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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 "드디어 시작되려는 계백의 시련, 그러나 산만한 뱀발이 아쉽다."
여유없이 쓰는 시나리오가 문제일 것이다.
2011년 09월 27일 (화) 0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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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석 기자 azzasi@stardailynews.co.kr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영웅이란 시련을 통해 드러나는 존재일 것이다. 물론 아무런 별다른 어려움 없이 그 자리에 올라 하고자 하는 일을 순탄히 해내는 경우도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개 그 어떤 어려움도 굴곡도 없다고 하는 것은 그다지 그 한 일이 대단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영웅이 시련을 겪는 이유는 대략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한 가지는 굳은 의지이고, 다른 한 가지는 원대한 포부다. 영웅의 위대함은 시련으로부터 그것들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시련에도 굽히지 않고 용감히 맞서는 강한 의지와 그를 통해 세상의 부조리한 모순들에 맞서 올바른 뜻을 이 땅에 이루려는 그 큰 이상이 사람들로 하여금 영웅을 숭배케 만드는 것이다. 영웅과 함께 그 끝을 보고 싶다.

과연 계백(이서진 분)은 영웅이었는가? 그가 영웅인 이유는 신라의 5만 대군에 맞서 5천의 결사대로 몇 번이나 싸워 적을 격퇴하며 백제를 지켜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끝내 병력의 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패하여 죽고 말았지만, 신라의 공격이라는 시련 앞에 두려워하지 않고 가족마저 자기 손으로 죽여가며 백제를 지키겠노라는 자신의 목표를 관철한 그 의지가 그를 영웅이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드라마에서의 계백은 어떠한가?

말했듯 계백에게는 이렇다 할 시련이라 할 만한 것이 없었다. 딱 아버지 무진이 죽고 신라의 생구로 끌려가는 것까지가 전부였다. 가잠성에서 의자(조재현 분)를 만나 백제로 돌아온 이후 계백에게는 심지어 백제의 국정을 좌지우지하던 사택씨와 사택왕후마저 적이자 목표는 될 수 있을지언정 시련은 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에게는 품은 이상이나 꿈이 있는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단지 의자와 성충(전노민 분), 흥수(김유석 분)에 편승하는 것일 뿐, 실제 그의 목표는 은고(송지효 분)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절실한가면...

그래서 사실 이번 9월 26일 <계백> 19회를 보면서는 어느 정도 기대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단 의자가 계백에게 거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계기는 아버지 무왕(최종환 분)의 말이었지만 결국 그의 내면에 있던 계백에 대한 꺼림칙함이 사택왕후라는 강대한 적이 사라지고 어느새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자 고개를 치켜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계백의 아버지 무진을 죽였고, 계백은 그 광경을 낱낱이 보고 있었다.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 계백이란 그가 부정하고 싶은 그의 죄의 증거이며 그의 죄를 단죄하여 응징할 수 있는 당사자이며 주체일 것이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도 자신의 죄를 정면으로 직시하며 그 댓가를 순순히 기다리려는 사람은 없다. 더구나 왕이란 누구보다도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이들만이 앉을 수 있는 자리다. 자신이 천하를 배반하더라도 천하가 자신을 배반해서는 안 된다. 단지 배반할 가능성이 있다는 한 가지만으로도 얼마든지 계백을 버릴 수 있다. 아직은 무왕이 왕이지만 의자도 곧 왕이 될 것이다.

여기에 계백이 사랑하고 있는 은고에 대한 의자의 감정이 심상치 않다. 아직까지는 나름대로 계백을 생각해서 자제하고는 있지만 그러나 계백에게 느끼는 거리감만큼이나 그것도 언젠가는 한계가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은고는 사택왕후가 경고한대로 야심이 강한 여성이다. 벌써 도시부 장사라는 관직이 주어지자 계백을 따라가겠노라 한 것을 바로 입장을 바꾸고 있지 않던가. 하기는 은고처럼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많은 여성에게 자기만을 보고 따라와 달라 말하는 계백이 경우없고 이기적인 것일 수 있다. 그냥 그는 단지 순진할 뿐이다.

장차 왕이 될 의자와는 갈수록 거리가 멀어질 테고, 사랑하던 은고는 언제 그를 떠날 지 모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백은 여전히 의자에게 형제의 의리를 느끼고, 은고에 대한 사랑도 포기하지 못할 것이다. 비로소 시련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 원인은 역시 자신이 먼저 사람을 배반하지 않으려는 그의 올곧음과 순수함 때문일 것이다. 시련과 역경에도 그것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것이 그에게 고통이 되고 위기가 되고 시련이 된다. 그는 과연 영웅이 될 수 있을까?

다만 그럼에도 역시나 <계백>일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은 뜬금없이 거열성의 군장이 되어 부임한 계백의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치 현대의 재개발현장을 보는 듯 떠나지 않으려는 원주민과 그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려는 토호, 그리고 그 사이에서 완전히 그 역할을 포기하고 있는 관병까지. 하필 거기서 '토지보상'이라는 단어가 나올 게 무언가 말이다. 원래 변경 가운데 지키기 곤란한 지역이 있으면 백성을 소개시켜 노동력과 생산수단인 토지를 적이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당연할 텐데도 오히려 병사도 없는데 성을 지키겠다고 나서는 계백도 계백이었다.

과연 당장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땅을 포기하지 못해서 떠나지 못하는 백성이란 얼마나 되겠는가 말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병사들만 죽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근대 이전 어떤 정부도 장교나 병사들에게 충분한 댓가를 지불하지 못하고 있었다. 장교나 병사들이 전쟁에 참가하여 목숨을 걸고 싸운 댓가를 챙기려면 각자가 알아서 점령지의 백성들에게서 챙기면 되었다. 그것이 약탈이다. 아주 최근까지도 약탈이란 승자의 당연한 권리로 여겨졌으며, 얼마나 훌륭한 약탈지를 제공하는가가 지휘관의 능력으로 여겨질 정도로 일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바로 떠나기를 거부하는 백성들의 재산과 아내와 딸이 그 대상인 것이다. 그 소중한 토지도 약탈자들에 의해 황폐화되고 말 것이다. 약탈을 사정 보아가며 하는 경우란 거의 없다. 그래도 떠나지 않으려는가?

아니 설사 그럼에도 떠나지 않겠다 하면 어쩌겠는가? 더 이상 지키려 병사를 보낼 여력도 그럴만한 필요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미 거열성을 지키고 있던 것은 토착귀족의 사병이었다. 차라리 그렇게 백성을 지키고 싶었다면 신라의 장수와 협상을 통해 백성의 안전을 도모하던가. 그도 아니면 백성들을 보호하며 후방으로 물러나던가. 병사도 없는데 결과가 어떻게 나올 줄 알고 무모하게 신라군을 자극하여 싸움을 일으키는가. 거기에는 어떤 당위가 있을까?

그저 섣부른 개인의 감상에 불과하다. 마무런 계획도 신념도 없는. 당장의 신라군을 무찌르면 어쩌려는가? 더 강한 신라군이 쳐들어오면? 그래서 백제 조정에서 거열성으로 병력을 보내게 되더라도 그것은 조정차원에서의 전략을 수정케 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거열성 하나 지키자고 국가적인 전략마저 희생시켜야 하는가? 그래서 과연 계백은 거열성의 백성들을 손상없이 무사히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이름도 알지 못하는 신라의 장수 흠순에 대해서도 너무 자신감이 넘친다.

결국 급조된 시나리오인 때문이다. 너무 급하게 썼다. 별다른 계획없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목표 없이. 그래서 계백의 정의감 넘치는 목소리마저 그저 공허하게만 들릴 뿐이다. 의자가 계백을 멀리하게 딘 이유가 단지 계백의 아버지 무진을 자기 손으로 죽여서가 아니라, 계백의 감상적이고 성급한 충동적인 행동이 거슬려서는 아닐까. 은고도 그래서 그를 버렸다.

사실 불필요한 장면이었다. 단지 지방으로 보내 거기에서 한가롭게 시간만 보내도 되었다. 오히려 그 쪽이 이야기의 중심을 흐트리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있었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의자와 은고였으니까. 사비성에서 의자와 은고의 관계가 진전되는 사이 계백은 단지 멀리 떠나만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더 깔끔하게 처리하는 대신 더 풍부하게 내용을 채워 넣었으면 좋았으련만. 이제는 성충과 흥수의 입담마저 그 비중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중심을 명확히 해야 한다. 지금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언가. 무엇을 들려주고자 하는가. 무엇을 예정하고 있는가. 뱀발을 아무리 잘 그려봐야 그것은 뱀발에 불과하다. 잘 나가다가 엉뚱한 부분에서 그대로 한계를 드러내 보이고 말았다. 없어도 되는 건 없는 게 좋다. 하지만 그럼에도 비로소 계백을 위한 시련이 준비된 점은 드디어 드라마가 시작되려 한다는 좋은 조짐이엇을 것이다.

항상 한 가지씩이 모자른다. 지식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감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야기를 벌리고 그것을 다듬고 마무리짓는 디테일이 부족하다. 결국은 시간이 부족하다. 타당성과는 상관없이 일단 벌리고 나서는 수습해야 한다. 그게 문제였을 것이다. 한숨만 깊게 쉬고 만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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