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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남자 "김승유의 비극과 아이러니, 반전의 엔딩..."
시대에 밀려 자기가 아닌 자기로써 살아야 했던 남자의 비극...
2011년 10월 07일 (금) 07:3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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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석 기자 azzasi@stardailynews.co.kr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어쩌면 김승유(박시후 분)의 비극은 단지 그가 그 시대에 존재하지 않던 허구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존재 자체가 허구였다. 대호 김종서의 아들이라는 것도, 경혜공주(홍수현 분)의 부마인 영양위 정종(이민우 분)의 친구라는 것도 사육신 이개(엄효섭 분)의 제자라는 것 역시. 신면(송종호 분)의 친구였으며, 수양대군(김영철 분)이 죽으려 하는 적이었다.

그러나 정작 김승유가 바란 것은 오로지 하나였다. 세령(문채원 분). 그리고 세령과 함께 모든 것을 잃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것. 조석주(김뢰하 분)가 그에게 한 말이 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었다. 조석주가 일깨웠거나, 아니면 스스로 깨달았거나. 아버지 김종서와 형 김승규의 죽음도, 친구 정종의 죽음도, 사육신의 죽음도, 왕 단종의 죽음도, 심지어 함께 거사를 일으켰던 이시애의 죽음까지도, 그리고 조석주와의 인연 역시. 그에게는 버거울 뿐이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짊어질 수 없는 무거운 짐이었다. 신면이 신숙주의 아들이기에 친구를 배반하는 길을 선택했듯, 김승유 역시 김종서의 아들이기에 사랑하는 세령을 배반할 수도 있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끝이 났다.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다. 과연 정종이었으면 어땠을까? 원수의 아내인 정희왕후(김서라 분)로부터 용서를 받고 목숨을 구했다. 그것은 분명 용서였다. 그것도 세령이 임신한 아이의 아비라는 이유로 적선하듯 목숨을 살려준 것이었다. 정종은 그것을 끝내 견뎌하지 못했다. 그는 차라리 죽으려 했으며 마침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여 경혜공주의 뱃속에 자신의 아이를 남겨둔 채 거열형이라는 가장 장인한 방법으로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오히려 김승유는 원수로부터 용서를 받고 눈이 먼 채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어 세령과 세령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과 사는 것이 그리 만족스런 모양이다. 진정으로 그가 바라던 것이 아니었을까?

아니 신면이 바라던 것이었을 게다. 자신을 짓누르는 이 무거운 운명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더 이상 죽고 죽이는 피의 수레바퀴로부터 벗어나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평온한 삶을 살아가는 것. 더 이상 누구를 배신하는 일도 없고, 다른 누군가의 피를 볼 일도 없으며, 증오를 불사를 일도, 공포에 떨어야 할 일도 없다.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는가? 아버지라는 이유로, 친구라는 이유로, 스승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잘 알지도 못하는 군주라는 이름 아래,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이 죽을 때마다 원한이 쌓이고 원망이 올려진다. 살아있다는 죄가 숨을 쉴 수도 없이 켜켜이 쌓여 그를 짓누른다. 살아있기에 원망해야 하고, 살아 있기에 증오해야 하며, 살아있기에 누군가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 차라리 그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면.

그런 점에서 처음 김승유가 홀로 살아남았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이해가 된다. 세령이 그토록 김승유에게 살아남으려 노력하라 말했던 것도 납득이 된다. 그는 처음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대해. 차라리 아버지의 편에서 사랑하는 여인까지 얻고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었던 신면에 비해서도 그는 비겁했다. 어쩔 수 없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군상인 때문이다. 주어진 운명의 짐에 치이고 짓눌려 지레 겁먹고 포기해 버리고 마는. 그의 싸움은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부터 평안을 얻기 위한 발버둥이었던 것이다. 아예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망쳐버리기에도 비겁한 그가 평안을 얻기 위한 처절한 발버둥이었던 셈이다.

차라리 세조에게 잡혀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어도 김승유 개인에게는 그것이 해피엔드였다는 것이다. 영웅이 아닌 이가 영웅이 되었을 때. 도저히 영웅이 될 수 없는 이가 영웅이 되어야만 했을 때. 대호 김종서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그에게 가해지는 기대와 젊은 시절 그가 보인 재능과 역량에 기대어 그에게 쏟아지는 요구들. 차라리 도망칠 수 있을 만큼 용기가 있었다면 비극은 없었으련만 그러지 못한 것이 김승유의 비극을 만들었다. 없는 원한을 쥐어짜고, 있지도 않은 증오를 되새기며, 그토록 세조가 죽이고 싶어 하는 김승유로써 살아간다는 것. 그에 비하면 앞도 못보는 처지가 된 마지막은 더 이상 김종서의 아들도 아닌 그저 평범한 한 남자가 아니던가. 그를 그토록 괴롭히던 대호 김종서의 아들 김승유는 죽었다. 정종의 친구도, 이개의 제자도, 수양대군의 적도. 아마 이런 것을 피안이라 하던가?

이 드라마의 주제였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작은 개인이다. 너무나 작아서 그저 평화로운 시절 평범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개인들이다. 그런데 시대는 그에게 영웅이 되기를 요구한다. 복수를 요구하고, 대의를 이룰 것을 기대한다.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그같은 짐을 지운다. 그러지 않을 수 없도록 죄의식까지 강요한다. 살아있다는 자체가 죄다. 살아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하는 자체가 스스로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죄가 된다. 그래서 떠밀리듯 영웅이 되어야 했고, 영웅이 되기 위해 발버둥쳐야 했으며, 그러한 모든 짐을 벗어 던지고 난 원래의 평범한 한 개인으로 돌아왔을 때 그가 보여주는 웃음. 시대를 감당하기에 인간은 너무 작다. 시대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수양대군과 같은 의지를 갖는 존재다.

수양대군은 사실상 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 이루었다. 왕이 되었다. 그를 반대하던 모든 이들이 그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권력의 정점에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 이루었다. 그토록 골머리를 썩이던 김종서의 아들 김승유를 마침 딸이 임신한 것을 이용해 사로잡을 수 있었고, 그로 하여금 더 이상 자신에게 저항하지 못하도록 눈까지 멀게 만들었다. 딸과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기껍고, 자신에게 원한을 품고 대적하던 이를 용서하는 즐거움마저 누렸다. 김승유가 그를 용서한 것이 아니다. 정희왕후가 그를 용서했고, 말년의 세조가 딸의 행복을 위해 그의 존재를 용인했다. 그에 비하면 김승유가 이룬 것은 무언가?

하기는 그는 하늘이 내린 왕이었다. 생각지도 않은 딸의 임신에 당황하고 분노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딸이 임신한 아이는 외할아버지를 위해 자기 아비를 잡도록 도와준 어쩌면 세령같은 아이였다. 아버지로 하여금 외할아버지를 죽게 만들 수 없다. 세조는 어느새 자신의 목에 칼까지 들이대며 위협하는 김승유를 딸 세령의 임신사실을 알려 동요시킴으로써 어렵지 않게 사로잡고 만다. 마침내 김승유를 사로잡고 그를 바라보는 세조의 웃음은 얼마나 통쾌한가? 그리고 그 아이로 인해 김승유가 원한마저 버리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세조 앞에서 김승유란 단지 무엇이 옳은지도 모르고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도 모르고 달려드는 어린아이였달까? 순간 오죽하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까지 들었었다. 그로 인해 자칫 김승유가 죽을 뻔했다. 결국 정희왕후의 자비로 인해 목숨을 구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많이 허무했다. 그렇다면 그동안 김승유가 해 온 일들은 무엇인가? 그토록 죽인 이들을 떠올리며, 살아있는 것을 죄로 여기며, 대의를 위해 수양대군을 죽이겠다. 세조를 죽이겠다. 무엇을 위해 김승유는 그토록 수많은 일을 꾸미고, 수없이 많은 이들의 생명마저 앗았으며, 세령으로 하여금 고통과 번민 속에 빠져들도록 했더란 말인가. 차라리 부모의 원한따위 잊고서 세조의 신하가 되어 세령과 행복하게 살았더라면. 그러나 그것이 주제였던 것이다. 의지따위 없이도 역사가 그리 시키고 있기에 그리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군상들.

그리 아버지 세조가 저지르는 죄악에 반발하여 그와 대립하던 세령도 역시 단지 김승유와 함께라면 좋았던 어린 소녀에 불과했다. 과연 그녀로 하여금 아버지 세조와 대립하게 만들었던 것이 세조가 저지른 죄악 때문이었는가? 아니면 사랑하는 김승유가 아버지 세조와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었는가? 경혜공주가 세조를 적대시하던 것도 모두가 죽고 아이 하나 살아남으니 그 아이를 위해서라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어 버린다. 남편 정종은 대의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했지만, 그는 기꺼이 정희왕후를 도와 세령의 아이를 위해 김승유를 설득할 것을 권유한다. 마침내 드러나는 본모습들이다. 그것이 결국 사람이다. 역사이며 역사 속을 살아가는 개인들이다. 그래서 김승유였고, 세령이었으며 공주의 남자였던 것이다.

어째서 정종과 경혜공주가 아닌 김승유와 세령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인가? 특히 정종은 시대와 맞서며 살아갔던 캐릭터였다. 불의를 보고 분노하며, 대의를 위해 위험을 무릎쓰고, 그리고 끝내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당당했다. 그것이 옳다고 여겼고, 따라서 그 옳은 것을 위해 자기의 의지로 선택했다. 비록 그 죽음이 슬프기는 하지만 비극으로써의 극적 아이러니는 상당히 부족하다. 그러나 영웅이 아니었으면서도 영웅으로 살아야 했고, 영웅이 될 수 없었음에도 영웅으로써 선택하며 행동하고 책임을 져야 했던 김승유의 아이러니는 참으로 극적이다. 마지막회이다 보니 묘사가 허술해서 그렇지 오히려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행복한 모습에서 그동안 그가 겪었을 고통을 떠올리게 된다. 오히려 죽음에 이르러 김승유와 정종에 대한 우정을 떠올리고, 자신이 지은 죄의 댓가로 아군인 한명회(이희도 분)가 쏜 화살에 죽음을 맞은 신면의 모습에서 구원을 발견한 것과 같은 이유다. 그가 마지막에 겪은 고통 만큼 비로소 친구로써 김승유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된 신면의 최후는 그에게 구원이었던 것이다.

뭔가 입맛이 쓴 결말이었다. 차라리 거기에서 죽임을 당했다면. 그동안 세조에게 반발하다 죽임을 당한 다른 사람들처럼 그 또한 세조의 적으로써 당당히 죽임을 당했더라면. 아니면 그가 세조를 용서하는 위치에 있었어도 좋았을 것이다. 세령의 임신을 알고 세령의 아이를 위해 차라리 세조를 살려주려 했다. 세조가 죽고 나면 다시 새로운 왕을 올리기 위해 수많은 피가 흐르고 혼란이 찾아올 것이기 때문에 대의를 위해 세조를 용서하기로 했다. 혹은 세령이 세조에게 억류된 것을 알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세조를 포기하는 것도 좋았을 것이다. 어느쪽이든 김승유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결말이었을 것이다. 세령은 이미 아버지와 의절까지 하며 김승유를 선택했고, 따라서 김승유 역시 이제까지의 드라마의 내용 대로 자신의 의지로써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충격이었을까?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었다. 김승유가 살아 있어서 반전이 아니었다. 김승유라고 하는 캐릭터 안에 내재된 비극의 아이러니. 김승유라고 하는 인물 자체에 대한 반전이었다. 그리고 이제까지 일관되게 그려져 온 정작 원한을 이야기하고 대의를 이야기하면서도 전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지 않았던, 끝내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김승유에 대해서. 진심으로 가련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누군가로부터 너무나 큰 기대를 받으며 그를 이루기 위해 살아간다는 것은 또한 상당한 비극일 터이므로. 정작 김승유로 살아가면서도 그 누구에게도 김승유가 없다. 눈이 멀어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된 지금은 온전한 김승유일 테지만.

허술한 부분이 적지 않았지만 어차피 공중파 드라마라고 하는 한계가 있으므로 양해하며 본다. 거의 생방송으로 찍어야 하는 한국드라마제작의 현실상, 다음주 예고편조차 내보내지 못하고 있는 환경에서 과연 이 이상의 치밀한 완성도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이시애의 난도 생각보다는 규모있게 잘 그려진 듯하다. 어차피 이시애의 난은 신면을 죽이기 위한 장치였다. 신면을 죽였으니 김승유는 깔끔하게 한양으로 이동하고, 김승유가 한양에 있는 사이 이시애의 난은 허무하게 진압된다. 다행히 이시애가 잡힐 때 그 자리에 없어서 동지를 버리고 혼자서 도망쳐서 살아나는 꼴사나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비극을 심화시켜준다.

불만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드라마의 결론에 대해서는 납득한다. 세상에는 무수한 사람이 있고, 역사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경우들이 있다. 영웅이 아니었다고 그를 비난할 수는 없다. 영웅이 아닌 이들이 더 많은 것이 오히려 현실인 것이다. 피동적으로 운명이라 부르며 탓을 톨리고 휩쓸릴 수밖에 없는 보통의 현실이며 군상들인 것이다. 그러한 개인의 비극이 더욱 심화시킨 운명적 사랑의 비극에 대해서. 그리고 모든 것이 해결된 결말도. 그래도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간다. 어떻게든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흔한 장르가 아니다. 워낙에 역사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진지한 탓에. 그러나 역사와 상관없이 역사와 얽히면서도 살아가는 개인의 이야기란 재미있지 않은가. 시대로 인해 자기가 아닌 자신을 살아가야 했던 이와 너무나 당연한 일들도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되어 버린 가련한 이들과.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의미있었다. 재미있었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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