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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공소리 칼럼니스트
  • 칼럼
  • 입력 2015.03.05 06:04

[칼럼] 젊은 성(性), 달라지는 성 패러다임

▲ 영화 '카사노바' 포스터 ⓒ브에나비스타 인터내셔널 코리아

[스타데일리뉴스=공소리 칼럼니스트] 바람둥이를 일컫는 대명사가 된 카사노바. 여전히 그는 여성 편력과 잘생기고 사교적이고 매력적인 남성으로 유명하다. 파리에서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총애를 받았다고 하니 심상치 않은 매력의 소유자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18세기에는 카사노바의 성적 사생활에 추문이 따라다녔지만, 현대의 시각으로 카사노바 같은 남자는 모든 걸 다 가진 남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모두 카사노바를 따라가려고 한다. 재주와 능력은 물론, 무엇보다 성적으로 매력적이고 자유롭게 살기를 원한다.

현대에 접어들면서 우리의 성적 패러다임은 많이 달라졌다. 누구나 카사노바를 꿈꾸는 세상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비단, 10대와 20대의 성적 패러다임은 가히 파격적이다. 얼마 전까지 유치원생도 연애한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어느새 초등학생도 성생활을 한다고 말하게 됐다.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2013년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10대 청소년들 중 성경험이 있는 학생들의 평균 연령은 12.8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더 이상 개인의 성적 선택권에 사회적 규범이나 편견은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이다.

‘좋으면 할 수 있다.’라는 성적 의사를 가진 10~20대들은 많다. 그들에게 성적 관계는 연인에 한정되지 않는다. 가령, 미국에는 프렌즈 위드 베네핏(friends with benefits)이라는 신종 개념이 있다. 육체를 위한 친구라는 것이다.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10~20대는 어느 세대보다 성적으로 개방적이다. 첫 성관계가 빠른 것을 떠나서 그들의 성에 대한 인식이 그러하다.

비단, 육체적 관계만을 원하는 젊은이들은 많다. 진지하게 사귀지 않고 육체적인 만남만 지향하면서 육체적 관계만 하는 대상자를 찾는다. 사랑과 성관계를 별개로 보는 이들도 있다. 연인 외에 다른 사람과 성생활을 즐긴다. 연인과 성관계를 독점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혹은 여러 사람과 연애하는 사람도 있다. 연인을 여러 명 두는 다자연애와 연인은 한 명이되 성적 파트너를 다수로 두는 자유연애는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게 나뉜다.

싱글인 사람이 성적 파트너가 있다면 성적 자유권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세상이라 논란이 적다. 하지만 다자연애나 자유연애라고 하는 생소한 연애 방식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우리는 보편적으로 일부일처제 방식을 고수하고 있으므로 혼인관계를 벗어나 연인관계까지도 그 영향력이 미쳐있다. 간통죄 위헌이 되어도 형사적 처벌이 사라졌을 뿐, 우리 인식 속에서 간통이란 단어는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고, 혼인관계의 일부일처에 대한 법적 입장은 아직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현대 이전에는 성리학을 중심으로 한 조선 사회가 있었다. 성리학은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혈연 공동체와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 공동체의 윤리 규범을 제시하는 사회의 중심 사상이었다. 성리학 사회에서 성적 매력과 자유를 앞세우는 일은 거의 없었다. 가족을 등지거나 음란한 자는 비난과 처벌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혼인 빙자 간음죄가 폐지되고, 간통죄도 폐지됐다. 조선 시대에는 간음한 자는 반드시 형벌을 받았지만, 지금은 미혼자도 성관계할 수 있다. 성적 선택권은 개인에게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성적 행동에 대한 태도는 달라지고 있다. 어쩌면 나중에는 미혼자의 자유로운 성생활에 대한 판단과 논란이 종결되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의 10~20대는 젊음의 혈기왕성함을 넘어서 문화적으로 성적 탐닉에 가장 집중하는 세대라는 것은 무시할 수 없다. 성적 콘텐츠와 상품이 만연한 세상에 살고, 외모에 대한 관심이 어느 세대보다 진보적이고, 상대적으로 외부의 자극보다 개인의 문제에 집중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사는 즉, 삶의 질적 가치가 높아진 우리는 자유로운 성생활을 고집할 수 있게 됐다.

신랄한 성문화에 정체한 양, 눈 가리고 아웅 할 필요도 없다. 사실 누구든지 성생활 시기가 빨라지고, 파트너의 숫자가 많아지고, 개방적인 정서가 성생활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미 브라운관에서는 성에 관한 토크가 성행이고, 음란물을 접하는 인터넷을 넘어서 이제 SNS에서는 하드코어 성생활 콘텐츠가 문화로써 게시돼 있으니까 말이다.

9살 때 2차 성징을 시작하고, 10살 때 처음 음란물을 접했던 어느 20대처럼 10~20대는 어쩌면 사랑보다 성적 활동이 먼저였고, 더 친근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 해야 한다.

중요한 건, 우리가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느냐다. 성생활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고, 매우 중요한 삶의 모습이다. 어떤 모습의 관계라도 만족하고, 행복해야 한다. 성적 자아가 성숙하지 못한 채 소위 쿨한 관계를 막연히 지향하다 보면 그것은 건강한 성생활이나 애정행각이 아니다. 상대방에게 육체적 이득을 얻는 것만 집착한다면 그 관계의 이름은 무엇일까? 단순히 성적 자이익만 추구한다면 쿨한 성생활이 아니라 반사회적 수집 활동이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우리의 성 역사가 꾸준히 변천한 것처럼 우리의 성생활도 변천한다. 어떤 관계의 모험을 하더라도 모든 관계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길 바라면서 10~20대의 건강한 성생활과 사랑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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