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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10.21 07:06

뿌리깊은 나무 "세종의 눈물, 절대군주의 외로움..."

반전에 반전, 사건은 더욱 미궁속으로 빠져든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왕이란 바로 그런 자리다.

"내 책임이다! 내가 죽인 것이야! 이 조선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 내 책임이다! 꽃이 지고 홍수가 나고 벼락이 떨어져도 내 책임이다! 그게 임금이다! 모든 책임을 지고 그 어떤 변명도 필요없는 자리, 그것이 바로 조선의 임금이라는 자리다! 헌데 네까짓게 뭐길래 감히 내 책임이 아니라고 하느냐? 내 사람들이 내 일을 하다가 죽었다. 내가 죽인 것이야!"

전제군주라는 것이다. 전제왕조란 모든 것이 왕의 사유물임을 전제하는 것이다. 땅도 사람도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왕의 소유다. 단지 그것을 왕의 허락과 보장 아래 잠시 영위할 뿐이다. 나라의 은혜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런 만큼 왕의 책임 또한 하늘 아래 모든 것에 미친다.

아주 고대에는 나라에 재해가 닥치면 왕이 나서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그래도 재해가 그치지 않을 경우 왕을 죽여 그를 제물삼아 제사를 지내 용서를 구하고 했었다. 근대 이전까지 동아시아의 군주들은 나라에 재해가 닥치거나 하면 그것이 자신의 책임이라 여기고 자책하며 근신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었다. 왕이 제대로 한다면 나라에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그래서 천자다. 하늘의 뜻과 땅의 이치를 잇는 존재.

그래서 왕이란 고독한 것이다. 차라리 재산이라면 나누기라도 할 것이다. 높은 관직에 있다면 그 책임을 따로 나누어 지는 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왕의 책임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왕이란 오로지 한 사람 뿐이기 때문이다. 왕이 둘이라면 그는 더 이상 왕이 아니다. 왕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는 더 이상 왕이라 할 수 없다. 그래서 태종은 마방진을 만들면서 가운데 왕 하나만 남겨놓았던 것이었다. 세종도 마방진을 풀며 왕을 모든 것의 끝에 놓아 두었다. 왕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특정한 대상에 애정을 갖게 된다면 다른 누군가에게는 소홀하기 쉽다. 어떠한 무언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때 다른 무언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멀어지게 된다. 그래서 그 어느 것도 소유하지 못하고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 결과적으로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왕의 소유이지만, 그래서 하늘 아래 어느 것도 왕의 것은 없다. 부모도, 자식도, 심지어 부부사이에도. 부모조차 이미 왕이라면 왕의 신하인 것이지 부모가 아니다. 인간이 아니다.

물론 과연 그러한 왕으로서의 자격을 엄격하게 지킨 왕이 하늘 아래 있었던가? 그래서 왕조란 역사 속에서 생명을 다하고 만 것이었다. 왕 또한 인간인 때문이었다. 인간으로서의 이기가 왕이라는 권력과 만났을 때 그것은 곧 그의 소유여야 할 나라 안의 다른 이기와 충돌하게 된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존재여야 하는데 모든 것과 충돌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역성혁명이 일어나고 혁명을 통해 세상이 바뀐다. 그나마 그에 가장 가까운 것이 명군이라 하는 임금들일 것이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주재하는 존재로써 그 모두에 대한 책임을 항상 가슴에 품고 등에 지고 살아갔던 이들. 세종(한석규 분)이 명군인 이유였다.

사실 한반도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권을 지녔던 이가 바로 세종이었다. 가장 전제적인 군주였으며 가장 계몽적인 군주였다. 계몽이라는 자체가 원래 무지렁이 백성들에게조차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하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모두를 자기의 것으로 소유하고 싶다. 그래서 유럽의 역사에서도 계몽군주라 불리는 대부분이 강력한 왕권을 휘두르던 이들이었다. 항상 얼굴을 마주하는 관료집단만이 아닌, 성리학적인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지배계급인 사대부만이 아닌, 땅을 일구고 고기를 잡고 사냥을 하는 모두를 자기 백성으로 여기고자 했던 이. 한낱 노비며 백정에 불과하던 이들조차 그래서 스스럼없이 가까이할 수 있다. 왕 아래 사대부나 양민이나 천민이나 모두 같은 그의 신하이며 백성이다. 그것이 세종이었다.

어째서 세종은 강채윤(장혁 분)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당장 어찌하지 못하고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백성인 때문이다. 자기 소유의 물건을 아끼는 것은 인간의 본성 가운데 하나다. 내 백성이다. 역사상 수많은 군주들이 그렇게 백성을 함부로 대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아끼는 모습을 보이던 이중성은 바로 그로부터 비롯된다. 더구나 강채윤은 아직 똘복이라 불리던 시절 태종으로부터 구해낸 그의 첫백성이었다. 하기는 그같은 강채윤에 대한 망설임이야 말로 세종의 인간적인 면모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러다가 강채윤으로 인해 세종이 일신에 해를 입으면 그 영향은 어디까지 미치게 될까?

소이(신세경 분)의 위로는 바로 그러한 세종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었다. 왕이란 존엄한 존재다. 신성하며 절대적인 존재일 것이다. 과연 누가 있어 왕을 위로할 수 있을까? 과연 누가 있어 왕은 위로받을 수 있을까? 후회조차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반성조차 삼가며 조심해야 한다. 하물며 일개 나인의 위로따위 왕에게 무슨 큰 의미가 있을가? 그럼에도 역시 소이를 처벌하지 못하는 것은 세종 또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단단하게 두르고 여민 왕이라고 하는 가면 아래 수많은 일들이 균열을 일으켜 왕의 인간적인 나약함을 드러내고 만다. 소이의 위로는 바로 왕이 아닌 인간 세종 - 아니 이도에 대한 것이었을 테고. 소이 또한 강채윤과 마찬가지로 아버지 태종으로부터 구해낸 왕이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부끄러운 흔적이다.

탐욕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이기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왕은 성군이라 불리운다. 모든 것이 자기 것이다. 모든 것이 자기 것이기에 차별함이 없다. 모든 것이 자기 것이기에 그에 대한 책임까지 온전히 자기가 진다. 그것이 곧 왕이 갖는 이기다. 그것을 왕도라 부른다. 원래 그래서 왕도란 패도와 함께 가는 것이다. 왕이 난폭하지 않다면 그는 왕이라 할 수 없다. 민주화된 지금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좋은 왕은 인간적인 왕이 아니다. 자기마저 거세한 단지 왕일 뿐이다.

반전에 반전을 더한다. 마침내 죽은 집현전 학사 윤필의 목에서 활자가 몇 개 발견된다. 곤구망기(ㅣ口亡己)사실 한글을 알고 있는 시청자에게는 너무나 쉬운 퍼즐이었다. 단지 비슷한 글자를 조합하여 드라마 속 어떤 단어와 일치시키면 된다. 그러나 아직 한글의 존재를 모르는 드라마 속의 인물들에게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암호에 불과할 뿐이다. 그 대단하다는 정기준(한상진 분)조차 윤필이 남겨 놓은 퍼즐 앞에 좌절하고 만다.

스릴러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퍼즐. 마치 퍼즐조각을 맞추듯 여러 증거를 꿰어맞춰 보다 진실에 접근해 간다. 스릴러의 성패는 바로 그 퍼즐의 완성도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실을 알 수 없도록 철저히 가리되 납득할 수 있을 만큼의 힌트를 준다. 그런 점에서 누구나 알고 있는 한글을 누구도 알지 못하던 시대의 퍼즐로 사용한 것은 드라마의 주제와 맞물리며 최상의 완성도를 일구어낸다. 세종과 훈민정음 창제, 그리고 그것을 방해하려는 세력, 그런데 그 과정에서 죽임을 당한 희생자의 사자전언이 훈민정음과 관계가 있다. 얼마나 절묘한가? 보다 말고 탄성을 내지르고 말았다. 진짜 이야기를 쓸 줄 아는 작가다.

그리고 드러나는 천지계의 존재. 아마도 밀본의 반대편에 있을 것이다. 왕 세종을 중심으로 무언가 중요한 것을 꾀하는 비밀결사일 것이다. 그 일부가 훈민정음의 창제에 관계된 것처럼. 처음에는 단순한 문신에서, 그러나 죽은 이들의 시체를 둘러싼 쟁투 가운데 전혀 뜻밖에 시체를 빼돌린 또다른 천지계원 성삼문(현우 분)과 박팽년(김기범 분)에 의해 그 실체가 드러난다. 다만 아직까지 나머지 부분은 아직 장막 속에 가려져 있다. 아마 이후 천지계의 존재는 드라마에서 중요한 반전을 이루게 될 것이다. 하기는 이름값에 비해 하는 일이 너무 적었다. 성삼문이든 박팽년이든 모두.

정기준의 실체가 드러났다. 반촌의 도담댁(송옥숙 분)이 그토록 공손히 대할 수 있는 인물. 밀본의 핵심으로 이 모든 일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주재자. 집현전의 종 3품 직제학 심종수다. 역시 범인은 항상 가장 가까이에 모두가 예상하지 못하는 곳에 있다. 집현전 내부에서 범행이 저질러지기 위해서는 집현전 내부에 대해 잘 아는 누군가가 범인의 무리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충격은 그 누군가가 이쪽과 저쪽 모두에 신뢰를 받는 상층부에 있을 때 더 커진다. 문무겸전. 다만 등장하는 장면은 너무 뻔한 것이 허탈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다.

엎치락뒤치락. 한 가지 사실이 밝혀지면 오히려 그로 인해 아직 알지 못하는 몇 가지의 비밀이 더 드러나고, 그 비밀을 알게 될수록 더욱 진실은 미궁속으로 빠져든다. 왕과 천지계, 그리고 정기준과 밀본, 그 사이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세력 조말생(이재용 분)등의 관료들. 무엇이 진실이고 - 아니 그것은 어느 정도 드라마이다 보니 시청자의 입장에서 유추가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 더욱 흥미가 간다. 그들은 과연 어떤 과정을 통해 마침내 진실에 이르게 될까? 그리고 더불어 무협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액션이 기대를 더한다. 다만 역시 심종수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의 액션은 전혀 불필요했다. 사족이었다.

세종의 매력과 그에 더하는 스릴러의 긴장, 조선의 왕궁에서 펼쳐지는 연쇄살인과 그와 관계된 은밀한 비밀들이 더욱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그래도 주연 가운데 하나인데 강채윤의 존재감이 너무 미약한 감이 없잖아 있기는 하지만 다름아닌 세종이 그 상대일 테니까. 더구나 그 연기하는 배우가 다름아닌 한석규다. 왕으로써 토로하고, 스스로 직접 추리를 하며 진실에 다가갈 때 어떤 짜릿함마저 느낀다. 역사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만족감이다.

갈수록 더 재미있어진다. 과연 진실은? 실체는? 범인은? 사건은 더욱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그토록 오랜 세월을 그리워해 왔음에도 무정한 세월은 강채윤과 소이로 하여금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채 엇갈리도록 만든다. 이들의 안타까운 인연은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오해는 쌓여간다. 기대도 쌓여간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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