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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8.25 07:19

보스를 지켜라 "어른이 되지 못한 나이 많은 아이들의 사정..."

가장 현실에 충실한 러브판타지일 것이다.

 
어른이 순수해지는 것은 솔직해질 수 있는 대상을 만났을 때다. 솔직할 수 없기에 어른이고, 그래서 솔직해질 수 있을 때 어른은 아이가 된다.

어쩌면 상처입은 아이들일 것이다. 어머니 신숙희(차화연 분)의 과도한 기대로 말미암아 항상 최고가 되어야 했던 차무원(김재중 분)이나 아버지 차회장(박영규 분)의 폭력에 어느새 공황장애를 앓게 된 차지헌이나. 서나윤(왕지혜 분) 역시 재벌의 딸이라고 하는 자신의 신분에 항상 억눌려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숨을 곳이 필요하다. 숨을 돌릴 수 있는 곳이.

그래서 차지헌과 자무원은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렸던 것이다. 항상 만나면 싸우지만 그들이야 말로 둘도 없는 친구이며 형제였다. 누구보다 서로에게만은 솔직해질 수 있었으니까. 솔직하게 잘난 체하고, 솔직하게 적의를 드러내고, 솔직하게 서로 놀리고 골탕먹이고. 그래서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둘은 마치 아이처럼 보였었다. 차지헌과 만났을 때도 서나윤 역시 그저 어린아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차지헌과 차무원이 동시에 노은설(최강희 분)에게 빠져들게 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늘 최고급 커피만 마시다 보면 싸구려 커피믹스도 신선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하나의 일탈이다. 아니 차지헌에게는 그에게 결여된 보호자 대신이다. 누이이며 어머니다. 차지헌이 항상 노은설을 찾으며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 하는 것이나 노은설 자신마저 자신이 없어지고 난 다음의 차지헌을 걱정하는 것은 그래서다. 노은설이 아마도 차지헌에게 끌리는 것은 그런 진심어린 절박함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비하면 차무원의 경우는 서나윤에게 차인 김에 색다른 느낌을 통해 일탈의 즐거움을 맛보고자 하는 것일까?

하여튼 그래서 대비된다. 서로에게 - 최소한 서로가 함께 있을 때 누구보다 솔직해지는 차지헌과 차무원, 서나윤, 그리고 모두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도 여전히 솔직해질 수 없는 노은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늘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림자가 익숙해진다. 가면을 쓰게 되고 자기를 속이게 된다. <보스를 지켜라>의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전혀 음습하다거나 하는 느낌 없이 아이처럼 순진해 보이는 것은 그래서다. 놀랍게도 서로 경영권을 다투는 와중에도 차회장이나 신숙희나 자기의 속내를 애써 감추려 들지 않는다. 역시 같은 재벌을 소재로 했던 드라마 <로열패밀리>와 비교되는 부분일 것이다. 지나칠 정도로 솔직한 차회장과 어느 순간에도 자기 속내를 드러내려 하지 않은 공순호. 그리고 노은설 역시 현실을 직시하고 있기에 자기 자신의 진심마저 일부러 외면하려 한다. 하기는 그래서 차지헌은 그녀에게 끌린다.

참 멋진 대비라고나 할까? 아니다. 원래 그랬다. 신분을 초월한 사랑이란 겉보기만 그럴싸할 뿐 결국 고귀한 신분에게 있어 일탈이나 다를 바 없다. 차무원이 노은설과의 일탈을 즐기는 것처럼 차무원이 노은설에게 느끼는 감정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래서 차무원 앞에서 노은설은 차지헌과 함께 있을 때와는 달리 차무원이 미처 경험해 보지 못한 다른 세계의 순수를 내보이고 만다. 그리고 겨우 손에 넣은 훌륭한 장난감이기에 어린아이가 되어 버린 차무원은 차지헌 앞에서 지나치게 솔직해진다.

이제까지 가운데 가장 명장면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린아이처럼 티격태걱거리던 차지헌과 차무원이 카페에서 아예 바닥을 구르며 치고받고 싸우고 있었으니. 차지헌의 방에서는 진짜 어린아이처럼 베개를 들고 맞서 싸우고 있었다. 서나윤과 함께 있을 때는 어떠했는가. 괜하게 부모의 야단을 맞은 여자아이가 두 사내아이를 야단치는 모양새다. 하나같이 의미하는 것. 그리고 마침내 서나윤까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차지헌은 서나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자신의 상처를 털어놓고 노은설을 찾아가 안고 눈물을 흘리고 만다. 엄마에게 안겨 엉엉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처럼.

아무튼 정말 놀랍다. 왕지혜가 이런 배우였는가? 지성과 김재중은 어느 정도 코믹연기를 한다고 의식하는 것이 느껴진다. 박영규와 차화연은 단지 연기를 잘할 뿐이다. 그런데 왕지혜는 실제 성격이 그런 것 같다. 멀쩡하게 웃긴달까?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전혀 웃긴 것 같지 않은데 웃음이 터져나온다. 큰 눈을 동그렇게 뜨고 전혀 자기와는 상관없다는 듯 뚱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는 얼마나 귀여운지. 나이 많은 아이같다. 전혀 상황을 의식하지 못하고 마이페이스인 듯. 이렇게까지 천연덕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배우는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새침한 표정도, 우는 얼굴도, 무언가 고민하는 듯한 모습들까지 전혀 연기한다는 느낌 없이 멀쩡하게 웃긴다. 그냥 웃긴다.

아들 차지헌이 비서인 노은설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을 알았을 때 바로 노은설을 다른 곳으로 보내버리려는 차회장과 그러면서도 노은설이 떠날 수 있다는 사실에 차에서 내려 그녀를 찾아가려는 차지한을 방치하는 차회장. 하기는 어차피 다른 곳으로 보내버릴 테니까. 여기저기 발길질이나 하고 돌아다니는 웃기는 아저씨만은 아니라는 것일까?

결국 아버지의 차에서 내려 무작정 지갑도 핸드폰도 없이 노은설을 찾아간 차지헌과의 재회는 연인의 만남이라기보다는 부모자식간의 이산가족상봉이 훨씬 더 어울렸을 것이다. 노은설이 없는 공간을 당황스러워하며 거의 패닉에 빠져 있던 차지헌과 길잃은 아이를 걱정하는 엄마의 모습이 되어 그를 불러세우는 노은설. 확실히 연인은 아닌 것 같달까? 하지만 세상에 사랑하는 방식은 사람 숫자 만큼이나 많다.

묘하게 판타지스러우면서도 현실적이다.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판타지와의 경계를 잘 지키고 있다. 차지헌의 트라우마야 말로 가장 중요한 극의 열쇠가 아닐까. 재미있었다. 무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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