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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5.02.22 06:11

징비록 3회 "의도된 오류와 왜곡들, 아직은 아쉬운 이유"

사을화동의 항변과 그의 말이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

▲ '징비록' 포스터 ⓒK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약간 시간대가 맞지 않는다. 통신사를 보내기로 결정한 것은 선조 22년 그러니까 1589년 9월 21일의 일이다. 이산해, 정언신 등을 불러 의견을 물었는데 대사간이던 이산보만이 반대하고 모두가 찬성하여 그러라고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황윤길을 정사로 통신사가 파견된 것이 이듬해인 1590년 3월 6일, 최영경은 그로부터 두 달 정도 뒤인 5월 2일에 탄핵되고 있었다. 사을화동의 송환도 그해 2월 28일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정여립의 모반이 고해진 것이 1589년 10월 2일, 17일에 정여립이 자살했고, 그로부터 4일 뒤인 21일 송익필은 자신의 형제들과 함께 체포되고 있었다. 정여립에 대한 책형이 이루어진 것은 이로부터 7일 뒤인 28일 정여립과 일당에 대한 행형이 의금부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정여립과 관련하여 조정에 피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그리고 바로 그 다음부터였다. 이듬해 1590년 1월 1일 모든 옥사는 공식적으로 종결되었고, 최영경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 정철의 주도 아래 그 다음해까지도 옥사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 황윤길을 정사로 임명한 11월 18일이면 아직 한창 옥사가 이루어지고 있을 무렵이다.

어떤 노골적인 의도가 엿보인다. 통신사의 파견과 동인과 서인의 대립을 엮음으로써 국난을 앞에 둔 조정의 분열을 강조한다. 나라의 중대사를 두고도 정쟁을 일삼으며 서로를 죽이는 일에 더 골몰하고 있다. 선조(김태우 분)의 대신들에 대한 불신과 혐오는 바로 그것에 기반하고 있다. 자신이 왕이고 자신의 신하들인데 왕조차 안중에 두지 않고 서로 다투기만 한다. 당파끼리 서로 뭉쳐 심지어 왕마저 넘어서려 한다. 왕과 신하가 서로 믿지 않고, 신하는 신하들대로 편을 갈라 싸우기에만 여념이 없으니 나라 일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그 가운데 오롯이 백성과 나라만을 생각하는 명재상 류성룡(김상중 분)이 있다.

차도살인지계란 말은 조금 어폐가 있다. 차도살인지계란 자신이 주도하여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누군가를 죽이도록 만드는 것을 뜻한다. 강건너 불구경을 하고(隔岸觀火), 손에 잡히는대로 슬쩍 양을 끌고간다(順手牽羊). 적통이 아닌 방계로써 왕위에 올랐다는 사실은 혈통이 모든 것을 좌우하던 전근대사회에서 심지어 정통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치명적인 약점일 수 있었다. 처음으로 방계출신으로 왕위에 오른 선조로서는 항상 그 점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다. 누구보다 종계를 바로잡는데 적극적이었던 것도, 앞장서서 산림의 명사들을 초빙하여 관직을 제수한 것도 그러한 일환이었다. 출신이 아닌 행동으로서 자신의 정통성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선조가 과연 신하들 앞에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낼 수 있었을까? 정철과 직접 마주하고 정치적인 거래를 하는 장면에서 지나칠 정도로 자신감이 엿보인다. 어느새 조정을 장악한 서인의 거두인 정철을 불러 독대하며 정치적인 거래를 할 정도의 자신감은 차라리 완전무결한 정통성을 자랑하던 숙종에게 더 어울리는 모습이다.

여론이 동인의 편이라면 일단 그에 따르는 모습을 보인다. 조정에서 중신들이 합의한 내용이라면 최대한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언로를 중시하고 선비를 예우한다. 대신들의 말에 항상 귀를 기울이며 대세를 거스르지 않는다. 저들이 인정할 때만이 자신은 오롯한 왕으로 존재할 수 있다. 혹시라도 주위에 흠이 될만한 말이나 행동은 삼가고 드러내지 않는다. 서인이 동인을 공격하려 하니 못이긴 척 따르고, 다시 동인이 서인에 반격하려 하니 빌미를 만들어 모든 책임을 서인에게 돌린다. 자신은 아무 책임도 없고 아무런 비난받을 일도 한 적이 없다. 그냥 있다 보니 서인이 동인의 약점을 잡았고, 가만 지켜보니 그것이 너무 지나쳤을 뿐이다. 그에 비하면 지금의 선조는 송익필(박지일 분)이나 이산해(이재용 분)나 주위에 너무 자신의 속내를 내비치는 것은 아닌가. 인빈 김씨(김혜은 분)에게 속내를 들키는 것도 인빈 김씨의 뒤에는 그녀의 친정과 친정이 속한 당파가 있었다. 아무리 부부사이라도 권력이 개입되면 서로 타인일 수밖에 없다. 권력에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신출내기 어린 선비마냥. 권력이란 그런 것 아니던가. 관직이란 원래 그런 것 아니었던가. 조금이라도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를 끌어내려야 한다. 그렇게 동인은 서인을 누르고 조정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것을 류성룡이 몰랐을까? 왕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알면서도 속고 몰라서도 속는다. 어차피 거스를 수 없는 대상이다. 불만을 가진다고 그것을 드러내려 하면 반역이 되고 만다. 더구나 반대당파의 핵심인물을 앞에 두고 왕에 대한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는 송익필의 순수함이라니. 다만 선조의 성격이나 성향을 파악하여 정여립이라고 하는 미끼를 던진 판단에 대해서는 감탄할 만하다. 왕이란 언제나 상수다.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는가가 전근대사회에서 정치의 비결이다. 그렇더라도 그것은 항상 왕을 향한 올곧고 순수한 진심의 모습을 하고 있어야 했다.

누구도 믿지 않는 괴팍하고 고약한 절대자 토요토미 히데요시(김규철 분)를 제대로 묘사하고 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널리 알려진 기행들은 자신을 감추기 위한 수단이었다. 자신을 섬기는 신하인 고니시 유키나가(이광기 분)라도 예외는 없다. 다만 오다와라 전투 당시 보여준 천하인다운 스케일은 그다지 흥미가 없는 모양이다. 단순히 자신의 병사들을 아끼기 위한 의도가 아니었다. 당시 전국의 어떤 다이묘도 상상할 수 없는 막대한 물량으로 오다와라성의 호조를 말리며 동원된 다른 다이묘들에게 과시하고 있었다. 과감하면서도 파격적인 전략을 자주 사용했다. 하기는 드라마의 주무대는 조선이다. 일본이 아니다. 일본사가 아닌 한반도사가 드라마의 주요소재다.

류성룡의 캐릭터가 아직은 평면적이라는 것이 아쉽고 걸린다. 류성룡이 평면이라면 주위의 대립이나 갈등이 입체여야 한다. 선조의 캐릭터는 상당히 인상깊지만 그러나 보다 복잡하고 복합적인 그 이상의 차원은 보여주지 못한다. 정철도, 송익필도, 그저 흔한 악역 이상은 아니다. 이산해는 조언자로 한 발 뒤로 물러난다. 한 마디로 드라마가 결여되어 있다. 서로 부딪히고 부디끼며 얽히고 멀어지는 과정들이 생략되어 있다. 자기 자리를 지키기에 급급하다. 차라리 더 자유로워서인지 일본쪽 이야기가 더 흥미롭고 재미있다. 너무 점잖만 빼고 있어서는 잠들고 만다. 때로는 의외의 파격도 좋지 않을까? 그럴만한 역량을 지닌 배우이기도 할 것이다.

살기가 힘들고 세상이 억울하니 차라리 무기를 들고 산으로 들어가 산적이 된다. 그렇게라도 자신의 한과 울분을 풀며 빼앗기는 쪽이 아닌 빼앗는 쪽에 서려 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은 이해한다. 그러나 동정하지는 않는다. 그로 인해 오히려 더 크게 피해입은 것이 자신처럼 가난하고 힘없는 조선의 백성들이었다. 그저 자기를 위한 변명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과 같은 처지가 되었을지 모르는 가엾은 조선의 백성들을 향한 연민이었을 것이다. 사을화동의 항변이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다. 정작 그가 무기를 들고 공격한 것은 자신들을 착취한 지배신분이 아닌 같은 착취당하는 입장에 있는 백성들이었다. 그곳에 있어야 했던 것은 사을화동도 류성룡도 아니었다. 이해도, 변명도, 연민도 그들의 몫은 아니었다.

어쩌면 선조에게 너무 큰 짐을 지운다. 선조가 모든 중심에 있다. 선조를 통해 모든 인물과 이야기가 이어진다. 정작 주인공은 류성룡이다. 류성룡 자신과 그의 주위가 너무 조용하고 잠잠하다. 정철 등의 서인 역시 말만 많았을 뿐 정작 보여주는 것은 없다. 그렇게 다시 선조에게로 모인다. 전제왕조시대라는 것은 안다. 왕의 이름이 곧 시대를 정의하던 때라는 것도 안다. 그의 반대편에는 아무도 없다. 고독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아직은 아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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