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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9.11 08:12

TOP밴드 "추석특집, 공중파로 볼 수 있는 최고의 무대를 보다!"

악마의 PPL, 드디어 악마의 협찬을 받아내다!

 

최근 <TOP밴드>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화두라면 다름아닌 PPL일 것이다. 제작진은 노골적으로 프로그램 안에 PPL을 삽입하고, 시청자는 드러내 놓고 그것을 좋아하며 즐긴다. 광고주가 있기에 제작비가 나오고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런데 문득 프로그램을 보면서 제작진이 PPL하고 있는 한 가지를 찾아낼 수 있었다. 다름 아닌 악마. 특정 오디션프로그램이 악마의 편집을 자랑한다지만 <TOP밴드>는 그것을 넘어서 이제는 악마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지난 복날 제작진은 악마를 몇 마리 푸욱 고아먹은 것일까?

2차예선부터도 그랬다. 300초라는 제한시간과 실시간으로 순위를 보여주던 전광판. 회전무대는 과연 이들이 지금 오디션을 치르고 있구나 하는 실감을 갖게 했다. 시시각각 줄어드는 초시계와 매 출연자마다 출연자의 점수에 따라 뒤바뀌는 전광판의 순위. 새로이 24명에 들어간 밴드와 그로 인해 순위에서 밀려나 탈락하는 밴드의 희비가 교차되고 있었다. 참으로 잔혹한 진검승부의 무대로구나. 어느새 출연자들과 더불어 울고 웃으며 환호하고 있었다.

2차예선을 통과한 24개팀이 각자 자신을 맡을 코치를 고르던 100초경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100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압축해 들려주는 연주와, 밴드와 코치가 서로를 고르며 신경전을 벌이던 모습은 가히 예능 <TOP밴드>의 백미라 할 수 있었다. 각 팀의 개성이 드러나며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있었고, 적절히 코치간의 긴장관계도 조성되고 있었다. 오가는 재치있는 설전에 어느새 <TOP밴드>에 대한 흥미는 정점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16강이 되었다. 24개 팀 가운데 16개 팀을 최종적으로 걸러내는 조별경연과 패자부활전은 별다른 특징 없이 상당히 스탠다드하게 진행되었다. 각 조마다 코치에 의해 미션이 주어지고, 그 미션을 수행한 결과에 따라 생존자와 탈락자가 발생했다. 하긴 패자부활전에서 이미 부활시켜 자신의 조로 삼은 팀을 새로이 부활한 팀에 의해 밀어내기해야 하는 룰은 '서바이벌'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를 그대로 상기시켜주었다. 하나의 팀이 살아남는 것은 다른 하나의 팀을 떨구는 것이다. 모두를 살려 함께 데려가고 싶지만 결국 살아남는 것은 각 코치당 두 팀 뿐이다.

그런데 16강에 와서는 그런 차원을 넘어서 버렸다. 점수제가 아닌 선택제라니. 설사 어느 심사위원이 A라는 팀과 B라는 팀을 각각 51:49로 점수를 매겼어도 그 심사위원이 가진 점수는 모조리 보다 높은 점수를 얻은 한 팀에게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100:0이든 60:40이든 같다. 과연 심사위원은 둘 중 누가 더 낫다고 판단했는가. 엄밀히 점수제로 했을 경우 총점에서 이길 수 있는 경우에도 더 많은 수의 심사위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길 수 있다.

사실 어떻게 보면 불공정해 보일 수 있다. 드러난 차이는 전문심사위원단 20명 가운데 16:4였고, 특별심사위원 가운데서는 2:3이었어도 누군가는 두 팀의 차이를 작게 보았고, 누군가는 두 팀의 차이를 크게 보는 등 그 안에서도 편차는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잃기는 작게 잃고 따기는 크게 땄다면 그 결과는 누구도 모르는 것 아니던가. 실제 많은 오디션에서 그와 같은 방식을 채택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어떤 식으로든 심사위원에게 - 정확히는 청자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 밴드로써 잘하는 것이다.

밴드는 라이브다. 라이브는 두 번이 없다. 지금 서는 무대가 전부다. 그렇다면 그 한 번의 무대로써 관객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관객을 매료시켜 자신의 팬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만족시켜야 하고 감동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더 높은 점수를 얻는 것보다 더 많은 대중을 유혹할 수 있는 부분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을까. 아마 그런 의도였을 것이다.

물론 개인적인 추측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로 인해 경연이 무척 재미있어졌다는 것이다. 지지난주 16강 첫째주 경연에서 두 번 째로 맞붙은 아이씨사이다와 시크가 그것을 확인해 주었다. 전문심사위원단 선택 18:2, 그러나 특별심사위원단 선택 1:4. 그리고 심사위원 점수의 비중은 전문심사위원단 40에 특별심사위원단 60이었다. 전문심사위원단에 의해 거의 몰표에 가까운 지지를 얻고서도 특별심사위원의 선택에 의해 결과가 뒤집어지고 말았다. 한 사람이 2점의 점수를 갖는 전문심사위원과 한 사람이 무려 12점의 점수를 갖는 특별심사위원의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더구나 특별심사위원의 점수는 항상 나중에 발표되었다.

이러한 점수산정방식이 탁월하다는 것은 첫째 특별심사위원단에 권위를 부여한다는 점일 것이다. 한 마디로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전체 100점을 두 팀이 나누어 가져가는 가운데 가운데 60점, 그 가운데 특별심사위원 한 사람이 12점을 갖는다. 9월 10일 16강 3차경연에서 나타난 그대로 투스테이와 액시즈가 마지막 특별심사위원이었던 김종서 앞에서 40대 48로 액시즈가 더 유리한 상황이었음에도 김종서의 선택 하나로 인해 투스테이의 승리로 승부가 뒤집어져 버렸다. 바로 직전 전문심사위원단의 판단까지 포함한다면 톡식과 브로큰발렌타인의 경우는 32:8에서 44:44까지 동점이 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전문심사위원단의 몰표도 뒤집을 힘이 있다.

그만큼 특별심사위원의 판단에는 결과를 바꿀 수 있는 힘이 부여되는 것이고, 그런 만큼 책임과 더불어 확고한 권위가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하기는 특별심사위원의 면면이 봄여름가을겨울과 송홍섭, 유영석, 이상은, 김종서 등 한국대중음악의 전설이라 불리우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이름들이었다. 과연 누가 있어 이들의 판단을 정면으로 부정할 것인가. 그만한 자격이 있는 심사위원에, 그에 전적으로 신뢰를 보내며 판단을 맡기고 있는 프로그램에, 그것이 곧 <TOP밴드>의 정체성이며 <TOP밴드> 심사의 권위가 된다. 논란이 아주 없을 수는 없겠지만 확고한 기준이 있는 만큼 그 결과에 대한 신뢰는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장점이라면 역시 말했듯 투스테이와 액시즈의 경우 김종서가 마지막 선택을 하기까지 그 결과를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100점을 두 팀이 나누어 갖는데 88점이 결정된 상황에서 8점 차이라면 거의 결정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김종서가 가지고 있던 점수가 12점. 그래서 시크도 전문음악심사위원단의 몰표를 받고서도 액시즈에 마지막에 뒤집어지고 말았었다. 톡식과 브로큰발렌타인의 관계에서도 마지막까지 브로큰발렌타인이 따라잡으며 김종서에게 최종판단을 내맡기고 있었다. 그토록 멋진 무대를 보여주고서도, 더구나 최고의 찬사가 보내진 다음, 누군가로부터 배워 온 것인지 절묘하게 끊고 투스테이와 액시즈의 결과를 먼저 보여주고 있을 때 느꼈던 분노와 원망은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렇게 워낙 특별심사위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더구나 전문음악심사위원단이 심사를 마치고 나중에 심사를 하기에 그들이 갖는 12점의 향배에 따른 긴장감이란 다른 서바이벌프로그램에 비할 바가 아니다. 다른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는 단지 점수에 따른 결과가 사람을 긴장시킨다면, <TOP밴드>는 그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사람의 피를 마르게 한다. 역전을 기대할 수도 있고, 그 기대가 두려울 수도 있다. 과연 특별심사위원들은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이고, 모든 판단이 내려졌을 때 결과는 어떻게 바뀌게 될 것인가. 특별심사위원에 대한 권위와 더불어 그 판단 하나하나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고 긴장은 고조되게 된다. 악마가 만일 깃들어 있다면 바로 여기에 깃들어 있을 것이다. 악마란 인간의 고통과 불행을 보며 즐기는 존재일 것이니.

정말이지 그 순간 제작진을 찾아가 멱살잡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만일 악마가 와서 2분 뒤의 결과를 알게 해 준다고 하면 당장 계약부터 하고 말았을 것이었다. 악마의 PPL이라 부르는 이유였다. 이제는 특정 후원자의 간접광고를 넘어 영혼매매까지 중개하고 있다. 필자가 <TOP밴드>에 이토록 이끌리고 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으리라. 악마가 깃들어 있었다.

아무튼 그야말로 최고의 무대들이었다.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한 시간 남짓 되는 시간 동안 앉은 자새로 몸을 들썩이고 머리를 흔드느라 어느새 온몸에 근육통이 생길 지경이었다. 특히 톡식과 브로큰발렌타인의 미리 보는 결승전에서는 방안이었음에도 어느새 일어나 방방 뛰고 있는 필자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바로 저 자리에 있어야 했는데. 질투라는 감정도 역시 악마의 영역이었을까? 직접 경연을 보고 듣고 느끼며 환호하고 있는 관객들이 진심으로 미워지고 있었다.

투스테이에 대해 평가하자면 체로 걸렀을 때 걸리는 것 하나 깨끗한 느낌이라는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순수하다? 해맑다? 아니 보다 정확히는 솔직하다 할 것이다. 말 그대로 음악이 좋아 즐기는 느낌이랄까? 사랑받고 자란 아이마냥 걱정근심이 없다. 그늘이나 음습함도 없다. 물론 마냥 행복하게만 음악을 해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여저히 올곧다. 아이돌의 음악이 그렇게 그들과 어울릴 수 있는 것은 그들 자신이 그렇게 어디 하나 옹이지거나 휘어진 곳 없이 직구로 음악을 대하려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시절이 좋았다면 상당히 대중적인 밴드로써 지금의 아이돌 밴드가 대신하고 있는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었을 텐데. 록이 주는 경쾌함과 강렬함, 그리고 스탠다드의 친숙함과 서정미가 동시에 느껴진다. 한 마디로 대중적이다. 보아서 기분이 좋아지는 밴드다.

액시즈의 무대에 대해서는 필자가 잘못 판단하고 있었다. 강하게 디스토션이 걸린 기타소리와 어딘가 억눌린 듯 헤매는 보컬의 목소리에 그것이 액시즈가 원래 의도했던 것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주위가 온통 무겁게 짓눌린 가운데 그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절박함을 노래하고 있다고. 가슴이 답답하도록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혼란이야 말로 그들이 대중들에 전하고 싶은 부분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단지 실력과 경험이 부족한 데서 오는 미숙함의 결과였다니. 때로 그것이 실수이고 오류이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한 사례였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그렇게 연주했기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이 그렇게 여겼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톡식과 브로큰발렌타인에 대해서는 솔직히 필자가 평가할 수준은 넘어섰다는 판단이었다. 비유하자면 만부막적와 관우와 장비 앞에 100만대군을 이끌고 나타난 조조를 보는 느낌이랄까? 거칠고 사납게 달려드는 반면, 우직하게 정석을 지키며 차근차근 옭죄어간다. 대군을 이끄는데는 기책이 필요치 않은 법이다. 그러나 소수이기에 정석으로는 상대할 수 없다. 그야말로 게릴라와 정규군의 싸움이었을 것이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마음껏 자신의 재능과 역량을 과시하는 가운데, 굳이 과시하지 않고서도 그 가진 힘으로써 자신을 드러내고 만다.

마치 오케스트라를 듣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예 관객에게 시비를 걸어 오는 것 같았다. 다섯명이 아니라 50명이 들려주는 듯한 꽉 찬 사운드에, 온통 사방을 헤집으며 도발해 오는 날카로움. 다만 단점을 꼽자면 전자는 조금 단조로웠고 후자는 적잔이 위태롭게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누가 이겨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최고의 싸움. 아마 이런 것을 건곤일척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밴드가 공중파를 통해 들려줄 수 있는 한계를 들려주었다. 밴드음악에 전혀 관심도 없던 사람들마저 두드려 깨울 정도의 에너지를 내뿜고 있었다. 무어라 말해야 할까? 이 전율을. 그 감동을.

떨어진 팀들이 실력이 없어서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못해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운도 나쁘게 상대가 더 잘했기 때문이었다. 고3이라 수능이 걱정이라면서도 액시즈는 상당히 수준높은 연주를 들려주고 있었고, 브로큰발렌타인은 지금 벌인 경연이 사실상 결승이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최고의 퀄리티를 보여주었다. 다른 대부분 팀들을 아마추어로 만들었다. 유영석의 심사평에 동의한다. 단지 그들의 상대가 톡식이었을 뿐이었다.

경연 말고도 경연의 뒷얘기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확실히 톡식의 사운드메이킹에 대해서는 상당히 전문적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과연 그런 식으로 기타와 드럼 둘이서 베이스도 없이 그런 꽉찬 소리를 낼 수 있었구나. 더 나이 들어 후회하지 않기 위해 한 번 음악에 모든 것을 걸어보겠다던 브로큰발렌타인의 보컬 반의 각오는 여전히 울컥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것이 있었다. 과연 나는 꿈을 꾼다 하면서도 그 꿈에 모든 것을 걸어 본 적이 있는가. 후회는 하지 못해서 하게 되는 것이지, 이미 했는데 실패하여 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미련은 그곳에 두고 온 자신의 열정에서 비롯된다.

투스테이의 기타에 낙서처럼 쓰여진 진수성찬, 이븐더스트, 블루니어마더의 이름이 참으로 아련했다. 그게 한 조라는 것일 게다. 경연을 치르고 경쟁하여 떨어진 이들이지만 그래도 같은 조로써 함께 연습하고 교분을 나누었다. 떨어진 이들의 이름을 걸고 무대에 오른다. 지난주에는 블루니어마더가 진수성찬과 이븐더스트의 이름을 붙이고 나오더니만 이번에는 블루니어마더가 추가되었다.

액시즈는 역시 고등학생들이었고. 투스테이의 승리를 위해 비장의 기타를 내주는 체리필터 역시. 정원영은 코치이기 이전에 톡식의 팬을 자처하고 있었다. 그들이 만들어가는 음악들이 즐겁다. 노브레인으로 인해 브로큰발렌타인은 한 꺼풀 껍질을 벗은 듯하고. 이제까지 답답하게도 느끼던 소리들이 훨씬 자유롭게 근원을 두드려 온다. 아직도 그들은 발전할 여지가 있었다.

일주일을 기다렸다. 아니 대진표가 나오고 한 달 가까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항상 꿈을 꾸었었다. 톡식이 이기는 꿈을. 혹은 브로큰발렌타인이 이겨 결승까지 오르는 꿈을. 그 현장에 필자가 있었다. 최고의 추석선물이었을 것이다. 그 전율과 그 감동과 그 황홀한 순간들이. 심장이 뛰고 있었다.

최고의 무대였다.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보여주는 경연이라는 사실마저 잊은 최고의 공연이었다. TV 앞에 아무 일 없이 앉아 있는 자신이 미안할 정도였다. 무대에 서 있는 그들은 그렇게 아름다웠다. 토요일에는 드라마보다 탑밴드! 최고의 프로그램일 것이다. 항상 감사한다.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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