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4.12.06 08:48

미생 15회 "그래도... 내일 봅시다!"

장백기가 장그래의 시간을 인정하는 의미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한국의 교육은 걸러내기 위한 과정이다. 한 사람이라도, 다만 하나라도 더, 그러나 일단 한 번 뒤쳐지기 시작하면 철저히 버려진다. 살아남은 아이들이 다음에도 계속 살아남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만도 버겁다. 그렇게 마지막 과정까지 견뎌내면 그들은 승자가 된다. 패자의 비참함은 승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이기도 하다. 자신은 끝까지 살아남았다.

"우리가 계속 우리로 남아있을 수 있으려면 대기업에 들어가야 한다."

현실이다. 서울대가 있고, 연고대가 있으며, 그 아래 서성한중경외시가 있다. 그나마 인서울이고 지방대는 많이 어렵다. 하물며 4년제 이하와는 넘을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 기업도 규모에 따라서 연봉과 복지에서 큰 차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모두가 선망하는 대기업이지만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항상 한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승자와 패자로 나뉜다. 단순히 명함에 쓰여진 직장의 이름이 다른 수준을 넘어선다. 대기업을 목표로 한 경쟁에서 승리한 자와 패배하여 낙오한 자로 나뉜다. '우리'란 승자의 다른 이름이다.

▲ 드라마 '미생'의 배우 강하늘, 변요한, 강소라, 임시완, 이성민, 김대명(왼쪽부터). ⓒ스타데일리뉴스

장그래(임시완 분)와도 인턴동기인 이상현(윤종훈 분)이 분노하는 이유일 것이다. 자격이 없는 자가 분수에 맞지 않는 자리에 올랐다. 그 자격을 갖추기 위해 자신들은 잠시의 휴식도, 안락도 모두 포기한 채 모든 노력을 기울여 왔었다.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지만 인내했고 견뎌냈다. 자기 한 사람을 위해 부모님 역시 많은 것을 희생해야 했었다. 승자가 되기 위해서. 그래서 승자가 되었고 지금껏 승자로써 살아올 수 있었다. 앞으로도 그렇게 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승자에게 주어져야 할 보상이 전혀 엉뚱한 사람에게 가버리고 말았다. 전혀 자격도 되지 않는 사람에게 자격이 필요한 자리가 주어지고 말았다. 최소한 자기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비슷한 정도는 되는 한석률(변요한 분) 정도만 되었어도 납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원작과는 다르게 장백기(강하늘 분)가 굳이 장그래와 함께 한국기원을 찾아야 했던 이유였다. 장백기 역시 이상현과 입장이 다르지 않았다. 장백기 자신이 가진 '스펙'은 그동안 자신이 노력해 온 시간들에 대한 증명이었다. 이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 승자에게 필요한 자격들을 갖추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고 양보해야 했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거치고 마침내 모두가 선망하는 대기업에 정사원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원인터네셔널'이라고 하는 대기업의 사원증은 그동안의 희생과 노력들에 대한 보상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고통스러운 과정들을 전혀 거치지 않은 장그래가 거의 거저나 다름없이 그 보상을 손에 넣으려 하고 있다. 동기가 된 것은 어차피 계약직에 불과하니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한참 아래에 있어야 할 장그래가 자기보다 벌써 한참은 앞서간 듯 보이는 것은 도저히 견디기 힘들다. 그것은 현실의 부조리에 대한 배신감이며 분노다. 옳지 못하다.

장백기 역시 원작과는 달리 엘리트로서의 자의식을 강하게 드러나는 강한 개성을 가진 캐릭터로 재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장백기가 장그래를 동료로써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만한 계기가 필요하다. 장백기의 엘리트다운 자부심과 자존심을 만족시킬 수 있는 무엇이어야 한다. 결국 장그래의 시간이어야 한다. 장그레에게도 자신과 같은 가치있는 시간들이 있었다. 원작에서보다 장그래의 재능과 실력을 더 강조해서 들려주는 것은 그래서다. 심지어 그다지 크게 상관도 없어 보이는 장그래의 학교성적까지 과장해서 들려주고 있다. 어려서부터 바둑을 시작했는데 바둑을 병행하며 학교선생님이 한국기원까지 쫓아와 말릴 정도로 성적이 좋았다. 장그래가 입단을 못한 것은 집안형편보다 공부에 너무 많은 노력을 낭비해서다. 어쨌거나 장그래의 시간 역시 장백기가 충분히 인정하고 납득할만한 무게와 가치를 지녔다. 그러고서야 비로소 장그래의 장점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

캐릭터가 사건을 만든다. 장백기라고 하는 캐릭터 하나가 바뀜으로써 드라마의 내용까지 바뀌고 있다. 안영이(강소라 분) 역시 원작에서의 완벽에 가까운 모습보다는 일상적인 고민들에 평범하게 괴로워할 줄 현실적인 캐릭터로 바뀌고 있었다. 부모이기에 단호히 끊어내지 못한다. 아버지의 무리한 요구에 반발하면서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 노력한다. 아마 대부분의 자식들이 안영이와 같을 것이다. 부모가 아무리 밉고 싫어도, 아무리 화나고 원망스러워도, 결국 자식이기에 부모를 걱정하게 된다. 살가운 모습은 보이지 못해도 무어라도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려 노력한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자기에 대한 분노가 자칫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잘못 전달되는 경우도 있다. 원작의 안영이는 사실 여자로서 별다른 매력을 느끼기 힘들다. 연민하게 된다. 완벽함 뒤에 그런 아픈 그늘이 숨어 있었다.

하대리(전석호 분)가 안영이에게 화내는 것은 결국 화날 정도로 안영이를 걱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어라도 고민을 털어놓으면 도움을 주고 싶은데 안영이가 그것을 거부한다. 어떻게든 안영이에게 다가가 그녀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데 안영이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안영이도 그것을 안다. 그래서 더 미안하다. 부모의 이야기는 아무에게나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부모의 잘못과 관련된 이야기면 자칫 부모를 욕되게 할 수 있다. 호의가 항상 선의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싸울 만큼 친하다. 화낼 만큼 가깝다. 안영이는 이제 자원팀의 일원이다. 그녀의 노력은 보상을 받았다.

이대로 참으며 기다리다가 자신도 똑같이 그렇게 될까 그것이 두렵다. 그 사람도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사람이 그렇게 된 것도 결국 어떤 계기가 있어서일텐데, 자기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사회초년병 시절 많이 하게 되는 고민이다. 세상의 부조리와 만나면서, 불합리에 분노하면서,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현실에 좌절하면서, 그렇다면 자기도 언젠가는 저들처럼 될까. 실제 시간이 흐르며 그들처럼 되어 버린다. 아직은 순수하다. 순수하게 분노할 줄 안다. 그러나 과연 한석률의 순수는 앞으로도 지켜질 수 있을까. 회사에 남아 있는 동안은 그는 자신을 잊어야만 한다.

원작에서보다 더 빨리 장그래가 고민과 방황을 접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오히려 더 현실적인 묘사였을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자기의 능력으로는 현실의 무엇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분노도 기대가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이다. 불만도 희망이 있을 때 가져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도저히 바뀌지 않는 현실이라면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오상식(이성민 분) 차장의 호의만을 받는다. 영업 3팀의 선의만을 받아들인다. 자기에게 허락된 시간은 이제 1년이다. 그 시간만을 아낌없이 소중하게 쓰려 한다. 체념은 절망을 잊기 위한 마지막 위로다. 차라리 현실이 절망이라면 절망에서 희망을 찾는다. 장그래에게 기운이 넘친다.

장그래는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백기는 무언가 불안하다. 두 사람을 대하는 안영이의 서로 다른 판단이 무척 흥미롭다. 장백기에게는 이것저것 조언도 충고도 많이 한다. 장그래와는 그저 일상적으로 어울릴 뿐이다. 장백기와 더 가까운 듯 보였다. 하지만 그 한 마디가 인상을 바꾼다. 사랑까지는 아니겠지만 안영이의 마음이 어느쪽에 더 가까운가 상상력을 키워볼 수 있을 것이다. 러브라인은 없을 것이라는 애초의 선언이 부담스럽다. 그래도 선남선녀가 함께 있으면 어쩐지 그 사이를 눈여겨보게 된다.

장배기는 순수하다. 이상현도 아직은 사회초년생이라 솔직하다. 위선을 모른다. 사회보편의 정의에 충실하다. 이상현이 장그래에 대해 말하는 내용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 상식일 것이다. 학력이 안되는 노동자는 임금과 처우에서 불이익이 가해져야 한다. 그런데 장백기가 장그래를 인정한다. 서로의 다른 시간의 가치를 인정하려 한다. 흥미롭다. 인상적이었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