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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5.02.11 05:28

펀치 17회 "폭주하는 이태준과 윤지숙, 돌아갈 곳을 잃다"

신하경을 향해 달려가는 윤지숙과 이호성, 희망의 반전을 기대하다

▲ SBS 월화드라마 '펀치' ⓒS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어느새 돌아보니 돌아갈 다리가 사라졌다. 이제는 앞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다. 어디가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후회마저 사치가 된다.

그저 머리로 아는 것과 직접 자기 눈으로 확인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형이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은 형 자신의 입으로 직접 말해주었기에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형의 죄를 감추라 조강재(박혁권 분)에게 지시도 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의 사실과 자신이 인지하고 있는 사실 사이에는 형이라고 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혈연이 존재하고 있었다. 형의 존재가 그의 눈을, 그의 판단을 가리고 있었다. 이제 비로소 형이 지은 죄의 실체를, 아니 자신이 지우려 했던 죄의 진실을 직접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 자기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르려 하고 있는가. 자기가 지금까지 무슨 짓을 저질러 온 것인가.

형 이태섭(이기영 분)이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보기 전과 뒤의 이태준의 눈빛이나 표정, 말투가 전혀 다르다. 그래도 그 전까지는 인간적인 모습도 제법 보이고 있었다면, 동영상을 보고 난 뒤로는 더 이상 가리거나 꺼리는 것 없이 무장정 앞만 보고 달려가는 고장난 기관차를 보고 있는 듯하다. 그나마 여지를 두고 대하던 윤지숙(최명길 분)에게조차 더 이상 최소한의 조심도 배려도 보이지 않고 있다. 만일 윤지숙이 자신의 요구를 거부한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동영상을 세상에 공개하면 그 뿐이다. 다른 의미에서 이태준도 박정환과 같이 오늘만 살고 있을 것이다. 이제와서 동영상이 공개되고 자기의 삶이 망가지더라도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이제 더 이상 이태준이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필 아들이었다. 그 마음을 이해하기에 신하경(김아중 분)은 윤지숙의 전화를 받고 차를 멈춰세운 것이었다. 신하경의 한계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유치원버스 운전기사와 그 가족을 돕겠다고 자기가 먼저 나서고는 정작 전남편 박정환(김래원 분)의 뇌종양 소식에 그저 눈물만 흘리고 말았다. 자신의 전남편이면서 자신이 낳은 딸의 아빠다. 아마 신하경의 경우도 같은 상황에 놓였다면 그 선택은 윤지숙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태준과 진실 사이에 그의 형이 있었듯, 윤지숙과 진실 사이에도 그녀의 아들이 있었다. 어머니로서 자신의 아들을 포기하지 못하는 한 그녀는 결코 진실을 바로 볼 수 없다. 이태준에게 윤지숙이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이유다.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사람과 지켜야 할 것이 없는 사람의 차이다. 지켜야 할 그것을 위해 윤지숙은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양심마저 내던지려 한다.

마침 이호성(온주완 분)도 신하경의 뒤를 쫓아 차를 달려오고 있었다. 이호성의 보고를 듣고 바로 신하경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를 만나러 가던 길이었다. 이호성은 윤지숙과는 별개로 단지 신하경이 중간에 빼돌린 칩을 되찾고자 그를 뒤쫓던 중이었다. 윤지숙이 신하경을 향해 차로 돌진하는 순간 이호성도 신하경이 있는 근처에 도착해 있었다. 마지막으로 윤지숙에게 다짐을 받고 있었다. 후회하지 않도록 해달라. 자신의 모든 양심이, 신념이, 이상이, 인간의 정마저 모조리 배반당하는, 더구나 스스로 그렇게 되도록 돕고 있다는 자괴감이 부쩍 번민과 고뇌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는 윤지숙이 신하경을 향해 차를 몰아가는 광경을 보았을까?

권력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조직의 수장이다. 심지어 검찰을 대신해서 진실을 밝히라고 임명한 특별검사마저 한 편이 되어 있다. 진실을 밝히고 잘못을 바로잡으라고 주어진 힘일 것이다. 그러나 정작 진실을 가리고 잘못을 감추는데만 그 힘을 쓰려 하고 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그것을 저지하거나 견제하지 못한다. 그러기 위한 모든 힘이 그들 자신에게 이미 주어진 때문이다. 권력을 먼저 쥐어주고 나중에 비판하고 감시하겠다는 어떤 주장이나 의도들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자격이 없는 자가 권력을 가지게 되면 얼마나 위험한가. 언론도 대중도 단지 그들에게 놀아날 뿐이다.

어쩌면 이태준이나 윤지숙이나 하나같이 인간적으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인물들로 그려지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단지 자연인일 때 두 사람의 행동은 충분히 이해할만한 부분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출신이 그러했고 출발부터가 그러했다. 하필 형이었고, 하필 자기 배로 낳은 아들이었다. 동생이 형을 생각하고, 어머니가 자식을 챙기는 것이 무에 그리 큰 잘못인가? 하지만 검찰총장이니까. 하지만 법무부장관이었으니까. 지금은 특별검사다. 개인의 인정과 공적인 책임 사이의 거리를 명확히 보여준다. 검찰총장으로서 해서는 안되는 일들을 했고, 지금도 특별검사로서 해서는 안되는 일들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어머니로서의 자신의 개인적인 인정에만 기대어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얼마나 역겨운가. 박정환도 누군가의 아들이며 오빠이고 남편이고 아빠다. 그런 박정환을 희생시키려 한다.

점점 더 거리낄 것이 없어진다. 이태준 때문에. 아들 때문에. 결국 선택한 것은 윤지숙 자신이다. 자신을 위한 변명이 그런 자신을 정당화해준다. 이제와서 멈출 수도 없다. 너무 멀리왔다. 단지 아들의 죄를 감추고자 했던 어머니의 모정이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되는 일들까지 어쩔 수 없이 저지르도록 만들었다. 멈추는 순간 놓아두고 온 그 죄들마저 자신을 덮치게 될 것이다. 그럴 용기가 있었다면 처음부터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차라리 눈물로 용서를 구하며 또다른 죄를 짓는다. 차라리 공공연히 자신이 악인임을 드러내려는 이태준은 그에 비하면 얼마나 인간적인가.

결국은 인간의 이야기다. 드라마란 결국 인간의 이야기다. 인간의 죄와 악, 그리고 인간의 사회가 만난다. 도덕과 규범, 그리고 법과 정의. 인간이 진정 가치있는 것이라 믿고 있는 것들. 자신의 죄가 이제 자신을 향해 돌아온다. 마지막으로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으려 하는데 마치 원죄처럼 자신이 과거 저지른 죄들이 자신을 막아선다. 자신과의 싸움이다. 자신의 선택이었다. 윤지숙에게 버려진 뒤 이태준의 손을 잡은 이후부터 주욱. 자신의 책임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이야기는 멈추고 만다. 어떻게 되었을까?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마무리는 어떻게 될까? 희망을 믿고 싶다. 현실보다는 희망에 기대고 싶다.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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