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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9.26 07:35

남자의 자격 "잃어버린 '남자의 자격'을 찾습니다!"

시청자도 출연자도 제작진도 없이 먼 표류를 하고 있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며칠전이다. 우연히 지인과 커피나 한 잔 하자며 자판기로 이동하던 도중 그런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어? 담배?"
"커피를 마셔줬으면 담배는 피워주어야지."
"커피를 마시면 담배가 당기나?"

필자는 원래 담배를 피지 않는다. 그래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심리를 사실 잘 모른다. 그런 점에서 <남자의 자격> 두 번 째 미션이었던 금연미션에서 나온 흡연자의 심리란 매우 신기한 것이었다. 그리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공감가는 것이었다.

마침 지인 역시 <남자의 자격>을 즐겨 보아 오던 이이기에. 다만 최근 들어 <남자의 자격>을 더 이상 보지 않게 된 것 같았다. 어딘가 예전과 같은 재미가 없다. 이렇게 담배 하나 가지고도 몇 년 째 이야기거리를 만들어주던 <남자의 자격>이었는데.

'육아'편에서 생전 처음 아이들을 돌보느라 한순간에 녹초가 되어 버리는 남자의 모습들이 바로 자신의 모습이었으며, '신입사원'편에서는 막 사회에 첫발을 딛던 젊은 시절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마라톤 하프코스를 완주하던 이윤석과 이경규의 모습에서는 참을 수 없는 감동을 느끼고 있었다. 다시 대학생이 되어 보기도 하고, 밴드를 해 보기도 하고, 생전 처음 아이돌 공연장도 찾아 보고, 아내를 위한 선물도 직접 골라 본다. 어느 정도 살아온 것도 있으니 신사가 되어 품위있는 삶을 누려보기도 하고, 얼마전 '배낭여행'은 나 또한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보고 싶다는 충동을 가지게 해 주었다.

결국 내 이야기였다. 남자들에게 그것은 모두 자기 자신의 이야기였다. 여성 시청자들에게는 그것이 남편이며, 남자친구이며, 아버지이며, 남자형제였을 것이다. 미처 이루지 못한 꿈들. 미처 돌아보지 못한 가까운 이야기들. 지나온 기억들. 그러면서 제목처럼 '죽기 전에 반드시 이루어야 할 101'가지를 하나하나 쌓아가고 있었다. 그것을 따라가는 재미가 있었다. 이것은 내 이야기다. 이경규와 김국진, 김태원, 이윤석, 윤형빈, 김성민과 이정진이 하차하고 이제는 양준혁과 전현무. 그들은 어쩌면 나 자신이었을 것이다.

처음 '청춘합창단'편이 방송되기 시작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러한 기본적인 신뢰에는 크게 변화가 없었다. '청춘합창단' 오디션에 응모한 이들 역시 나 자신의 부모이고 형제이고 아내이고 혹은 자기 자신이었을 터이므로. 그들의 노래에 감동하고, 그들의 사연에 감탄하고, 그러면서 <남자의 자격>에 젖어들고 있었다. 비록 두 번째 합창단이고, 그로 인해 여러 가지 <남자의 자격>만의 스케줄이나 정체성에 혼란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것도 <남자의 자격>이다. 정작 <남자의 자격> 멤버들이 구경꾼으로 전락했어도 그것이 남자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이건 도저히 아니었다. 군부대라니. 다른 곳도 아닌 그것도 신병훈련소라니. 필자가 예능에서 군부대 나오면 바로 채널을 돌려 버리는 이유가 있다. 그 의도가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나올 수 없다. 군부대의 보수성과 경직성, 그리고 방송국이 요구하는 바가 일치했을 때 나오는 그림이란 모든 예능이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90년대 한창 인기를 모았던 군위문프로그램 '우정의 무대'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걸그룹이 주인공이던 <청춘불패> 시절에도 예외일 수 없었다. <남자의 자격> 초창기 해병대를 찾았을 때도 그때 보여졌던 그림은 '배달의 기수'에서 시간만 21세기로 바꿔놓았을 뿐이었다.

결국은 장병들을 이용하려는 것 아닌가. 적당히 감동을 쥐어짤만한 상황을 만들고, 그러면서 그에 어울리는 타겟을 찾아 카메라에 담고.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한결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단지 차이라면 이번의 경우는 '청춘합창단' 단원들 면면이 장병들의 부모이며 할머니들이라는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을 굳이 <남자의 자격>을 통해 보아야 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더구나 레파토리마저 지난주 '소년원'을 찾았을 때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고 있다. 동어반복이었다.

더 기분이 안 좋은 것은 '청춘합창단'이란 다름아닌 합창대회를 위해 <남자의 자격> 프로그램 차원에서 조직된 합창단이라는 것이다. 합창대회를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 있어야 하는데, 아니 공연을 다니는 것은 좋다. 그것을 <남자의 자격>이라는 프로그램을 위해, 그것도 이와 같은 진부한 컨셉을 위해 이용하는 것은 또 뭐하자는 것인가. 뻔한 그림을 담기 위해 버스에 태워 논산을 찾고, 인터뷰를 하고,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그런 그림을 만들고. '청춘합창단' 단원들의 순수한 열정을 그런 식으로 소모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아닌가. 순간 신임 조성숙PD에 대한 신뢰가 회의로 바뀌고 말았다.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그리고는 뜬금없닌 폴 포츠의 출연. 그나마 <남자의 자격>의 원래 멤버들이 '청춘합창단'을 위해 들러리로 전락해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아무리 세계적인 유명인사라지만 '청춘합창단' 자신이 폴 포츠를 위한 들러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도대체 나머지 20분 넘는 시간 동안 본 것이란 폴 포츠와 그리고 그 폴포츠를 유명인 바라보듯 구경하고 있는 '청춘합창단' 멤버들이었다. 결국은 신병훈련소 공연에서 역시 '청춘합창단'은 주인공이 아니었다고 하는 방증이었을 것이다. 주인공은 공연을 관람하는 신병들이었고, 그들의 눈물을 담던 카메라였을 것이다. 그리고 폴 포츠가 등장하고 나서는 폴 포츠의 화제성에 기대려는 제작진만 보였다. 그래서 폴 포츠가 출연하고 나서 남은 것은 무엇이던가?

그렇다고 제작진이 마냥 생각이 없기만 한가? 이만덕씨, 김성록씨, 이원배씨,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안되겠다며 채널을 돌리려 할 때 '청춘합창단'의 나름대로 화제성 높은 일반인 참가자들의 일상이 나의 눈을 사로잡고 있었다. 작년 간과 신장을 이식하는 큰 수술을 받고 여전히 통원치료중이라는 이만덕씨의 첫손자의 모습이라든가, 김성록씨가 벌을 치는 모습과 이원배씨의 딸로부터 MP3를 조작하는 방법을 배워 걷거나 운전하는 도중에도 노래를 외우며 노력하는 모습들. 차라리 그런 장면이 더 들어가 있었다면.

누가 주인공인가를 잊고 있는 모양이다. 누가 프로그램의 주인인가. 프로그램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시청자들이다. <남자의 자격> 초창기 채 5%도 안 되는 시청률에도 그것이 자기의 이야기이기에 TV앞을 지켰던 열성시청자들. 그리고 그러한 시청자 자신이었던 원래의 멤버들. '청춘합창단'에서는 '청춘합창단' 자신이 주인공이어야 했을 것이다. 지난주의 '소년원' 방문은 워낙 뜻밖의 사건이었으니 '청춘합창단'의 서프라이즈일 수 있었을 테지만, 그러나 군부대방문은 너무 흔힌 소재라 그 자체에 '청춘합창단'이 삼켜지고 말았다. 만일 군부대방문조차 '청춘합창단'의 위문공연이 될 수 있었다면 필자의 감상도 조금은 달라졌으리라. 더구나 막판의 거의 20분이 넘는 시간을 할애한 폴 포츠 특집은 대단한 무례였다. 과연 <남자의 자격>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은 폴 포츠를 보기 위해 그 순간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까?

이경규 자신도 그리 말한 바 있었다. 사람들이 식당에서 고등어를 주문하는 것은 고등어의 맛을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고등어에서 불고기의 맛이 난다면 누가 고등어를... 하기는 불고기맛이 나는 고등어도 신선하기는 하겠다. 그렇더라도 고등어를 먹고자 하는 사람에게 불고기맛이 나는 고등어는 그다지 매력이 없는 것이다.

도대체 나는 무슨 이유로 <남자의 자격>을 보기 시작했는가? 어떤 이유로 일요일이면 약속조차 조정해가며 <남자의 자격>시간대를 꼬박꼬박 지키며 TV앞에 앉아 있는 것인가 말이다. 이제는 '청춘합창단'이라는 자체에 대해서마저 회의적이 되고 말았다. 나는 '청춘합창단'을 보기 위해 <남자의 자격>을 보고 있는 것인가.

주의해야 할 시점이다. '청춘합창단'에 이끌려 잠시 프로그램에 채널을 고정하고 있는 사람들은 '청춘합창단'이 끝나면 바로 떠나갈 사람들이다. '청춘합창단'이 시작하기 전부터도, '청춘합창단'이 끝나고 난 뒤에도 프로그램을 지키고 있을 것은 기존의 시청자들이었을 터다. 과연 <남자의 자격>은 그러한 시청자들에 대해 충실하고 있는가.

귀농에 대한 이야기도 했었다. 그 사람 고향도 전라도 어디라 그 이야기를 하는데 얼굴이 참 행복해 보였다. 호주편에 대해서도 자기도 언제고 그리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며 마지막회 잠깐 출연한 낙타여행자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예능이란 무엇인가. 즐거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과연 즐거운가. 그동안 <남자의 자격>을 통해 누리던 소소한 즐거움들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가.

이제는 과거 <남자의 자격>이 어떠했는가에 대한 기억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남자의 자격>이란 어떤 프로그램이었던가? 이경규와 김국진, 김태원, 이윤석, 윤형빈, 그나마 양준혁과 전현무는 캐릭터조차 잡혀 있지 않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가. 원래는 그들이 주인공이었을 터였다.

이렇게까지 <남자의 자격>에 화가 나고 실망스럽기도 처음이었다. 그만큼 애정하던 프로그램이었다. 마음을 달래여 한다. 멀어지는 신뢰를 다잡으며. 다음주가 합창대회일 테지? 이제 한 주만 지나면 된다고 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유일한 희망이다. 그때쯤에는 원래의 <남자의 자격>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원래의 작은 나의 이야기들을 보며 즐길 수 있을까? 바람일 테지만.

작년 '하모니'편이 끝났을 때 당시 신원호PD는 초심편을 통해 자신과 시청자를 다독이고 있었다. 현명한 선택을 기대한다. 시간은 많지 않다. 인내심이 그다지 강하지 못하다. 최악이었다.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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