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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공소리 칼럼니스트
  • 칼럼
  • 입력 2015.02.04 08:26

[칼럼] 무생식기 세대, ‘우리는 정말 사랑하고 싶다’

▲ 작품명 '흐르는 삶만이' ⓒ김혜진

[스타데일리뉴스=공소리 칼럼니스트] 연애, 결혼, 출산 세 가지를 포기한 세대를 이른바, 삼포 세대라 부른다. 높은 물가, 등록금, 취업난, 집값 등 사회적, 경제적 압박을 받는 20~30대가 혼자 살기에도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거나, 연애하더라도 결혼을 포기하고, 결혼하더라도 출산을 기약 없이 미루고 있다. 삼포 세대를 나아가 오포 세대라 부르기도 한다. 연애, 결혼, 출산뿐 아니라 인간관계, 내 집 마련을 포기하는 것이다.

어느 날,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지인이 남자친구와 잘 지내느냐고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결혼할 생각 있느냐고 막연하게 물었다. 요즘은 독신을 원하는 사람이 많다고 우회적으로 대답했다. 그녀는 혀를 차면서 나에게 삼포 세대라며 안쓰러워했다. 그날 처음으로 삼포 세대에 대해서 체감했다. 그녀는 치솟는 물가와 집값에도 불구하고 결혼해서 은행대출로 집을 사고, 세 명의 아이를 낳은 삼포 세대를 피해간 30대였다. 그리고 나는 이 치열한 사회에서 아무것도 없이 미혼으로 살아가고 있는 풋내기임을 체감했다.

88만 원 세대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경제적 막연함보다 ‘포기한 세대’라는 뜻은 더 큰 불안감과 열등감을 만든다.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하더라도 가난해도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다. 물려받은 재산이 없어도 몇만 원, 몇십만 원 보증금 하나로 살림을 시작하는 신혼부부도 허다했다. 돈이 없으면 경제적 수단인 소를 팔거나 땅을 팔았다. 집을 마련하기 위해 월급을 쪼개 은행 이자 받으며 돈을 예치하는 재미도 있었다. IMF 전에는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될 기회와 정규직은 승진의 기회가 지금보다 많았다. 자영업자들은 대부분 월급쟁이보다 많이 벌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식 농사를 위해 생계 수단인 소를 팔거나, 땅을 팔 수 없다. 소도 없고, 땅도 없으니까 말이다. 저금리에 저축하여 집을 사는 일은 없다. 저축 대신 모기지 대출을 받아 은행과 공동 집주인이 된다. 학사 졸업증과 인턴 이력, 해외 경험이 있는 엘리트는 넘쳐나지만, 취업에 절망하고 창업에 눈을 돌리는 청년과 직장을 잃어 창업에 문을 여는 장년은 늘어났다. 2012년 개인사업자의 56%인 221만 5,754명이 월 소득 100만 원 미만인 실정인데도 말이다.

연인을 만나면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좋은 곳을 놀러 가거나, 선물하거나 지출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88만 원 세대, 삼포 세대에서 연인과 함께하는 지출과 비경제적 투자마저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 연인, 인간관계보다 자신에게 선물하거나 투자하는 일이 더 가치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가치에 대한 선택이 진정한 가치가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치열한 사회에서 열등감을 피하기 위해 독신으로 살겠다고 선언하는 게 아닐까?

결혼도 출산도 의무가 아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 것과 세대를 위해 번식 활동을 하는 것은 본능이다. 우리 세대를 존재하게 한 오래전부터 내려온 건강한 본능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마치 동물원에서 전시되고 있는 동물들처럼 사회라는 우리 안에서 본능을 잃은 채 사는 무생식기 세대가 됐다.

우리 세대는, 같이 꿈을 꾸고, 같이 걷고, 함께 주름을 세는 사랑은 사치다. 성관계는 빈번해졌지만, 피임기구 없는 성관계는 사치다. 본능을 강탈당했든, 스스로 본능을 제어하든 상관없이 애정을 기반으로 도약하는 생식기의 본질을 잃은 세대다.

우리는 정말 사랑하고 싶다.

고용시장의 과잉 경쟁 속에서 진정한 승리자도 없지만, 저금리 시대에 아무리 돈을 모아도 부자가 될 수 없지만 우리는 연애하고 싶다. 우리는 결혼하고 싶고, 인류의 번성과정을 이행하고 싶다.

더 이상 매주 복권을 사면서 꿈을 꿔선 안 된다. 1등에 당첨되면 집을 살 수 있겠노라고, 가정을 꾸릴 수 있겠노라고 꿈을 꿔선 안 된다. 우리는 복권 1등 당첨자가 아니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안정된 미래를 꾸려나가는 꿈을 꿀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생식기의 본질을 잃은 세대에서 벗어나야 한다. 최소한 다음 세대가 우리를 무엇이라 칭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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