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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4.10.23 05:45

라이어게임 "자본의 신을 섬기는 현대사회의 적나라한 초상"

원작보다 깊어진 주제, 한국드라마만의 역동성, 리메이크의 한계를 높이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자본주의란 모든 것이 자본으로 계량되어지는 체제일 것이다. 자본이란 구체화된 욕망이다. 욕망은 본능이며 인간은 또한 동물이다. 자연스럽게 욕망을 쫓게 된다. 신도, 영혼도, 양심도, 정의도, 이상도, 신념도, 사랑이며 우정이며 심지어 너무나 당연한 혈연의 정까지도.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자본으로 계량하여 교환할 수 있다. 단지 그 비용이 문제일 뿐이다.

과연 선량한 개인으로 하여금 양심을 저버리도록 하려면 얼마의 비용이 필요할까? 단 한 번도 누군가를 거짓말로 속여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도록 하려면? 신을 섬기는 신실한 사제가 자신의 신을 부정한다. 하기는 욕망을 쫓아 사랑을 배신하고 혈연을 외면하는 이야기는 언제 어느때든 진부할 정도로 너무나 흔하다. 5억의 돈을 상금으로 내걸고 40명의 출연자로 하여금 서로를 속이도록 만든다. 폭력을 제외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서로의 돈을 빼앗는 자가 승자가 된다. 그것을 방송을 통해 다수의 시청자가 보도록 한다. 인간의 양심과 추악한 욕망이 한낱 눈요기거리로 전락한다.

▲ 라이어게임 포스터 ⓒtvN
어쩌면 원작보다 더 노골적일 것이다. 원작에서 '라이어게임'은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철저히 밀실에서 이루어지던 비밀게임이었다. 그 의도마저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tvN에서 리메이크한 '라이어게임'에서는 그 의도와 게임의 내용 전부를 처음부터 방송을 통해 불특정한 시청자 전부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아니 아예 언론으로 하여금 보다 더 선정적인 기사를 쓰도록 광고비를 상금으로 내걸고 부추기고 있기도 했었다. 평범한 대중들이 5억의 돈을 위해 서로를 속이고 속는 추악한 욕망의 현장을 방송을 통해 지켜본다. 한낱 여흥거리처럼 술을 마시며, 혹은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사진을 찍는 대중이야 말로 게임의 관객이며 게임의 한 부분인 것이다. 그것을 다시 시청자들은 TV를 통해 지켜본다.

출연자들은 다른 출연자를 속이고, 방송국 PD는 그런 출연자를 다시 속인다. 고등학교 시절 은사의 호의어린 표정과 태도에 속았듯 방송국의 권위까지 등에 업은 PD로 인해 남다정(김소은 분)은 계약서의 내용조차 제대로 살피지 못한다. 그래도 명색이 스승인데 그렇게까지 자신을 믿어주는 제자를 아무렇지 않게 속여도 괜찮은 것인가. 아무리 그래도 이제 갓 출소한 범죄자를 방송에 내보낼 수는 없다던 장국장(최진호 분)의 단호함은 충분히 흥미로운 하우진의 개인사에 한 순간에 녹아버리고 만다. 시청률이 나오고 충분히 화제성만 있다면 범죄자를 출연시키는 것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처음 남다정이 방송에 출연했을 때도 그다지 밝히고 싶지 않은 아버지와의 이야기를 방송으로 내보내야 했었다.

특정한 개인이 아니다. 어떤 특수한 집단에 대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욕망의 보편성을 말하고 싶은 것일 게다. 전혀 악의조차 없이 악을 행하게 되는 원리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일 게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망이 어떻게 악의로 바뀌어가는가. 남다정에게는 누구보다 훌륭한 스승이었던 선생님이 어째서 횡령으로 해고까지 당하는 신세가 되었는가. 인간은 악한 것이 아니다. 단지 약한 것이다.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그토록 착하고 순수하게만 보이던 남다정이 하우진에게 자신을 대신해 누군가를 속여 줄 것을 부탁한다. 아마 남다정 자신은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생각지 않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파렴치한 모습이 방송을 통해 모두에게 공개되어도 자신을 위한 것이니 자식도 이해해 줄 것이라 믿는 것처럼. 욕망을 숭배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자본의 신을 섬기고 숭배한다. 그같은 내용의 게임을 방송으로 내보내고 그것을 대중은 지켜보며 즐긴다. 자본주의의 만다라다. 자화상이다.

누군가를 기다려 본 사람이라면 안다. 그것이 얼마나 지루하고 고단한 일인가를. 끝까지 믿는다. 의심하려고조차 하지 않는다. 그것이 강한 것이다. 당장 자기가 돈이 필요한데도 기꺼이 곤란을 겪는 선생님을 위해 그 돈을 내놓는다. 처음 가방에서 돈을 발견했을 때 남다정 역시 유혹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돈의 가치를 몰라서가 아니다. 그보다 더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결심이다. 사채업자 조달구(조재윤 분)가 남다정에게 유독 호의를 베풀며 주위를 맴도는 이유일 것이다. 유혹에 흔들리고 욕망에 이끌리면서도 끝끝내 자기를 놓지 않는 강함이 그녀에게는 있다. 자칫 민폐로 여겨지기 쉬운 캐릭터인데 중심을 잃지 않고 그 매력을 잘 살려 보여주고 있다. 신성록(강도영 역)의 광기와 이상윤의 냉정한 이성과 대비되는 김소은만의 강점이고 매력일 것이다. 훨씬 매력적인 캐릭터가 되었다.

특히 만화를 원작으로 드라마를 만들었을 때 원작을 뛰어넘기란 사실 매우 어렵다. 표현할 수 있는 한계부터 너무 크게 차이가 난다. 그림으로 그려 표현할 수만 있다면 만화에는 그 한계란 없다. 그러나 드라마는 여러 현실적인 여건들을 고려해 만들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원작을 먼저 읽었음에도 드라마에 대해 더 높이 평가하게 되는 경우란 결코 흔하지 않다. 원작을 넘어섰다. 최소한 지금 단계에서 원작보다 더 보는 즐거움을 주고 있다. 상당히 정적이던 원작에 비해 더욱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색깔을 보여준다. 배우의 매력이 원작을 뛰어넘는다. 원작의 내용을 충실히 살리면서도 이것이, 특히 한국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원작의 메시지를 더욱 강조하여 의도를 더하는 것은 재창조의 당연한 과정이다.

워낙 재미있게 보았던 원작이기에 우려가 컸었다. 사실 일본에서 만들어진 드라마도 그다지 만족을 주지는 못했다. 그보다 더 흥미롭다. 더 기대가 된다. 하우진의 과거에 대한 비밀은 한국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강도영은 보다 직접적으로 하우진과 대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주제가 더 깊어졌다. 과연 드라마가 보여줄 결론은 무엇인가. 벌써부터 기대하게 된다.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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