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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10.11 07:35

계백 "막장드라마, 백제가 그렇게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이러고도 망하지 않는 것은 신의 존재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일 것이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확실히 백제가 어째서 그토록 허무하게 나당연합군에 패망하고 말았는가를 깨닫게 된다. 삼국사기에도 백제에 대한 기록이 가장 적은 것은 유학자인 김부식이 보기에 차마 기록으로 남기기 민망한 역사라 그래서였을 것이다.

사실 당시 백제의 사정이 그렇게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성왕이 신라군에 사로잡혀 죽임을 당하고부터 불과 100년이 지나지 않은 때였다. 비록 무왕대에 상당부분 힘을 회복했다고는 하지만 정작 백제의 부흥을 이룬 것은 의자왕 대였고, 의자왕 대에조차 백제가 멸망할 당시 신라군은 거의 변경의 성을 거치지 않고 탄현을 거쳐 직접 사비성을 급습하고 있었다. 사실상 백제의 급소를 신라군에 내준 채로 위태로운 성세를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기는 그러니까 성충의 충고와 흥수의 간언에도 불구하고 의자왕은 탄현을 방어하는데 그다지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겠지만 말이다. 아직 백제의 처지가 위태로운데 당장 장차 자신의 친위세력이 될 지도 모르는 계백(이서진 분)에 대해 그같은 모략을 꾸미고 있는 자체가 의자왕의 됨됨이를 말해준다 할 수 있겠다. 차라리 그럴 것이면 계백을 아예 죽여버리던가.

무왕(최종환 분)의 말은 지극히 옳다. 장차 나라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면 죽이는 것이 옳다. 왕실에 해가 될 지 모른다면 왕으로써 마땅히 죽여야 한다. 그러나 병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쇠약해진 것이 무왕이 은고(송지효 분)를 끝내 살려두고 의자(조재현 분)의 후비로 삼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에 비하면 의자왕의 치졸함은 자신의 욕심을 위해 계백과 은고를 상대로 그같은 모략을 꾸미고서도 정작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경우 자신에게 반감을 품게 될 지도 모르는 계백을 방치하는 물렁함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계백이 당하고도 당한 줄 모르는 멍청이여서 다행이지 조금만 머리를 쓸 줄 아는 인물이었다면 이내 의자의 계략을 깨닫고 그에 대한 원한을 품게 되었을 것이다. 그나마 계백이 어리석어 다행인 셈이다.

하여튼 의자만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나마 멀쩡한 인물은 의자의 아버지인 무왕 뿐이고, 백제의 충신이라는 성충(전노민 분)과 흥수(김유석 분)마저 신의도 지조도 없는 어중간한 인물들로 묘사되고 만다. 진정 의자를 왕으로써 섬기고자 했다면 그들은 계백을 죽였어야 했다. 죽이지 않더라도 해가 되지 않도록 멀리 쫓아보냈어야 했다. 그러지 않을 것이면 아예 계백에게 사실을 알리고 의자를 위해 그를 설득하거나.

그것은 계백을 향한 의리이기도 했다. 괜히 나중에라도 다른 경로로 사실을 알게 되어 화근을 남겨두느니 솔직하게 알리고 그로 하여금 왕의 뜻에 복종하도록 강제하거나, 아니면 그를 위해 그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배려했어야 했다. 아니 최소한 모든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의형제의 모습으로 그를 위로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큰 뜻을 위해 계백의 진심을 밟고 올라간다. 그것이 과연 그들이 비판하던 귀족들의 행태와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왕은 중심이 없고, 장수는 지혜가 없고, 충신은 신의도 지조도 없다. 과연 그런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겠는가 말이다. 겨우 사택씨를 몰아내고 왕권을 회복하려는 시점에 단지 자신의 사욕을 위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가며 치정극이나 펼치고 있는 나라가. 그러한 모습을 보고서도 간언하는 이도, 그것을 돕는 이도, 뒷수습을 책임지는 이도 없다. 왕권을 강화한다는데 도대체 백제의 왕들에게 그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진흙탕에 몸을 담글 친위세력은 어디에 있는가? 그런데도 망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하늘의 보살핌일 것이다.

차라리 계백을 죽이던가. 아니라면 일을 다 꾸미고 난 뒤 계백을 불러 군신의 의리와 의형제의 정을 이용해 그를 설득하던가. 속임수로 꾸민 일은 그 속임수가 드러나면 결국 허물어지고 말 뿐이다. 가벼운 꾀에 의지해 얻은 것은 그 가벼움 만큼이나 가치없이 스러질 뿐이다. 그것을 성충과 흥수도 알았어야 할 텐데, 그러나 단지 당장 계백의 눈과 귀만 가릴 수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 여긴다. 머리만 땅속에 파묻으면 적이 보지 못할 것이라 여기는 타조와 같이. 이게 바로 백제의 핵심인물들이다.

하여튼 도대체 드라마가 어디까지 역사를 왜곡하려는지 이제는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원래 의자왕이 즉위하고 4년째 되는 해에 책봉한 태자는 셋째아들인 부여 융이었다. 그러던 것이 의자왕 즉위 15년째를 전후로 백제의 내부에 변화가 일어나며 갑작스레 장남 부여 효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백제가 멸망한 다음에는 오히려 부여 융이 웅진도독이 되어 당을 대신하여 백제를 다스리고 있었다. 태자는 부여 효였지만 백제의 토착세력들에게 신망이 있던 것은 오히려 부여 융이었다는 뜻이다.

실제 왕과 태자가 웅진으로 도망치고 난 뒤 사비성에서 스스로 왕이 되어 성을 지키고 있던 부여태로 하여금 성을 열고 나당연합군을 맞아들여 항복하도록 종용한 것이 바로 태자인 부여효의 아들 부여문사였다. 부여태는 과연 누구의 아들일 것이며, 하필 태자의 아들이 나라가 멸망할 수도 있는 항복을 주도한 것은 무슨 까닭이었으며, 일찌감치 태자로 책봉되었다가 내쫓긴 부여융이 백제의 유민들을 달래기 위해 웅진도독으로 임명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도대체 그것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 정말 궁금해진다.

하긴 무왕이 죽고 난 다음에야 숙청되는 교기가 아직 무왕이 살아있을 당시 숙청되고 있다는 자체부터가 역사에서 크게 벗어난 채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필 역사에 기록이 가장 없는 시기에 대해서만 집중해서 드라마로 만들고, 정작 기록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는 의자왕의 즉위 이후에 대해서는 적당히 넘어가려는 듯한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과연 역사드라마인가?

사택왕후를 제거하는 과정에 너무 많은 힘을 빼고 말았다. 사택왕후는 초반에 일찌감치 퇴장시키고 바로 의자왕의 이야기로 들어갔어야 했다. 의자왕이 고구려와 연합하여 신라를 공격하며 백제의 부흥을 이끌어가는 과정과 그 의지가 꺾이고 마침내 좌절하는 이야기로. 은고의 이야기 역시 길게 끄는 것은 좋지만 역사적 맥락을 충실히 지키며 의미를 부여하는 편이 옳았다. 고작해야 사택왕후와의 대단하지도 않은 권력싸움이 끝나니 이제는 한 나라의 왕과 그리고 영웅과 한 여자를 둔 치정싸움이라니. 드라마가 시청률이 낮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무튼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치정싸움이라니. 치정싸움도 왕답게 하고, 장수답게 하면 모른다. 치정싸움에 대해 그래도 충신이라 불리는 인물답게 행동했으면 모른다. 무왕이 병이 들어 죽음을 앞두니 그래서 안타깝고 슬프기만 하다. 이 나라는 이래서 망할 수밖에 없는가.

아직도 드라마를 지켜보고 있는 필자 자신에 대한 회의부터 든다. 무엇을 보고자 필자는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일까? 더 이상 무엇도 기대할 것도, 그렇다고 재미있는 것도 아닌 드라마를. 작가도 아마 지금 무엇을 쓰고 있는지 모르고 있을 것이다. 한숨만 나올 따름이다. 어이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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