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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4.12.26 09:30

피노키오 14회 "송차옥의 비밀, 악연의 실체가 밝혀지다"

주위에 일어나는 사건들, 현실의 공포와 비극을 위해서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1인칭이면 공포고, 2인칭이면 비극이며, 3인칭이면 코미디가 된다. 현실의 부조리가 자신을 향한다면 그것은 공포가 되고, 그 모습을 바로 가까이서 지켜본다면 안타까운 비극으로 여겨지며, 그나마 아예 상관없는 남의 일이 되었을 때는 단지 지나가는 헤프닝으로 끝나고 만다. 쉽게 휩쓸리고 쉽게 누군가를 비난하는 그들 자신이 그 대상이 된다. 과연 어떤 느낌일까?

시작은 주인공 기하명(이종석 분) 자신의 개인적 경험이었다. 무책임한 언론과 그에 부화뇌동하는 대중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었다.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머니와 함께 바다에 뛰어들었던 자신은 형과도 헤어진 채 이름마저 잊고 13년을 살아야 했었다. 지금도 당시의 기억은 트라우마가 되어 기하명 자신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많은 대중이 단지 흥미거리로만 여기는, 그런 대중을 위해 언론이 만들어내는 그 기사들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입고 고통속에 살아가는가. 차라리 기하명의 트라우마가 피노키오보다 더 피노키오같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것이 잘못인지 자신의 트라우마를 통해 일깨우고 행동에 옮긴다.

▲ 피노키오 공식 포스터 ⓒ아이에이치큐(IHQ)

한 번은 형이 영웅이 되었다. 한 번은 좋아하는 여자의 어머니가 공공의 적이 되었다. 그 공공의 적이 과거 자신의 가족들을 막다른 궁지로 몰아넣었던 당사자 가운데 하나였다. 이제는 친구다. 과연 직접적인 당사자로서 느끼는 공포보다 그것을 가까이서 지켜봐야 하는 주위 사람들의 고통이 더 실감나게 느껴진다. 내 가족, 내 형제, 내 연인, 내 친구, 혹은 용서할 수 없는 원수라 할지라도. 과연 그런 경우에라도 무작정 언론의 보도만 믿고 비난을 퍼부을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대중을 의식하고 기사를 쓰더라도 무책임하게 대중에 영합하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역지사지라 했다. 그래서 꼭 기하명 주위에서만 사건이 일어난다.

어차피 사람들은 조금만 말이 길어지고 어려워져도 금새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만다. 어째서 명품가방 하나가 그토록 많은 문제들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는가. 당장 기하명과 최인하(박신혜 분) 역시 해외보다 두 배나 비싸다는 가방의 가격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시청자 역시 마찬가지다. 다른 무엇보다 남들과 차별지을 수 있는 자신만을 위한 고가의 아이템이 실제로 팔리고 있다는 사실에만 주목할 뿐이었다. 화재의 원인은 무엇이고, 이토록 끔찍한 참사로까지 번지게 된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어디에 있으며, 그렇다면 누구에게 이 모든 일들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만 하는가. 그보다는 당장 누구를 미워하고 누구를 비난해야 하는가. 죄를 지었다 여겨지는 누군가를 공격하는 동안에는 마치 자신이 대단히 정의로운 일들을 하는 양 착각에 빠지게 된다. 사실 여부는 사실 아무 상관도 없다.

13년 전 사건을 직접 취재하던 당사자인 황교동(이필모 분)조차 언제 어떻게 언론의 취재방향이 그런 식으로 틀어졌는지 당시에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런 분위기에 자신도 역시 휩쓸리고 있었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이 곧 책임을 묻는 것이다. 정의란 악인을 응징하고 죄인을 벌주는 것이다. 눈앞에 모두가 쫓고 있는 죄인이 있다. 파렴치한 악인이 있다. 정의롭기에 오히려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취하는 것이다. 죄인의 목을 매다는 모습에 열광하며 그로써 자신의 죄마저 대신하고자 한다. 실제 피가 흐르고 숨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쉽고 더 편리한 한 바탕 잔혹한 축제와 같을 것이다. 고도로 발달한 현대의 네트워크가 만들어낸 잔혹한 유희라고나 할까?

그것을 박로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기는 대중과 직접 마주하며 장사를 해야 하는 백화점인 것이다. 대중을 알지 못하고서는 대중에게 물건을 팔 수 없다. 부정적인 내용이라 할지라도 일단 뉴스로 보도되면 대중은 더 열광적으로 자신들의 가방을 찾게 될 것이다. 정작 중요한 이름과 이유를 감추기 위해 대중들을 위한 희생양이 될 누군가를 대신 내놓는다. 어떻게 되든 당사자나 주위를 제외하고 누구도 상관하지 않는 가치 없는 이름이다. 책임을 지우기도, 책임을 묻고 응징하기에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설사 사실이 아니더라도 누구 하나 사과하거나 반성할 필요가 없다. 공적인 책임과 역할이란 공적인 대상을 뜻하기도 하므로. 자신들을 위해 해야 하는 일들만을 생각한다.

어머니의 좋은 모습만을 보고 듣고 믿으며 자라왔다. 다른 모습은 아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럴 기회가 있더라도 일부러 외면하고 있었다. 당연하다. 자식이니까. 아들이니까. 그리고 어머니니까. 사실에 분노한다. 진실을 원망한다. 오로지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을 고집하려 한다. 우상이다. 어머니의 품에서 어머니가 보여준 환상만을 믿으며 자라온 서범조(김영광 분)의 모습은 많은 것들을 겹쳐보게 만든다. 무엇이 진실인가. 자신을 가두고 있는 틀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진실은 보이지 않는다. 용기가 필요하다. 여전히 그 무언가가 자신을 감싸고 지켜준다.

13년 전 기하명의 아버지 기호상과 관련한 언론보도의 진실이 밝혀지려 한다. 어째서 첫회 화재현장에 쌓여 있던 드럼통들을 클로즈업하고 있었는가. 송차옥(진경 분)의 핸드폰이 서범조의 손에 들어간 이유들도 이렇게 서로 만난다. 언론이 자본을 위해 봉사한다. 권력을 위해 사실을 바꾸고 진실을 뒤집는다. 피노키오처럼. 언론은 믿음의 대상이기에.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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