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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9.02 12:26

보스를 지켜라 "천진한 살벌함, 재벌의 우화..."

노은설이 가기를 꺼려하고, 어린아이들이 빠져나오려는 이유...

 
친구가 없다는 딸 서나윤(왕지혜 분)의 말에 황관장(김청 분)은 바로 신숙희(차화연 분)에게로 달려간다. 생각해보니 자기에게도 친구란 신숙희밖에 없다면서. 그래서 신숙희가 추진하고 있는 PS유통 인숙에 자금을 보태겠노라고. 그러나 정작 차봉만(박영규 분)의 계략에 예정보다 더 높은 비용에 인수하게 되자 황관장은 신숙히가 가지고 있는 지분을 담보로 요구한다.

겉으로는 격의없이 대한다. 형수이고 시동생이기 이전에 두 사람은 어렸을 적부터 친구였으므로. PS유통을 인수하기 위해 자문을 구하고 자문을 해주는 동안에는 순간 서로에 대한 오랜 해묵은 감정을 잊고 신뢰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었다. 최소한 차봉만이 TJ그룹과 컨소시엄을 만들어 PS유통 인수에 뛰어들려 한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신숙희는 차봉만의 측근인 박이사를 포섭하여 그의 뒷통수를 노리고 있었다.

하기는 그만큼 걸린 이익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차지헌(지성 분)이나 차무원(김재중 분), 서나윤 등이 그나마 순수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가진 것도, 또 가지려 하는 것도 어른들에 한참 미치지 못할 테니까. 아직까지는 친구나 연인, 가족과의 관계가 그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토록 고민하고 또 후회하면서도 DN그룹이란 차봉만에게 도저히 놓칠 수 없는 부와 권력 그 자체였을 것이다. 신숙희나 황관장 역시 마찬가지다.

너무나 큰 이익 앞에 우정이니 사랑이니 하는 것은 사치에 불과하다. 가족이고 친척이라 할지라도 예외는 될 수 없다. 오히려 더 큰 이익을 위해 얼마든지 그것들은 이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아니 심지어 자신마저 그 대상으로 내던지게 된다. 결혼만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고 싶다는 서나윤의 바람은 그럴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반영한다. 서나윤의 결혼은 이미 정략 차원에서 그룹과 그룹 사이에 차지헌과 차무원을 놓고 저울질되고 있었다. 그것은 저 대단한 차봉만회장조차 감히 함부로 노은설(최강희 분)을 인정할 생각을 못하게 만드는 너무도 높고 단단한 벽이다. 그리고 차봉만 역시 그 세계에 존재하는 한 사람이다.

노은설이 그토록 차지헌과 차무원이 사는 그쪽 동네를 꺼려하는 이유인 것이다. 차지헌과 차무원, 서나윤 등의 그쪽 동네 아이들이 자꾸 노은설의 주위를 기웃거리는 이유다. 결국에 차지헌은 그런 자기 동네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고 노은설의 세계로 편입되기를 바란다. 차무원 역시 자기 동네의 모습을 노은설이 바라는 모습으로 바꾸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서나윤은 마냥 노은설과 함께 있는 것이 좋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노은설과 함께 있을 때 서나윤은 행복해 보인다. 드디어 친구를 찾게 된 것일가?

너무 해맑아서 소름이 끼친다. 친구라고는 언니밖에 없다며 신숙희에게 살갑게 다가오던 그 모습 그대로 신숙희에게서 지분을 담보로 요구하는 황관장의 냉정함이나, 뒤로는 차봉만을 칠 음모를 꾸미고 있으면서도 차봉만 앞에서는 원래의 친구 사이로 돌아가 지나칠 정도로 격의없이 원망을 쏟아붓는 신숙희의 솔직함도 역시. 그만큼 자연스럽다는 것일 게다. 그리고 그런 신숙희에 매달리면서도 TJ컨소시엄을 통해 신숙희를 물먹이려는 계획을 포기하지 않는 차봉만의 모습은 그것은 이미 그들에게 있어 숨을 쉬는 것과 같은 당연한 필연이다.

어떤 때는 그렇게 평범해 보인다. 때로 주책맞고 철이 없는 것이 한심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너무나 자연스럽게 바뀌는 모습이 그들과의 사이에 감히 넘을 수 없는 경계를 긋는 듯하다. 비유하자면 같이 밥먹고 웃고 떠들어도 한참 덩치가 큰 거인의 그것이 보통의 인간들과 같을 수는 없 듯 말이다. 그런 냉혹한 속내를 감추고 그들은 그토록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고 잇는 것이다. 말 그대로 그들은 별개의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더 흥미로워진다. 차지헌은 그쪽 세계를 뛰쳐나오려 한다. 차무원은 그쪽 세계를 바꾸려 한다. 서나윤은 그 경계를 맴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그쪽 동네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노은설이 있다. 차지헌과 차무원은 결국 손을 잡게 될까? 노은설을 두고 경쟁하는 사이인 동시에 그들은 서로에게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사촌형제이기도 했다. 그들은 비로소 어른들이 만들어낸 틀에서 벗어나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독립하여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노은설은 그들에게 보모이기도 하다.

다만 아쉽다면 과연 가난하면 더 인간의 정이 있고 행복한가? 그렇게 재벌가의 비정함을 보며 위로삼을 수 있을 정도인가? 단 돈 몇 만 원에도 싸움이 벌어지기도 하고 아예 평생 원수가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 보통의 서민들의 삶일 텐데. 단지 단위수만 다를 뿐 그들 역시 현실적인 문제로 자신과 주위를 수단으로 여기기도 한다. 낭만적인 가난이나 서민의 삶이란 판타지에나 존재한다. 그런 식으로 만족하고 나면 과연 얼마나 대단하게 좋을까?

그래서 드라마 <보스를 지켜라>는 우화인 것이다. 재벌의 딸이 마치 달동네 높은 좁은 셋방을 낙원처럼 찾아드는 곳에서. 재벌 3세들이 날라리출신의 보잘 것 없는 노은설에 빠져들고, 이제까지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노은설의 세계에 쉽게 매료당하고 만다. 어차피 재벌 보라는 것은 아닐 테니, 보통 사람인 것으로도 상당히 괜찮지 않은가. 그래서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사실 코미디란 자체가 현실의 모순 위에 존재한다. 비극도 마찬가지다. 비극을 통해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에 분노하고 실패하며, 희극을 통해 그런 것들을 비난하고 조롱하고 업수이여긴다. 재벌을 다루는 이상 그로부터 사회적 의미가 도출되지 않을 수 없다. 어째서 드라마는 웃기는가. 그것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이것은 재미있다.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그러나 바르고 활력에 넘치는 서민 처녀와 누구나 부러워하는 재벌가 선남선녀의 만남. 그리고 얽힘. 상당히 뻔하지만 그런 가운데 색다름이 있다. 김재중의 연기는 안정되었고 왕지혜는 천연덕스러움을 넘어서고 있다. 박영규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김청과 차화연. 드라마는 결국 사람의 이야기다. 상당히 감탄케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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