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10.19 09:27

계백 "백제가 망한 이유, 콩가루라서 재미있다!"

비로소 드라마가 재미있어지려 한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드라마를 보면 볼수록 백제는 망할 수밖에 없는 나라였음을 깨닫게 된다. 장수는 왕의 허락없이 다른 나라와 동맹을 맺으려 하고, 신하는 어느새 왕자들의 왕위다툼에 끼어들고, 후궁은 예언에 현혹되어 국가의 일에 개입하려 한다. 왕은 질투에 미쳐 있다.

물론 전장에 나가 있는 장수에게는 맡은 바 싸움에 승리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결정적으로 패하지 않는 한 그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원칙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다른 나라와 동맹을 맺는 것은 외교에 속하는 일로써 어디까지나 조정에서 심사숙고하여 결정할 국가의 대사다. 싸움은 국가의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외교는 자칫 국가의 전략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과연 당항성을 공략하여 신라가 당으로 가는 통로를 차단할 것이냐? 아니면 당항성을 포기하더라도 신라와 당과 최소한의 우호관계를 유지할 것이냐? 고구려와 당의 관계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면 고구려와 당이 전쟁을 벌일 경우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항성을 쳐서 떨구면 되는 일선의 야전지휘관과는 입장이 다른 것이다. 지휘관의 입장에서 당항성을 함락하는 것이 당면의 목적이라면 조정은 그 이상을 보아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것도 모르고 일개 장수가 독단적으로 고구려의 실권자에게 사신을 보내고 마침내 동맹을 허락하는 편지까지 받아내다니. 충분히 논의하고 결정했어야 했을 중대한 사안을 말 그대로 계백(이서진 분)의 독선과 독단에 의해 결정하려 들고 있는 것이다. 마치 조정이나 왕따위 안중에 없다는 듯이. 오로지 자기만 옳고 자기만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듯이. 영웅이라 불리게 된 것에 도취된 것일까? 진짜 백제를 구할 영웅이라고?

흥수(김유석 분)가 부여태의 태자책봉을 지지하고 나선 것도 마찬가지다. 다른 것 없다. 부여태가 부여효보다 나이가 많다. 더구나 부여태의 어머니는 의자왕(조재현 분)의 정비인 연태연(한지우 분)이다. 한 마디로 적장자다. 적통이며 가장 나이가 많다. 장자계승은 역사상 수많은 왕조들이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며 세운 원칙이었다. 서열이 무너지면 혼란이 찾아온다. 혼란은 곧 패망으로 이어진다. 차라리 무능하더라도 정통성 있는 후계자를 세우고 그를 신하들로 하여금 보좌하게 한다. 그런데 다른 이유에서 부여태를 지지한다며 계백과 성충(전노민 분)마저 그 세력으로 끌어들이려 노력하고 있다. 결국 파벌을 만들겠다는 소리다.

왕을 자기 뜻대로 하겠다. 자기 입맛에 맞는 왕을 세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 그래서 사적으로 무리를 끌어들이고, 세력을 이루고, 장자계승은 결국 흥수의 그같은 무리한 욕심으로 인해 파벌과 왕권다툼으로 얼룩지고 만다. 그냥 가만히 있으며 장자계승의 원칙을 지켰으면 좋았을 것을 흥수가 먼저 나선 탓에 은고(송지효 분) 역시 당당하게 왕위계승을 둘러싼 싸움이 끼어들 명분을 얻게 된다. 결국 왕위계승과 관련한 혼란으로 백제의 내정이 역사처럼 혼란에 빠질 경우 그 가장 중요한 책임은 흥수 자신에게 있다고나 할까?

하기는 성충 역시 그다지 다르지 않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보다 누가 가깝고 먼가를 먼저 본다. 사적으로는 계백의 의형일지 몰라도 공적으로 그는 백제의 조정에 속한 신하다. 그렇다면 신하로써 공적인 업무에 충실했어야 하는데, 그러나 그는 계백이 잘못한 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계백의 편에 서고 만다. 흥수가 잘못한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꾸짖지 못한다. 역시 이런 것을 두고 붕당이라 하는 것이다. 차라리 어떤 이념으로 뭉쳤다면 무언가 지향하는 바라도 있을 터인데, 그러나 고작해야 인정에 이끌린 붕당이다.

은고는 어떤가? 신녀의 예언이 아무리 신묘하기로 그것은 결국 일개 예언에 불과하다. 하기는 믿는 입장에서 그것은 매우 절대적인 것이기는 하다. 그것이 종교다. 하지만 그 종교적 믿음에 이끌려 국정에 직접 개입하려 하다니. 당황제로부터 벼슬을 받아 당의 사신 자격으로 백제를 찾은 김유신을 죽일 경우 돌아올 후폭풍은 생각지 않고 오로지 예언만을 믿고 그를 죽이려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그래서 당이 고구려를 치기 전에 백제를 먼저 치고, 신라가 나라의 명운을 걸고 백제에 전쟁을 걸어 온다면?

싸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계백의 말은 지극히 옳다. 신라는 상대적으로 중앙집권이 잘 되어 있어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는데 용이하다. 그에 비하면 백제는 아직 귀족들의 세력이 강해서 그들의 협력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아무리 왕이더라도 필요한 병력을 동워하는데는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백제가 망할 당시도 정작 백제의 다른 귀족과 성들이 사비와 의자를 버린 결과 그리 허무하게 망해버린 것 아니던가 말이다. 의자왕이 당으로 끌려가고 난 뒤에도 부여풍이 일본으로부터 돌아와 부흥군을 이끌었을 때 그 규모가 물경 수만이었다. 최근의 역사는 그래서 의자왕 이후 부여풍을 백제의 마지막 왕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하기는 아직 신라와 전면적으로 전쟁을 벌일 여력이 없다는 판단에도 불구하고 신라의 요충이라 할 수 있는 당항성을 공략하려는 계백도 계백일 것이다. 신라가 당연히 당항성을 되찾으려 나설 것임에도 고구려와 독단적으로 동맹을 맺고 당항성을 공략하려 하다니. 그동안 보아 왔던대로 계백은 머리가 나쁘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전혀 알지 못한다.

아무튼 김춘추가 인물은 인물일 것이다. 벌써부터 의자왕과 계백의 사이를 갈라놓고, 연태연과 은고 사이에 왕위계승을 둘러싼 분쟁의 씨앗을 뿌려 놓는다. 그렇지 않아도 콩가루인 백제의 내정이 아예 먼지가 되어 흩날리려는 지경이다. 부여융이 원래 방계라. 가장 먼저 태자로 책봉되는 것이 부여융일 텐데, 방계라서 중국으로 인질로 보내진 것이라고. 부여융이 태자로 책봉되는 것까지 보여진다면 백제는 어디까지 막장의 모습을 보여주게 될까? 고작 김춘추 하나에 이리 휘둘르며 흔들리는 백제라고 하는 왕조라니.

그래도 재미있다는 것은 그런 엇갈림이 있으니까. 복잡한 여러 입장이 교차되며 흥미를 자아낸다. 이제까지 사택왕후와 의자 단 두 개의 입장만이 존재했다면, 사택왕후가 제거되고도 오로지 의자와 계백의 갈등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태연과 흥수가 얽히고, 은고와 의자가 대립하며 복잡한 갈등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합집산과 합종연횡.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되어 갈까? 마지막 은고가 계백에게 돌아가려 한다는 말은 파멸적 비극을 예감하게 한다. 막장이란 때로 지극한 감정의 고조를 뜻하기도 한다.

조금 더 의자의 캐릭터를 입체화하여 묘사했으면. 이서진의 계백은 딱 그런 정도가 한계일 것이다. 한지우가 연기하는 연태연은 덕분에 그저 주위를 돌아볼 줄 모르고 자신의 감정만을 앞세우는 어리석음으로 비쳐진다. 연기력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워낙에 연태연 자체가 그다지 뛰어난 연기력을 필요로 하는 캐릭터가 아니다. 연기력 부족이 캐릭터와 어울린다. 당장 성충과 흥수부터 그 롤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될 텐데. 의자의 주위에 성충과 흥수와 맞설 수 있는 측근이 한 명 쯤 있어주어도 좋을 것이다. 의자가 좌평에 임명했다는 왕자출신이면 좋을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백제는 어째서 망했는가? 드라마는 그 한 가지는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왕은 질투심에 미치고, 왕후는 배신감과 분노에 치를 떨며, 장수는 어리석고, 신하는 자기 생각만 하고 있다. 나라가 유지될 수 있을까? 더구나 의자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어째서 그러한가? 그럼에도 드라마에서는 제법 그럴싸하게 판단을 내릴 줄 아는 인물로 그려진다.

진작 왜 이러지 못했는가 싶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이제까지 기다리며 지켜 본 보람이 있는 것 같다. 과연 언제까지 이럴 것인가 알 수는 없지만. 또한 여전히 역사와는 담을 쌓은 역사드라마다. 하지만 드라마의 본래 목적은 재미이니. 오랜만에 인정한다. 기다린다. 기대한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