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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9.05 09:19

내사랑 내곁에 "전지적 배정자 시점의 이유"

드라마란 비극을 전제하며, 비극은 악을 필요로 한다.

 
원래 드라마란 비극을 전제한다. 단지 비극인 채로 끝나는가. 반전이 일어나 해피엔드로 끝나는가. 그리고 비극이란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모순으로부터 비롯될 것이다. 사회적인 모순이기도 하고 인간이기에 갖는 개인의 모순이기도 하다.

확실히 고석빈(온주완 분)과 배정자(이휘향 분)의 존재가 아니었다면 <내사랑 내곁에>라는 드라마가 지금까지 끌고 올 것도 없었다. 배정자의 지나친 기대와 압박이 아니었다면 고석빈이 아무런 생각 없이 충동에 떠밀려 도미솔(이소연 분)과 사고를 칠 일도 없었을 것이고, 배정자의 극성과 고석빈의 비겁함이 아니었다면 도미솔이 미성년자로써 철저히 고립된 채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는 안타까운 일도 없었을 것이다. 도미솔이 학교를 그만두고, 엄마인 봉선아(김미숙 분)마저 하던 피아노학원마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어 살던 동네를 떠나게 된 것도 배정자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과연 우리 사회에 미성년자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강한 터부가 없었어도 도미솔은 그와 같은 힘들고 아픈 일들을 겪어야 했을까? 원래는 엄마 봉선아 역시 그러한 구조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었다. 임신한 친구와 더 이상 어울리지 말라 했었고, 도미솔의 임신을 알고서는 쉬쉬하며 낙태하도록 강요하고 있었다. 도미솔과 아픈 사랑을 하고 있는 연인 이소룡(이재윤 분)은 바로 그렇게 미혼모가 되어 버린 엄마로 인해 외할머니의 손에 의해 버려지고 있었다. 외손자를 버려야 했던 외할머니 강정혜(정혜선 분)나 강정혜의 딸이자 이소룡의 생모였던 선아(이혜숙 분)의 심정이란 과연 어떠했을까?

그러나 비극은 단순히 비극으로만 끝나서는 안 되는 것이기에. 비극이란 어차피 비정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나는 가만히 있으려 한다. 그러나 주위가 나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불행이란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무언가 나를 불행으로 떠민다. 그것은 신이기도 하고, 운명이기도 하며, 실재하는 누군가이기도 하다. 비극이 비극인 채로 끝나지 않으려면 그와 맞서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그와 맞서 그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과연 무엇과 맞서야 하는가.

바로 그것이 드라마에 있어 주제라 하는 것이다. 만일 <내사랑 내곁에>가 정치드라마였다면 드라마에 있어 도미솔과 봉선아, 이소룡 등 등장인물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서는 철저히 사회정치적으로 접근하려 들었을 것이다. 아니 아예 고석빈과 배정자가 저지르고 있는 행동들에 대해서조차 사회정치적 입장에서 접근하고 해결하려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사랑 내곁에>는 딱 개인의 불행과 그 극복을 그리는 주말저녁시간대의 멜로드라마다. 그 주된 시청자층부터가 그런 딱딱한 이야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른 대상이 필요하다. 마음껏 그 분노와 원망과 공포와 증오를 쏟아부을 대상이.

그렇다고 많아서는 곤란하다. 하나면 족하다. 많으면 산만하다. 하나의 대상에 그러한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몰아 넣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을 때 그로 인한 쾌감 역시 극대화될 수 있다. 한 마디로 그 과정이나 결과에 있어서의 시청자의 몰입도나 재미 또한 극대화시킬 수 있다. 여럿이면 그만큼 긴장도 만족도 분산되어 버린다. 그래서 악역은 모든 이야기에서 가장 분주한 존재이기도 하다. 하기는 그 한 사람의 존재로 말미암아 드라마의 모든 이야기가 꾸려지고 있을 터이니 말이다.

강정혜로 하여금 외손자인 이소룡이 죽었다고 믿게 만들고, 중간에서 강정혜가 그토록 이소룡을 찾으려 하고 있음에도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을 방해하고, 봉선아와 고진국(최재성 분)이 결혼하려 할 때도 중간에서 그것을 무산시키고, 기껏 잘 이루어지는 것 같던 도미솔과 이소룡의 관계마저 그로 인해 어려움을 겪게 된다. 모두가 긴 이야기를 끌어가자면 필요한 사건들이지만 여러 사람에게 맡겨 놓을 수 없으니 그래서 고석빈과 배정자에게 그 무거운 짐이 지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그만한 이유가 두 사람에게 주어지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분명 자극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음에도 필자 개인적으로 그다지 막장까지는 아니라고 여기는 이유다. 불우했던 배정자의 어린시절과 그로 인한 아들 고석빈에 대한 집착, 어느새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어 버린 진성기업에 대한 미련까지. 오히려 때로 동정하게 된다. 비록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인간이 아닌 괴물의 모습을 가지게 된 그 사연들에 대해서. 인간은 악한 것이 아니라 약한 것이다. 그리고 단지 독한 것이다.

그래서다. 드라마가 때로 전지적배정자시점이라며 비아냥섞인 비판을 듣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오로지 배정자와 고석빈에게만 그를 위한 동기가 주어지고 있다. 모두가 평온한 일상을 영위하는 가운데 오로지 배정자와 고석빈만이 지금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탐욕을 부리며 능동적으로 행동에 나서고 있다. 선하거나, 혹은 경계에 있는 다른 인물들은 그리고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알게 되었을 때 그들에게는 그들이 저지른 행위 만큼의 응징이 뒤따를 것이다. 거기까지가 드라마다.

즉 배정자와 고석빈이 전지적 시점에서 전능을 행할 수 있는 것은 드라마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의 시한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전지와 전능이 끝나는 순간이 드라마가 끝나는 순간이다. 어느새 봉선아에게 모든 것을 들키며 궁지로 내몰려가는 배정자와 고석빈의 모습처럼. 그로 인해 도미솔과 봉선아, 강정혜 등은 비극에 놓이고, 그들을 응징하고 정상으로 되돌림으로써 비극에서 빠져나온다. 한 편의 해피엔드 드라마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더욱 배정자와 고석빈은 무소하고 불위하며 드라마상의 모든 악을 주도적으로 행하게 된다. 그들로 인해 드라마가 존재한다.

아무튼 상당히 안정된 구조를 갖는 드라마라 할 것이다. 하나의 절대적 악과 그를 중심으로 압축되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인물들. 그만큼 다양한 드라마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열쇠는 단순하다. 짧은 한 순간으로도 모든 갈등이 해소되는 카타르시스를 얻을 수 있다. 갈수록 심화되는 비극과 점층되는 그 비극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라는 점에서도 매우 효과적이다.

드디어 이소룡이 자기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이소룡의 어머니 최은희(김미경 분)의 갈등도 깊다. 어쩌면 참으로 공교롭다 할 것이다. 최은희의 너무나 당연한 상식적인 한 마디가 도미솔과 봉선아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었듯 시어머니 정말자(사미자 분)의 너무나 당연한 상식적인 한 마디가 그녀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준다. 하늘의 그물은 성기지만 놓치는 법이 없다고나 할까? 바로 이와 같은 대비가 드라마의 주제의식을 더욱 강조해 보여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인 도미솔은 인정할 수 있어도 아들의 연인인 도미솔은 인정할 수 없다. 그 모순과 위선에 대해서도.

갈수록 궁지로 내몰리는 배정자와 고석빈. 그리고 엄마로써 딸을 위해 더욱 독하게 마음을 다잡는 봉선아. 여전히 도미솔은 착하기만 하다. 악은 하나, 그래서 선도 하나면 족하다. 도미솔과 이소룡이 봉영웅과 더불어 행복하게 웃는 모습만으로도 더욱 드라마를 기대하며 볼 수 있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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