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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3.11 06:07

로열패밀리 - "조현진의 눈물"

JK라고 하는 거대한 욕망의 괴물에 대해

 
지켜야 할 것이 클수록 개인의 가치는 작아진다. 인간이 당연히 지켜야 할 도덕, 윤리, 가치, 심지어 본능마저도.

어느새 거대서사에 인간은 얽매이고 그에 종속되어 살아간다. 처음에는 누군가를 위한 것이었겠지만 어느샌가 누군가는 그 무엇을 위한 것이 된다.

"외도에도 격이 있어요! 최소한의 품위유지를 위한 메뉴얼도 몰라요? 누구를 거드려도 되고 누구는 건드려서는 안 되는지 어머님이 안 가르쳐주시던가요?"

남편 조동진(안내상 분)의 외도에 대해 아내 임윤서(전미선 분)가 분노하는 것은 단순히 그가 자신을 저버리고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났다는 사실이 아니다. 자신이 부리는 메이드가 그 상대라는 것이 그녀를 자존심상하게 하고 분노케 하는 것이다.

"이 조현진이 늬들따위가 감히 조종할 수 있는 사람 아니잖아! 나 JK사람이야!"

조현진(차예련 분) 역시 김인숙(염정아 분)과 한지훈(지성 분)의 관계를 마침내 눈치챘을 때 그들로 인해 농락당했다는 사실 자체에 오히려 분노하고 저주한다.

"제가 18년 동안 정가원에 있으면서 배운 거에요. 때로 속인 사람보다 속은 사람의 죄가 더 클 수 있다는 것을. 아가씨는 정가원 사람이에요."

10살짜리 딸이 맹장염으로 울면서 전화하자 돈 쓰면서 유학갔으면 어서 빨리 영어를 배워야 한다며 영어로 말하기를 강요하는 어머니 공순호(김영애 분), 딸에 대한 사랑마저 JK라는 부와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써 소비된다. 어쩌면 가슴 망가진다며 어머니로부터 자식을 떼어 젖을 못 먹이게 하는 자체가 인간을 수단으로 보는 때문일 것이다.

개인은 없다. 인간은 없다. 인간이기에 갖는 가장 기본적인 관계마저 정가원에서는 무의미하다. 서로 의심하고 서로 헐뜯으며 서로를 깎아내린다. 그들이 가족의 불행에 나서는 것은 오로지 그것이 집안과 그들이 누리는 부와 권력에 해가 될 경우다. 조카 조지은(하연주 분)의 불미스런 동영상에조차 법무팀이 알아서 할 것이라면서 냉정할 수 있는 것.

참으로 재벌가에 대한 묘사가 살벌하다. 인정이라고는 없는 냉혹한 욕망의 결정체. 인간도 없고 개인도 없고 오로지 부와 권력, 그를 향한 끝없는 탐욕만이 존재한다. 어느새 악녀로서의 모습을 갖춰가는 김인숙이 여전히 동정받을 수 있는 것은 그만큼 그녀의 앞에 놓인 악이 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김인숙의 욕망은 JK에 비하면 오히려 사소하다 할 만하다. 무력하기 이를 데 없는 김인숙이 몇몇 주위의 도움을 받아 JK와 싸워가는 가정은 그래서 정당성을 얻는다.

더 거대한 악과 그 악과 싸우는 또 하나의 악, 그리고 한지훈이라고 하는 김인숙이 남긴 순수. 더욱 드라마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이유다. 과연 김인숙은 JK를 상대로 어떻게 싸워나갈 것인가? 한지훈은 어떻게 자신의 순수를 지키며 김인숙을 지켜갈 것인가?

조현진의 눈물이 인상적이다. 처음 조현진이 눈물을 흘린 것은 호감을 가지고 대하던 한지훈에 대한 배신감이었으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눈물은 - 김인숙과 한지훈 앞에 쏟아낸 눈물은 상처입은 자신의 자존심에 대한 눈물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눈물은 김인숙과 한지훈의 관계를 추적하며 깨닫게 된 상실감과 부러움, 그녀가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한 질투였다.

조현진이 진숙향을 만나고 돌아오는데 그 코트가 청소수레에 걸린다. 마치 김인숙과 한지훈에게 농락당한 자신처럼. 그녀는 기꺼이 코트를 벗어던지고 맨몸으로 건물을 나선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구두와 백 등 자신의 소지품을 죄다 집어던져 버린다. 전자가 김인숙과 한지훈에 대한 분노였다면, 그것은 김인숙과 한지훈의 관계로부터 소외된 자신에 대한 분노일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한바탕의 분풀이가 지나고 나서 그녀는 바닥에 집어던졌던 물건들을 하나하나 다시 챙기기 시작한다. 그것은 JK패밀리로서의 JK에 대한 탐욕이었을까? 아니면 그녀가 버리고자 했던 한지훈에 대한 미련이었을까?

조현진의 눈물이 새삼스러운 이유다. 그리고 조현진과 한지훈의 관계가 심상치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극에 영향을 주며 발전해 갈 것인가? 눈물은 때로 매우 중요한 계기이며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조현진의 앞으로의 모습이 더욱 기대되고 관심이 간다.

역시 공순호는 만만치 않다. 한 마리의 암호랑이다. 김인숙이 겁먹은 여우라면 강자로써 여유를 가지고 자기 영역을 확실히 지킨다. 진숙향과의 관계가 아무리 아쉬워도 JK클럽은 그녀의 것이며 진숙향이 넘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첫째며느리에게 JK클럽의 사장자리를 주었지 그녀의 뜻대로 놀아나지는 않겠다. 확실히 조현진도 공순호의 딸이랄까?

다만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는가 파악이 안 된다. 과연 김인숙은 진숙향에게 어떤 말을 건냈을까? 분명 인터넷에 한지훈과의 관계를 터뜨린 것은 김인숙일 것이다. 진숙향에게 했던 말과 한지훈과의 관계를 터뜨리는 시점과의 사관관계는? 과연 첫째며느리 임윤서로 하여금 JK클럽 사장자리에 앉힌 선택이 김인숙에 대한 반격이었는가? 아니면 그 또한 김인숙의 의도에 따른 것인가?

그러나 역시 싸움이 재미있자면 적이 강해야 한다. 멋이 있어야 한다. 공순호의 마지막 선택은 그 놀라운 반전을 이룬다. 결코 김인숙의 싸움이 쉽지는 않겠다. 하지만 바로 이어 터진 한지훈과의 관계는 그러나 싸움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뜻일게다. 

점차 드러나는 김인숙의 과거에 대해서도. 그녀의 정체와, 그녀의 목적과, 그녀의 의도와, 그녀의 계획, 그리고 그녀가 감춰두고 있는 패들. 아마 그 모든 것이 드러날 때 쯤 싸움도 윤곽을 보이리라. 김인숙 자신과 그녀의 주위가 정리되면서 안개속에 가려져 있던 것들이 점차 명확해질 것이다. 김인숙이 전면에 드러나며 비로소 공순호와 JK패밀리와의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될까? 두근거리며 기대하는 이유다. 김인숙과 그 주위에 대해서. 그녀가 만들어갈 싸움과 드라마에 대해서.  

일본에서 원작을 먼저 드라마화했다는 일본 드라마 <인간의 증명>을 오래전에 보았었다. 너무 많은 부분에서 내용이 서로 달라 같은 원작이라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정말 잘 만든 명작이라는 말이 무색지 않은 드라마였다. 과연 <로열 패밀리>는? 이대로만 끝까지 이어갈 수만 있다면 그보다 몇 단계 더 나은 작품이 만들어질 수도 있을 텐데.

기대가 크다. 인간 내면의 치열함. 자존과 탐욕의 경계에서.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의 사이에서. 마르퀴 드 사드는 그래서 인간의 내면의 욕망을 구체화하려 한 것일 테지만. 취해서 본다. 불길함은 마치 독한 오래된 술과도 같다. 그 추악함조차 그래서 아름답다. 늘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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