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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4.11.30 03:22

미생 14회 "마치 가족같이, 가족이 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물러설 수 없는 이유 '나는 어머니의 자부심이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어떤 사람들은 가까워지면 친구가 되고, 어떤 사람들은 가까워지면 가족이 된다. 가족조차 어쩌면 친구로 여기고, 친구조차 어쩌면 가족으로 여긴다. 거리다. 상대와 자신 사이에 그어진 선이다. 어디까지면 되는가. 어디까지 다가가고 어디까지 허락해야 하는가. 어디까지는 넘어가도 좋은가. 때로 잊는다. 어차피 모두는 서로에게 타인이라는 사실을.

딸같이 생각한다. 하지만 자기 딸이라도 말과 행동은 가려서 해야 한다. 해도 되는 것과 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그러나 부모니까. 낳아 준 사람이니까. 누구보다 자식을 사랑하고 사랑해야만 하는 사람이니까. 사랑이란 구속이기도 할 것이다. 조건이 붙는다. 이기적인 사람이 좋다. 대기업 정직원으로 안정된 직장이 있으면 괜찮을 것이다. 사랑하는 만큼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기대가 생긴다. 바람이 생긴다. 하물며 부모라는 권위와 경제력이라고 하는 수단은 강력한 강제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식을 소유하려 한다.

▲ tvN '미생' ⓒCJ E&M

비정규직이기는 하지만 들어간 곳이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다. 직장 상사가 직접 집에까지 찾아오고, 설이라고 따로 돈까지 챙겨 넣어준다. 양복은 어찌나 그리도 잘 어울리는지. 정규직이라도 되었으면 큰 난리가 났겠다. 계약직이라는 말에 얼굴표정이 바뀌는 유치원 교사 하정연(이시원 분)의 모습과 비교되는 부분일 것이다. 그것이 가족일 텐데. 어쨌든 가족이기에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받아들인다. 하지만 '주의'가 되어 버린 가족은 타인을 가족으로 여기듯 가족마저 타인으로 여기고 만다. 가족인데 부끄럽고, 창피하고, 밉고, 화난다.

한석률(변요한 분)이 상대해야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동안 대리가 되기까지 회사에서 상사들과 동료들과 쌓아온 관계가 있다. 그만큼 끈끈하고 단단하다. 아직 한석률은 그들에게 타인이다. 안영이(강소라 분)는 스스로 막내가 되었다.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으며 팀의 막내로써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안영이가 먼저 나서서 자신의 의견을 말해도 누구 하나 전처럼 그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토록 안영이를 괴롭히던 하대리(전석호 분)조차 안영이를 인정하고 있다. 물론 안영이가 막내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잊는다면 다시 상황은 예전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가족은 암묵의 강제며 폭력이다.

계약직이니까. 자기들과는 다르니까. 원인터네셔널은 좋은 회사다. 어차피 계약직을 기한이 지났다고 정규직으로 전환해서 채용하는 경우는 현실에서 매우 드물다. 정규직으로 채용하기에 조건이 미치지 못하니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것일 터다. 당장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게 되면 가장 먼저 기존의 정규직들이 반발하게 될 것이다. 오랜 시간 아주 힘들게 노력해서 지금의 스펙을 쌓았는데 채용에 있어 구별을 두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역차별일 수 있다. 과연 고졸에, 그것도 검정고시 출신이 정직원으로 채용되었다 했을 때 자신의 스펙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장백기(강하늘 분)가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조건은 곧 자격이다. 자신이 자신일 수 있는 최소한이다. 김동식(김대명 분) 대리도 천관웅(박해준 분) 과장도 그래서 지방대 출신과 경력직이라는 컴플렉스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다.

어차피 떠날 사람이다. 계속 같이 있으며 일할 사람이 아니다. 어울릴 수 없는 조건의 사람이다. 하기는 가끔 잊는다. 오상식(이성민 분) 차장으로 인해 가끔 착오를 일으킨다. 계약직에게 그렇게 책임있는 일을 맡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진짜 형처럼 장그래를 다그치고 다독이고 그를 위해 진심으로 고민하고 걱정해준다. 명절이라고 돈봉투까지 챙겨준다. 김동식 대리는 자신을 형이라 일컫는다. 천관웅 과장도 먼저 다가가 술자리를 제안한다. 인간적인 조언도 들려준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장그래도 착각한다. 그리고 착각에서 깨어난다. 자신은 이들에게 가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족임을 강조하는 가부장적 가장 마부장(손종학 분)으로 인해 안영이는 곤란을 겪지만 그조차도 장그래에게는 부럽기만 한 상황이다. 2년 뒤 계약이 끝나면 동료라 여겼던 사람들과는 영영 남이 되어 헤어져야만 한다. 동기라 여겼던 안영이들과도 어쩌면 다시 만나기 힘든 관계가 될 것이다. 친구가 될 수 있다면.

그냥 같이 일하는 동료다. 직책이 무엇이든, 신분이 무엇이든, 당장 같은 부서에서 같은 일을 서로 나누어 하는 동료인 것이다. 계약이 끝나더라도 그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어차피 정직원이더라도 부서를 옮기거나 업무가 바뀌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단지 나와 가까운 사람이다. 단지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다. 가족 역시 내가 사랑해야 하는 사람이다. 아마 그런 것을 흔히 쿨하다 말하고 있을 것이다. 과도기다. 아직도 사람과 사람 사이는 끈끈한데 사회의 구조 자체는 차갑고 단호하다. 사회적 거리가 개인의 거리가 되어 버린다. 개인의 끈끈함이 사회적 구조를 대신한다. 인정이 사람을 밀어낸다. 아무리 일 잘하고, 그동안 쌓아온 관계가 있어도 결국 장그래는 단지 계약직일 뿐이다. 오상식 개인, 혹은 영업 3팀이라는 개인의 인연은 몰라도 회사라는 구조와 만나면 너무나 참혹할 뿐이다.

그래서 기대조차 가지지 말라고 말린다. 희망을 가져서는 안된다 충고한다. 결국 이루어지지 않을 꿈이고 바람이다. 기대로부터 배반당했을 때, 희망이 실망으로 바뀌었을 때 자신이 감당해야 할 허무와 좌절은 차마 감당하기 힘든 고통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바뀌는 것은 없다. 달라지는 것은 없다. 혼자서 견뎌야 한다. 견디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남들과 같이 노력하지 않은 자신에 대한 징벌이다. 노력한 만큼 보상이 있다면 노력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마땅히 징벌이 따라야 한다. 현실을 알았다.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너무나 완고한 현실의 벽을 느껴야 했다.

거짓말도 반복되면 사실이 된다. 거짓말을 반복하는 사이 가장 먼저 자신이 설득당하고 만다. 그렇게 믿어 버린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그리고 더 이상 거짓말이 아니게 되어 버린다. 필요한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버린다. 그래서 사람의 기억이란 믿을 수 없다. 악의가 있어서가 아닐 것이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고 그 기억이 최전무(이경영 분)에게는 필요했다. 버거운 상대다. 한석률에게 성대리가 그런 것처럼 최전무 역시 얼마든지 필요한 사실과 진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것을 믿도록 만들 힘도 있다. 그나마 오상식 차장이 일만 하려 하기에 아직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어설픈 싸움은 자해에 가깝다.

가족이라는 이기와 가족이라는 폭력,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에 대한 간절함. 정규직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정규직만이 누리는 혜택들을 탐내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일을 하고 싶을 뿐이다. 동료라 여기는 사람들과. 허락되지 않는다. 그는 가족이 아니다. 형이라 불러도, 형처럼 대해주어도 그들은 결코 가족이 될 수 없다. 따뜻한데 시리다. 가족을 돌아본다. 단 한 사람 진정 자신이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그 이름을. 회사가 아니었다. 집이었다. 어머니였다. 그가 돌아가야 할 곳이었다. 너무나 버겁고 벅찬 뜨거움이 있는 그곳은.

세상의 벽을 느낀다. 문득 문을 열고 나서며 맞는 겨울의 찬바람과 같을 것이다. 벽처럼 막아서며 옷틈으로 후비듯 스민다. 그래도 의지할 수 있는 따뜻함이 있다. 기댈 수 있는 단단함이 있다. 그래서 사람은 살아간다. 희망은 꿈이 아닌 의지다. 자신이 견디고 딛고 나가야 할 이유다. 가장 고맙고 아름다운 이름이나. 어머니란. 주저앉기엔 너무나 소중하고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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