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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10.17 07:53

남자의 자격 "양신 양준혁, 야구는 아직 너무 이르다!"

그러나 아무렇지 않은 동네야구가 즐겁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2009년 6월 14일, 그야말로 <남자의 자격> 초창기에 여섯번째 미션으로 방송되었던 것이 바로 "남자,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였다. 그리고 그 친구의 이름은 김태원.

지금과 같지 않았다. 비록 <라디오스타>와 <놀러와>, <스타골든벨> 등을 통해 대중들에 어느 정도 얼굴과 이름을 알리기는 했지만 김태원이란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생소한 이름이었다.

그저 제법 웃기는 이상하게 생긴 아저씨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가 한때 대한민국 3대 기타리스트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혔다는 사실도, 대한민국 록의 산 증인이라 할 만한 밴드 '부활'을 25년째 지켜온 리더라는 사실도, 그때까지는 전혀 안중에 없었다.

이경규와 김국진, 왕비호 윤형빈, 배우 이정진과 김성민에, 그나마 가장 인지도가 떨어지던 이윤석조차 꾸준히 방송에 출연하며 그 얼굴과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비록 국민시체로써 어느 정도 대중적 인지도를 얻기는 했지만 일곱 멤버 가운데 가장 대중과 친하지 않았던 인물이 다름아닌 김태원이었다. 프로그램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김태원에 대해서 다른 멤버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대중들에 알릴 필요가 당시에는 있었다.

그래서였다. 무려 한 주, 하나의 미션을 소모해가며 김태원이라는 한 멤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려 했던 것은. 그가 사는 집과 그의 부모와 그리고 부활의 멤버들과 함께 하는 연습실. 인간 김태원을 보았고, 그리고 음악인 김태원을 확인했다. 김태원이란 이런 대단한 사람이다. 이런 대단한 사람이 <남자의 자격>에 출연하고 있다. 물론 음악인으로서의 김태원이 본격적으로 대중들에 알려지고 그 존재를 각인할 수 있게 된 것은 이듬해 "남격밴드"를 통해서였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을 터였다.

이번주 "남자, 그리고 야구" 미션을 보면서 처음 느낀 감상이 그것이었다. 양준혁을 배려하려 하는구나. 겨우 "무인도"편과 "배낭여행"편을 통해 캐릭터가 잡히나 싶던 무렵 시작된 "청춘합창단"으로 말미암아 무존재로 전락해버린 그를 위해서.

그나마 같은 신입멤버이면서도 전현무는 사정이 나았다. 이미 다른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구축된 "밉상"이라는 캐릭터가 있었으니까. "청춘합창단"이 계속 되는 동안에도 전현무는 "밉상"이라고 하는 자신의 캐릭터를 적절히 활용하며 "진상"짓으로 대중들에 <남자의 자격>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조차 없었던 양준혁은 어떻던가. 같이 말 한 마디 없었어도 김국진에게는 이미 그동안 쌓아 온 캐릭터와 관계가 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새로운 멤버로 합류한지도 어언 6개월 여, 그러나 여전히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그를 위해서 양준혁을 살릴 수 있는 미션을 구상해 보자. 양준혁 하면 양신, 양신 하면 야구, 야구라면 양준혁을 가장 잘 돋보일 수 있는 미션이 아니겠는가? 김태원이 그랬던 것처럼 이것은 <남자의 자격>의 멤버로써 양준혁에게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문제라면 과연 당시의 김태원과 지금의 양준혁의 처지가 같은가? 당시의 김태원은 오히려 음악인이라기보다 예능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해지려던 상황이었다. 우스워질 수 있었다. 하찮아질 수 있었다. 그것은 굳이 <남자의 자격>에서 김태원을 멤버로써 캐스팅한 의도에 반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웃기는 아저씨 한 사람이 필요할 것이었다면 김태원이 아니더라도 예능인은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남자의 자격>이 김태원을 선태한 이유, 바로 <남자의 자격> 세대에게 있어 어떠한 공감할 수 있는 시대의 기억이 바로 그에게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이경규가 그렇고, 김국진이 그렇다. 그들은 당대 최고였고, 김태원 역시 음악인으로써 결코 그에 뒤지지 않는 커리어를 가지고 있다. 김태원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이들을 호기심에라도 TV앞에 앉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런데 그런 김태원이 단지 웃기는 아저씨가 되어 버리면? 그런 기로에서 프로그램은 음악인 김태원을 다시금 대중에 확인시켜 주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어떤가? 과연 지금의 양준혁이 예능인과 야구인 사이에서 정체성의 위기를 느낄 상황인가? 아직까지 양준혁은 양신일 뿐이었다. 야구선수 양준혁이었다. 여전히 <남자의 자격>은 그러한 그의 정체성에 대해 아무런 영향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남자의 자격> 안에서 예능인으로써 양준혁의 존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지, 야구선수 양준혁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야구를 하게 된다면?

양신 양준혁이 야구를 잘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거의 태반이 야구초보자인 <남자의 자격> 멤버들이나 그들과 시합을 벌이고 있는 여성사회인야구팀 "비밀리에"나 대한민국에서 야구를 가장 잘하는 프로야구선수들 가운데서도 가장 돋보였던 양준혁에 아예 비교가 불가능한 아마추어에 불과한 이들이다. 그런 가운데서 아무리 양준혁이 홈런을 치고 한다고 그것을 대단하게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말이다. 그는 양준혁이다. 양신.

"나는 솔직히 양준혁 야구하는 거 처음 보는데, 진짜 잘한다!"

오히려 양준혁 야구하는 모습을 보며 감탄하며 내뱉던 김태원의 전혀 생뚱맞은 저 말이 답이었을 것이다. 양준혁 야구하는 모습을 처음 본다는 김태원은 저리 감탄하고 있지만, 양준혁의 야구에 이미 익숙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김태원이 오히려 신기할 뿐이다.

재미란 일상의 파괴에서 나온다. 일상의 파괴란 파격이고, 파격은 긴장을 불러일으키며, 긴장이 이완되면서 사람들은 그것을 재미라 느끼게 된다. 잘하는 사람이 잘하는 것은 전혀 아무런 긴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긴장이 없다면 이완도 없다. 한결같은 이완은 지겨움이다. 처음 보았다면. 정말 오랜만에 보았다면. 한참을 잊고 있었는데 비로소 볼 수 있었다면. 그러나 너무나 익숙한 모습인데 이제 다시 또 한 번 보게 된다. 객원선수로 참가한 김성수가 아무리 잘 던지고 잘 쳐도 <천하무적야구단>을 보았던 사람들에게 그것이 일상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말이다. 놀랍기로만 따지면 방송을 통해 처음 보는 박철민 쪽이 더 놀라웠다.

조금 더 아껴뒀어야 하지 않을까? 충분히 양준혁이 <남자의 자격>에, 그리고 예능에 적응하고 난 뒤, 충분히 사람들이 양준혁을 예능인으로 인식하게 되었을 때 그런 대중들의 당연한 일상을 본연의 야구인의 모습으로 깨뜨려주는 것이다. 그저 웃기는 사람일 뿐이었는데 알고 보니 대단한 음악인이었더라는 김태원의 경우처럼. 그랬더라면 같은 야구를 하더라도 양준혁이 보다 돋보일 수 있지 않았을까?

따라서 오히려 양준혁에게 필요한 것은 야구인으로서의 양신 양준혁을 돋보일 수 있는 "야구"와 같은 미션이 아니라, "무인도"편이나 "배낭여행"편 등에서 보여주었던 "대구댁"과 같은 전혀 의외의 모습들일 것이다. 40살이 넘도록 장가를 가지 못한 홀아비답게 살림도 꼼꼼히 잘한다. 양신 양준혁이 갖는 이미지와 살림꾼 양준혁이 보여주는 모습의 괴리가 당시 웃음을 자아내고 있었다. 혹은 운동을 하지 않아 어느새 여느 아저씨처럼 나오기 시작한 배를 주목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야구의 전설로서의 그를 보여주는 것은 그렇게 전혀 의외의 모습들에 대중이 익숙해질 무렵 그것을 부수는 파격으로서였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아까웠다. 조금 더 아껴두었다면. 내년? 혹은 내후년? 양준혁이 비로소 <남자의 자격>에 자리를 잡고 난 다음, 이제 시청자들에게 "<남자의 자격>의 양준혁이란 바로 이런 양준혁이다!" 보여줄 수 있었다면. 그러나 이로써 양준혁을 위한 "야구" 미션은 봉인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 한 번으로 최대한의 재미를 뽑아내지 못한다면 완벽한 적자다. 성급했다.

아무튼 그럼에도 미션 자체는 의미가 있었다. 동네야구가 이렇지 않던가. 군대 야구도 이러했다. 미리 팀을 짜고 포지션을 정해 연습을 하고 시합에 임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날 야구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그에 호응하는 사람이 있다면, 글러브와 배트와 공을 가지고 즉석에서 팀을 짜고 포지션을 정해 경기를 하는 것이다. 엄마 심부름 가다가 도중에 야구를 하던 아이들과 마주치게 되어 그 자리에서 타석에 들어선 경험도 있다.

그런 게 야구일 것이다. 어째서 축구란 국민스포츠인가? 공 하나면 된다. 공 하나와 넓든 좁든 공을 찰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충분하다. 룰은 대충 누구나 안다. 골대야 양쪽 끝에 적당히 만들면 되고, 그냥 바로 옷도 갈아입지 않고 공을 차기 시작한다. 수비도 따로 없고, 공격도 따로 없고, 골키퍼를 제외하면 전원 공격에 전원 수비, 토털축구의 궁극일 것이다. 스포츠가 일상이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일 텐데.

너무 진지하다. 너무 심각하다. 너무 잘하려 들고, 잘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연방 헛스윙을 하더라도. 공이 어디로 날아가는지 몰라도. 에러가 당연하게 여겨져도. 그냥 야구를 한다는 자체를 즐기는 것. 한 점을 내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한 점을 덜 주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함께 뛰고 함께 치고 함께 던진다. 굳이 본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놀이로서의 스포츠가 갖는 본모습일 것이다. 너무 좋아하여 잘하게 된 박철민과 김성수와는 달리, 처음 하는 운동인데 하다 보니 마냥 좋다. 야구가 좋아서일까? 함께 야구를 하는 사람들이 좋아서일까?

이경규의 말이 매우 의미심장하다. 다른 구기종목은 점수와 함께 공이 들어온다. 그러나 야구는 점수와 함께 사람이 들어온다. 스스로 홈을 밟아 점수를 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앞선 주자를 한 루라도 더 진루시켜 홈을 밟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두타자 안타는 기회를 만든다는 이유에서 중요하고, 그 다음의 안타는, 아니 설사 아웃을 당하더라도 주자를 한 개 루라도 더 보낼 수 있다면 좋은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은 아웃당하면서도 점수를 내기 위해 주자를 불러들이는 희생플라이가 있는 것이 바로 야구인 것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안타를 치든 볼넷을 얻든 루로 나감으로써 홈런을 치더라도 더 높은 점수를 얻게 된다.

야구가 갖는 매력이다. 한 사람 한 사람 쌓아가는 그것이.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폭발할 때. 9회말 투아웃 역전만루홈런을 야구가 아닌 어느 스포츠에서 맛볼 수 있을까? 마지막 쓰리아웃을 잡아내기까지 경기의 결과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한 사람 한 사람 자기 역할을 다하여 루에 나갈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들을 다시 불러들일 수만 있다면, 최대 4점의 점수가 그래서 그 한 방으로 결정되기도 한다. 야구에서는 모두가 만들어낸 기적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필자가 야구를 유독 좋아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영웅도 있었다. 홀로 고독하게 마운드를 지키던 에이스와 단지 타석에 서기만 해도 어쩐지 흥분부터 되는 4번타자가 그들이었다. 그러고 보면 필자가 야구라는 스포츠에 빠지게 된 것도 어린 시절 당시 군산상고의 에이스이던 조계현의 투구에 반한 탓이었다. 마치 열혈야구만화의 주인공처럼 당시의 조계현은 필자에게 무척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1982년 시작된 프로야구 역시. 한때 프로야구중계는 빼놓지 않고 챙겨보던 마니아였는데.

전혀 준비가 없는 것이 좋았다. 아무러하니 허술한 모습들이 좋았다. 그러면서도 재미있다. 그렇지만 더욱 즐겁다. 그럼에도 어쩐지 본격적인 유니폼이 거슬리기는 하지만. 차라리 그대로 동네야구로 방향을 잡아 보는 것이 더 낫지 않았겠는가? <남자의 자격> 야구팀은 동네야구인데 하필 상대팀이 여성이기는 하지만 사회인야구팀이라는 것도 어색하다. 그래도 역시 오랜만에 한 데 모여 나누는 하찮은 이야기들이 정겨웠다. <남자의 자격>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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