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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9.02 07:45

공주의 남자 "세령, 김승유를 대신해서 화살에 맞다!"

어설픈 인질극, 한계인가? 고도의 계산인가?

 
솔직히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역사적 배경 위에 현대적 감수성을 옮겨 놓은, 그래서 역사적 사실마저 임의로 재구성한 사극 아닌 사극이라 하지만 20세기도 아니고 딸을 인질삼아 아버지를 불러내는 인질극이라니. 그것이 과연 통하리라 생각하는 것일까?

다른 사람도 아닌 수양대군(김영철 분)이 단지 딸을 구하고자 아무 대비도 없이 나타나리라 믿는 김승유(박시후 분)도 우습고, 아무리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지만 딸을 구한다고 그 자리에 나타난 수양대군 또한 어이없기 그지 없었다. 더구나 그런 수양대군을 맞는 김승유의 준비란 달랑 활 하나. 세령(문채원 분)의 말처럼 마치 죽기를 바라는 듯한 무모하기까지 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생각하게 되었다. 아마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작가의 한계이거나. 아니면 작가가 고도로 의도한 연출이거나. 세령이 김승유를 대신해서 화살에 맞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와 같은 억지스런 상황을 꾸며낸 것이거나, 그도 아니면 그조차 김승유의 복잡한 내면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이거나.

원래 서사멜로라는 자체가 로맨스물에서 파생되었다. 그래서 서사멜로다. 시대의 비극 속에 사랑의 아픔을 겪는 가련한 연인들. 그들은 시대의 가엾은 희생양이다. 그리고 로맨스물의 장점이자 한계가 그같은 장면연출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한다는 것이다. 어떤 멋지고 아름답고 애닲은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때로 사소한 부분은 아무렇지 않게 무시한다. 그래도 로맨스를 소비하는 주된 수요층들은 그것을 감수한다. 그들이 보고자 하는 것도 그것이다.

이미 원수로 갈라서게 되었다. 세령의 아버지 수양대군이 김승유의 아버지 김종서를 죽이고 그 일가를 몰살함으로써 세령과 김승유의 사이에도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깊은 원한의 강이 흐르게 되었다. 서로에 대한 모든 감정과 기억과 작은 미련마저 용납하지 못하고 삼켜버리고 마는 검고 흉측한 피의 강이었다. 그것을 건너기 위해서는 따라서 제물이 필요했다. 김승유의 사무친 원한으로부터 세령에 대한 감정을 다시금 일깨울 수 있는.

그래서 세령은 그 자리에 있어야 했던 것이었다. 김승유와 수양대군과 마주하는 자리에. 누군가 반드시 한 사람은 죽어야 하는 증오와 원한과 탐욕을 그녀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죽어야 했다. 죽음으로써 김승유를 살려야 했다. 수양대군에 의해. 수양대군의 수족이 되어 친구를 배반했던 신면(송종호 분)에 의해. 그것은 신면에 대한 응징이기도 하다. 어쩌면 신면은 이 일로 미쳐버리게 될 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여인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저버렸건만 그 여인을 하마트면 자기 손으로 죽일 뻔했다.

세령은 김승유를 대신해서 화살에 맞고 목숨이 경각에 이르고, 세령의 목숨과 맞바꾸어 김승유는 다시 살아나게 된다. 원수의 딸이라는 원망과 자기의 목숨을 살려준 데 대한 고마움,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과 자신을 대신해 죽어가는 세령의 모습. 그것은 김승유가 억지로 묻어두고 눌러 놓은 감정을 일깨우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로맨스물로써 서로 원수지간인 김승유와 세령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사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김승유만큼이나 초췌하여 마음의 상처를 입고 끝내 그를 위해 희생하는 세령을 통해 그들의 사랑에 면허를 주기 위해서. 사랑해도 좋다. 두 사람은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 혹은 작가가 상당히 치밀하게 김승유의 심리를 쫓은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론은 비슷하지만 과정은 다르다. 김승유는 세령을 사랑하고 그러한 세령을 사랑하는 자신에 대해 혐오와 환멸까지 느끼고 있다.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을 사랑하는 탓에, 그 마음을 도저히 주체하지 못하는 탓에, 그래서 혼란스러운 가운데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충동에 떠밀려 아무 짓이나 저지르게 된다.

과연 세령을 납치한 것은 복수를 위한 것이었을까? 세령에게 그렇게도 모질게 구는 것은 단지 세령이 미워서일까? 그에게는 세령에 대한 마음이 단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일까? 그렇다기에는 김승유의 모진 말과 행동에 매번 상처를 입고 마는 세령 만큼이나 김승유의 표정 역시 아련하기만 하다. 어찌할 것인가? 사랑해서는 안 되는 여인을 사랑하게 되어 버렸고, 그 감정을 도저히 주체하지 못하겠는데. 그래서 세령이 원망스럽고 자신이 증오스럽다. 그래서 떠밀리듯 자기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무리한 행동을 벌이게 된다. 죽일 수 있으리란 생각조차 없이 이유를 만들어 수양대군을 불러내려 한다.

김승유가 막상 수양대군을 보고서도 바로 활의 시위를 놓지 못한 것이 그 때문이었다. 누가 감히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 대단한 수양대군이, 단지 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담보로 단신으로 인질범 앞에 모습을 나타내리라고는.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것이고, 그러한 수양대군의 배포에 기가 눌린 것이다. 이미 세령으로 인해 마비되어 버린 그의 이성은 그로 인해 일시간 공황상태에 놓이고 만다. 화살을 놓은 것조차 수양대군에 눌리다 못해 엉겁결에 그리 된 것일 뿐 그는 그 순간 아무 생각도 없다.

어쩌면 맞다. 어떤 사람들이 말하듯 김승유는 참 찌질했다. 부모의 복수도 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사랑하는 세령도 지키지 못했다. 그러나 사람 사는게 늘 그렇다. 반드시 해야만 하고, 그러나 꼭 하고 싶은 것이 따로 있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또 그와는 별개로 존재한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항상 그래서 사람들은 갈등하고 지나고 나면 후회하게 된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복수인가? 사랑인가? 그렇게 답이 쉽게 나왔다면 그는 처음부터 사랑다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솔직할 수 있는 사람들만의 특권이다.

복수를 선택할 것인가? 사랑을 선택할 것인가? 그에게 부여된 이성의 의무와 그가 끝내 놓지 못하는 감정의 충동. 그러나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음을 알기에. 그래서 차라리 그는 죽으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차라리 복수를 하다가 죽으리라. 세령이 느낀 그대로였다. 그 어떤 모진 말이나 행동보다도 그녀를 더욱 상처입히고 아프게 만든 것이었다. 자포자기하는 것. 자신을 포기하려 하는 것.

그로 인한 헤프닝이었을 것이다. 아무런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그렇다고 반드시 수양대군을 죽이리라는 비장한 각오도 없이, 그저 이끌리는대로 일을 벌리고 그 안으로 자기를 내던진다. 어쩔 수 없이 김승유 자신의 미숙하고 나약한 자아가 도저히 어찌 할 수 없는 운명의 무게에 제멋대로 휘둘린 결과라고나 할까? 그렇게 때로 사람은 감당할 수 없는 운명 앞에 어처구니 없이 바보가 되어 버리기도 한다.

과연 어느 쪽일까? 일정에 쫓기다 보니 작가가 무리수를 둔 것일까? 아니면 보다 고도로 김승유의 내면을 쫓은 결과 그와 같은 장면이 나오게 된 것이었을까? 그러나 어찌되었든간에 이로써 한참 멀리 벌어져 있던 두 남녀가 비로소 서로를 마주볼 수 있게 되었다. 마냥 미워하고 원망하며, 마냥 미안해하고 죄스러워하던 관계에서 서로에 대한 마음의 부채를 갖는 관계로. 더욱 애절하고도 더욱 안쓰럽게.

비로소 문채원의 연기가 빛을 발하려는 듯하다. 납치당하여 초췌한 상태에서도 오로지 김승유만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애처롭기만 하다. 그리 모진 말로 상처를 입고 모진 행동에 아파하면서도 여전히 올곧은 마음이 보는 이마저 안쓰럽게 만든다. 정작 비극의 주인공은 김승유자신일 텐데도 오히려 너무한다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그녀는 철저히 비련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이제까지 없던 어떤 심연을 보는 느낌이다.

박시후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전부터도 계속해서 보여줘 온 모습이기에 새롭가거나 놀라운 느낌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그렇더라도 사랑과 원한 사이에서, 여전히 세령을 사랑하는 자신과 그럼에도 복수를 해야 한다는 도덕적 당위 사이에서 끊임없이 번민하며 그로 인해 스스로 상처입고 마는 김승유의 내면을 그 또한 너무도 훌륭하게 연기해 보이고 있었다. 차라리 김승유에 대해 한결같을 수 있는 세령에 비해 그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는 김승유의 고뇌가 박시후로 인해 더욱 깊어진다.

이번 회차는 거의 김승유와 세령의 이야기였다. 아니 김승유의 이야기였다. 김승유의 이야기였다가 세령의 이야기로 바뀌고 있었다. 김승유의 번민과 세령의 올곧은 외곬 사랑. 그리고 그들 앞에 나타나는 수양대군과 그들의 뒤에 숨은 신면. 그리고 잠시 곁가지로 의도하지 않은 금성대군과 경혜공주, 정종의 이야기가 있었다. 시대는 흐르지만 그들의 감정은 그렇게 더욱 깊어질 뿐이다.

어쩌면 자신을 가장 상처입히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닐까. 스스로가 만든 원한에 의해 사랑하는 딸이 납치되어 죽을 위험에 처하고, 스스로의 성급한 판단에 의해 사랑하는 이가 자기가 쏜 화살에 맞아 사경을 헤맨다. 그리고 자기를 구하기 위해 몸을 내던진 여인을 지켜보는 사내의 심정이라는 것도. 과연 화살을 맞은 세령과 그녀를 보는 세 남자 가운데 누가 더 고통스러울까? 수양대군과 신면과 김승유 가운데서.

감상적이 된다. 그 만큼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났고, 몰입하게 만드는 연출이 훌륭했다. 다만 대본에 대해서는 한계인가? 고도의 계산인가? 그럼에도 드라마는 더욱 점입가경을 달린다. 드라마라고 하는 단어의 뜻을 되새기게 한다. 아직도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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