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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9.11 09:05

내사랑 내곁에 "도미솔과 이소룡이 만나는 이유..."

막장인 현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좋다.

 

이제야 비로소 확실해졌다. 어째서 이소룡(이재윤 분)은 양자여야 했는가? 양자인 이소룡이 미혼모인 도미솔(이소연 분)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역시.

우연히 읽게 되었다. 그동안 <내사랑 내곁에> 출연자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미혼모자쉼터인 동방사회복지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이소룡의 고모 이주리로 출연중인 이의정이 아이를 입양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도.

생각해 보면 이소룡이 이만수(김명국 분)와 최은희(김미경 분) 부부의 양자로 들어가게 된 것도 그의 생모가 미혼모였던 때문이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딸 선아가 아이를 낳게 되자 외할머니 강정혜(정혜선 분)가 그를 고아원 앞에 버린 것이 어찌어찌 그가 이만수, 최은희 부부의 양자가 되어 지금까지 자라온 이유였다. 결코 무관할 수 없는 것이다.

드라마에서도 묘사되고 있지만 여전히 미혼모에 대한 세상의 시선은 차갑다. 결혼도 하지 않은 여성이 아이를 낳아 기른다고 하는 것은, 단지 그 한 가지만으로도 <내사랑 내곁에>라고 하는 드라마를 막장으로 분류하는 경우마저 있을 정도로 여전히 현실에서 터부로 남아 있다. 너무나 원초적인 경제적인 문제에, 여성 자신은 물론 아이에 대한 사회의 냉대와 차별에, 사실상 여성 혼자 아이를 낳아 기른다고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세상 전체와 싸워야 하는 큰 일이 아닐 수 엇는 것이다. 때로는 감당하기가 너무 버겁다. 그래서 많은 아이들이 이소룡처럼 태어난 것이 죄가 되어 바로 자신의 가족에 의해 버려지고 마는 것이다.

하긴 그래도 고아원이든 어디든 맡아 기를 수 있는 곳에 버려지는 것이면 다행일 것이다. 차마 입에 담기조차 흉측한 일들이 뉴스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지금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어디에서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낳아 죽였다. 혹은 버렸다. 그래서 아이가 어떻게 되었다.

그러면 어찌해야겠는가? 엄마 혼자서 아이를 낳아 기르라고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많이 무리다.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를 사회에서 길러주어야 하는데 버려진 아이를 대신해 길러주는 시설이란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다. 아이에게는 가정이 필요하다. 아이를 사랑하고 보살펴줄 부모가 필요하다. 누가 그 역할을 맡을 것인가?

여기에서 드라마는 가족이라고 하는 전통적 개념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대한민국은 OECD에까지 가입해 있으면서도 항상 가장 많은 아이들을 해외에 수출하고 있는가. 정작 한국땅에서 태어난 아이들인데 입양할 곳이 없이 해외로 입양을 보내야 한다. 수많은 아이들이 지금도 어떤 이유로든 버려져 보호를 필요로 하는데 정작 한국사회는 그들을 보듬을 여력이 없다. 그들을 끌어안을 가슴을 가지고 있지 않다. 무엇이 문제인가?

바로 30년 가까운 세월을 손자로써 할머니로써 한 가족으로 살아왔음에도 여전히 주워온 아이 취급하는 정말자(사미자 분)에게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아니 분명 입양해 온 아이임에도 그 사실을 애써 부정하려 하는 최은희에게서도 그 이유의 한 자락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자기 부모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집을 나가 방황하고 마는 이소룡의 모습인 것이다.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가족이란 혈연을 의미한다. 아무리 오래 가족으로 살아왔어도 혈연을 전제하지 않은 가족이란 인정되지 않는다. 그저 업둥이이고 타인일 뿐이다. 나중에 분가라도 하게 되면 완전히 타인이 된다. 그래서 양어머니 최은희도 그토록 이소룡을 입양한 사실을 부정하며 친아들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친아들이 아니면 가족이 아니기에.

버려지는 아이와 그 버려진 아이들 앞에 놓여진 현실의 문제. 그나마 생각할 수 있는 가운데 가장 나은 것이 입양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그야말로 언감생심이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보여주려 이소룡은 양자인 것이고, 정말자와 이만수, 최은희 부부는 그를 양자로 들여 애써 타인처럼, 혹은 피를 이은 아들처럼 집착하여 기르고 있었던 것이다. 차라리 양자임을 알려주고 그럼에도 피가 이어지지 않았어도 한 가족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면.

그러나 그것이 되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수십년을 거두어 길렀음에도 친아버지가 아니니 타인이다. 수십년을 거두어 사랑으로 길렀어도 버려진 아이라고 하는 상처가 그를 잘못된 길로 빠지게 한다. 당장 그동안 아버지로 알고 자식으로 알아 온 그들이 자신의 아버지이고 자식이며 한 가족임을 알지 못한 채. 도대체 주위에서 어째서 부모와 자식이 닮거나 닮지 않은 것을 가지고 이야기거리로 삼는가.

지금의 상황들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에 도저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이소룡과, 그동안이 세월을 부정하며 단지 타인으로만 대하려는 정말자, 여전히 친자식임을 집착하는 최은희. 가족이면서도 가족이 아닌 그 일그러진 관계.

그나마 도미솔은 운이 좋았으니까. 어머니가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녀를 지지하며 지켜주는 어머니의 존재가 있었다. 도미솔의 아들 영웅이는 어머니 봉선아(김미숙 분)의 아들이 되어 있다.

하기는 이제 봉영웅에 대한 고석빈(온주완 분)과 도미솔의 갈등이 시작될 것이다. 태어나게 했으니 아버지인가. 그러나 아버지로써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으니 자격이 없는 것인가. 때로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아이를 빼앗기고 마는 어머니들의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필자가 이 드라마를 사랑하는 이유일 것이다. 막장이라 하지만 그것은 현실이 막장인 때문이지 드라마가 막장이라서가 아니다. 그 막장인 오히려 더 냉정하게 디테일하게 보여주는 그 따뜻한 시선이 그리 기분이 좋아 이토록 즐거워하며 보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현실을 막장으로 만드는가. 그렇다면 그 대안은 무엇인가. 언론에 난 기사마저 드라마의 연장처럼 여겨지는 것은 필자의 착각일까?

아무리 불러 뺨을 때리고 폭언을 하고 무릎을 꿇려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 이미 한 번 그렇게 되어 버린 도미솔의 인생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 도미솔의 체념어린 관조와 그럼에도 도저히 어찌할 수 없다고 하는 봉선아의 절망감. 그럼에도 오히려 영웅이를 당당히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이라는 고석빈의 뻔뻔함. 그런 상황에조차 고석빈은 잘못이 없다는 배정자의 모습은 성과 관련해 남자의 부모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 가운데 하나다. 최근에도 있었다.

전혀 예기치 않은, 누구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는 임신이지만 조윤정에게 어느새 뱃속의 아이는 지켜야 할 소중한 대상으로 다가온다. 그래도 아이이고 어머니다. 도미솔이 처음 영웅이를 임신했을 대도 그랬다. 뱃속의 아이이기에 이미 어머니의 일부다.

그리고 친구 정말자에게 털어놓는 강정혜의 오랜 회한. 자신의 어리석음이 저지른 죄로 인핸 오랜 고통에 대해서. 억지스럽지만 그렇게라도 풀고자 하는 그 집착에 대해서도.

어머니의 드라마일 것이다. 제목이 <내사랑 내곁에>인 것은 아마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과연 내 곁에 있어야 할 내 사랑은 누구일까? 이소룡일까? 고석빈일까? 봉영웅일까?

때로 전혀 아무생각없이 드라마로써 즐기기도 한다. 드라마로서도 충분히 재미있는 드라마다. 그러나 잠시 진지하게 바라볼 때는 또 전혀 다르다. 기쁜 드라마다. 생각이 깊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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