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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4.10.21 07:11

내일도 칸타빌레 3회 "코미디가 아닌, 망설임이 웃음을 빼앗다"

지나친 진지함과 충실함, 설내일은 단지 8살 아이가 아니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허구에 불과한 드라마가 다수의 시청자를 울리고 웃길 수 있는 이유는 최소한 드라마를 보는 동안 만큼은 시청자 자신에게 드라마의 내용이 사실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이미 드라마가 끝났음에도 여전히 드라마의 내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현실과 혼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도 바로 그래서다. 드라마에 깊이 빠져들수록 감동과 재미도 배가된다. 시청자를 어디에 위치시킬 것인가는 드라마만이 아닌 모든 창작물에 있어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바로 그것이 자발적 동의일 것이다. 시청자 스스로 드라마의 내용이 실제의 사실일 것이라 인정하고 동의한다. 시청자가 믿고 있는 상식에 기대에서 사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게끔 유인하거나, 아니면 오히려 거꾸로 드라마의 상식을 시청자의 상식으로 받아들이도록 기만하고 강요하거나. 전자에서 요구되는 것이 리얼리티라면 후자에서 요구되는 것은 개연성이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여기게끔 교묘하게 논리적 구조를 만든다. 판타지에는 용과 요정이, 그리고 마법이 등장한다. SF에서도 이론적으로 아직 불가능한 워프며 시간여행이며 인간형 로봇과 같은 것들이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허구임을 알면서도 철저히 사실로써 그것을 감상하고 즐긴다. 허구를 허구처럼 만들어 시청자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도 기술인 것이다.

▲ '내일도 칸타빌레' 3종 포스터 ⓒ그룹에이트
심은경(설내일 분)의 연기야 말로 어쩌면 '내일도 칸타빌레'라는 드라마의 현실일 것이다. 주눅들어 있다. 위축되어 있다. 당당히 '내가 설내일'이라고 주장하지 못한다. 오히려 현실을 무시하고 배제함으로써 시청자의 호기심과 흥미를 자아낼 수 있다. 일상에서 벗어난 비현실적 상황들이 어떤 카타르시스적 쾌감마저 느끼게 한다. 그것이 원작의 여주인공 노다 메구미의 인기의 비결이었다. 단순히 8살 여자아이의 미성숙한 천진함이나 유치함은 아닌 것이다. 그보다는 굳이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는 순수함이며 솔직함일 것이다. 그냥 그러고 싶은 충동과 욕구가 있으니 그렇게 한다. 현실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지 못하는 그것을 허구이기에 노다 메구미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조차도 시청자의 상식에 맞추려 한다.

대학생까지 된 성인이 8살 아이의 행동을 보이는데 그것이 묘하게 리얼리티를 갖는다. 허구가 아니다. 과장되거나 왜곡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그것은 실제 아이같은 것이다. 정신연령이 8살이라면 흔히 그것을 정신지체라 정의한다. 그래서 답답하다. 차라리 8살 아이가 그러고 있다면 귀엽기라도 할 것이다. 실제 8살 아이가 그러는 것과 다 자란 어른이 8살 아이의 행동을 보이는 것은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그 느낌이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그 괴리와 위화감을 어떻게든 해소해야 하는데 묘한 리얼리티가 오히려 그것을 더 부추긴다. 차유진(주원 분)마저 너무 진지하다. 그런 차유진의 진지함마저 드라마적인 과장으로 왜곡으로 여겨지도록 유도해야 하는 것이 설내일의 역할인 것이다. 일본에서 제작된 같은 원작의 드라마는 더 뻔뻔했었다.

그냥 장난이었다. 장난처럼 시작했고, 장난처럼 전개되었으며, 마무리까지 장난처럼 끝났다. 마치 한 순간의 변덕처럼, 세계적인 거장의 남다른 기행인 듯, 그리고 차유진마저 그에 철저히 놀아나고 있었다. 그 의도가 드러나는 것은 보다 나중의 일로 그때까지는 그저 한 바탕 헤프닝으로 웃으며 즐기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의도가 더해진다. 아마 시험이 일상화된 사회라서인가 대결을 무척 좋아한다. 그것도 데드매치다. 대결해서 지는 쪽이 해체된다. 그렇지 않아도 진지함이 넘치는데 생존을 건 경쟁이라는 절박함과 치열함마저 더해진다. 8살 아이의 순수조차 순수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더욱 상황은 어려워진다.

코미디는 철저히 코미디처럼. 어설픈 리얼리티는 오히려 방해만 된다. 리얼리티를 추구하려면 또한 철저히 리얼리티에 충실해야 한다. 차유진도 슈트레제만(백윤식 분)도 사실적이라면 설내일도 사실적이어야 한다. 보다 사실적인 조금 어눌하고 조금 이상한 타고난 천재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새삼 같은 클래식과 오케스트라를 소재로 했던 MBC의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김명민이 보여주었던 '강마에'의 캐릭터에 주목하게 된다. 극적으로 과장된 '강마에'의 캐릭터를 통해 자칫 지루할 수 있었던 오합지졸 오케스트라의 연습장면에 활력과 재미를 불어넣고 있었다. 뻣뻣하고 쓸데없이 길기만 하다. 재미도 없다. 슈트레제만의 등장조차 반전이 되지 못한다.

대본의 문제인지. 아니면 연출의 문제인지. 원작의 문제가 아님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배우들의 연기가 나쁜 것도 아니다. 해석의 문제다. 드라마가 추구하는 그것에 대한 이해의 문제다. 굳이 세세하게 원작의 에피소드들을 모두 등장시킬 필요는 없다. 생략 역시 극적인 표현을 위한 한 방법이다. 지루하다. 코미디로서 이보다 더 치명적인 평가는 없다. 지겨워지고 있다. 즐거워야 할 코미디에서 웃음에 대한 기대가 사라진다. 전혀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굳이 원작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 일본과 한국은 문화도 대중의 취향도 모두 다르다. 그럼에도 원작과 비교하게 되는 것은 그만큼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큰 재미를 느꼈던 원작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넘어서지는 못하더라도 차별되는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 이것이 한국드라마 '내일도 칸타빌레'다. 무리한 기대임을 안다. 실망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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