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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8.31 08:32

승승장구 "조관우의 한과 눈물, 그리고 소심한 웃음..."

문득 한국가요계의 못된 관행에 대해 생각하다.

 
나중에 사실을 알고 무척 충격을 받았었다. 설마 산울림이 돈이 없어서 취직을 위해 잠정해체되었었다니. 들국화 역시 정작 멤버들은 돈이 없어서 배가 고파 팀을 해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하고 있었다. 불화도 원인이었지만 경제적 이유도 상당히 컸었다.

우리나라에서 밴드가 해체되는 가장 큰 이유였다. 밴드란 아무래도 공연과 음반이 주된 수입원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직 공연문화가 성숙하지 못한 당시 공연은 그다지 돈이 안 됐고, 음반이 판매된 수입은 전혀 밴드들에 돌아가지 않았다. 밤무대라도 뛰지 않으면 돈이 안 되는데, 그러나 상당히 말랑한 음악을 들려주던 송골매조차도 밤무대에서 연주하기에는 너무 강한 음악을 하고 있었다. 부활의 해체 이유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는 밤무대 활동을 둘러싼 이승철과 김태원의 갈등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밴드가 해체되고 멤버가 바뀌는 가장 큰 이유가 대부분 그러한 경제적인 문제와 그로 인한 갈등이었다.

돈이 안 되니까. 돈이 벌리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에는 당시 한국의 왜곡된 음반산업구조가 자리하고 있었다. 밴드만이 아니었다. 일반 솔로가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음반이 팔리면 그 돈은 모조리 음반회사가 가져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가수들은 단지 음반을 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밤무대라도 뛰며 돈을 벌면 그것이 수입원이었다. 그나마 밤무대조차 뛸 수 없는 처지인 밴드들에게 그로 인한 타격이 더 치명적이었을 뿐.

송골매를 나와 솔로로 데뷔한 구창모의 회고였다. 송골매 시절에는 그런 것이 없었는데 솔로로 데뷔하고 나니 음반 많이 팔렸다고 사장이 보너스를 챙겨주더라. 인세가 아니었다. 보너스였다. 음반이 너무 많이 팔리면 기분이라고 얼마간 주는 것이 고작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아주 최근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DJ DOC의 이하늘도 증언하고 있었다. DJ DOC 1집이 대박이 나자 수고했다며 사장이 호텔 뷔페 한 번 데려가 준 것이 전부였다고. 오죽하면 이승환이 홍보까지 가수가 다 하고 수입은 모조리 음반회사가 가져가는 현실에 경악하여 자기가 직접 음반을 제작해야겠다 마음까지 먹었었겠는가. 그것이 이승환의 1집이었다.

박완규가 자신의 유일한 솔로히트곡 '천년의 사랑'이 정작 히트한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한 것이 불과 12년 전인 1999년이었다. 노래는 전국 구석구석에까지 울려퍼지고 있었건만 정작 노래를 부른 가수는 노래가 히트한 것도 모르고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도대체 그 돈은 다 누가 가져간 것이었을까?

조관우가 1집과 2집의 그 큰 성공에도 불구하고 아이 분유값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말하는 것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1집이 147만 장, 2집이 218만장, 그나마 그것도 공식적인 기록이고 비공식으로는 350만 장 이상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일 것이라 이야기되고 있을 정도다. 얼추 계산하기로만 최소한 수십억은 벌었을 것 같은데, 그러나 분유값을 걱정하며 셋방살이를 해야 했었다. 정말 오죽했으면.

불과 몇 년 전 크게 이슈가 되었던 아이돌의 노예계약이라는 게 어느날 하루아침에 생겨난 관행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HOT때도 그랬고, 그보다 조금 앞서 성공을 거두었던 영턱스클럽 역시 그 큰 성공에도 월 200만원의 수입이 전부였다 말하고 있었다. 음반사와 기획사가 철저히 갑이 되어 을인 신인들을 착취하던 시스템, 이미 그것은 대한민국 공연예술계에 있어 일반화된 관행이었다. 그나마 JYJ가 이유야 어쨌든 총대를 맨 탓에 지금은 표준계약서도 만들어지고 많이 현실이 좋아졌다 할 것이다.

결국은 딴따라였을 것이다. 조관우의 아버지 조통달 명창이 아들이 음악을 하겠다 했을 때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던 이유였다. 천직이었으니까. 지금도 그런다. 도대체 뭐 하는 게 있다고 그리 많은 돈을 버느냐고. 연예인에 대한 악의섞인 루머나 사소한 꼬투리에도 가해지는 비난은 여전힌 아티스트에 대한 멸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누리는 인기와 돈과 사회적 지위에 대한 질투 때문이었을 것이다. 연예인이 국회의원한다고 하니 그리 무시하더라는 이야기에서부터. 고작해야 연예인따위. 가수따위.

말 그대로 그것은 한국사회에서 연예인의 먼 조상뻘이라 할 수 있는 기생과 닮아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겉으로는 뭇남정네들이 동경해 마지 않는 대단한 존재였을 것이다. 그러나 돌아서면 사람으로 취급도 못 받는 천한 기생에 불과할 뿐. 겉으로는 인기인이라 동경하고 환호하면서도 돌아서고 나면 딴따라. 그리고 그런 딴따라를 고용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그들을 착취하던 공연기획자들이 있었다. 그들과의 관계에서 당연히 갑이던 음반회사들도 있었다. 더구나 그럼에도 스타란 누구나 꿈꾸던 것이었기에.

지금은 얼마나 많이 달라졌을까? 도저히 인간으로서 견뎌내기 힘든 가혹한 환경에서도 단지 시청자와의 약속이라는 이유로 끝까지 버텨낼 것을 요구받는 현실에서. 도저히 견디지 못하겠어서 도망쳤더니 시청자의 권리를 이유로 그를 비난한다. 과연 누구나 보호받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란 연예인에게는 없는 것일까?

단지 의혹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사자는 물론 가족까지 샅샅이 훑어가며 철저히 매장시키려 달려들고. 그러고도 사과하는 사람 한 사람도 없었다. 당시 타블로를 비난하는데 동참한 네티즌, 언론인, 누구도 타블로에게 단 한 마디 제대로 사과하는 이가 없었다. 오히려 그것은 당연한 권리였다. 뭐가 다를까?

그래도 참 좋아진 시절이다. 이제는 아이돌들도 그토록 불리한 계약관행에서도 적당히 활동으로 돈도 벌고 그것으로 집안에 좋은 일도 해 줄 수 있다. 정작 음반이 팔리고 있는데도 당사자는 가난해야 하는 시절은 이제 지나갔다. 그래도 인류사회는 조금씩이나마 발전해가고 있다는 증거랄까? 앞으로는 이보다는 조금 더 좋아지리라.

그러고 보면 조관우 역시 잘못된 보도나 루머의 희생양이기도 한 터라. 일단 한 번 보도가 나가고 나면 정정되는 경우가 드물다. 일단 보도는 크게, 정정보도는 작게. 대중은 그에 대해 전혀 관심조차 없다. 주병진 역시 그래서 무혐의로 처리되었음에도 아직까지 자신이 유죄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고백하고 있었고. 이제 와 구구절절 변명하는 것도 구차하다.

아무튼 목소리에 한이 서린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아들이 음악하는 것에는 반대하고 있었으면서도 자기는 음악에 모든 것을 걸었던 조통달 명창의 인생역정에서. 그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조관우의 어린시절의 서러운 이야기들. 그래도 소심하게 자기가 천재였노라 자랑하는 모습이 조관우스럽다. 조관우는 자랑을 해도 소심하게 해야 어울린다. 가장 소심해서 아름다운 사람이 조관우일 것이다.

너무 무거웠달까? 웃자는 예능치고는 지나치게 정통토크의 분위기로 무겁게 우울하게 흘러갔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소심함으로 여상하게 넘길 수 있는 것이 연륜이라는 것이리라. 고난이 많았던 만큼 사람도 깊어지는 법이다. 예전 모습이야 어찌 되었든.

한 눈에 보기에도 조관우를 좋아하게 생겼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좋아하던 가수이기에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의 절망, 그의 분노, 그의 좌절, 그의 성공, 그의 사랑, 그리고 그의 한. 또한 그는 이 땅의 가수이며 연예인이며 한 개인이기에. 의미깊었다.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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