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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이슈뉴스
  • 입력 2015.02.21 09:25

삼시세끼, '높은 시청률의 비결, 시청자의 상실과 결여를 채워주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언제부터인가 먹는다는 것에 대한 설렘이나 기대가 사라졌다. 찌개를 가스렌지 위에 올려놓고 바로 들어와 알람만 맞추고는 자기 볼 일을 본다. 시간이 되면 불을 끄고 찌개를 가져와 책상 앞에서 자기 일을 하면서 곁눈질로 아무 감동 없이 턱만 움직여 씹고 삼킨다. 음식을 만들고 먹는 시간까지 아껴서 무엇을 그리 급히 하려는 것일까?

먹는 것이 전부이던 시절이 있었다. 하루종일 먹을 것을 찾아다니고, 그것을 다시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조리하느라 나머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짐승을 사냥하고, 물고기를 잡고, 먹을 수 있는 열매나 푸성귀를 모으고, 들로 나가 하루종일 뙤약볕에서 땀흘리며 밭을 맨다. 질긴 것은 연하게, 딱딱한 것은 부드럽게, 쓰고 떫어서 먹기 괴로운 것들도 최대한 맛나게, 먹을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버리지 않기 위해 요리법은 발달해 왔다. 그 오랜 노력과 힘든 수고 끝에 겨우 한 끼의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생존의 확인이며 삶의 기쁨이었다.

먹을 것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요리하는 것도 너무 간단하다. 마트에 가면 손질까지 다 되어 있는 먹거리들을 얼마든지 싼 값에 구입할 수 있다. 양념 역시 조합된 것을 너무나 쉽게 구입해 쓸 수 있다. 어떤 것들은 단지 물붓고 끓이기만 하면 되고, 어떤 것들은 아예 전자렌지에 넣고 잠깐 가열만 시켜주면 된다. 더 맛있게 만들고자 하는 최소한의 궁리조차 없이 그저 만들어져 있는 것들만을 의미없이 섭취한다. 그래서이지 않을까? 자기가 이미 잃어버린 것이기에 남이 음식을 만들고, 그것을 맛있게 먹는 모습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상실에 대한 향수이며 동경일 것이다.

▲ 삼시세끼 차승원 '차줌마', "뭐 해줄까?, 먹고 싶은거 말만해~" ⓒ스타데일리뉴스

무엇 하나 쉽지 않다. 어묵을 만드는 것도. 빵을 굽는 것도. 이번회 게스트로 출연한 정우가 차승원이 직접 빵을 구웠다는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레시피에 적힌 대로 반죽을 해서 오븐에 넣어 구우면 된다. 레시피야 아무데서고 얼마든지 구할 수 있고, 오븐 역시 굳이 필요하다면 저렴하고 성능좋은 것으로 골라서 구입할 수 있다. 그냥 번거로울 뿐이다. 그렇게 직접 만드나, 소문난 빵집에서 사서 먹으나. 그러나 아무것도 없이 직접 궁리해서 아궁이를 화덕으로 만들고, 빵이 고루 익도록 이러저런 궁리를 더한다. 마침내 완성된 빵은 성취이며 기적이다. 손호준이 자랑스러워하는 이유다.

케이블오락채널 TvN의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가 새삼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시청률에 있어서도 공중파를 위협하는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식욕은 인간이 가지는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며 욕망이다. 그러면서 고도화된 현대사회에서 어느새 소외되어가는 일상이기도 할 것이다. 그것을 정면으로 자극한다. 단순히 음식을 만들고 먹는 장면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그를 위해서 유해진은 추운 겨울에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잡고, 바닷가 바위에서 배말을 캔다. 너무를 때 연기를 마셔가며 불을 피우고, 궁리를 더해가며 부족한 조리도구들을 더한다. 먹는다고 하는 행위의 본질이다. 아버지가 밖에 나가 일을 해서 돈을 벌어오면 어머니는 알뜰히 살림해서 자식들을 거두어 먹인다. 단순한 예능의 설정이 아닌 그조차도 어쩌면 자신이 잊고 있던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장치인 셈이다.

그저 물고기를 잡고, 그저 음식을 만들고, 그저 그것을 옆에서 돕고, 하지만 그같은 일상적인 행위들이 특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전문요리사가 아니어서일 것이다. 차승원이라고 하는 인기배우가, 그것도 중년의 남성이 직접 고무장갑을 끼고 식칼을 손에 든다. 어쩌면 당연할 수 있는 요리조차 당연하지 않다. 그 자체로 신기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마법처럼 차승원의 손에서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음식들이 척척 만들어진다. 그렇게 일상은 비일상이 된다. 음식이 완성되기까지 감동의 현장에 시청자 자신도 함께한다. 더 대단하게 맛있어서가 아니라 잊고 있던 감동이 그를 통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먹는 것이란 이렇게 소중한 것이었다.

어쩌면 사소한 것이다. 물고기를 잡고 못 잡고, 배말이나마 충분히 따고 못따고, 그러나 아버지의 마음인 것이다.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의 마음인 것이다. 사냥에 실패하고 돌아서는 전사들의 어깨는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어떤 위로도 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일이다. 월급날이거나 혹은 보너스가 나오는 날이면 아버지의 어깨에도 힘이 들어갔다. 어느 정도 의도된 장면일 수 있겠지만 그것은 가감없는 진심이기도 할 것이다. 통발에 들어 있는 노래미의 모습에 아무라도 잡고 자랑하고 싶은 그 뿌듯함이다. 억지로 웃기려 하지 않아도 손호준의 입가에 떠오르는 웃음처럼 그렇게 웃게 만든다. 만족이고 충족이다.

물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계란프라이를 하면서도 계란이 익기까지 더 가치있는 무언가를 찾아나서고 있을 것이다. 최대한 빨리, 쉽게, 편하게, 적당히, 먹는다는 것은 단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영양을 공급하는 행위다. 혹은 더 맛있는 것을 찾는 도락의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삼시세끼'는 존재하는 것이다. 프로그램을 보는 동안 만큼은 일깨우게 된다. 먹는다고 하는 가치를, 그 소중함을, 그 의미를, 그 간절함을. 아마도 그것 뿐일 테지만.

그저 평범해서 좋다. 배우들이다.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이름만 들으면 아는 유명배우들이다. 하지만 배우이기 이전에 남자들이다. 인간들이다. 꾸미려 하지 않고 내세우려 하지 않는다. 억지로 만들려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 두 마리 어린 가족들, 산체와 벌이는 남자들만 있는 퀴퀴함을 한 번에 날려주는 활력소다. 즐거움이 있다. 최근의 즐거움이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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