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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5.02.04 07:45

펀치 15회 "이태준과 조강재에게 이입하게 되는 이유"

너무나 다른 윤지숙의 이상이 가지는 모순과 위화감에 대해

▲ 펀치 ⓒHB엔터테인먼트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검찰총장 이태준(조재현 분)에게 매력을 느끼고 마는 이유일 것이다. 이태준의 측근 조강재(박혁권 분) 역시 마찬가지다. 하는 짓들은 얄미운데 어느새 자신을 이입하고야 만다. 욕망이란 어쩌면 인간이 가지는 가장 순수하고 본질적인 요소가 아닐까.

가난했기에. 손에 쥐어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그래서 가지려 했다. 그래서 채우려 했다. 차라리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고 채워져 있었기에 윤지숙(최명길 분)은 더 이상 무엇도 탐내거나 욕심낼 필요가 없었다. 이태준이나 박정환(김래원 분)이 그토록 필사적으로 모든 것을 희생해가며 발버둥쳐 얻어낸 것들도 윤지숙에게는 너무 쉽고 너무 당연하다. 가만히만 있어도 거저 주어지는 것들인데 자신을 더럽히며 상처 입혀가며 발버둥칠 필요는 전혀 없었다. 윤지숙의 너무나도 순결하고 숭고한 이상이란 단지 모든 것을 가진 자의 오만이며 아무것도 겪어보지 못한 자의 무지에 불과했던 것이다.

단 한 번이었다. 처음으로 주어진 선택이었다. 어쩌면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어떤 간절한 것이 생겼다. 어머니였다. 자신의 아들이었다. 검사로서, 그리고 법조계 명문가의 일원으로서 법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어머니로서 아들을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 사실 포기조차 아니었다. 법이 정한대로 수사받고 책임까지 모두 지고 나서 그때부터 자기의 삶을 살아도 조금 시작만 늦을 뿐이었다. 그런 자식의 새로운 삶을 뒷받침해줄 능력이 윤지숙과 그녀의 시가 모두에게 넘치도록 갖춰져 있었다. 단지 조금의 흠일 뿐이었다. 그것을 견뎌하지 못한 것이었다. 스스로를 더럽혀서라도, 스스로 자신이 지켜온 양심과 신념을 저버려서라도, 검사로서 검찰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더럽혀야 했던 박정환과 무엇이 다른가?

이태준이 청와대로 가는 길을 보여주자 그녀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신념을 저버린다. 검찰개혁을 위해서라도 모든 부정과 부조리의 온상과 같은 이태준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이태준이 청와대라는 더 큰 야망의 불을 지펴주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기꺼이 이태준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의 손을 잡으려 한다. 온실의 화초가 너무 쉽게 들판의 잡초가 되어 버렸다. 고고하게 자기만의 세상에 머물던 윤지숙이 너무나 쉽게 세상의 욕망에 물들어 버렸다. 단지 아직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뿐, 욕망을 알게 되자 그녀는 오히려 이태준보다 더 큰 탐욕과 집착을 드러낸다. 쉽게 더럽혀지고 타락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쩌면 가진 것도 채워진 것도 많았기에 그녀의 욕망 역시 더 크고 더 지독한 것인지도 모른다.

차라리 이태준은 연민하더라도 윤지숙은 혐오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위기가 찾아오자 바닥을 드러낸다. 그녀의 순결하고 고고한 이상의 실체를 드러내고 만다. 윤지숙에 비하면 이태준은 오히려 작다 할 것이다. 이태준이 고작 개인의 일탈에 불과하다면 윤지숙은 법조계 원로들마저 개인의 인맥으로 동원할 수 없는 이 사회 부조리한 구조 그 자체였을 것이다. 보편의 정의와 이상을 앞세워 법을 농락하고 진실을 왜곡한다. 무고한 이를 억울한 죄인으로 만들고, 죄를 지은 이를 아무렇지 않게 풀어준다. 무력감마저 느낀다. 박정환과 만나 술잔을 나누며 이태준은 그럼에도 여전히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한탄을 늘어놓는다. 물론 박정환에게는 이태준조차 넘을 수 없는 한계이며 현실의 구조였을 것이다.

자신의 죄를 모두 뒤집어씌우려 하면서도, 더구나 자신을 향해 이를 드러내고 있음에도 박정환을 만나 기꺼이 술잔을 기울이고 대화를 나눈다. 내용은 살벌하지만 그 형식은 얼핏 정감마저 느끼게 한다. 필요에 의해 매수한 대상이지만 정작 전세금이 올라 가게를 비워야 한다 하니 그것이 미안하기만 하다. 이태준은 지금 당장은 어쩔 수 없다 말하고, 조강재는 아예 위험마저 무릅써가며 돈을 인출해 건네려 한다. 차라리 그런 조강재의 약점을 이용하려 하는 박정환이며 신하경(김아중 분) 등이 악당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여전히 신념과 이상을 말하는 윤지숙이나 이호성(온주완 분)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적인 매력일 것이다. 누구나 한 번은 꿈꾸어 보았음직한 인간적인 욕망이 아니던가.

박정환이 검찰 고위직에 있을 때는 어머니가 하는 세탁소마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동네사람들인데 박정환의 개인비리에 대한 특별검사의 수사가 시작되고 실권에서 멀어지자 세탁소에도 사람들의 발걸음이 뚝 끊긴다. 김밥집을 운영하던 운전수의 부인 역시 한때 자신을 돕고자 했던 신하경을 배반하는 증언을 함으로써 궁지로 몰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그렇게 얻은 김밥집까지 포기해가며 신하경의 편에 서서 조강재를 잡는데 힘을 더한다. 김밥집을 낼 돈을 탐내는 것도 인간의 당연한 욕망이고, 은인을 위해 그것마저 포기할 수 있는 것도 인간의 더 높은 차원의 욕망일 것이다. 그것이 박정환의 욕망이었고, 이태준과 조강재의 욕망이었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간절함과 절실함. 하지만 결코 어느 누구도 그것을 이상이니 신념이니 하는 말로 미화하지는 않았다.

점점 지쳐간다. 시청자 역시 지쳐간다. 개연성이 떨어진다. 벌써 한 번 써먹은 뒤다. 이태준으로 하여금 조강재를 의심케 함으로써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 한 것은, 한 번 당했는데 또 당하고 만다. 차라리 이마저 이태준이 박정환과 윤지숙을 한꺼번에 처리하기 위해 파놓은 고도의 덫이라 하는 쪽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그러나 도무지 방법이 보이지 않으니까. 희망이 아니다. 어떤 현실의 구조에 기대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일탈에 의해 죄가 저질러지듯, 개인의 일탈에 기대어 구조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조강재를 함정에 빠뜨려 이태준을 적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몬다. 이태준을 잡으면 윤지숙까지 함께 잡을 수 있다.

참으로 암울하다. 정국현(김응수 분)과 신하경을 제외하고 신념과 양심을 지키려는 검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정부도, 검찰도, 언론도, 심지어 대중조차. 기댈 수 있는 곳이란 없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모두가 안다. 그런데도 이겨야 한다. 무엇이 이태준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냈는가? 이태준의 뒤에는 윤지숙이라는 더 화려하게 빛나는 괴물이 있다. 대중의 지지를 먹이삼아 덩치를 키우고 힘을 불린다. 저들은 모든 것을 지배한다.

죽음보다 더한 절망 속에서도 한 가닥 희망을 잡으려는 박정환의 발버둥이 처절하기만 하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에도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 김래원은 마지막 힘을 내려 한다. 겨우 잡은 마지막 희망이 그의 기대에 보답해 줄 수 있기를. 그리 시간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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