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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4.11.22 10:04

미생 11회 "성장의 확인, 비로소 일을 시작하다"

숙제하는 장백기, 인정받는 안영이, 고통받는 한석률, 일하는 장그래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과오를 피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어렵다. 오물을 치우려면 오물을 직접 만져야 한다. 누구나 싫어하고 때로 혐오하는 그것과 함께 뒹굴어야 한다. 자신의 일상을 깨끗이 되돌려주는 환경미화원이건만 어느새 사람들은 그들과 거리를 두려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오물을 더럽다고 피한다면 청소는 누가 하게 될까?

실패한 사업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 어떤 이유와 과정에 의해 실패했는가를 밝히고 다음의 성공을 위한 자료로 삼는다. 하지만 부정에 의해 더럽혀진 사업은 아니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그저 불쾌한 이름으로만 기억된다. 누가 비리를 저질렀다. 그로 인해 누가 책임을 졌다. 하지만 그것은 상사맨의 일이 아니지 않은가. 상사맨은 어떻게든 좋은 아이템을 찾아 사업을 성공시키고 큰 이익을 내는 사람들이다. 고작 한 사람의 잘못된 선택에 의해 그토록 수많은 노력들이 가치없이 오물속에 썩어간다. 좋은 아이템이다. 큰 이익이 될 유망한 사업이다. 오물만 털어내면 원래의 빛을 되찾을 귀한 보석이다.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곤란을 겪은 당사자의 체면과 입장을 고려한다. 자칫 상처를 들쑤시고 쓰레기통을 헤집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괜한 풍파만 일으키고 여러 사람 입장만 난처해지고 만다. 그러나 돈이 되기에 시작한 사업이다. 가능성이 있기에 승인했고 추진했던 사업일 것이다. 원인터네셔널의 사업이었다. 신입사원이기 때문이다. 외계인인 때문이다. 세상의 바깥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들어왔다. 다른 사고와 가치관을 갖는다. 천관웅(박해준 분) 과장은 장그래의 반대편에 있을 것이다. 그는 상사맨이기 이전에 철저한 회사원이다. 회사의 논리와 입장에 충실하다. 갈등은 없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영업3팀'이 판타지라는 이유일 것이다. 그들은 오로지 '상사맨'으로서만 존재한다.

▲ tvN '미생' 웹툰과 드라마 이미지 ⓒtvN

내부고발자에 대한 내부의 시선이 따갑다. 역시 관계 때문이다. 관계로부터 인정이 비롯된다. 박과장의 비리로 인해 책임을 지게 된 사람들과의 관계와 그로부터 비롯된 인정이 새로운 책임을 만들어내게 된다. 차라리 그쪽이 더 가깝다. 회사의 이익보다도, 보편의 정의보다도, 내가 아는 누군가의 처지가 더 가깝게 여겨진다. 박과장의 비리를 밝히더라도 그 사람들에게 책임이 돌아가지 않는 방법을 찾았더라면. 자기와 가까운, 혹은 동질감을 느끼는 누군가만 문제없으면 상관없는 것이다. 그래서 오차장(이성민 분)도 고민했던 것이었다. 그로 인해 자칫 김부련(김종수 분) 부장까지 다치게 될 수 있다. 김부장의 선택이 박과장의 비리를 파헤칠 수 있게 했다. 오차장이 김부장을 염려한 이상으로 회사와 동료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박과장의 비리가 묻히게 되면 가장 피해입는 것은 회사와 자신의 동료들이다. 부하직원들을 포함한.

용기다.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 김부련 부장의 경우는 지금 자신의 자리와 명예까지 내걸고 감사를 지시했었다. 당장 누군가 혹시 모를 자신의 잘못을 세상에 드러낼 존재가 가까이에 있다는 것은 당사자의 입장에서도 상당한 스트레스다. 차장으로 승진하고 특별보너스도 받았지만 영업 3팀의 앞날은 결코 순탄치 않다. 천과장이 선을 긋는 이유도 그래서다. 일종의 내적 가이드다. 외부에서 보는, 그리고 외부에 보여야 할 영업 3팀의 모습에 대한, 영업 3팀이 견뎌야 할 시련이기도 하다. 천과장의 영업 3팀에 대한 감정은 영업 3팀과의 술자리 이후 집에 들어와 조용히 물만 마시고 잠드는 모습에서도 알 수 있다. 그들과 마신 술은 진짜 술이었다.

한석률(변요한 분)의 시련이 끊이지 않는다. 업무를 떠넘기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술값까지 뒤집어씌운다. 그리고는 오히려 한석률더러 소시오패스라고 말한다. 한 수, 아니 몇 수 위의 고수가 있었다. 그저 말 뿐인 한석률에 비해 성대리(태인호 분) 처세가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다. 누구에게 잘보여야 하고 누구를 이용할 수 있는지 정확히 안다. 누구에게 어떻게 아면 자신에게 어떤 결과로 돌아오게 될 것인지. 윗사람에게는 아무리 잘해도 부족하며, 아랫사람에게는 어떻게 대하든 결국 반발도 저항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주도권은 자신이 쥐고 있다. 성대리를 적대하는 것은 한석률 한 사람 뿐이다. 버거운 상대다. 그에게는 지금의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어떤 수단도 없다.

원래는 장그래(임시완 분)가 고민했어야 할 일이었을 것이다. 원작과는 달리 강대리(오민석 분)의 장백기(강하늘 분) 기르기 미션의 하나로서 주어진다. 하나의 문장을 최소한으로 줄이라. 최대한 명확하면서도 간결한 문장으로. 불확실하거나 모호한 표현과 불필요한 어휘들을 최대한 배제하고, 필요한 어휘더라도 의미를 보다 명확히 할 수 있는 전문용어 등을 사용해 직관적으로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문장으로 다듬어낸다. 결과적으로 자신들만 쉽고 빠르게 읽고 이해할 수 있으면 된다. 일상의 언어가 아닌 회사의 언어다. 상사맨의 언어다. 말을 배우는 과정일 것이다. 장그래가 무역용어를 사전을 통째로 외워가며 알게 된 것처럼.

비로소 하대리(전석호 분)로부터 안영이(강소라 분)가 인정받기 시작했다. 남자와 여자를 떠나 한 사람의 팀원으로서 자기 몫을 다하려는 의지와 노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니다. 자신을 믿는 만큼 서로를 믿어야 한다. 하대리가 안영이를 믿는 만큼 안영이 역시 하대리의 믿음에 보답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한 때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일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실력은 나중 문제다. 팀원이 되지 못한 실력은 단지 독불장군에 불과하다. 박과장이 실수한 이유다. 원작에서 안영이는 자신의 카리스마로 팀원들을 납득시키고 자신을 따르도록 만들었다. 현실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 일개 신입사원이.

뒤늦게 시련이 시작된 한석률에 비해 장그래, 장백기, 안영이 모두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장그래의 진짜 고민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어느 정도 회사에서 자리를 잡고 나면 진짜 자기의 고민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회사원이 되어간다. 상사맨이 되어 간다. 모두가 그들의 스승이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에서든. 그 모습들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역시 '미생'이란 '완생'으로 가기 위한 과정일 것이다. 성장하는 이야기다.

비로소 하나의 큰 사건이 시작된다. 처음일 것이다. 지금까지는 회사생활을 하면서 맞닥뜨릴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의 에피소드들이 중심이 되고 있었다. 슬프고, 괴롭고, 외롭고, 그러나 성취감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제법 큰 일이다. 직접 자신의 발로 뛰며 일을 만들어간다. 시작은 반역이었다. 일개 신입사원의 아이디어였다.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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