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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3.06 08:01

무한도전 - 선택의 기로에서 선택과 만나다

무한도전스럽다는 말의 의미...

▲ 사진 = imbc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어려서 늘 듣던 질문이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항상 선택의 기로에 선다. A야? B야? 그도 아니면 C야? 그리고 모든 선택은 잘 선택했다는 만족과 함께 혹시나 하는 아쉬움과 후회, 미련을 남긴다.

참 짓궂다. 몇 년을 함께 해 온 멤버 가운데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니. 그것도 무한도전 일곱 멤버 가운데 최연장자인 박명수와 정준하다. 누구를 선택해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둘 중 한 사람을 선택하고 구하려 들어갔을 때 맞닥뜨린 그 얼굴이라니.

반전이었다. 사실 박명수와 정준하를 구하라는 미션 자체는 그다지 특이할 것 없는 평이한 미션이었다. 아마 대부분 단순히 멤버 개인에 대한 이미지 토크로 흐르기 쉬우리라. 그들을 구하러 나선 멤버들 자신이나, 혹은 길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은 두 사람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는가? 둘 중 한 사람을 구해야 한다고 했을 때 누구를 더 우선해 구하라 말해줄까?

완전히 방심하고 있었다. 뻔히 예상할 수 있는 장면에 예측 가능한 상황들. 시민들의 반응이며 멤버들의 행동 또한 그동안의 무한도전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쉬어가는 미션이었겠거니. 가장 먼저 박명수를 구하기 위해 기계실로 들어선 노홍철 앞에 나타난 그 얼굴만 아니었다면.

설며 정준하였을 줄이야. 박명수가 갇혀 있어야 했을 기계실에는 정작 정준하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준하가 갇혀 있어야 했던 전기실에는 박명수가 대신 갇혀 있었다. 선택이란 어느 한 쪽을 포기하는 것이기도 한데, 그 포기한 한 쪽을 구하러 간 그 장소에서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선택의 확인이 아닌 포기의 확인이다.

얼마나 난감했을까? 정말 제작진이 너무 지독스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 식으로 자신이 선택되어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선택한 사람들을 직접 마주함으로써 확인하게 된다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 선택과 포기의 대상이었던 박명수와 정준하 말고도 어렵사리 선택하고 포기한 쪽에 대한 미안함을 가지고 각자 자신이 선택한 멤버를 구하려 들어갔던 멤버들의 당황과 놀람이란 또 어떤 것이었을까? 보고 있던 필자가 다 민망할 정도였다.

하긴 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하필 공교롭게도 최강의 맷집에 받아주는 연기에 최적화된 정준하와 악마로까지 불리우던 강자이며 악역 박명수, 더구나 정준하와 함께 하는 것은 명실공히 무한도전 1인자인 유재석과 천적 노홍철인데 반해 박명수에게는 상대적으로 대가 약한 정형돈, 하하, 길이 함께 하고 있었다. 선택받지 못한 설움과 선택하지 않고 포기했다고 하는 미안함이 묘하게 만나 어우러지고 있는 것이었다.

같은 차를 타고 다음 미션장소로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민망하고 어색했던지. 당사자들도 불편하겠지만 - 아니 불편할 수밖에 없었을 테지만 보는 입장에서도 그것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박명수와 정준하, 더구나 정형돈, 하하, 길과 유재석, 노홍철이라는 너무나 대비되는 개성들이 서로 나뉘어진 채 함께 하고 있었으니까. 미안함과 어색함, 그것을 어떻게 해서든 풀어보고자 하는 노력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준하를 놀려먹으려 드는 유재석, 노홍철. 어느샌가 모든 것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가자 박명수는 완전히 풀어진 채 웃고 있었다.

문제라면 딱 거기까지였다는 것일 게다. 너무 무한도전스러웠다. 시작부분에서 말했던 것처럼 너무 무한도전스러웠던 탓에 예측되었다. 어떻게 풀어나가려는지. 박명수와 정준하를 구출하려 나타났을 당시의 반전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지만 2차 미션 장소로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로 인한 흥분도 긴장도 다 풀어지고 난 뒤였다.

노홍철의 사기는 이제 읽힌다. 정준하의 어눌함은 이제는 식상하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가가 보인다. 하긴 그것은 또한 그동안 무한도전이라는 이름으로 방영된 어떤 편린들이었다. 버튼을 누르면 폭발판정과 함께 공이 떨어지고, 그렇게 결국 한 사람이 남고.

가장 압권은,

"정총무는 지금도 자기가 왜 죽었는지 모른다."

웃음은 터졌지만 이 잠깐의 웃음을 위해 여기까지 달려왔는가는 회의마저 든달까? 허무했다. 허무할 수밖에 없게 게임도 역시 너무 안이하고 평이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선한 재미를 주려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고는 있었지만 멤버들의 캐릭터며 관계며 그 리액션에 대해서마저 이제는 너무 노출되어 익숙해져 버린 탓에 힘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감동도 재미도 억지로 강제하는 것은 불가능한 까닭이다.

어쨌거나 용두사미라기에는 어쩐지 텅 빈듯 무기력한 시작과 끝에 비해 중반이 참 알차다.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닐 것이다. 재능이 부족해서도 아닐 것이다. 다름 아닌 무한도전이라는 것일 게다. 이제 이런 정도로는 웃음을 줄 수 없다. 6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길었을 것이다. 술도 너무 오래 익으면 맛도 향도 날아가 버리듯. 어느새 프로그램으로서 갱년기를 넘어선 무한도전에게 주어진 숙제일 것이다.

무한도전스럽다. 그 말의 뿌듯함과 아쉬움을 한꺼번에 볼 수 있었다. 긍정적인 의미에서든 부정적인 의도에서든 역시. 화두를 하나 얻은 느낌이다.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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