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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9.30 08:06

보스를 지켜라 "오로지 캐릭터만 있었던 드라마 없는 드라마..."

마지막까지 드라마는 없었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문득 제목을 보았다.

<보스를 지켜라!>

그래서 진짜 보스를 지키는 내용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고등학교 시절 전설로까지 불리웠던 날라리였다는 전력에, 더구나 무술의 고수인 아버지 노봉만(정규수 분)와 고등학교 시절 날라리 콤비였던 현역 프로레슬러 친구 이명란(하재숙 분)까지.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재벌 3세인 차지헌(지성 분)의 비서가 되어 노은설(최강희 분)이 제대로 한 바탕 활약하겠구나.

그러나 없었다. 설정은 그저 설정일 뿐. 어쩐지 차지헌의 라이벌로써 악역이 어울려 보였던 차무원(김재중 분)은 그저 능력있는 사람 좋은 사촌형제로 그려지고 있을 뿐이었고, 차지헌을 짝사랑하며 노은설을 곤란에 빠뜨리려는가 싶었던 서나윤(왕지혜 분)은 지나칠 정도로 순수하고 솔직한 마음 좋은 친구였으며, 심지어 끝까지 차봉만 회장(박영규 분)과 차지헌은 곤란에 빠뜨리려 일을 꾸미던 신숙희(차화연 분)마저 그저 조금 욕심이 많을 뿐인 철없는 아줌마로 그려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악역다운 악역이라면 서나윤의 엄마 황관장(김청 분) 정도인데 그녀조차 사실 그렇게 심각하게 일을 꾸민 적이 없었다. 한 마디로 제목은 <보스를 지켜라>인데 정작 드라마에서 노은설이 차지헌을 지킬 일이란 거의 없었다.

결국 그래서 그동안 드라마가 보여준 것이라고는 차지헌과 차무원, 노은설, 서나윤의 사각관계였을 것이다. 하긴 그조차도 처음에나 조금 얽히고 엇갈렸지 이내 교통정리도 빨리 되어 차지헌과 노은설의 관계가 확정되며 차무원과 서나윤만 남은 상태에서 이미 결론은 나와 있었다. 사소한 사건들은 단지 그들의 사랑놀음을 위한 계기였을 뿐. 그렇다고 과연 차지헌과 차무원이 드라마에서 묘사된 것과 같이 유능한 젊은 경영인이었는가? 본 적이 없으니.

그래서 말한 것이다. 이 드라마에는 사건이 없다. 비극이 없다. 위기가 닥치고 사건이 일어나고 해야 차지헌도 공황장애로부터 벗어나 자기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생긴다. 누구도 알지 못하던 능력을 발휘하며 조금씩 세상으로부터 - 무엇보다 시청자로부터 인정받아간다. 그랬다면 엔딩이 납득이 되었을 것이다. 차지헌아 사정이 있어 그리 한심한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 원래 능력은 있는 친구였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이 4.2개월이 모든 것을 결정지었다. 그리고 처음 제목 그대로 차지헌을 지키는 보호자인 양 보이던 노은설은 어느새 차지헌과의 사랑에 울고 웃으며 안달하는 청순가련한 멜로의 여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도대체 그녀가 전직날라리였고, 무술가인 아버지와 프로레슬러인 친구를 가진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현실과 픽션이 다른 부분이다. 픽션에는 우연이란 없다. 모든 것이 필연이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캐릭터의 프로필만으로도 대충의 드라마의 내용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인물이 등장한다면 아마 이런 내용이겠구나. 등장인물에 대해 어떠한 프로필이 적혀 있다면 그 프로필은 드라마 안에서 유의미하게 쓰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과연 이번 9월 29일 18회 마지막 장면에서 노은설과 관련한 그와 같은 설정들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오죽하면 그래도 마지막회라고 차지헌과 노은설의 열애사실이 밝혀지고, 노은설의 과거까지 시쳇말로 털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작은 긴장감조차 생기지 않고 있겠는가 말이다. 차지헌의 아버지 차봉만이 결혼을 반대하고 있다. 그래서 그것을 설득하는 방법이 마냥 쫓아다니기. 그나마 사우나 가서 등을 밀어주겠다던 차지헌의 설득은 의미가 있었다. 여행도 가고, 데이트도 하고, 맛없는 음식도 맛있게 먹어주고, 평범한 부자관계에 하는 그런 일들을 차지헌은 결혼승락에 대한 반대급부로 내세운다. 이제껏 차지헌에 대한 부성을 강조해 온 차봉만의 캐릭터에 있어 그것은 바로 급소를 찌르고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것도 사건은 아니지 않은가.

그야말로 캐릭터가 전부인 드라마라고나 할까? 애초 의도는 어땠는가 모르겠다. <보스를 지켜라>라는 제목을 정했을 때도 과연 지금과 같은 내용을 염두에 둔 것인지. 그러나 결과적으로 차봉만과 서나윤 등 화제가 되었던 인기캐릭터를 중심으로 딱 욕 먹지 않을 만큼만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었다. 사건같은 사건도 없이, 위기같은 위기도 없이, 반전같은 반전도 없이. 캐릭터의 재롱이 유일한 사건이고 위기이고 반전이고 결론이라고나 할까? 마지막까지 차무원은 그래서 요리까지 잘하는 서나윤의 말에 따르면 '출구가 없는' 매력을 과시한다.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끝은 미약하다. 용두사미일까? 어쩌면 이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자극성없는 무공해한 내용은 좋았다. 그러나 그렇다기에도 마지막에 급하게 신숙희와 황관장을 검찰의 수사를 받고 사회봉사를 하게 하는 장면은 무리수였다. 그래도 권선징악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그런데 왜 감옥이 아닌 사회봉사였을까? 나름의 비판이고 냉소이기도 하겠지만 역시 뱀발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자극적인 드라마가 넘쳐나는 시대에 이런 무공해 드라마가 하나쯤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드라마로서의 재미는 차지하더라도. 캐릭터의 매력을 제외하고 과연 어떤 드라마가 드라마 안에 있었는가. 무엇을 보았은지조차 이제는 기억이 가물하다. 캐릭터는 기억이 남는데 과연 어떤 드라마가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글쎄... 거의 단막극을 본 듯 기억도 짧다.

물론 재미있었다. 재미있게 보았다. 마지막의 허무함과 허탈함을 제외한다면 캐릭터들은 분명 무척 매력있고 재미있는 캐릭터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여서는 드라마가 미안한 것이다.

아쉽게 보았다. 마지막이 특히 가장 아쉬웠다. 사족같이 길기만 한 마무리도. 조금 더 깔끔하고 산뜻했으면 좋았을 텐데. 제목이 아깝다. 기대가 아깝다. 아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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