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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10.14 08:24

뿌리깊은 나무 "조선 세종조 궁궐내 연쇄살인사건..."

제대로 역사적 맥락을 짚는 정통 역사드라마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원래 <공주의 남자>의 배경이 되고 있던 계유정난에서 집현전 학자들이 수양대군의 손을 들어주었던 것은 김종서를 필두로 한 실무관료와 집현전 학사들간의 뿌리깊은 반목 때문이었다. 드라마에서는 각각 김승유의 아버지와 스승으로 나오고 있지만 가장 사이가 안 좋았던 것도 그래서 김종서와 이개였다.

집현전 학사들 입장에서는 김종서를 필두로 한 실무관료들이야 말로 무능하고 부패하여 자신들의 앞길을 막는 무리들에 불과했고, 실무관료들 입장에서 집현전 학사들이란 그저 입으로만 떠드는 서생의 무리에 불과했다. 결국 모든 원인은 세종이 집현전 학사와 조정의 실무관료를 이원화하여 운용한 데 따른 것이 컸다. 실무관료들이 보기에 집현전 학사는 세종의 친위세력이었고, 집현전 학사들이 보기에도 조정의 실무관료들은 왕권에 도전하는 세력이었다. 물론 그 정점에 세종이 있을 당시만 하더라도 세종의 강력한 왕권은 이 두 가지를 제대로 제어할 수 있었다. 그것이 무너졌을 때 결국 파탄이 나고 말았다.

태종(백윤식 분)이 죽으면서 한 유언 그대로였다. 세종(송중기, 한석규 분)이 살아있을 당시까지는 그런 것들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정에는 실무관료들이 있고, 집현전에는 관학을 이끄는 젊은 학사들이 브레인을 이루고 있고, 또한 왕자들이 세자를 도와 정무를 맡아 종친으로써 왕실을 지탱하고 있었다. 그대로만 계속 유지되었다면 적절한 견제와 협력 가운데 조선은 상당한 기간동은 성세를 유지하며 바른 길로 발전할 수 있었으련만.

그러나 권력이 갖는 마력은 그것을 통제할 권력이 사라졌을 때 그 균형을 한 순간에 허물어 버리고 말았다. 재야로 밀려나 있던 공신세력이 수양대군과 결탁하고, 조정의 실무관료들이 독주하는 상황에 집현전이 그와 손을 잡고, 종친과 집현전의 지지를 등에 업은 수양대군이 김종서와 황보인을 침으로써 그 일각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리고 왕권을 지지하는 친위세력으로 길러진 집현전이 다시 단종을 지키려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아예 사라지고 말았다. 종친부는 그나마 세조에 의해 공신들을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유지되다가 결국 공신들에 의해 완전히 무력화되고 말았고. 남은 것은 세조와 그를 왕으로 세운 훈구세력 뿐이랄까?

아마 세종이 조금만 더 단호하고 잔인했다면 어쩌면 그와 같은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나마 세종과 문종의 치세가 있었기에 왕위찬탈에 이은 혼란에도 불구하고 성종의 성세가 있기는 했지만, 그러나 결국 그와 같은 내정의 혼란은 연산군대에 이르러 폐정으로 그 실체를 드러내고 만다. 왕조차 감히 어찌하지 못하는 공신들의 부정과 부패와 전횡, 그리고 심지어 왕마저 바꿔치고 만 중종 이후 훈구세력의 권력과점은 내내 조선사회를 안에서부터 병들게 하는 원인이 된다. 마치 영정조의 탕평에 의해 사색당파가 모두 사라지고 난 다음 왕의 외척들이 왕권을 등에 업고 전횡을 휘두르던 조선말 세도정치와 유사하다.

자신이 죽은 이후를 걱정하면서도 조선이 세종의 뜻대로 제대로 굴러갈 수 있기를. 권력의 비정함을 알았기에 태종의 걱정은 현실적인 것이었다. 왕이 강하다면 세종의 뜻은 제대로 지켜질 수 있을 테지만, 왕이 자칫 헛점을 보이게 된다면 이보다 더 큰 피를 보게 될 지 모른다. 역사는 그것을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문종이 불과 즉위한 지 2년만에 죽고 어린 단종이 수렴청정할 대비조차 없이 즉위했을 때. 물론 드라마는 픽션으로 아마도 그러한 역사를 염두에 두고 태종의 유언을 그리 집어 넣은 것이리라. 세종의 대답 역시. 세종은 어째서 그와 같은 복잡한 권력구도를 그대로 유산으로 물려주고 죽었는가?

마침내 똘복이(채상우 분)가 강채윤(장혁 분)이 되어 돌아왔다. 한결 상스럽고 한결 비열한 모습이 되어서. 어린 나이에도 태연히 사람을 치고 악을 쓰던 똘복이의 독기는 나이를 먹으며 뻔뻔할 정도로 교활하면서 집요한 모습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함경도에서 여진족과 싸우며 살기를 익히고, 점차 세상에도 눈을 뜨며, 그러면서도 어린 시절 품은 복수의 뜻 역시 놓지 않는다. 그 수많은 멀쩡한 시신 가운데 유독 소이(신세경 분)의 시신만이 뼈만 남은 채인 것에 대한 의문이 전혀 없던 것은 아이답다 할 수 있을 테지만.

함경도에서는 무관 고인설이 죽임을 당하고, 궁에서는 집현전 학사 허담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그 중심에는 산크리스트어로 된 문헌인 '비바사론'이 있다. 산크리스트어는 파스파문자등과 더불어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할 당시 참고한 여러 문자 가운데 하나였다. 새로운 조선의 문자를 만들려 하는 세종과 그를 방해하려 하는 암중의 세력. 아마도 당연한 설정일 테지만 정기준과 밀본이 그 배후에 있을 것이다. 원작이 그러하듯 전혀 엉뚱하게 세종에게 원한을 품고 그를 죽이려 꾀하고 있는 강채윤이 그 탐정의 역할을 맡는다. 과연...

가장 중요한 것은 과연 그 기간 동안 얼마나 당시 궁궐의 일상을 디테일하게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인가. 이제까지의 거대서사적인 궁궐의 모습과는 달라야 한다. 이제 갓 겸사복 위사가 된 강채윤의 눈에 비친 궁궐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 작가의 역량과 감독의 연출력 모두가 중요하다. 배우의 연기는 오히려 그 위에 얹혀가는 느낌이다. 역사란 그런 것이다. 역사드라마에서 배우의 연기력은 작가와 감독이 만든 그 시대 위에 실려 가는 것이다.

아무튼 흥미로웠다. 과연 어느 드라마에서 세종의 몇 안 되는 실정으로 여겨지고 있는 수령고소금지법에 대해 이처럼 자세하게 다루고 있겠는가? 핵심은 그것이었다. 고려말 여전히 지방에 뿌리를 내리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토호로부터 조정이 파견한 지방관을 보호하려 한 것이었다. 토호가 영향력을 행사하면 지역민을 동원하여 지방관을 탄핵한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니. 세조가 정통성이 부족한 채 왕위에 오르면서, 더구나 수령고소금지버을 폐지함에 따라 지방관에 대한 토호의 영향력이 강화된 것을 보면 전혀 틀린 선택은 아니었다. 지방관을 통해 조정의 권위가 지역민들에게 구석구석 미치기까지 지방관에 도전하는 세력은 없는 것이 옳았다. 물론 세종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 또한 조정이 아우르지 않으면 안 되는 조선의 백성들인 것이다.

세종이 "지랄"과 "우라질"같은 욕설을 내뱉는 장면도 인상깊다.

"이 얼마나 내 정서를 잘 표현해 주느냐?"

결국은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게 된 동기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말과 문자가 일치하여 솔직하게 생각한 바를 표현할 수 있는 바로 그것. 한자로 치장된 허위가 아닌 소리나는 그대로 쓰일 수 있는 그런 진실함일 것이다. 속된 것이 아니라 솔직한 것이다. 저속한 것이 아니라 진실한 것이다. 백성이 하는 말이라 하여 무지하고 속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솔직하고 진실된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아마 이제까지의 훈민정음 창제 동기 가운데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본질에 가까운 동기였을 것이다. 가장 극적이면서도 가장 역사적 맥락에 충실했다. 작가의 의도가 느껴지는 가장 멋진 한 장면이었다.

흥미를 더한다. 역사적 맥락을 나름대로 설득력있게 짚으면서도 극적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 아쉽다면 등장인물 자체가 제한되었고, 분량 자체도 그리 길지 않아 자칫 지루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항상 같은 얼굴만 보게 된다면 드라마는 지루해진다. 그에 대한 변화도 분명 준비되어 있으리라. 얼마나 다채롭고 흥미로은 장면과 이야기들이 펼쳐질 것인가.

기대가 크다. 이만한 드라마가 얼마 없다. 역사드라마는 이렇게 만드는 것이다. <공주의 남자>가 역사 속의 비극에 천착했다면, <뿌리깊은 나무>는 역사의 줄기 그 자체를 보려 한다. 수요일, 목요일, 새로운 즐거움이다. 아직까지는 만족하며 보고 있다. 좋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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