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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10.10 08:04

내사랑 내곁에 "도미솔이 바보같이 당하며 살 수밖에 없는 이유..."

얄미운 봉영웅과 철없는 배정자, 고석빈, 부계혈족주의에 대한 도전...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요즘 봉영웅 때문에 드라마를 보다 말고 채널을 돌려버리고 싶어지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다. 아무리 철이 없기로서니 저렇게까지 주위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 수 있는가?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바로 그런 것이 아이들이라. 아직 깊이 생각할 줄도 모르고, 복잡하게 계산할 줄도 모르고, 그래서 자기의 감정이, 본능이 시키는 바에 솔직한. 오죽하면 공자가 여자와 더불어 아이들 다루기가 그리 어렵다 하겠는가. 가까이 하면 버르장머리가 없고, 멀리 하면 원한을 품는다. 그러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바닥에 누워 뒹굴며 울며 떼쓴다. 논리도 이성도 필요 없이 오로지 동물적 본능과 감정만이 존재한다.

철이 없으려니. 실제 어리기도 하고. 그런데 그렇게 영웅이를 미운 눈으로 한참을 노려보고 있으려니 불현듯 그 위로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다. 씨도둑질은 못한다고 딱 아버지 고석빈(온주완 분)과 할머니 배정자(이휘향 분)의 모습이 영웅이의 그것과 그렇게 닮아 있다. 아마 그래서 봉영웅의 하는 행동들이 그리 더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리라.

하기는 그동안 줄곧 이야기해 온 부분이었다. 어째서 배정자는 저와 같이 행동하는가? 배정자의 아들 고석빈은 왜 그와 같은 행동을 서슴지 않는가? 아이들인 때문이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때문인 것이다. 아이들은 배려를 모른다. 아직 자기 이외의 세계를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모나 형제조차도 없다. 오로지 자기만을 안다. 그런 아이들에게 자기 이외의 세계를 가르치는 것이 바로 부모의 역할이다.

그런데 배정자는 그러한 부모로부터 방치되었고, 고석빈은 아버지 고진택(김일우 분)으로부터 방치된 상태에서 배정자로부터 그녀가 알고 있는 자기라고 하는 좁은 세계만을 강요받아왔다. 도미솔(이소연 분)이 자기 아이를 임신한 것을 알고서도 어머니가 시켜서라는 핑계로 도망쳐버린 그대로. 즉 엄마 도미솔이나 외할머니 봉선아(김미숙 분), 그리고 도미솔과 장차 결혼하게 될 이소룡(이재윤 분)의 입장은 생각도 않고 그저 새롭게 만나게 된 아버지 고석빈과의 관계만을 생각하며 고집을 부리고 있는 봉영웅 그대로인 것이다. 그래서 심지어 배정자는 봉영웅을 자기가 데려오고 싶은 욕심에 봉영웅의 입장은 생각지도 않고 봉영웅에게 아버지의 존재를 전하고 만다. 배정자나 고석빈에게도 중요한 것은 봉영웅을 자신의 아이로 소유하는 것이지 봉영웅 자신의 입장은 아니었던 것이다.

천진하다는 말은 흔히 좋은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지만, 그러나 현실에서는 오히려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아이들은 악의없이 사고를 친다. 어른도 천진하면 전혀 악의를 갖지 않고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힌다. 손자 봉영웅을 데려다 기르고 싶은 할머니 배정자의 욕심을 누가 뭐라 하겠는가? 아버지가 아들을 자기 아들로써 기르고 싶다는데. 그런데 너무 천진하여 세상물정 모르고 전혀 신경을 쓰지 않으니까. 그동안 배정자와 고석빈이 저질러온 악행들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며느리 조윤정(전혜빈 분)을 대할 때도 전혀 배려심없이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며 이내 후회하는 그런 모습처럼.

그러면 문제는 무엇인가? 아이가 그렇게 지나치게 천진하여 사고를 치면 주위에서 말려야 한다. 아니면 아이는 영영 그대로인 채로 자라게 된다. 학습하게 해야 한다. 이해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서라도 배려하며 살아가도록. 실제 배정자나 고석빈도 남들 눈이 무서운 경우에는 상당히 정상적인 상식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다. 주위에서 그들을 전혀 말리려 하지 않는 경우.

드라마를 막장이라 하는 이유다. 도대체 왜 도미솔은 봉영웅을 낳은 어머니이고 이제까지 봉영웅을 맡아 길렀으면서도 항상 주눅들어 자기 주장 한 번 펴지 못하는가? 도미솔이 약해서?

봉선아는 어째서 도미솔더러 영웅이를 지우라 하고, 영웅이를 낳게 되니 자기 아들이라 호적에 올려 기르고 있었던 것일까? 그녀가 독하고 못되어서?

그러나 당장 도미솔이 봉영웅을 데리고 이소룡과 결혼하려 하니 그것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나서는 이소룡의 할머니 정말자(사미자 분)가 있다. 그리고 어차피 고석빈의 아들이니 도미솔이 데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기보다 아버지인 고석빈에게 주고 혼자 이소룡과 결혼하라는 고진국(최재성 분)도 있다. 당연한 상식이다. 아이는 아버지의 성을 따라야 하고, 친아버지가 있는데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새로이 결혼하여 그를 아버지라 부르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사회의 뿌리깊은 부계혈족주의의 결과다.

법도 그렇다. 그래서 드라마에서도 말한다. 지난주 예견한 것처럼 드라마는 정면으로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부계혈통주의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아버지쪽의 반대로 낙태를 강요받아가면서까지 어머니는 아이를 낳아 지금까지 길러왔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 아이의 존재를 알고 자기가 기르려 한다는 이유로, 더구나 성이 다른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되리라는 이유만으로 이제까지의 어머니의 모든 노력은 무위로 돌아가고 만다. 어머니가 아이와 함께 지내온 시간보다 아버지로서의 권리가 더 우선한다. 성에 대한 권리다. 다름아닌 부계혈통에 대한 권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이 배정자와 고석빈을 더욱 당당하게 뻔뻔하게도 도미솔을 몰아세울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봉영웅은 도미솔이 기르고, 단지 호적은 고석빈 앞으로 올리라. 아마도 21세기판 솔로몬의 재판일 텐데. 봉영웅의 입장과는 상관없이 봉영웅에 대한 집착으로 봉영웅을 볼모삼아 도미솔을 협박한다. 누가 보아도 그것은 아이에게 애정이 있는 아버지로서의 행동이 아니다. 진정 아이를 생각했다면 더 신중하고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 도미솔이 그렇다. 그러나 중재에 나선 강정혜(정혜선 분)의 상식조차 아이는 아버지의 것이다. 기른 정이 있으니 도미솔이 기르지만 낳은 권리가 있으니 호적은 아버지에게 가는 것이 옳다. 그야말로 죽지는 않을 테니 아이를 둘로 나눠 공평하게 나눠가지라는 판결이었을 것이다.

도미솔이 자꾸 주눅들어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이다. 봉영웅을 가지고 봉영웅을 낳기까지, 그리고 낳고 나서도, 그녀가 겪어야 했던 세상이란 얼마나 모질고 차가웠겠는가? 이소룡과 결혼을 하려 해도 봉영웅의 존재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꿈을 이루려는 찰라에 그녀를 좌절케 한 것 역시 봉영웅을 낳고 기른 자신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이제 단지 아버지라는 이유로 봉영웅마저 빼앗길 처지가 되어 버렸다. 그것이 옳다고 말한다. 배정자와 고석빈은 더욱 기세등등하고 도미솔은 더욱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드라마가 막장이 아니라 작가가 그나마 조심스럽게 그려내고 있는 현실의 디테일이 그만큼 막장이라는 것이다. 하기는 아이 아버지가 아이의 존재를 인정하고 책임져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어머니들도 많지만. 아니 고석빈처럼 자기가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처지가 되면 또 어머니의 입장은 아랑곳없이 아이를 빼앗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드라마가 막장이라 여겨진다면 그러한 현실의 문제들이 그만큼 불합리하고 모순투성이라는 뜻인 것이다.

참으로 우스운 것이다. 원래 부계혈족주의는 조선시대 - 그것도 조선 중기 이후에나 나타나는 것으로 우리의 전통적 가치관도 아니었다. 그래서 의모어미가 아니라 의붓어미였다. 의부(義父)라는 말을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이 아닌 경우에 호칭 앞에 붙이는 것은 그만큼 새어머니보다는 새아버지가 더 보편적인 현상이었던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아이들을 데리고 재가하면 전남편의 아이들은 오히려 같은 아버지를 둔 형제보다 새아버지의 형제들과 더 가까이 지내기도 했었다. 그것이 완전히 바뀐 것이 조선 중기 이후다. 원래는 새아버지는 아버지였지만 새어머니는 어머니라고도 부르지 않을 정도로 모계중심의 가족제도가 더 일반적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이제 와서 마치 천륜처럼 묘사하고 있으니.

그러니까 봉영웅도 저렇게 되도 않는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란 어른의 거울이니까. 얼마나 아버지의 존재를 강조했으면 아버지가 나타나자 어머니의 존재를 깡그리 잊어버리겠는가. 아버지가 없다는 것은 그렇게 우리 사회에서 이상한 것이다.

이래저래 어려운 처지에 놓인 도미솔이다. 다행이라면 이소룡 또한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일까? 이제까지 이소룡이 도미솔을 일방적으로 위로해주었다면 이제부터는 도미솔 역시 이소룡을 위로해줄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이란 대등한 것이다. 일방적으로 위로하고, 위로받고, 워낙에 세상에 주눅들어 그렇지 그녀 역시 이소룡 하나쯤 책임질 수 있는 강한 여성일 테니까. 봉영웅만 철이 들어 말을 듣는다면.

갈수록 분통이 터지는 것이 욕하면서 드라마를 본다는 의미를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이 경우는 특정한 개인에 분노하여 화낸다기보다는 그같은 사회적 현실에 대해 분노하여 화내는 것이 더 크다. 필자가 <내사랑 내곁에>를 유독 아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드라마적인 재미와 사회적 메시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제대로 잡아내고 있다. 과연 작가와 제작진, 배우들의 그같은 노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가는 어쩔 수 없이 별개일 수밖에 없을 테지만 말이다.

과연... 드디어 가짜 공씨아줌마의 정체를 강정혜가 알아버렸고. 무엇보다 전체 50회 예정 가운데 46회가 지나가 버렸다. 조윤정이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 같다는 동생 고수빈(문지은 분)의 말에 어느새 괴로운 표정을 짓고 마는 고석빈의 모습에 그 답이 있을까? 고석빈이 최악의 상황에 놓였을 때 그의 곁에 있어줄 수 있는 것은 조윤정 뿐이다. 그리고 시련은 고석빈을 진정한 어른으로 만들어 놓을 수 있을 것이다. 욕하는 가운데 긴장이 높아진다.

재미있다. 드라마 자체로써도 긴장감이 있고, 전하는 메시지도 현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성과 감성을 두루 채우는 느낌일까? 만족하며 본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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