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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10.18 10:33

계백 "김춘추의 등장, 새로운 흐름이 재미를 더하다!"

다시 한 번 드라마 '계백'의 문제를 생각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김춘추(이동규 분)의 등장으로 드라마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그동안 의자(조재현 분)와 은고(송지효 분), 계백(이서진 분) 주위에서만 노닐던 이야기가 백제와 신라, 나아가 고구려와 당까지 뻗치며 역사드라마다운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이것이 드라마 <계백>이었다.

어째서 그동안 드라마 <계백>은 몇몇 등장인물들의 주변이야기에만 머물 수밖에 없었는가? 사택왕후 하나 제거하는데만 20회 가까운 분량을 허비하고, 사택왕후를 제거하고 나서도 의자와 은고, 계백 사이의 삼각관계에만 천착했다. 성충(전노민 분)과 흥수(김유석 분)마저 분량이 거의 없을 정도로 드라마는 매우 협소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어째서?

등장인물이 몇 없으니까. 실제 지금도 드라마 <계백>에서 어느 정도 분량을 보장받은 인물은 의자와 계백, 은고를 제외하고는 성충과 흥수, 그리고 연태연(한지우 분) 뿐이다. 지난주까지는 아직 무왕(최종환 분)이 살아 있었다. 나머지는 단지 들러리에 불과할 뿐. 그런데 항상 보는 이들 인물들 가운데 새롭게 만들어낼 만한 이야기가 뭐가 있겠는가?

실제 보듯이 김춘추가 새로운 이야기를 가지고 등장하자 드라마의 분위기가 어떻게 바뀌고 있던가. 여전히 의자와 은고, 계백 사이의 관계는 드라마의 중심으로써 유효하다. 그러나 김춘추가 등장하여 신라의 의지를 전함으로써 비로소 백제는 삼국시대 속으로 다시 돌아간다. 김춘추의 계략에 의해 의자와 계백의 사이가 벌어짐으로써 의자와 계백의 갈등이 역사적 맥락 속으로 다시 돌려진다. 마침내 의자의 계략을 알게 된 은고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까지의 드라마가 치정극에 불과했다면 이제부터는 역사적 사건으로서 이루어진다.

역사라고 하는 자체가 원래 몇몇 개인에 의해서만 일방적으로 결정되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수많은 주체가 있고, 그 주체들이 서로 맞물리고 엇갈리며 시대를 만들고 역사를 만들어간다. 그래서 역사드라마에는 항상 여러 수많은 이름들이 등장하게 된다. 역사드라마라고 하면 항상 대하드라마를 떠올리고, 그에 걸맞는 스케일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 그래서다. 아니라면 <공주의 남자>나 <뿌리깊은 나무>처럼 역사의 어느 한 부분만을 집중하여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생략하는 변칙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계백> 그 가운데 어느 것도 아니었다.

어떠한 특정한 인물이나, 사건, 시간에 집중하려는 의도를 가진 드라마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 시대의 시간과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려는 의도도 없었다. 한정된 인물에 의해 그 시대를 재구성한다. 한정된 인물을 가지고 삼국시대 백제라고 하는 나라와 그 영락을 구현하려 하니 결국은 그 몇몇 개인의 한정된 이야기로만 드라마를 끌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산만해지고 공허해진다. 그리고 사변적인 이야기로 인하 역사적 맥락 자체를 잃어 버린 채 자칫 밀실드라마로 전락해 버릴 수 있다. <공주의 남자>만 하더라도 결국 모든 역사적 사건들은 몇몇 인물들과 그들이 머물던 밀실에 의해 결정되고 추진되었었다.

그동안 줄곧 비판해 온 드라마가 공허하다. 주위에 사람이 없다. 의자는 어찌하여 계백을 질투할 수밖에 없는가? 신하가 없다. 기껏 총애한다는 태학학사라는 인간조차 얼마간의 고문과 위협 앞에 왕의 치부를 그대로 털어놓는다. 나서서 왕에게 위협이 되는 계백을 대신해 죽이겠다. 은고를 얻으려 할 때도 왕을 대신해 왕의 마음을 헤아려 은고를 얻도록 해주겠다. 그러니까 의자와 계백, 은고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고 드라마는 단순하고 지저분해진다. 단순하면 오히려 간결해야 하는데 그 감정 자체가 복잡한 것이므로.

원래 이렇게 치졸한 왕이었던가? 역사속 의자는 비록 말년에 폐정을 범하기는 하지만 최소한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즉위 2년 당시에는 신라의 성 40여 개를 빼앗고, 고구려와 보조를 맞춰 신라를 궁지로 내몰았던 영명한 군주였다. 그렇기 때문에 폐정이라 일컬어지는 왕권강화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조차도 모두 계백의 공으로 돌리고.

계백의 공으로 돌리는 대신 당항성을 끝내 공략하지 못한 책임마저 의자에게 돌려 버리고. 계백을 살리고자 의자를 죽인다. 역사에 없는 계백의 공을 만들기 위해 의자를 의심만 많은 무능한 왕으로 만들어 버린다.

밀실역사드라마의 한계인 것이다. 밀실에서 몇몇 개인에 의해서 진행되는 드라마이므로. 여러 다른 의지가 엇갈리는 시대와 사건들에 대해서도 몇몇 개인의 사적인 입장을 통해서만. 그로부터 감정이 드러나고, 그것이 캐릭터라는 이름의 인성을 부여하고, 모든 것이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진다.

계백이 물러난 자리에서 의자가 역사대로 영웅으로 등장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면 그것은 밀실드라마의 법칙을 위반한 것이 되니까. 계백이 밀실을 벗어나는 순간 밀실드라마는 더 이상 밀실드라마가 아니게 된다. 마치 김춘추가 밀실 안으로 들어오며 분위기를 바꿔 놓은 것처럼. 그럼에도 김춘추 역시 밀실 안에 있다.

역시 배우들의 출연료가 문제였을까? 드라마가 워낙 많이 제작되어지고 있으니 배우 수급에도 문제는 있었을 것이다. 그보다는 시간적 한계였을 것이다. 작가 입장에서도 세 사람이서 서로 툭탁거리는 게 쉽지 그 수가 열 사람이 되고 백 사람이 되면 짧은 시간에 쓰기에는 부담이 크다. 그래서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은 많아야 네 명 정도다. 그 수준을 넘어서면 지금의 시스템으로서는 감당이 안 된다. 그런데 하필 역사드라마라서. 그것도 <공주의 남자>와 같은 변형된 역사드라마가 아닌 제대로 된 역사드라마를 그려내려 했다.

어쨌거나 김춘추가 등장하고, 이름이나마 연개소문이 등장하고, 어째서 계백이 그리 뛰어난데 황산벌로 향할 당시 달솔의 관직에 머물러 있는가도 이해가 되고. 은고의 아들이 부여 효라면 부여 효의 아들 부여문사가 부여 태를 설득하여 사비성의 문을 연 사실도 이해가 된다. 다만 원래 부여 효는 부여 태의 형이었다는 것. 그리고 의자왕 2년에 태자로 책봉되는 것은 3남인 부여 융이었다. 나중에 백제가 멸망하고 웅진도독이 되어 백제를 다스리게 될 인물이다. 그러나 어차피 드라마는 <계백>일 테니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면 안 된다.

하여튼 워낙에 역사에 기록이 없는 계백이라. 백제가 멸망할 당시 단 한 번 그 이름이 역사에 등장한다. 그래서 무리수가 많다. 없는 공을 만들고 없었던 자리를 만들어주고 판타지가 되고 만다. 여기에 밀실드라마로서 항상 밀실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이 괜한 의자왕만 계백과 얽히며 몹쓸 사람이 되고 만다. 말년에 문제를 일으키기까지 그래도 백제의 부흥을 이끌고 신라를 위협하던 왕이었는데. 근본적 한계였을 것이다.

그래도 조금은 재미있어지려는 것 같기는 하다. 은고가 의자의 계획을 알았고, 의자는 노골적으로 계백을 견제하려 든다. 이제 즉위 2년이니 너무 빠르기는 하지만 역시나 <계백>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면 실망만 할 뿐이다.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 백제를 멸망에 이르게 한 요녀의 이름을 일본서기는 대군부인이라 기록하고 있었다. 은고였을까?

진작에 이랬으면 좋았을 것을, 정히 배우가 없다면 신인들도 얼마나 많은가? 한 번 쓰고 죽이더라도 새로운 인물을 통해 새로운 사건과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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