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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5.02.13 05:30

'하이드 지킬, 나' 8회 "밝혀지는 윤태주의 정체, 너무 늦다"

로빈의 실종과 드라마가 심심해진 이유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보지도, 듣지도, 생각지도 않는다. 말하는 순간 그것은 사실이 되어 버린다.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다. 무서운 것을 보고 바로 자기 방으로 도망쳐서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주문을 외운다.

"난 아무것도 못봤어!"

믿음은 사실이 된다. 당장 밖에서 어떤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든 보지 못했다 믿으면 자신은 그것을 보지 못한 것이다. 그 무언가가 문을 부수고 들어와 그 실체를 자신의 눈앞에 드러내기 전까지. 그나마 그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면 영영 그것을 보지 못하고 끝나는 수도 있을 것이다. 차라리 그것이 더 나을까?

진실이 두렵다. 자신을 둘러싼 현실이 부담스럽다. 그래서 도망친다. 보지 못했다고. 듣지 못했다고. 기억하지 못한다고. 생각지도 못했다고. 그래서 평화로웠다. 심장이 빠르게 뛸 일도, 혈압이 오를 일도 없었다. 크게 기쁘거나 크게 화나는 일도 없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야말로 평온한 일상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것일 게다. 세상의 번잡함에 물들지 않은 한가롭고도 자유로운 삶이라는 것은.

▲ '하이드 지킬, 나' 공식 포스터 ⓒ에이치이앤엠, KPJ

그러나 사람이란 외부와 마주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사람의 모든 감각기관은 자신이 아닌 외부를 향하고 있다. 눈도, 귀도, 코도, 입도, 피부도, 끊임없이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외부의 자극이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그 공허를 메우려 한다. 보아서는 안되는 것을 보게 된다. 극도로 억압된 자아가 오히려 자신을 타인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혼잣말은 고독의 가장 흔한 증상 가운데 하나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사건사고도 끊이지 않고 온갖 감정과 고민들로 정신이 없는 구서진(현빈 분)에 비해 그의 또다른 인격인 로빈의 일상이 심심할 정도로 단조로운 것은. 비로소 분명해진다. 구서진이 진짜다. 로빈은 단지 그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고민하지 않는다. 무엇으로도 갈등같은 건 하지 않는다. 욕망하는 것이 없다. 욕망이란 존재다. 장하나(한지민 분)를 제외하고 그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같은 시간대 다른 방송사에서 방영되는 경쟁드라마 '킬미힐미'와 결정적으로 비교되는 부분일 것이다. 주인공의 다중인격이 사건을 만들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중심이 된다. 각각의 인격이 가지는 욕망과 개성이 드라마에 다채로운 색을 부여한다. 이야기의 주제도 명확하다. 그에 비하면 '하이드 지킬, 나'에서의 로빈이란 구서진이란 본체에 기생하는 부속과 같은 존재일 것이다. 홀로 완전한 구서진에 비해 구서진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 로빈이 나오든 나오지 않든 지금으로서 드라마에는 그리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구서진의 오랜 친구 이수현이라 주장하는 안성근(황민호 분)일 것이고, 그보다는 안성근에게 최면을 걸어 이수현으로 행세하도록 뒤에서 조종한 정신과 의사 윤태주(성준 분)일 것이다. 강희애(신은정 분) 교수의 제자로 목격자인 장하나가 범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최면치료를 돕고 있었다. 하기는 성준이라는 배우의 이름값에 비해 그동안 배역의 비중이 너무 작았다. 장하나와 감정으로 엮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강희애 납치와 관련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고, 결국 윤태주가 강희애를 납치한 진범임을 알게 되었으니 성준의 이름이 출연배우 가운데 현빈과 한지민 다음에 위치한 이유를 비로소 납득할 수 있었다.

구서진과 로빈 사이의 내적 갈등이 빈약하니 외적인 충격을 통해 그것을 대신하려 한다. 구서진의 과거가 등장하고, 그에게 원한을 품은 이수현, 아니 윤태주가 강희애까지 납치하고 숨어서 그를 노리고 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오히려 구서진과 로빈의 사이를 일깨운다. 로빈이 제안한다. 자기가 구서진을 돕겠다. 어쩌면 이를 통해 로빈이 보다 전면으로 나서며 구서진과 균형을 이루게 될 지도 모른다. 구서진과 로빈이 서로 균형을 이루기 시작하면 구서진과 로빈 모두에게 호감을 느끼는 장하나와의 관계 역시 흥미를 더하게 된다. 너무 늦었다. 윤태주의 정체가 반전이 되기에는 그동안 충분히 긴장이 쌓이지 못했다. 어차피 누구도 그 이름조차 알지 못하던 이수현의 정체가 윤태주였다고 새삼스럽게 놀랄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아버지 구명한과의 갈등 역시 묘사가 충분하지 못했다. 구서진과 로빈의 관계 또한 그래서 설명이 너무 길다. 드라마는 보여주는 것이지 들려주는 것이 아니다. 느끼게 하는 것이지 설득하는 것이 아니다. 장하나를 향한 구서진의 감정조차 감추는 것 없이 모두 드러내 보임으로써 그나마 흥미를 끌만한 여지마저 지워버리고 말았다. 역시 로빈이 전면으로 나서야 한다. 구서진과 비슷한 비중으로 로빈의 캐릭터가 균형을 맞출 때만이 드라마에도 새로운 활력이 돌기 시작한다. 다만 어째서 지금에 와서야 이런 긴장감을 보여주는 것인가? 4주라는 시간은 기대를 접고 더 재미있는 다른 드라마를 찾아 채널을 돌리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구성상에서의 아주 사소한 실수였을 것이다. 재미있어지고 있다. 흥미로워지고 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아무런 기대도 없는데 반전만 보여줘봐야 어색하기만 할 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저 그러려니. 차라리 이야기의 구성이나 배치를 조금 달리 해봤으면 어땠을까? 처음의 강한 인상이 드라마를 끌어가는 힘이 되어준다. 많이 아쉽다.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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