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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 "혁명가 계백, 드라마에도 휴식이 필요하다!"

역사속의 계백이 평범한 드라마의 계백으로 전락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도대체 의도를 알 수가 없다. 도대체 작가는 계백(이서진 분)이라고 하는 역사상의 인물에게 어떤 짐을 지우고 싶은 것일까? 계백이라고 하는 인물을 통해 어떤 짐을 지우고 어떤 이야기를 대중들에 들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백성을 위해 수많은 사병을 거느린 토착귀족과 왕명까지 거스르며 맞서 싸우고, 사곡성의 천 명이 넘는 신라군에 대해 20명 남짓한 병력으로 백성들을 지키겠노라 싸움을 준비한다. 그러다가 결국 토착귀족의 반격에 위험에 처했을 때 그를 구한 것은 어느새 그에 감화된 의붓형 문근(김현성 분)과 거열성의 백성들. 그는 그 순간 혁명의 영웅이 되어 있었다.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다. 도대체 드라마상의 혁명가 계백과 역사속의 실존인물 계백과의 사이에는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가? 왕명을 받들어 질 것이 뻔한 싸움을 가족까지 모두 죽이고 출정하여 열 배가 넘는 신라군을 맞아 황산벌에서 마지막까지 물러서지 않고 싸우다 결사대와 더불어 죽음을 맞고 말았다. 그는 충절과 의기의 상징이지 애민과 위민의 상징은 아니었던 것이다. 차라리 백성을 지키기 위해 질 것이 뻔한 싸움에 백성이 더 이상 희생되지 않도록 의자왕을 잡아 나당연합군과 협상하려 했다면 그쪽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국 계백은 왕조를 지키려다 죽고 마는 인물 아니던가.

하긴 그나마 혁명을 꿈꾸는 것 같던 흥수(김유석 분)마저 어느새 왕조에 편입되어 벼슬을 하며 왕조의 논리대로 사고하며 행동하고 있다. 그 시대의 한계였을 것이다. 백성을 위한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그 시대의 지배계급의 논리 안에서 그나마 최대한 백성을 위하는 것이다. 그것을 넘어서면 그것이 바로 혁명이 된다. 흥수나 성충(전노민 분)조차 혁명을 꿈꾸고 있지는 않다. 다만 그렇다면 굳이 그런 장면을 계백에 대해 길게 집어넣을 이유가 무엇이 있는가.

결국은 뱀발이다. 한 마디로 어느새 닌자가 되어 버린 계백의 모습과 같은 것이다. 계백은 영웅이다. 영웅이니까 이 쯤은 해야 한다. 싸움도 잘 해야 하고, 계략도 잘 세워야 하고, 그리고 필요하다면 단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어도 닌자가 되어야 한다. 생구로 있으면서 병법을 따로 배운 적도 없음에도 전략 세우는 것을 보라. 그런데 그런 영웅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역사상의 계백은 분명한 캐릭터와 의의를 가지고 있는데, 작가의 상상이 허구 속에서 그저 평범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영웅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드라마가 인기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결국 영웅을 타이틀로 삼은 드라마에서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영웅을 보기 위함일 것이다. 영웅을 보는 이유는 다름아닌 영웅의 영웅성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영웅성이란 영웅의 캐릭터를 말한다. 그의 선함이거나, 혹은 단호한 의지이거나, 공명정대함, 혹은 용맹무쌍함, 지고한 사랑. 그런데 아무것도 없이 거지 이것도 저것도 늘어놓아 영웅인 양 꾸미고 있을 뿐이다. 무슨 재미로 보겠는가. 과연 이 드라마를 보는 사람 가운데 실제 드라마 속의 영웅 "계백"을 보고자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 가장 큰 원흉이 다름아닌 작가 자신이었던 셈이다.

역사속의 인물을 소재로 삼았다면 실제의 기록이나 기억을 최대한 참고하여 그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재구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건만. 아니 원작이 있는 작품을 각색할 때도 원작의 느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그 범위를 지키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일 것이다. 그러나 시간에 쫓긴 것인지 무엇을 쓰고 있는 지조차도 모르고.

역사마저도 그래서 제멋대로다. 의자(조재현 분)가 정작 조카인 교기(진태현 분)를 제거한 것은 무왕(최종환 분)이 죽고 의자가 왕위에 오르고 난 즉위 2년의 일이었다. 아니 그 전에 무왕이 병이 들어 누웠을 때 사택왕후는 무왕을 위해 미륵사에 사리를 봉안하며 쾌유를 빌고 있기도 했었다. 무왕이 멀쩡히 사라있는데 사택왕후는 쫓겨나고 교기마저 제거되어 사라졌다. 하기는 엄연히 음갈문왕이라는 이름이 기록에 전하고 있음에도 선덕여왕을 두고 궁궐의 여인들은 외롭다는 말을 하고 있는 의자와 그 일행들이었다. 단지 자식이 없을 뿐이었다.

항상 말하는 이유다. 이 드라마는 단지 무협이다. 판타지다. 전혀 긴장이 되지 않는다. 전혀 안쓰럽지도 안타깝지도 않다. 등장인물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목청을 키워대는데, 그러나 정작 그것을 보고 있는 시청자의 감성은 그와 따로 논다. 허황되다. 차라리 이것이 완벽한 허구였다면 혁명가 계백이라도 꿈꾸어 보련만. 그러나 아님을 알기에 허무하기까지 하다. 지금의 내용들이 사실 크게 의미가 없음을 아는 까닭이다.

결국 군대에 가 있는 사이 인연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는 흔한 이야기들처럼, 그렇게 계백이 거열성으로 떠나 있는 사이 의자와 은고(송지효 분)의 관계가 꽤 분주하다. 연태연(한지우 분)의 질투도 한 몫 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다지 긴장이 느껴지지 않는 김춘추와의 만남과 대화는 역시 이 드라마의 한계일 것이다. 공허하다. 조재현이 연기를 못할 수도 있음을 드라마를 통해 처음 알았다. 한지우나 윤다훈(독개 역)이나 연기가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

차라리 몇 주 쉬더라도 대본에 보다 완성도를 기울였으면. 어차피 이렇게 도니 것 두어 주 특별편으로 내보내고 이제까지 흐트러진 내용들을 추스르는 편이 나머지를 위해서도 나을 것이다. 힘이 떨어졌다. 앞으로 무엇으로 이야기를 끌어갈 것인가. 그나마 계백이 실연당하고 의자와 갈등을 빚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나 재미있을까? 유일한 기대지만 그러나 사실 크게 기대되지는 않는다.

한계를 느끼게 된다. 휴식이 필요하다. 배우나 작가나 제작진이나. 밀어붙여서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을 절감한다. 이대로는 힘들다. 계기가 필요하다. 이제까지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바로잡고 새로 힘을 가지고 시작할 계기가. 충전의 시간이다. 안타까운 드라마일 것이다. 항상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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