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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권상집 칼럼니스트
  • 이슈뉴스
  • 입력 2014.12.14 18:38

[권상집 칼럼] 땅콩 회항 사태와 드라마 미생이 보여주는 비정한 현실

비정한 현실을 비추고 있는 드라마 미생과 슈퍼갑질 패악 사건

▲ 미생 포스터 ⓒtvN

[스타데일리뉴스=권상집 칼럼니스트] 필자는 국내 지상파 드라마를 보지 않은 지 꽤 오래되었다.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 휘황찬란한 젊은 재벌과 신데렐라 스토리(이른바 20대 본부장과 가진 것 없는 여성의 사랑 이야기)가 1990년대부터 무려 20년 넘게 변형되지 않고 무한대로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지상파 모 드라마는 젊은 팀장이 회장의 관심아래 주도적으로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조건 좋은 회장의 딸이 아닌 가진 것 없는 여자에게 애정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한 마디로 식상하고 뻔한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최근 필자의 눈을 사로잡은 드라마가 있었으니 그 드라마가 바로 수많은 사람들이 언급한 ‘미생’이다. 한편으로는 드라마 내용에 대해 직장을 다니지 않은 학생들은 “실제로 저런 일이 벌어지느냐”며 의아함을 보내기도 하고 대부분의 직장인은 “내 주변 또는 나에게 벌어지는 이야기”라며 공감을 표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현재 미생은 시청률 10%에 육박하는 케이블 드라마 사상 전무후무한 시청률과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 드라마를 보고 필자가 느낀 점은 “사실을 최대한 가깝게 그렸다”는 점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사회생활을 아직 해보지 않은 젊은 친구들에게는 현실은 이보다 더 치열하고 더 비정하다라는 얘기를 필자는 해주고 싶다. 필자 역시 적지 않은 회사 생활 동안 미생에 나오는 성대리보다 더 몰상식한 대리를 만나기도 했고 더 비정하고 치열한 현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기도 했다. 상사의 폭언, 일상적인 야근은 우리 직장인들에게는 이제 남의 일이 아닌 내 이야기나 다름없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 11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직장인 93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드라마 미생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지 확인할 수 있다. 설문 결과 상당수 직장인들은 사내 정치의 난무, 힘든 야근, 남자 중심의 가부장적 사고로 만연된 조직 문화, 상사의 질책이 두려워 진실을 숨기는 행동, 상대적 박탈감, 인맥에 의한 낙하산 입사, 비정한 갑을 관계에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느새 기업이 지옥이 되어버린 슬픈 국내 직장인들의 이야기이다.

더욱이 최근에 미생 속 회사 문화 및 이야기에 대해 반신반의를 갖던 학생들마저 대한항공의 이른바 땅콩 회항 논란으로 미생 속 이야기가 오히려 현실보다 더 약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 지금도 곳곳에서는 천민자본주의로 찌든 일부 부도덕한 오너들의 황제경영이 판을 치고 있고, 그들의 눈치를 보는 수많은 미생들은 지금도 가족을 위해 숨죽이며 기업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자조 섞인 한숨과 함께..

누군가의 말처럼 미생을 보고 우리는 한숨을 짓고 때로는 눈물을 찔끔 흘리며 분노하지만 이내 다시 마음 속 품었던 사표를 접고 다시 현실로 돌아가 열심히 일하는 우리들을 확인한다. 드라마 미생이 이토록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드라마 미생 속 비정한 현실에 치를 떠는 직장인들의 애환을 보며 비단 나의 이야기라고 느낀 직장인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슈퍼갑질 패악 사건을 보고 난 후 드라마 미생에서 최고 악역의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는 마부장, 박과장, 성대리는 오히려 선인에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마부장, 박과장, 성대리와 같은 드라마 속 존재하는 악역의 행동도 결국은 현실 속 슈퍼갑의 비이성적이고 몰상식한 행위에 비하면 오히려 양반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이는 드라마보다 현실이 더 비정하고 비열하고 냉혹하기 때문이 아닐까.

경제적 차별은 누구나 참을 수 있어도 사회적 차별은 참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결국, 이번 땅콩 회항 논란의 가장 큰 피해자 중 한 명인 대한항공 사무장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기내에서 벌어진 조현아 부사장의 패악을 KBS와의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다. 많은 사람들이 대한항공 사무장이 당당하게 언론 인터뷰에 나선 점을 격려하면서도 한편으로 그의 향후 사회생활을 걱정하는 건 우리나라 기업의 문화와 현실이 드라마 미생보다 더 차갑고 비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미시건주에 위치한 소프트웨어 기업인 멘로이노베이션의 CEO는 “두려움에 기반한 인사관리는 직원들의 입을 닫게 만든다. 경쟁과 두려움에 기반한 문화는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개선점을 찾게 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메시지를 남긴 바 있다. 그의 철학을 대한민국 모든 기업의 CEO는 들어야 하지 않을까? 드라마 속 차가운 현실보다 더 비정한 현실이 벌어지는 요즘, 드라마 미생을 바라보는 마음은 더욱 무겁기만 하다. 현실 속 비애와 슬픔이 내 얘기가 아닌 먼 나라 얘기가 되어야 진정으로 대한민국 기업의 품격이 올라갈 수 있다는 점을 기업의 오너 경영자는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 권상집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박사

(한국개발연구원(KDI) '미래 한국 아이디어 공모전' 논문 대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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