을 위한 드라마다!"

삼국의 역사는 계백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드라마 <계백>에서 백제의 왕 의자(조재현 분)의 비극은 다름아닌 드라마의 제목이 <계백>이라는 것이다. 이상적인 영웅으로 묘사된 계백(조재현 분)이 있음에도 멸망하고 만 백제의 군주라는 것이다. 그리 뛰어난 영웅인 계백이 있음에도 멸망했다면 어찌해야 하겠는가?

원래 사료에 나타나기를 의자는 그렇게 용렬한 인물이 아니었다. 계백이 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는 즉위초 신라성 40여 개 공취는 원래 의자가 주도한 것이었다. 고구려와 연계하여 당항성을 공략한 것도, 고구려와 당이 전쟁을 하는 사이 군사를 일으킨 신라의 빈틈을 노려 서쪽 성 7개를 빼앗은 것도, 즉위 15년인 655년 다시 고구려와 함께 신라의 성 30여 개를 빼앗은 것도 모두 의자가 한 일이었다. 조카인 교기와 같은 어머니를 둔 누이를들 기미 등과 함께 숙청하고, 대좌평이던 사택지적을 은퇴하게 만들고, 마침내 왕자들로 하여금 좌평의 자리를 채우도록 만들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던 백제의 귀족들을 지나치게 자극한 것이 결국 백제가 멸망하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사실 사료를 보더라도 의자왕이 특별히 탐욕스러웠다거나 사치스러웠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성충과 흥수가 숙청된 것도 이들 또한 좌평의 자리에 임명될 정도의 신분과 지위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서 왕권강화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토목을 일으키고, 명사를 제거하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태자를 교체한다. 즉위초 부여융을 태자로 책봉했던 것이 바로 이 무렵 의자의 장자인 부여효에게로 태자자리가 옮겨간다. 적장자계승이라는 전통사회의 원칙에 비추어 이것은 오히려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의 귀족들과의 충돌과 이반은 정작 나당연합군이 왕성을 공격하는 상황에서도 누구 하나 그를 구원하려 하지 않는 - 심지어 왕손이 설득하여 사비성의 성문을 열도록 하고, 웅진에서는 방령이 왕을 사로잡아 나당연합군에 항복하고 있었다. 내치의 실패이고 외교의 실패이지만 이것이 의자가 드라마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편협하고 옹졸하고 잔인하며 비열한 인물이라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동안 여러 혼란으로 말미암아 약화된 백제의 왕권을 강화하고 신라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일 정도로 뛰어난 부흥의 군주였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에게 잘못이 있다면 신라와 당이 그가 추진한 왕권강화가 제자리를 잡기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는 것일 게다. 과도기였고 백제가 가장 취약하던 때였다.

하지만 드라마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계백이었다. 그것도 둘도 없는 가장 이상적인 영웅이었다. 인품이면 인품, 무장으로서의 군략이면 군략, 어느 하나 떨어지는 바가 없었다. 그토록 뛰어난 군주와 하늘 아래 둘도 없는 명장, 그런데 나라가 망했다. 어찌해야겠는가? 계백이 영웅으로 묘사되면 묘사될수록 단지 주변만의 문제로는 설명이 되지 않을 것이다. 군대부인이라는 이름으로 사료에 등장하는 요녀의 존재 하나만으로는 백제의 멸망을 설명할 수 없다. 의자왕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계백이 영웅이 될 수록 의자는 백제가 멸망한 책임을 지고 더욱 졸렬하고 암우하게 그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계백은 사료에 기록이 없다. 그야말로 어느 순간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백제가 멸망하는 순간 약간의 기록이 사료에 나타나는 것이 전부다. 도대체 그는 누구였고 언제 태어났으며 어디에서 살았는가? 황산벌에서 5천 결사대와 함께 나타나기까지 그는 어떤 삶을 살았는가? 그런데 전혀 기록에도 없는 그를 가지고 드라마를 만들어야 한다. 더구나 영웅으로 만들어야 한다. 의자왕의 업적인 신라성 40여 개 공취와 당항성 공략이 계백의 공이 되고 만 이유였다. 그는 영웅이어야 했으니까. 그럼에도 기록에도 없이 달솔에 머물렀어야 했다. 의자는 그렇게 자기가 한 일들마저 빼앗기고 백제의 부흥을 이끈 영명한 군주로서의 모든 업적과 평가를 계백에게 내주고 만다. 그러고 남는 것은 보다시피.

사실 또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나당연합군이 사비성을 공격할 당시 오히려 사비성의 백제군에게 있어 당면한 문제는 황산벌의 신라군이 아니라 백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당나라군대였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명실상부 당대 세계최대최강의 제국이었다. 가장 선진적인 문명으로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중심에 있던 나라였다. 백제 역시 항상 당을 의식하고 당의 인정을 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었다. 사신을 보내 조공을 하고, 왕자를 보내 유학케 하고, 한창 전황이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와중에도 당이 사신을 보낸 뜻에 따라 군사를 물리고. 그런데 그 당이 바다를 건너 백강을 거슬러 백제의 왕성을 공격하려 하는 것이다. 신라가 더 위협적이었을까? 당이 더 위협적이었을까?

실제로도 백제가 더 많은 병력을 동원하여 막으려 했던 것이 백강을 거슬러 상륙하려는 당의 군대였다. 당군이 상륙하고 나서도 백제는 다시 1만의 병력을 동원해 다시 한 번 항전을 시도한다. 그에 비하면 황산벌에 보내진 계백의 5천 결사대는 단지 시간을 끄는 용도였다. 신라군의 진격을 늦추어 충분히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을 막을 수 있는 준비를 갖추기까지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었다. 단지 그동안의 왕권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귀족들과 첨예하게 대립한 결과로 귀족들의 협력을 얻지 못해 결국 고립된 채 항복하고 말았지만 말이다. 백제가 멸망하고 나서 일어난 백제부흥군이 오히려 사비성을 방어하던 당시보다 더 많았었다. 과연 계백은 백제에 있어 그렇게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었는가? 그렇다기에는 기록조차 없다.

결국 아무런 기록도 공도 없는 계백을 영웅으로 만들려니 생기는 문제인 것이다. 그럼에도 백제가 멸망하고 말았으니 그 책임은 모두 의자에게로 돌아가고, 계백에게도 공이 필요할 테니 의자만이 아닌 윤충 등의 다른 백제 장수들의 공도 계백에게로 돌아가고 만다. 백제에 장수가 계백 한 사람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다. 드라마의 의도가 계백 이외의 모든 장수들을 지워버린 것에 불과하다. 모든 것은 계백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누군가 이 드라마가 사실은 이서진이 타임슬립해서 계백에 빙의되어 일어난 가상역사드라마라 한다면 충분히 납득하겠다.

아무튼 결국 김춘추가 김유신과 미리 탈출할 계획을 세우고 적국으로 잠입하던 것을 엉뚱하게 백제의 내정을 묘사하느라 써버린 탓에, 정작 대야성에서 딸 고타소와 사위 김품석을 잃고 분노하여 고구려로 연개소문을 찾아가는 과정이 생략되고 말았다. 원래는 김춘추가 먼저 연개소문을 찾아가고, 여기에서 연개소문이 오히려 김춘추를 죽이려 하며 신라에 대한 적대적인 정책을 취한 탓에 신라가 더욱 궁지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었는데. 신라가 많은 것을 양보해가며 당과 손을 잡으려 애쓰게 되는 계기였다. 그러나 그조차도 계백의 선지와 탁견의 결과 고구려를 끌어들여 신라와의 전면전을 유리하게 끌어가는 것으로 바뀐다. 아니 단지 신라 혼자의 힘만으로도 백제를 위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많이 높이 평가해 준 것이다.

안타까운 것이다. 의자왕이며, 김춘추며, 김유신이며, 성충과 흥수도 마찬가지다. 실체가 없는 한 줄 이름으로 말미암아 실재했던 자신의 존재와 공적을 빼앗기고 만다. 계백을 높이기 위해 한없이 추락하며. 과연 지금의 성충(전노민 분)과 흥수(김유석 분)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계책을 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까막골 시절이 더 존재감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불쌍한 것이 모든 공을 빼앗긴 채 있지도 않은 오명까지 뒤집어쓰게 된 의자왕. 망국의 왕이라고 사료에서 온갖 비난을 듣는 것도 서러운데 드라마에서 그나마 한 일조차 부정당한다. 아니 이제는 아예 인사불성이 되어 돌아가는 꼴을 지켜보지조차 못한다.

드라마가 갖는 근본적 모순일 것이다. 역사에 기록이 없다. 역사에 계백이라는 인물에 대한 어떠한 구체적인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그런 계백의 일생을 재구성하려 한다. 차라리 아예 허구로 재구성했으면 상관이 없었을 것을 굳이 역사적 사실과 이어 놓으려 하니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고 만다. 그래서 지난 27회에서 작가는 의도적으로 대야성을 공력하는 주역 가운데 윤충의 이름을 배제함으로써 그럴 수밖에 없는 드라마의 정체성을 확인해주고 있다. 이 드라마는 계백을 위한 드라마지 역사를 재구성한 드라마는 아니다. 멋지다.

결국 은고(송지효 분)가 그토록 변하게 되는 이유란 것도 계백으로부터 외면당한 데 따른 배신감 때문이었다. 그것이 오로지 유일하게 은고로 하여금 순수를 지키도록 만들던 끈이었는데. 그러고 보면 대야성이 함락당할 당시 검일이 김품석을 배반한 이유가 자신의 약혼녀를 김품석에게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김품석과 의자, 검일과 계백, 과연 검일의 아내가 여전히 검일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면 자신을 위해 김품석을 배반한 검일을 어떻게 여겼을까? 나라인가? 아니면 사랑하는 연인인가? 원래 봉건사회에서의 충의란 쌍무적인 것이었다. 왕이 왕으로써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그에 대한 충의도 역시 사라진다. 확실히 대야성 함락 당시 김품석과 검일의 이야기를 허술하게 넘어간 이유가 있다. 이야기가 겹친다.

다정은 무정이라더니. 다정이 무정으로 변하면 그것이 더 무섭다. 백제는 치정싸움에 망했다. 암여우가 대좌평의 책상에 앉았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 은고의 변신이 상당히 흥미롭다. 계백은 의외로 나쁜 남자였다. 누워 있는 의자를 진심으로 동정하게 된다. 안쓰럽다. 이것도 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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