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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9.08 07:55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의 안타까움 시선과 신면의 자기연민"

마침내 단종은 양위를 발표하고 김승유는 암살자가 되어 복수를 꿈꾸다!

 
"무엇이든 전하와 마마를 도울 것입니다."
"그것에 네 아비에게 반하는 것이라도 말이냐?"
"...!"
"되었다. 마음이라도 고맙구나."

그리 모질게 아버지 수양대군(김영철 분)을 대하고 나서도 차마 대답하지 못하는 세령(문채원 분)이나 그것을 안타까이 바라보는 경혜공주(홍수현 분)의 눈빛이나. 결국 세령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그녀에게는 사실상 아무런 책임도 없음을 이해하고 마는 것이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단지 수양대군을 아비로 두었을 뿐. 경혜공주 역시 문종을 아비로 두었고 단종을 동생으로 두었을 뿐이다. 그러나 시대는 그런 두 사람의 평온한 일상조차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누구보다도 가깝던 두 사람의 동기와도 같은 우정조차도. 그래도 자존심마저 굽히고 수양대군을 찾아가 무릎을 꿇었을 때, 냉대받는 그녀를 옆에서 위로해주는 것도 세령 뿐인 것이다.

그것은 체념이었을 것이다. 금성대군(홍일권 분)마저 잡혀가고 남편 정종(이민우 분)조차 끌려가게 되었을 때 더 이상 수양대군에게 대항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같은 깊은 체념과 절망이 비로소 주위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제서야 비로소 세령이 보인다. 어쩌면 아버지 수양대군으로 인해 가장 괴로울 당사자일. 하기는 그래서 정종에 대한 의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김승유(박시후 분)로부터 받은 가락지를 세령에게 전한 것이기도 할 게다.

마침내 금성대군과 정종의 목숨을 볼모삼아 단종을 압박하자 단종은 그 압력에 굴복하여 수양대군에게 양위를 결정하고 만다. 남은 것은 겉치레에 불과한 요식절차일 뿐. 그토록 단종을 지키고자 노심초사해왔건만 경혜공주와 정종, 그리고 금성대군의 노력은 결국 그들을 살리고자 했던 단종의 결단으로 인해 무위로 돌아가고 만다. 하기는 그들이 모두 죽고 나면 단종 혼자 무슨 힘으로 수양대군의 위협을 견뎌내겠는가.

실제의 역사에서도 그랬다. 단종은 매우 영민한 군주였다. 나이는 어렸지만 황보인과 김종서 등이 황표정치를 펼칠 때에도 그는 충분히 자기 의견을 원로대신들에게 전하고 있었고, 그래서 정작 계유정난의 명분이 되었던 황표정치는 채 1년이 되기도 전에 중단된 상태였었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어 단종이 장성하여 성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 수양대군과 그 일파에 의해 주위의 인물들을 볼모로 압력을 가함으로써 불과 즉위 3년만에 양위를 발표하고 물러나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것을 드라마는 다른 것을 모두 배제한 채 조금 더 간략하게 압축해 보여주고 있을 뿐.

드라마의 매력일 것이다. 단종의 즉위와 계유정난, 그리고 수양대군의 찬탈, 아니 경혜공주의 결혼까지 생각한다면 무려 7년이 넘는 시간을 두고 일어난 사건들일 것이다. 경혜공주가 결혼을 하여 사가로 나가고, 문종이 승하하고, 단종이 즉위하고, 황표정치가 실시되고, 계유정난이 일어나고, 마침내 단종이 수양대군에 양위를 발표하기까지. 그러나 그같은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은 김승유와 세령의 비련의 사랑이라는 드라마의 주제를 위해 과감하게 생략되어 묘사된다. 자잘한 가지는 치고 사건들을 촘촘히 배치함으로써 보다 집중도를 높이고 극적인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이다.

김종서가 죽고 무려 2년의 시간이 지나 수양대군이 단종으로부터 양위를 받는다. 정종이 죽는 것은 수양대군이 양위를 받고서도 2년이 더 지나서였다. 과연 실제 역사대로 사건이 흘러갔을 때 지금과 같은 몰입과 긴장이 가능했겠는가. 김종서가 죽고 바로 금성대군이 나타난 다음 금성대군에 의해 수양대군을 제거하려는 모의가 이루어지다가 그만 사전에 발각되어 도리어 단종이 양위하는 빌미를 제공하고 만다. 아예 시간의 흐름이라는 자체를 무시하려는 듯 계유정난에서 세조의 찬탈까지 숨가쁘게 전개되며 경혜공주와 세령의 비극이, 그리고 수양대군에 대항하려는 정종과 김승유의 비장함이 더욱 고조되어 간다. 4년의 시간은 그에 비하면 너무 길다.

더구나 그렇게 사건들이 급박하게 전개되기에 역사적 사건들로부터 소외되는 개인이라는 것도 가능해진다. 역사는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는데 그러나 세령과 같은 주변인들은 그것을 제대로 따라잡는 것조차 버겁고 부담스럽다. 당사자일 김승유나 정종에게조차 시대는 그들과 전혀 상관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개인은 더 작아지고 그래서 그들의 절박함과 간절함, 비극은 더욱 깊어진다. 차라리 실제의 역사에서처럼 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면. 실제의 역사에서 단종의 양위는 상당히 오랜 기간의 준비작업을 거쳐 이루어지고 있었다. 단종이 양위하겠다 했을 때 금성대군과 정종이 받는 그 충격처럼 시청자 역시 그 비극 안으로 함몰되어 간다.

바로 이런 것이 드라마다. 역사 이전에 드라마라는 것이다. 역사 또한 드라마라고 하는 이야기에 있어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이야기의 배경에 불과한 것이다. 큰 줄기는 건드리지 않되 사소한 부분에서는 드라마에 충실할 수 있도록 적절히 손질을 가한다. 심지어 시간의 흐름이라는 자체가 필요없다 여겨지니 그것을 철저히 무시하고 만다. 어설프게 고증을 이야기하기보다 드라마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에 충실하려는 그 명쾌함이 오히려 즐겁다고나 할까?

차라리 역사를 전면에 내세우고서도 역사왜곡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고 마는 여타의 드라마에 비해 한참 더 낫다고 할 것이다. 헷갈릴 일도 없고 역사에 무례를 저지를 일도 없다. 실제의 역사가 궁금하다면 관련자료를 찾아 읽으면 그 뿐. 이것은 단지 시대의 격랑에 치이며 너무나 버거운 가슴아픈 사랑을 해야 했던 한 쌍의 가련한 연인들에 대한 드라마다. 시대적 배경은 그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한 장치에 불과할 뿐이다. 작가의 과감한 시도에 찬사를 보낸다.

필자 개인적으로 이같은 드라마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괜히 지루하고 딱딱한 역사보다는 그 역사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크게 핵심은 놓치지 않되 보다 역사를 즐기며 볼 수 있도록. 물론 역사에 대한 학술적 엄밀함은 따로 엄격하게 지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그것, 이건 이것.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드라마다. 드라마는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없는 역사도 이로써 얼마든지 재미있게 쉽게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다. 세령과 김승유의 사랑은, 그리고 경혜공주와 정종의 사랑도 그래서 역사 속에 그토록 가련하고 아름답지 않던가.

아무튼 그런 이유로 이번에도 역시 시대의 거센 격랑 한가운데서 가련하게 흔들리고 있는 신면의 나약한 내면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오고 말았다.

"그래도 네 놈 만큼은 나를 조금은 이해해주는 줄 알았다. 아니었구나. 너마저도 날 짐승취급하는구나!"

결국은 자기연민일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 김승유에게 말한 운명이라는 말과 이어진다. 운명이란 더 이상 도전도 저항도 포기한 나약한 자의 변명일 것이므로.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힘 앞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나란 인간은 어쩌면 이리도 가련한가.

사람이 결국 악을 증오하면서도 악을 저지르는 이유다. 아니 정확히는 악을 증오하기 때문에 악을 저지를 수 있다. 악을 증오하는 자신으로써 악을 저지르는 자신을 합리화할 수 있으므로. 악을 증오하지만 어쩔 수 없이 악을 저지른다. 그래서 후회하고 원망하지만 그러나 그는 결코 악을 거부하지 못한다. 무고한 정종을 잡아들이라 하는 명령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하고 마는 신면처럼.

바로 위악의 단계다. 사람의 타락이란 위선에서 시작해서 위악으로 끝난다. 위선이란 자기가 갖지 못한 선에 대한 동경이며 경외이다. 위악이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악에 대한 합리화이며 자기가 갖지 못한 선에 대한 질투이며 증오다. 원래 세상은 그런 것이라며.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그러나 아직 남은 신면의 위선은 그같은 자신의 위악을 누군가 알아주기 바란다. 이 단계를 넘어가면 선 자체를 증오하며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증오하며 악을 행하는 마지막 단계에 이르게 된다. 그것을 맹자는 자포자기라 말했다. 상종할 바가 못 된다.

과연 세령의 거부와 정종의 외면이 신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그의 내면의 양심을 일깨우게 될까, 아니면 도리어 그를 더욱 위악하게 만들까. 하기는 위악하려는 자체가 이유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아직은 신면도 순진한 구석이 남아 있다는 증거라 할 것이다. 그에 비하면 수양대군이나 온녕군, 한명회, 신숙주, 권람 등 그 일파들은 전혀 그같은 이유따위는 필요 없이 확신을 가지고 거리낌없이 악을 저지르고 만다. 아니 그것이 악이라는 생각조차 없다.

수양대군이 딸 세령의 반발에 곧잘 상처입은 표정을 짓곤 하는 것이 그래서다. 실제 그는 세령의 말에 상처받고 있었다. 완고하게 믿고 있던 자신의 정의가 정작 사랑하는 딸로부터 부정되고 있다는 사실에, 그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되는 자체가 그로서는 견딜 수 없는 상처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에 반발하는 세령에 상처를 받으면서도 결코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단지 딸이 자기를 몰라주는 것이 아비로써 안타까울 뿐이다.

자신은 이미 친구인 김승유를 배반하여 그 가족마저 몰살시키고 김승유 또한 죽도록 방관했으면서도 도리어 정종의 배반에 상처입은 표정이라니. 정종이 그럴 줄은 몰랐다. 정종은 자기를 알아 줄 것이라 믿었다. 정종만큼은 친구라 생각했었다. 에고인 것이다. 그의 자기연민이 만들어낸 바람. 자기를 더욱 불쌍히 여기기 위해 가지고 있던 믿음. 그래서 그 배신감은 더 크다. 자기가 김승유를 죽인 것은 그야말로 어쩔 수 없는 불행한 선택이었지만, 정종의 배반은 그런 자신을 더욱 불행한 나락으로 밀어 떨어뜨리는 행위다. 자기연민에 빠진 전형적인 모습이다.

드디어 단종이 양위를 선언하며 수양대군이 세조로 즉위하려는 듯하고. 그런 한 편으로 정종가 만난 김승유는 암살자가 되어 수양대군 일파를 단죄하려 든다. 그리고 그런 김승유를 신면은 왈짜패인 공칠구를 이용해 압박해 들어간다. 공칠구는 김승유를 돕고 있는 조석주(김뢰하 분)과 관계가 있다. 스스로를 김종서의 아들이라 소개한 왕노걸(윤종화 분)의 존재는 어쩌면 김승유를 위험에 빠뜨리는 동시에 김승유를 살리는 열쇠가 될 지도 모르겠다. 한양의 암흑가와 수양대군 일파의 세도가를 넘나드는 활극이 예상된다. 분명 비극으로 끝나게 될 처절한 싸움이. 원래는 양녕대군이 한 일을 단종 1년 이미 죽어 사라진 온녕군이 대신하고 있는 이유는 죽임을 당하기 위해서였던 모양이다. 복수는 잔혹하고 단호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액션에 있어서만큼은 최근 방영되었거나 방영중인 드라마 가운데 단연 최고라 생각한다. 갈결하면서도 힘이 있다. 박력과 함께 화려함까지 느껴진다. 무술이 멋있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다. 살기가 있기 때문이다. 상대를 죽이고자 자기가 가진 모든 힘을 다한다. 생사의 간극에서 느껴지는 그 치열함이 무술이 갖는 멋인 것이다. 겉멋든 잡스러운 동작을 최대한 배제한 단순한 동작들에서 그 살기를 느끼게 된다. 그들은 지금 진짜로 서로를 죽이려 하고 있다. 장차 수양대군 일파와 단신으로 겨루어야 하기에 더욱 기대하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어떤 멋진 액션이 펼쳐질 것인가.

어느새 세령은 아버지 수양대군의 실체를 알고 그와 대립하려 들고, 그러나 경혜공주는 그럼에도 아버지이기에 어쩔 수 없는 세령의 처지를 동정한다. 조석주에 의해 구함을 받은 김승유는 정종을 만나 비로소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찾게 된다. 신면의 절망과 정종의 분노. 경혜공주의 체념. 수양대군의 야심. 엇갈리는 감정과 욕망들. 그리고 운명들. 통곡과 분노와 통쾌한 웃음소리가. 죽음이.

인물들이 처한 상황이, 특히 그 비극이 더욱 보는 이의 가슴을 옭죄게 만든다. 치밀하게 짜여진 구조의 얼개며,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며, 과연 이것이 드라마인가? 아니면 실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인가? 어느새 드라마 속의 인물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분노하고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며 원망하여 누군가를 끊임없이 증오하게 된다. 헤어나지 못한다.

이런 드라마도 가능하구나. 역사의 냉엄함이. 그러나 그러면서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의 가련함이. 역사의 수레바퀴는 굴러가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웃고 울고 화내고 원망하고 사랑한다. 새삼 감탄하는 바다. 다시 하루의 기다림을 버거워한다. 나는 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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