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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9.18 09:52

내사랑 내곁에 "배정자는 통쾌한 웃음을 위해 악역이 되었나 보다!"

악역과 어릿광대, 그리고 비극, 이휘향의 존재를 깨닫는다!

 
배정자(이휘향 분)가 드라마 <내사랑 내곁에>에서 맡고 있는 롤은 매우 독특하다. 그리고 아주 중요하다. 모든 사건을 주도하는 악역이면서, 또한 웃음을 책임지는 어릿광대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말썽꾸러기 개구장이의 롤이라고나 할까?

실제 모든 일이 자기 뜻대로 돌아가지 않자 배정자는 갑자기 떼쓰는 어린아이가 되어 남편 고진택(김일우 분)에게 이민을 가자며 조르기 시작한다. 어설프게 저지른 일이 마침내 들통날 위기에 처하자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단지 도망치는 것 뿐. 그것도 자기 자신의 의지가 아닌 누군가에 의해 그에 기대어 도망치는 것이다.

그녀의 악의란 그렇게 순수하다. 어쩌면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는 모든 등장인물 가운데 봉영웅 다음으로 순수할 것이다. 너무 순수해서 욕심을 다스리지 못한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주위는 아랑곳없이 그대로 울음을 터뜨리며 떼를 쓰는 아이마냥 그녀는 그렇게 순수하게 자신의 욕망에 솔직할 뿐이다. 그리고 순진하도록 어리석어서 단지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자기 것이라 착각하고 만다.

어른이 되어야 할 순간 그녀의 주위에 어른이 없었던 때문이었다. 영장류는 본능이 아닌 학습을 통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그것을 사회화라 한다. 그렇게 사회화를 마치고 사회에 어울리는 구성원으로써으 인간으로 성장했을 때 그를 두고 어른이라 부른다. 그런데 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보고 따라해야 할 롤모델로써의 어른이 배정자에게는 없었다. 그보다는 항상 술에 취해 자신을 때리는 증오스런 누군가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원래는 너무나 당연한 배설의 욕구마저 훈련을 통해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되어야 했을 터다. 그러나 가지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그 가지고 싶은 욕구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정히 가지고 싶아면 그것을 어떻게 손에 넣어야 하는지. 손에 넣게 된다면 그것을 어찌할 것인지. 무엇보다 단지 가지고 싶다고 그것에 함부로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최소한의 도덕적 판단조차 누구도 그녀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물론 아주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닐 테지만, 체화되지 않은 가르침이란 피상적인 지식에 불과한 것이다.

그녀가 그동안 보여줘 온 이중성. 그리 모질게 봉선아(김미숙 분)을 동네에서 도망치듯 떠나가게 만들어 놓고서도 끝내 눈물을 보이던 그런 선량함이 바로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석빈(온주완 분)으로 하여금 미국으로 도망치도록 만든 것도, 그리고 아들 고석빈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도미솔(이소연 분)에게 낙태하라 매섭게 다그치던 것도, 그리고 이제 와서 봉영웅이 자기 손자라며 살갑게 다가서려는 것도. 자기 아들이 잘못한 것이 분명한데도 자기 아들을 때리고 무릎꿇린 것이 그리 억울하고, 그렇게 분통해 하다가도 봉영웅을 이제 손자라고 당당히 만날 수 있는 것을 기뻐한다. 지극한 이기다. 다른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순수한 이기. 아이의 이기다. 비싼 화병을 깨고 나면 그 조각만 버리고 나면 문제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얼마나 우스운가. 강정혜(정혜선 분)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공옥순(서승현 분)을 찾는다는 존쿡의 기사에 배정자는 그만 강정혜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신문의 그 부분만 찢어버리고 만다. 그런다고 존쿡이 공옥순을 찾는다는 사실을 완전히 가릴 수 있을까? 그러다가 들키면? 신문의 특정부분만 찢겨진 것을 보고 강정혜가 의심을 품게 된다면? 하지만 뻔히 자기가 직접 찾아가 이소룡(이재윤 분)의 이모라 밝혔음에도 공옥순이 먼저 아는 체를 하자 전혀 모르는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한다. 타조가 맹수에게 쫓기면 머리만 땅에 묻고 지나가기를 바란다던가? 성적표가 집에 도착하지 않으면 아이는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허술하게도 그런 자신의 모습을 유치원 CCTV에 남기고 만다.

어디에 이런 허술한 악당이 있을까? 그야말로 악동 맥컬리 컬킨에게 일방적으로 골탕을 먹는 <나홀로 집에>의 허술한 도둑들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적어도 악당이라면 어떤 분명한 목적이 있어서 치밀한 계획도 세우고, 그를 위한 준비도 면밀하게 갖추고, 조금의 빈틈도 없이 완전범죄를 꾸미는 존재일 것이다. 설사 들키더라도 자기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그러나 자기가 직접 독이 든 사과를 건낸 탓에 꼼짝없이 현행범이 되어 불로 달군 철판 위에서 춤을 춰야 했던 백설공주의 왕비처럼 그녀는 항상 즉흥적으로 아무런 계산도 준비도 없이 충동에 이끌려 일을 저지르고 만다. 악당을 하려면 최소한 고석빈처럼은 했어야 했는데, 하기는 고석빈조차도 엄마를 보고 배운 것인지 모든 것이 너무 낙관적이고 긍정적이다. 낭만적이다.

결국 그 허술함이 이렇게 쌓이고 쌓여 배정자와 고석빈을 압박해 온다. 봉선아에게는 이미 들켰고. 정말자(사미자 분)로 인해 매번 집안에서 공옥순을 피하느라 온갖 고생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다 공옥순의 존재가 드러나면 어쩌나? 정말자의 의붓손자가 강정혜의 외손자인데 그 사실을 들키게 되면 어쩌나? 그동안 자기가 저지를 행위들에 대해서도. 그러면서 불안해하며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 자못 통쾌하기도 하다. 그녀의 또 다른 롤이다.

나쁜 짓을 하는 것은 얄밉다. 알고 보니 안타까운 사정이 있어 동정이 간다. 여기까지는 상당히 흔할 것이다. 여기에 드라마는 이휘향의 연기력을 믿은 것인지 배정자에게 한 가지 역할을 더 더하게 된다. 망가지라. 자신이 지은 죄를 두려워하고, 그로 인한 결과를 겁내 하고, 그래서 화들짝 놀라며 더욱 허둥거리는 모습이 자못 통쾌하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그야말로 어릿광대인 것이다. 짐짓 악당을 연기하고서 사람들 앞에 망신당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반전을 꾀하는 유능한 어릿광대. 코미디의 기본이다.

그녀의 모든 행동은 그렇게 마치 짜여진 코미디처럼 결국 코믹으로 수렴되고 만다. 화가 나고, 어쩐지 동정이 가고, 그리고 우습다. 마침내 그녀가 저지른 모든 일들이 표면에 드러나게 되었을 때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그에 대한 댓가들을 생각하면 역시 화가 나고, 동정이 가고, 그리고 통쾌해질 것이다. 더 큰 통쾌함을 위해 지금의 소소한 통쾌함을 즐긴다. 그리고 딱 동정이 가게끔 즐거울 정도로만 그녀는 통쾌함을 연기하고 있다. 매우 복합적이면서도 결론은 권선징악이라고 하는 어쩌면 당연한 믿음을 위해 봉사하는 어릿광대인 셈이다.

이휘향의 연기에 대해서는 그저 감탄할 뿐이다. 김미숙의 조용한 카리스마도 대단하지만, 그 복잡하면서도 어쩌면 단순한 배정자의 내면을 표현해내는 이휘향의 디테일과 에너지에는 그저 할 말을 잃고 만다. 어찌 이리도 그녀를 그리 미워하면서도 동정하고, 그리고 그녀가 모습을 보임으로써 유쾌하게 웃고 말 수 있는가. 작가의 캐릭터 배분도 훌륭하다. 역시 이 드라마에서 중심은 다름아닌 배정자다. 고민케 하고, 갈등케 하고, 고통스럽게 하고, 선택케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를 자기가 몸으로 확인해 준다.

아무튼 참 절묘하다. 결국 이소룡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이소룡이 마침내 어머니 최은희(김미경 분)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고 도미솔과 헤어지고 말았는데, 그런데 이제는 그 출생의 비밀로 인한 이소룡의 방황과 고통이 최은희와 아버지 이만수(김명국 분)의 결심을 흔들리게 만든다. 울며 잠들고, 술에 취해 도미솔의 집 앞에 쓰러져 있고, 과연 어찌되었든간에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라는 남편 이만수의 말에 반발하는 최은희의 모습에는 얼마나 진심이 담겨 있을까? 부모란 차라리 자식으로 인해 자기가 아프기를 바라지, 자기로 인해 자식이 아프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이제껏 부모자식으로 살아온 최은희이고 이소룡이었다.

절묘한 배치였달까? 존쿡의 내한도 상당히 그 타이밍이 적절하다. 하필 존쿡이 내한했을 때 이소룡이 아이디어를 낸 서화담이 크게 이슈를 모으고 있었고, 덕분에 존쿡을 취재하며 도미솔은 다시 이소룡을 보게 된다. 존쿡과 이소룡의 만남도 상징적이다. 당사자들만 모르고 있을 뿐 두 사람은 모두 희망보육원 출신으로 공옥순과 관계가 있다.

봉영웅을 대하는 고석빈의 진실힘, 그리고 집요함. 뒤늦게 아버지가 되고자 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진심이 느껴진다. 처음 다시 도미솔 앞에 나타나 다시 시작하자 했을 때의 에고에 비해 어느새 아버지로서의 의무감을 느끼기 시작한 모습이다. 역시 그의 경험담이었을 것이다.

"아이에게는 아버지가 더 필요한 때가 있다."

고석빈에게는 아버지가 없었으니까. 고진택 자신의 문제이기도 했고, 배정자의 선택이기도 했다. 아버지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배운 적이 없었다. 어른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보고 듣고 배운 바가 전혀 없었다. 고석빈에게 어른이란 어머니 배정자 뿐. 그런데 배정자조차 어른이 되지 못한 채였으니. 그래서 여전히 그는 유아적이다. 도미솔이 받았을 상처와는 아랑곳없이 그새 다시 도미솔에게 봉영웅의 아빠와 엄마가 되자는 말을 할 정도로.

아이와 만나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방법도 가리지 않겠다. 어느새 영웅이를 걱정하며 그에 대한 애정을 내보일 때에는. 그래도 자기 것이 아닌 것을 더 가지기 위해 모략을 꾸미던 것에 비해 한결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단지 어머니 배정자의 아들에서 봉영웅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다. 그가 아내인 조윤정(전혜빈 분)에 대한 사랑과 의무, 특히 그 뱃속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도 무언가 깨달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문득 예상하는 스토리는 혹시 조윤정이 낳는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병을 앓는 아이가 아닐까. 오히려 그런 쪽이 고석빈의 부성애를 더 자극할 수 있으리라. 아버지가 되고자 하는 고석빈으로 하여금 진정 아버지가 되고 어른이 될 수 있도록.

항상 감탄하게 된다. 이렇게까지 기승전결이 잘 짜여진 드라마가 있을까. 배우의 연기는 사실감을 넘어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물게 만든다. 적절한 주제의식과 그것을 굳이 드러내지 않는 능숙함. 재미와 진지함이 서로 어우러진다. 재미있게 보았다. 재미있는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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