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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8.30 08:01

계백 "흥수의 억지와 억지스런 연기..."

과장된 말투와 몸짓과 표정, 배우들 약을 팔다...!

 
결국 바로 이런 것들이 문제였던 것이다.

사실 억지는 흥수(김유석 분)가 부리고 있었다. 어찌되었거나 한 나라의 왕자씩이나 되는 귀하신 몸이라는 것이다. 자칫 공격명령을 내렸다가 왕자의 신상에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을 누가 지게 되겠는가. 다른 누구도 아닌 높은 신분의 왕자가 적군의 손에 죽게 된다면 그로 인한 병사들의 동요도 상당할 것이다.

왕자가 죽으면 병사들이 더욱 전의를 불태우며 가잠성 공략에 나설 것이다? 그것은 어느 정도 병사들과 유대가 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어째서 지휘관이 죽고 나면 병사들은 그대로 흩어지고 마는 것일까? 얼굴도 모르는 왕자보다야 지휘관이 병사들에게는 더 친하겠지만 지휘관의 죽음조차 병사들의 전의를 일깨우는데는 한계가 있다. 그런 경우 필패다. 물러나거나 무모한 공격을 반복하다가 패퇴하거나.

그나마 왕자의 안위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는 위치의 사택왕후(오연수 분)이 그 자리에 있었기에 공격명령도 내려진 것이었다. 아무리 의자의 뜻이었고 그것을 은고(송지효 분)가 백제군 지휘부에 전달했어도 만일 의자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경우 그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는 위치의 누군가가 있고서야 비로소 의자의 뜻대로 의자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공격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가잠성 공략에서 가장 크게 공을 세운 것은 필요한 때 공격명령을 내릴 수 있었던 사택왕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의 하나 사택왕후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대장 윤충이 왕자의 목숨을 담보로 공격명령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놓여졌다면? 그래도 의자(조재현 분)가 굳이 위험을 무릎써가며 가잠성으로 잠입한 보람이 있었을까? 생구를 포섭하여 모의를 꾸몄어도 왕자의 목숨이 걸려 있는데 윤충은 그가 바라는대로 총경격을 가하도록 행동에 나설 수 있었을까?

물론 덕분에 그토록 어려움을 겪던 가잠성 공략에 성공하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가잠성 공략에 대한 공은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명령을 내렸던 사택왕후와 의자의 계획대로 성 안에서 내응하여 백제군의 공격을 도운 생구들에게 있을 것이다. 의자 자신도 그 고리의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그로 인해 포로로 잡혀 모든 것을 무위로 돌릴 뻔하 책임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기껏해야 내응을 주도한 공으로 그로 인한 책임을 대신하는 정도가 고작이었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교기는 크게 공을 세운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의자처럼 크게 피해를 끼친 것도 없었다. 지휘권에 개입하여 스스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괜한 공명심으로 난처한 일을 벌인 것도 없었다. 무난했다. 하지만 첫싸움에서 무난한 것은 죄가 아닐 테니까. 더구나 그 무모함으로 자칫 일을 망칠 뻔했던 의자와는 크게 비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연히 흥수도 알았을 것이다. 몰랐을 리 없다. 그만한 능력을 지닌 이가 어찌 그런 것도 몰랐을까? 하지만 연문진(임현식 분)이 원하는 일이었다. 그를 식객으로 거두고 있는 연문진이 바라는 것이었다. 의자를 초혼관으로, 장차 초혼관을 발판으로 태자를 거쳐 백제의 국왕으로 즉위토록 하는 것이. 그래서 장난을 친 것이다. 뻔한 사실을 놀라운 궤변으로 뒤집어 놓으며. 어느 정도 왕권도 뒷받침되고 하면 정치적 거래로써 생구들의 공을 의자의 공으로 만들 수 있었을 테지만 언감생심일 테니 오로지 자기 말재주만 믿는다.

그래서 흥수의 표정은 과장되어 있는 것이었다. 흥수의 몸동작 역시 지나치게 커져 있던 것이었다. 사람들을 현혹시키기 위해서. 과장된 표정과 몸짓으로 상대의 주위를 흐트리고 그런 빈 틈을 노려서 진실과 거짓을 뒤바꾼다. 거짓을 진실처럼 꾸미고 진실을 거짖과 맞바꾼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다른 아무것도 없이 사실로 만들자니 무리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이 드라마의 문제다. 어째서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목소리가 큰다. 표정이며 말투며 행동이며 모든 것이 과장되어 있다. 마치 연극을 보는 것 같다. TV가 아닌 연극을 보는 양 과장된 연기들이 자꾸 눈에 뜨인다. 드라마 속의 인물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드라마 속의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이겠는가?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다. 정확히는 자기도 납득하지 못한 말들로 시청자를 납득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평면적인 캐릭터. 밋밋한 사건들. 부족한 설명들. 서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묘사하면 될 것을 따라서 내러티브의 부족을 배우의 연기력에 기댄 과장된 연기에 의존해 해결하려 든다. 아무것도 없이 배우 자신의 연기력으로 캐릭터를 표정과 몸짓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순진한 시청자를 속이려는 사기꾼의 표정이 된다.

몇 번이나 지적했듯 갈등구조가 너무 단순하니까. 왕이다. 더구나 이렇다 할 개연성도 없다. 그냥 왕이니까 왕이고 귀족이니까 귀족이다. 왕이니까 귀족과 대립하고 귀족이니까 왕과 대결한다. 몇 번이나 반복되어 쓰여 온 내러티브 구조가 그렇게 아무런 다른 고민 없이 그대로 재활용된다. 골격은 있지만 나머지 살이 붙어 있지 않으니 그것을 연기력으로 해결할 밖에. 명확한 구조나 논리가 있어 그것을 연기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 아닌, 연기를 통해서 구조와 논리를 대신하려는 연기인 것이다. 없는 것을 연기해서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니 결국 흥수가 한 그대로 야바위가 되고 마는 것이다. 어깨에는 힘이 들어가고 표정은 경직된다.

하나같이 등장인물들의 연기가 어색한 이유일 것이다. 쓸데없는 힘이 들어가고 경직되어 정형화되고 있다. 윤다훈(독개 역)이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연기가 안 되던 배우이던가? 하지만 자기 스스로도 납득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대중에 전달해야 하는 그의 연기는 말 그대로 연기였다. 독개도 아니고 윤다운도 하닌 그냥 허공에 대고 하는 연기였다. 무엇이든. 은고를 연기하는 송지효나 계백을 연기하는 이서진도 마찬가지다. 아니 이렇게 연기 못하는 조재현도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항상 하는 말. 너무 단순하다. 그리고 허술하다. 휑하니 비어 있다. 정작 이야기를 지탱해야 할 논리와 구조가 휑하니 기둥 여럿이 빠져 벽도 없이 위태위태하다. 그것을 대신 지탱하느라 다급한 배우들의 목소리는 그저 안쓰러울 뿐이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하나같이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라는 것을 알겠다. 저 대사를 저 상황에 캐릭터를 만들어가며 연기해야 한다.

아무튼 이제는 신녀라며 천단향이라는 예언자까지 등장하고. 모두 그녀의 안배였다. 영묘(최란 분)이 은고를 거두어 기른 것도, 은고가 의자를 선택한 것도 모두가 그녀가 예견한 그대로였다. 이건 또 어디로 흘러가려는가. 마치 무왕과 의자, 그리고 사택왕후의 갈등구조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을 엉뚱한 주변의 이야기들로 채우려는 느낌이다. 위제단에 계백으 의형으로 추정되는 살수단에, 그리고 독개. 은고의 절박함마저 그렇게 허술하게 채워진다. 눈물로써 계백 앞에 털어놓는 은고의 고백마저 공허하게 들릴 정도다.

도대체 천단향이라는 새로운 캐릭터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될 지. 최소한 이제까지의 뻔한 구도는 탈피했으면 싶다. 조금 더 이야기에 질감과 양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캐릭터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은 너무 메마르다. 허전하다.

갈수록 보기 힘들어지는 드라마였다. 이쯤 되면 나와야 하는 것이 있을 텐데. 기대를 배신했으니 반전이라 할 만하겠지만 그러나 그것이 다른 드라마에서도 공통으로 쓰이는 것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무색무미무취, 기존의 색과 맛과 냄새마저 빠지려 하고 있다.

재미없다. 말 그대로. 이제는 습관으로 본다. 그래도 앞으로 조금은 나아질 수 있지 않겠는가. 날도 더운데 리뷰 쓰기도 너무 지친다. 피곤하다. 실망할 것도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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