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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9.12 07:35

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 노래하는 천사들과 손현주의 남자의 자격"

김태원의 열정과 리더십에 새삼 감탄하다.

 

잠시 멍해져 있었다.

"손현주가 왜 저기에를...?"

익숙한 배우 손현주의 뒤로 하나둘 자리를 찾아가는 아이들이 보였다. 듬성하게, 그것도 누군가의 손이 있어야 자기 자리를 찾아 설 수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 작은 손이 속삭이며 노래를 따라 부를 때는 누군가 커다란 해머로 내 머리를 한 대 세게 후려친 듯 충격마저 받았다.

항상 꿈꿔 오던 것이었다. 작년 큰 화제를 모았던 '하모니'편 이후 내내 한 번을 꼭 <남자의 자격>에 건의해 보리라 생각했었다. '하모니'편 시즌2를 만든다 했을 때, 혹은 만일 시즌3가 만들어진다면. 그렇다면 반드시 한 번은 해 보았으면 좋겠다.

아주 오랜 기억속에 있었다. 누가 출여했는가도 사실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제목이 무언가도 모른다. 단지 어느 선생님 한 분이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아이들을 이끌고 아마 합창단이었던가 브라스밴드인가를 만들고 있었을 것이다.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소리를 몸으로, 머리로라도 느끼고 이해하게 하며, 아이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으로 어떤 어려움에도 참고 견디며 아이들이 하나하나 이루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소리라는 것을 전혀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던 한 아이가 끝내 그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종이로 만든 엉성한 북을 거칠게 찢던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종이가 찢어지는 느낌에서 아이는 소리를 처음으로 느끼고 있었다.

좌절도 물론 없지는 않았다. 절망도 있었다. 그래서 아마 그 선생님도 - 여자선생님이었을 것이다. - 어디론가 도망치고 있기도 했었다. 그것을 애써 다시 찾아가 모셔와서는 아이들을 가르쳐 마침내 많은 사람 앞에서 연주까지 해낼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그 순간 얼마나 감동을 받고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그때의 감동은 아직도 나의 뇌리속에 - 아니 영혼에 각인되어 있다. 비록 세월 속에 기억은 퇴색되어 남은 것이 없어도 그 감동만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서 문득 생각한 것이었다. 기왕에 이번에는 젊은 연예인을 중심으로 합창단을 꾸려 보았으니 다음에는 보다 소외된 이들을 대상으로 합창단을 만들어 보면 어떻겠는가. 이번에는 다시 나이 많은 분들을 대상으로 합창단을 만들어 보았으니 다음에는 더 소외된 이들을 대상으로 합창단을 만들어 대중들에 더 큰 감동을 주어 보자. 그들이 단지 동정의 대상만이 아닌 우리와 함께 이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임을 기적의 소리를 통해 느끼게 해 줘 보자. 그 어떤 미션보다 <남자의 자격>다울 것이며 아름다울 것이다.

생각해 보면 얼마나 무모한 생각이었던가. 악보조차 볼 줄 모르고, 그렇다고 소리라는 것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것은 드라마였고, 그조차 몇 달, 몇 년의 시간을 짧은 드라마 안에 압축해 담아 놓은 것이었다. 도대체 얼마의 인내가 필요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의 고통과 갈등이란 어떠한 것일까. 수화를 배우던 이정진이 있다면 그를 활용해 볼 수 있으련만. 하긴 수화를 배우는 것만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그런데 손현주라고 하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배우 하나가 단지 머릿속으로 생각만 해 오던 그것을 실제 현실로 이루어 나타나 있던 것이었다. 그것도 예능을 위해 급조된 미션이 아니었다. 무려 6년의 시간을 한결같이 해 오고 있던 일이었다. 누구도 감히 생각조차 못한 일을 6년이라는 시간동안 한결같이 이루어 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혹시 상처가 될까봐 '땡'이나 '불합격'같은 말은 되도록 작게 해달라 심사위원들에 부탁하고 있을 때 이미 나는 이제까지 단지 이름만 알고 있을 뿐인 이 남자에게 진심으로 반하고 말았다. 이야말로 진짜 남자였다.

부끄러웠다. 그리고 부러웠다. 필자가 항상 주장하는 바일 것이다. 남자란 지키는 존재다. 여자와 아이들을, 무리 가운데 약한 이들을 지키라고 남자란 보다 강한 육체를 타고 나는 것이다. 무언가를 빼앗고, 다른 이를 억누르고, 그보다는 기꺼이 방패가 되고, 울타리가 되고, 지팡이가 될 수 있도록. 그것이 진짜 남자 아니겠는가. 하필 프로그램의 제목도 <남자의 자격>, 그는 진정 남자의 자격이 있는 남자였다. 누구보다 멋지고 아름다운 그야말로 남자였을 것이다.

과연 프로그램 입장에서 득이었을까? 실이었을까? 아니 다음주 예고에 나오던 청소년을 교화하는 시설을 찾아 공연을 하는 아이디어는 어쩌면 그로부터 얻어진 것이 아니었을까? 빛이 바라고 말았다. 누구보다 힘들지만 그래서 누구보다 아름다운, 몸짓조차 포함된 천사들의 아모니에 오래된 청춘의 푸르름은 살짝 빛을 가리고 말았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름다운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이끌고 나타난 누구보다 향기가 나는 진짜 남자. 더구나 '청춘합창단'이라지만 예선에 출전한 합창단 가운데서도 실버합창단이 적지 않더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황혼에 꿈과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고 있는 그 분들을 앞에 두고 과연 '청춘합창단'만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다만 그럼에도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떨려 하고, 무대에서 내려와서는 감격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역시 그분들도 청춘이로구나. 두려움이 있는 것은 그만큼 간절하기 때문이다. 설렘이란 그 간절함으로 비롯된 두려움을 이겨내고자 하는 용기다. 무대에서 내려와 눈물을 흘리고 마는 것은 그 간절함을 이루었다는 성취감일 것이다. 아직 불은 꺼졌지만 잿속의 숯은 벌겋게 불을 머금고 있다. 84살이면 아직 한창은 청춘 아니겠는가.

결국 오늘의 주제는 바로 에반젤리 합창단을 이끌고 나타난 손현주씨와 전혀 생소한 지휘라는 분야에 도전한 지휘자 김태원이 아니었을까? 아주 짧은 한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은 아이들의 노랫소리만큼이나 향기와 빛이 났고, 나머지 더 긴 시간들은 역시 남자로써 오래된 청춘들을 이끄는 김태원의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미 준비되어 있는 리더십과는 다른,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배우기 시작했으면서도 그들을 책임지고 이끌어야 하는 함께 준비해가는 리더십이었다. 오히려 무대에 오르기 전 김태원은 꿀포츠 김성록씨의 격려를 받는다.

그 또한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에서 전설로까지 불리우는 인물로써, 그러나 기꺼이 자신을 낮추며 배움에 열정을 보이는 모습을 보면서는 나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 부끄러움마저 느끼게 된다. 27년을 한 길로 밴드의 리더로써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내공은 허투루 나온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자신도 이제 갓 지휘를 배우는 초보이면서 더 나이도 많고 누군가는 경험도 더 많은 멤버들을 이끌고 항상 노심초사하는 모습도 역시.

리더라는 게 남의 위에서 군림하며 즐기는 자리가 아니다. 책임을 지는 자리다. 지휘자의 손짓 하나로 합창이 전혀 다른 곳으로 흘러갈 수 있 듯 그 한 사람의 말과 행동에 의해 다른 많은 사람들이 적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되는 자리인 것이다. 그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두려워 도망치거나 그 자리 자체를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고 만다. 하긴 그러니까 김태원은 이미 지금의 자리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일 게다. 그는 두려워하는 사람도 만족해 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것을 딛고 나아가는 사람이다. 긴장하면 지고 설레어하면 이긴다. 그는 설레어하는 사람이다.

아마 합창단원들이 나이도 한참 어린 김태원에게 깊은 신뢰를 보내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경험만으로 놓고 보자면 김성록씨를 비롯한 몇몇 전공자들에 비해 김태원은 한참 미치지 못한다. 미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처음부터 배우기 시작하는 초보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동안에도 항상 함께 노력해가는 모습이 그만큼 사람들에게 신뢰를 심어 준 것이 아닐까. 김태원의 리더십이 있었기에 처음 오합지졸이던 합창단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지난주에 보았던 불안감이 한 순간에 눈녹듯 사라져 버리고 있었다.

의도한 바였을 것이다. 지난주 그렇게 윤학원 선생님 앞에 체면을 구겼으니 이번에는 멋진 모습도 보여주어야겠지. 완성된 지휘자로써는 한참 미치지 못하겠지만, 지휘자로써 조금씩 나아져가는 모습은 <남자의 자격>이 갖는 주제와도 맞아 떨어진다. 미숙하기에 더욱 노력했고, 그 노력들이 모여 청춘합창단을 지금에까지 끌고 왔다. 더구나 결과가 발표되고 윤학원 선생님께 전화를 해서 하는 말이 '앞으로 더 귀찮게 찾아가겠습니다.'. 아내 이현주씨 앞에 짐짓 자랑하듯 손을 잡고 다정히 거니는 모습은 정말 그림이었다. 드라마가 완성되고 있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꿈은 이루어지는 것일까? 단지 상상일 분인데 현실에는 그것을 이루어가는 이들이 있다. 누구보다 강한 사람들이다. 누구보다 용기있고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다. 아름답다는 말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해 나왔다. 손현주를 기억한다. 아름다운 사람이다.

어느 정도는 예상한 결과였다. 어떤 다른 의도가 있었다기에는 멤버들의 면면부터가 결코 범상치 않았다. 아주 심각한 실수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보았는데 바로 직전 윤학원선생님의 원포인트레슨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래도 좋지 않은가. 축하의 말에는 이유란 필요없다.

그 동안의 노력을 안다. 당장 방송을 통해 보이는 모습만으로도 보통의 노력으로 그 자리에까지 서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꿈과 열정, 그리고 그것을 이루려하는 간절함과 그 간절함에 대한 성실함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분들께는 자격이 있다. 다시 한 번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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