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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9.12 08:58

내사랑 내곁에 "고석빈이 조윤정의 진료실에서 보고 만 것"

이소룡이 어머니 최은희의 뜻을 따르기로 결정한 이유...

 

마침내 이소룡(이재윤 분)이 어머니 최은희(김미경 분)의 뜻을 따라 도미솔(이소연 분)과 헤어지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토록 도미솔과의 관계를 반대하던 최은희나 다른 가족들 입장에서는 마땅히 기뻐해야 할 일일 것이다. 그러나 도리어 최은희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어째서일까?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원래 이소룡이 처음부터 최은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도미솔과의 관계를 고집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응석을 부린 것이었다. 그래도 가족인데, 그래도 부모이고 자식인데, 과연 자기가 이토록 좋다고 하는데 끝까지 반대야 하겠는가. 끝까지 반대를 고집하더라도 모자사이인데 무슨 크게 문제가 생기겠는가.

실제 그래서 최은희도 말하고 있었다. 이제껏 받기만 해 온 것이 미안하다는 이소룡에게 자식이란 원래 부모로부터 받기만 하는 존재라고. 당연히 어머니 최은희가 자식인 자신의 뜻을 따라줄 것이라 순진하게 믿고 있던 그 모습처럼. 그러나 그 순간 이소룡은 그에 대한 미안함을 말하고 있었다.

두려워진 때문이었다. 이제까지 마냥 가족이라고만 생각하며 마음껏 응석을 부리던 것에서 더 이상 가족이 아닐 수도 있다. 미움받을 일도 버림받을 일도 없으리라던 믿음에서 영영 가족이 아닌 채 버려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어째서 그의 친부모는 아직 어린 그를 버려야 했는가. 자신은 어째서 친부모에게 버려지게 되었던 것일까. 그리고 가족에서 단지 길러준 부모가 되어 버린 최은희는 거래의 대상으로 바뀌고 말았다. 은혜를 받았으니 갚아야 한다. 그동안 받은 것이 있으니 그에 감사하며 보답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자식으로써 부모의 뜻을 쫓는 것이 반드시 거래를 위해서만은 아니다. 부모의 은혜를 생각하고 그에 보답하고 싶다는 것은 인류사회의 매우 보편적인 가치관 가운데 하나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에 거역하고 싶을 정도로 누군가를 사랑한다. 그런데 길러준 은혜 때문에 그토록 가슴하프게 간절한 사랑을 억지로 포기해야 한다. 정상일까?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자기가 길러준 부모가 아닌 낳아준 부모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길러준 부모도 부모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는 한데 그렇다면 그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 그래서 일찌감치 사실을 밝히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할 시간과 함게 노력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었으련만.

하긴 그것은 어쩌면 한국사회의 일반적인 가족관이 갖는 모순이기도 할 것이다. 전통적인 가족관에서 자식이란 부모에 종속된 존재다. 부모에게서 태어났고 그로부터 양육되어지기에 자식이란 전적으로 부모에 속하게 된다. 그렇게 믿는다. 한국사회에서 그토록 자식에 대해 혈연에 집착하고 자신을 투사하려는 경향이 이로부터 나타난다.

최은희가 끝까지 이소룡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려 하는 것이나, 정말자(사미자 분)가 여전히 이소룡을 주워온 아이 이상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바로 그런 영향인 것이다. 이소룡은 부모가 친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에 충격받고, 최은희는 이소룡의 친이모가 나타났다는 사실에 당황해하고. 그러나 단지 이소룡을 하나의 인격체로 놓고 단지 낳았을 뿐이고 기르고 있을 뿐이라 한다면 큰 혼란은 없었을 것을. 지금 눈앞에 있는 자신이 여전히 가족으로서의 정과 신뢰가 있는 한 가족이다.

입양했어도 여전히 이소룡은 최은희의 아들이다. 이소룡에게도 최은희는 어머니다. 만일 따로 친부모가 따로 있어 만나게 되더라도 그들은 단지 친부모일 뿐이다. 낳아준 부모이며 그 또한 천륜이 이어준 부모다. 이쪽은 마음으로 쌓아 올린 천륜이고 부모일 것이고. 이중계약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더라도 부모가 여럿 있다고 무슨 큰 문제가 되겠는가. 두려울 것도 불안할 것도 없이 모든 것이 밝혀진 지금도 한가족이라는 믿음만 굳건하다면.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니까. 봉영웅은 분명 도미솔의 아들이다. 그러나 생물학적으로 고석빈(온주완 분)의 아들이기도 하다. 도의적으로야 어쨌든 고석빈에게도 봉영웅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권리가 전혀 아주 없지는 않다. 그러나 애써 도미솔은 봉영웅이 자기 아들이라는 것만을 강조하려 든다. 판단은 결국 봉영웅이 내려야 할 것임에도. 과연 그 과정에서 얼마나 봉영웅에게 상처를 최소화할 것인가. 그보다는 분명 도미솔도 자기 입장만을 생각한다. 그리고 고석빈 역시 더욱 봉영웅에 집착하는 이유는 아내 조윤정(전혜빈 분)의 부정에 의한 임신이었을 것이다.

바로 필자가 굳이 작가에 대해 알아보지 않고서도 분명 여성작가가 드라마를 썼을 것이라 확신하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도 법적인 아내인 조윤정을 위해 함께 병원을 찾았다가 고석빈은 조윤정의 뱃속에 있는 아이의 모습을 눈으로 보게 된다. 이제 갓 모습을 갖춰가고 있는 생명의 경이로움이란. 남성보다는 여성의 입장에서 접근하기에 적절한 장면연출이나 할 수 있었다.

고석빈은 끝내 견디지 못하고 진료실을 뛰쳐나오고, 자신의 차에 올라 눈물을 흘리고 만다. 과연 조윤정이 차라리 이대로 떠나게 해달라 했을 때 대뜸 거절부터 했던 것은 조윤정의 뱃속의 아이가 필요했고, 조윤정이 증오스러웠기 때문이었을까? 고석빈이 더욱 봉영웅에 집착하게 되는 것에는 그 순간의 충격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렇게 한 생명은 태어난다.

지나치게 넘겨짚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조윤정의 뱃속의 아이야 말로 고석빈에게 구원이 되지 않을까 상상을 해 보게 된다. 비록 피는 이어져 있지 않지만 자신의 아내의 뱃속에서 자라는 아이에게 어느새 사랑을 느끼고 그로 인해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 태어나게 된다. 당장 조윤정과 함께 병원을 다녀 온 고석빈의 모습이 어느새 탐욕과 집착으로부터 해방된 아버지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과연 그 순간 아들 봉영웅을 보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봉영웅을 통해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려 하고 있었던 것일까? 생각해 보면 고석빈이야 말로 어머니 배정자의 탐욕이 만들어낸 존재였기에. 지금의 고석빈을 괴물로 만든 것은 그의 어머니 배정자의 집착이었다. 지금도 그 집착이 고석빈을 옭죄고 그로 하여금 도저히 헤어나지 못하는 수렁으로 빠져들게 만들고 있었다.

수렁으로 빠져들수록 더 큰 부와 권력, 명예가 주어지지만 그는 자신을 잃어간다. 고석빈이 자신의 원래 모습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그는 어머니 배정자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자신이 부모가 되는 것이다. 봉영웅은 그 태어나는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조윤정의 아이는 뱃속에서 자라 조윤정이 어머니가 되는 모습을 바로 가까이에서 지켜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가 되는 과정을 실제 겪게 될 것이다. 과연... 그는 구원될 수 있을 것인가. 진정 가족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면.

섬세한 심리의 묘사가 좋다. 그것도 억지스럽게 끼워맞추는 심리가 아니다. 보편타당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며, 대신 매우 정교하고 치밀하게 구성되고 배치되어 있다. 그것이 드라마일 테니까. 그래서 배정자며 고석빈이며 악역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불어 지금 최은희와 조윤정이 도미솔 입장에 악역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윤정에게는 도미솔이 악역이다. 악에 대해 악으로써 맞설 수밖에 없는 절박함과 그 나약함. 드라마가 슬픈 이유일 것이다. 악해서 슬프다. 슬퍼서 악하다.

오늘도 재미있었다. 각자가 맡은 역할들이. 그들이 내뱉는 말이며 하는 행위들이. 속삭이듯 말을 걸어온다. 드라마란 대화일 것이다. 내러티브란 들려주는 이야기인 것이다. 들으며 상상한다. 들려줄 이야기를 떠올린다. 특별하지는 않지만 특별한, 좋은 드라마일 것이다. 항상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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