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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9.21 07:42

포세이돈 "경찰 안에 도사리고 있는 거대한 악의 흑막, 전쟁이 시작되다!

성급하지만 벌써부터 기대를 갖게 된다!

 
어렸을 적 무척 충격과 공포 속에 보았던 무협영화가 한 편 있다. 제목만 기억난다. <차수>. 아마 오래된 무협영화팬이라면 아련한 기억 속에 떠올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황금탈과 강차,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선한 얼굴을 하고 있는 어둠의 흑막. 형제들은 하나하나 죽어가고, 마침내 드러난 흉수는 정작 그들이 신세지고 있던 장원의 명망 높은 장주였다.

가장 큰 적은 가장 가까이에 있다. 가장 악한 존재는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선량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것은 전통적인 공동체가 해체되며 낯선 얼굴들과 공존하게 된 이래 인류가 가져 온 근본적 공포였다. 어느날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얼굴이 전혀 낯선 얼굴로 바뀌었을 때.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낯선 얼굴이었다. 단지 기억에 의해 익숙해져 있었을 뿐. 그런데 그것이 거짓이라면? 그렇다고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미지가 의심을 낳고, 의심이 공포를 낳는다.

법과 정의를 지키는 경찰이다. 범죄와 맞서 싸우며 이 사회를 범죄로 인한 비탄과 혼란으로부터 지켜내는 첨병이 바로 경찰이라는 조직일 것이다. 그런데 그 경찰 내부에 거대한 흑막이 있다. 단순히 범죄조직과 내통하는 수준이 아니다. 철저히 경찰을 농락하며 경찰과 경찰의 가족마저 무참히 살해하는 잔인하고 흉폭하며 교활한 거대한 적이다. 국제단위로 노는 거대한 악의 뿌리가 경찰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누구일까? 심지어 김선우(최시원 분)가 개인적으로 꾸민 계략마저 간파하여 정덕수(김준배 분)에게 전한 그 당사자는. 의혹은 불길한 예감이 되어 짓눌러 온다. 과연 누구인가?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마저. 

아마 이야기의 공식상 이제까지 출연한 인물들 가운데 그 범인이 있을 것이다. 말했듯 범인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다. 바로 가까이에 웃고 떠들던 인물 가운데 누군가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순간 쭈뼛한 공포로 다가온다. 더불어 태연히 이제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어울리던 사이임에도 어느새 냉혹하게 돌아설 수 있다는 점에서 본능적인 불쾌감과 증오를 자극한다. 드라마는 어쩌면 그 보이지 않는 적과의 치열한 심리적이 되지 않을까? 벌써부터 정덕수의 탈옥과 강은철의 실종으로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한다. 강은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수사9과는 그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이며 암중의 흑막 최희곤은 어떤 식으로 경찰들을 다시 한 번 농락할 것인가?

말했듯 수사9과란 외인부대다. 일탈자들의 죄수부대다. 그들은 경찰이라는 조직의 주변에서 경찰의 논리를 벗어나 최희곤을 쫓고 있다. 최희곤에 대한 증오를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아웃사이더의 야수들과 악으로 무장한 최희곤과 그 하수인들의 싸움이다. 정제된 폭력의 해경특공대와 정제되지 않은 증오와 분노의 수사9과, 그리고 경찰조직 내에 숨어 있는 최희곤이라는 악의 실체. 아직까지는 이제 막 생겨난 수사9과의 열세일 것이다. 최희곤은 이미 경찰이 잡아 놓은 정덕수를 탈출시키고 경찰병원에서 강은철을 빼돌릴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다.

적이 강할수록 전의는 높아진다. 적이 잔인하고 흉폭할수록 그 분노는 당위를 갖는다. 좌절한다고 꺾이지 않으며, 절망한다고 주저앉지 않고, 오히려 상처를 상대에 대한 적의로 바꾼다. 약하고 작을수록, 그래서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적이 강하고 이쪽이 약할 때, 그래서 더욱 약하고 작은 수많은 소시민들은 그들을 응원하게 된다. 그들에 자신을 투영하며, 자신이 끝내 이기지 못한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들을, 악을 무찌르는 꿈을 꾸게 된다. 함께 아파하고, 함께 슬퍼하며, 그리고 함께 거대한 악을 무찌르는 희열을 느끼게 된다. 골이 깊으면 산이 높고, 봉우리가 높으면 반대로 골이 깊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어지고, 어둠이 짙을수록 작은 빛은 더 밝아진다.

올초 방영한 <강력반>과 크게 차별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강력반>에서도 분명 흑막은 있었다. 그러나 모호했고, 그리고 소소했다. 진정 악이라 부를 정도로 악하지도 못했고, 감히 거역하지 못할 정도로 강하지고 거대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단지 비열했으며 교활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진짜 흑막이었다. 살이 떨리도록 두려운. 그 실체를 알 수 없어 더 공포스러운. 그 잔인함과 흉폭함은 경찰이라는 조직조차 안전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다.

다만 문제라면 공중파드라마라는 특성상 과연 어느 정도 수위까지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최소한 주요인물 가운데 몇 명은 필연적으로 희생되어야 한다.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악이 갖는 잔인함과 흉폭함을 드러내면서 또한 그 악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더욱 키울 수 있도록. 강한 비감은 더욱 강한 극적 긴장과 재미를 불러일으키며 시청자를 TV 앞에, 자기 일처럼 분노하고 원망하고 증오하며 그들의 활약에 집중토록 할 것이다. 자칫 출연자에 대한 애정으로 죽여야 할 대상을 죽이지 못했을 경우 드라마는 자칫 허공에 떠 버릴지도 모른다. 어디서 균형점을 찾아야 할 것인가. 아마 그에 대한 고민도 충분히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그같은 높은 강도의 긴장과 더불어 어이없을 정도로 허술한 김선우와 이수윤(이시영 분)의 로맨스를 통해 탈출구를 만들어 놓는다. 터무니 없이 가볍고 여자를 밝히면서도 정작 무모하게도 혼자서 정덕수와 접촉하기 위해 지명수배를 받도록 계략을 꾸미기도 하는 김선우의 이중성과 아직까지 세상이 밝은 빛으로만 보이는 아가씨 이수윤과의 관계는 드라마처럼 아이러니한 조화를 이룬다. 위화감이 느껴질 정도로 어느새 밝고 달달한 냄새까지 풍기고 있다. 세상은 어둠이 있는가 하면 이같은 밝은 빛도 있다.

항상 긴장만 하고 있어서는 쉽게 지친다. 어떻게 얼마나 긴장케 하고, 그것을 또 어떻게 효과적으로 풀어주는가. 수사 9과의 책임자인 권정률(이성재 분)을 제외하고 나머지 멤버들이 하나같이 어딘가 빈틈이 느껴지는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그에 대한 고려가 느껴진다. 하다못해 오용갑만 하더라도 만년경사에, 물어보기만 하면 그에 대한 데이터를 줄줄 읊어대는 등 상당히 심상치 않은 느낌을 준다. 여자를 밝히는 오민혁(한정수 분)과 오로지 홍지아(김윤서 분)만을 짝사랑하는 순정남 이충식(정운택 분) 역시 마찬가지다. 왁자지껄한 가운데 그 유쾌한 모습들이 어느새 살기를 머금고 긴장하여 적을 쫓기 시작한다면 시청자가 느끼는 긴장과 흥분은 어떠할까?

딸과의 단란한 일상과 어느새 보고와 함께 출동하는 살벌한 범죄의 현장. 딸이 갈수록 아내를 닮아가는 것을 보며 자라는 딸이 한 편으로 대견하고 사랑스럽고, 한 편으로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 아내가 떠올라 괴롭다. 어느새 연민케 하는 권정률의 비극과 시청자를 흥분케 하는 그의 증오와 분노, 무엇보다 악을 쫓으려는 의지. 그리고 가족에 대한 애틋한 연민과 사랑. 무채색도 화려해질 수 있는 것은 그 대비가 무엇보다 강한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권정률은 극의 중심이고 김선우는 극의 선봉에 있다. 그저 행복할 수만 있어도 좋을 텐데. 지금도 일선에서 불철주야 고생하고 있는 수많은 경찰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감사의 말을 건넨다. 경찰의 드라마다.

어느새 추측을 하게 된다. 과연 누가 최희곤일가? 누가 정덕수에게 김선우에 대해 알려준 것일까? 아주 높은 자리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김선우의 행동패턴을 꿸 수 있을 정도로 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경찰병원에서 경찰을 빼돌린다는 게 보통 지위와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물론 최희곤으로서의 힘까지 더한다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닐 테지만. 몇 명으로 후보자를 압축하기는 했는데 작가는 다시 거기에 반전을 더할 것이다. 그조차도 기대된다. 어떤 트릭과 반전으로 필자를 놀라게 하고 당황케 할까? 감탄하게 만들까?

다시 일주일. 기다림이 고통스럽다는 것은 그 만큼 그 순간이 만족스러웠다는 뜻일 것이다. 폐차장에서 김선우와 강은철이 정덕수의 패거리와 싸우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더불어 김선우가 이수윤의 집 옥탑방에 하숙을 하기 시작하며 벌어진 소소한 헤프닝은 전형적이지만 긴장을 풀고 웃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밀고 당기며 쥐었다 폈다. 잘 놀았다. 재미만 있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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