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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10.19 09:58

천일의 약속 "김수현표 드라마의 장점과 한계, 비극은 이렇게 쓰는 것이다!"

아직은 도입부, 여전히 기대할 만한 것들이 보인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김수현 드라마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지나치게 작가의 자의식이 드라마에 들어간다. 대사가 장황하며 현학적이다. 인물과 상황을 쫓는 것이 아니라 대사 자체와 작가의 미학을 쫓는다.

사실 김수현 드라마의 위화감은 특유의 완벽한 대사에서 나타난다. 마치 노래하는 것 같다. 운율까지 맞춰 마치 노래를 부르듯이 대사톤까지 정해져 있다. 정교하게 맞물리며 돌아가는 가운데 어쩌면 저리도 적확하게 비유며 표현이며 고습스럽게 적확하게 쓰고 있는 것일까?

어지간히 교육받고 훈련받은 사람도 사실 그러기란 쉽지 않다. 저토록 현학적인 표현까지 동원해가며, 그때그때 적합한 멋드러진 표현까지 써가면서, 그것도 잠시의 쉴 틈도 주지 않고 쏟아낸다. 어쩌면 너무 자연스럽다는 것이 김수현 드라마의 부자연스러움일 것이다. 덕분에 대사톤도 고정되어 있고 최소한 대사에 있어 캐릭터간의 차이가 확실히 두드러지지 않는다.

물론 그럼에도 대가는 대가일 것이다. 어떻게 드라마를 써야 하는가를 안다.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드라마를 쓸 수 있는가를 안다. 불우한 과거아 우울한 현실, 그리고 예고된 비극. 파고 파고 또 파고 더 깊이 파고 들어갔을 때 비극의 심연에 가 닿게 된다. 어설프게 비극을 쓸 것이 아니라 제대로 한 인간을 절망의 수렁으로 밀어 떨어뜨리고서 그를 보며 눈물을 짓는다. 그의 고통과 발버둥을, 그의 공포와 좌절을, 그러면서도 작은 희망을 보게 만든다. 그것은 축복도 무엇도 아니다. 단지 유희일 뿐. 그것이 비극이다.

그래서 박지형(김래원 분)의 캐릭터가 흥미로운 것이다. 박지형의 태도는 작가의 태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는 선량하다. 그러나 강하지 못하다. 한 마디로 비겁하다. 비겁하여 사랑하는 것도 헤어지는 것도 그리워하고 아쉬워하는 것도 그 자신의 뜻으로 하지 못한다. 방관하고 방치하며 그 책임을 상대에게로 돌린다. 헤어지는 것도 이서연(수애 분)이 헤어지고자 해서 그리 한 것이라고. 죄책감을 갖는 것조차 단지 도피의 수단이다. 철저히 자기연민에 빠져 자기를 연민하는 눈으로만 이서연을 보게 된다. 그는 그래서 절망이고 구원이다. 이서연의 삶을 희롱하는 재앙이었을 것이다. 너무나 달콤하여 떨쳐버릴 수 없는 재앙이.

갑작스럽기는 하지만 괜히 끌어봐야 뻔한 신파나 만들어질 뿐이다. 박지형과 노향기(정유미 분)의 결혼과 그 반대편에서 심각한 기억장애로 인해 공포에 떠는 이서연. 살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되는 박지형도 비극일 것이고, 그같은 사연을 모르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사랑하여 결혼하려는 노향기도 비극일 것이고, 박지형과의 헤어짐이라는 비극의 끝에서 병을 마주해야 하는 이서연도 비극일 것이다. 빛과 그림자, 그러나 세상은 회색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세상은 비극으로만 가득 차 있는 듯하다. 아마 김수현 작가의 특성상 이처럼 비극이 극대화되어 있으면 구원을 얘기하려는 경우가 많다.

정신적인 사랑만이 아닌 육체적 사랑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든다. 몸이 마음을 따라가기도 하지만 마음이 몸을 따라가기도 한다. 사랑한다면 함께 있고 싶은 것이 당연한 것이다. 이성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유전자를 후손에게 전하기 위함이다. 만지고 싶고, 안고 싶고, 키스하고 싶고, 그와 함께 열락에 빠져들고 싶다. 그것은 사랑한다고 하는 육체적 증거다. 정신적 만족감보다 더 확실한 육체적 충만함이다. 오래도록 박지형을 안지 못한 것을 서운해하며 눈물을 흘리는 노향기나, 그리고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 즉시 육체의 격정 속으로 빠져들던 박지형과 이서연이나. 세상 좋아졌달까? 이런 것도 공중파로 보인다.

김수현의 드라마라는 점에서 기대하는 것이 있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불안한 것도 있다. 장점이 두드러지면 단점도 두드러지게 된다. 과연 어떠할까? 확실히 김수현은 아직까지도 그 누구보다도 드라마의 맨 앞에서 거론되는 작가의 이름일 것이다. 김수현이니까.

아직은 도입부다. 더 빠져들어가야 한다. 비극으로. 심연으로. 절망으로.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며 안달할 때 드라마는 비로소 탄력을 받았다 할 수 있다. 기대하고 본다. 아직은 좋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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