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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8.24 08:30

계백 "가잠성 공략, 그 참을 수 없는 어설픔..."

마치 통속극처럼, 잡극처럼.

 
소설 <삼국지연의>를 보고 있으면 싸움은 책사들이 다 하는 것 같다. 온갖 기기묘묘한 계책을 세우며 싸움을 결정짓는 책사들에 비해 무장들은 단지 칼을 들고 나가 적을 베고 있을 뿐이다. 물론 만부막적이라 하여 무장 한 사람의 무력이 만 명의 병사를 감당하기도 한다.

그런 의문이 들었다. 어째서 계략도 더 잘 세우고 싸움에서 기여도도 더 높은 책사가 아닌 무장들을 굳이 대장으로 임명하고 하는 것일까? 실제 제갈량과 사마의의 경우는 무장이 아닌 문관 출신이었지만 각각 촉과 위의 대장군이 되어 대군을 지휘하며 서로 맞서고 있었다.

결국은 중국의 일반 민중들 사이에 전해지던 전승과 북송대 유행하던 잡극의 영향이라 할 것이다. 간단히 문맹율도 높았던 당시의 일반 민중들에게 관우가 병력을 어떤 식으로 배치하여 어떻게 운용했는가 하는 것과, 관우가 직접 청룡언월도를 비껴들고 적진으로 파고들어 적장의 목을 베었다고 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친숙하고 이해하기도 쉽겠는가. 잡극의 무대에 올리려 할 때도 관우가 청룡언월도 들고 설치는 것이 낫지 요즘의 블록버스터도 쉽지 않은 전장을 재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였다. 그래서 군을 이끌고 지휘하던 지휘관들의 지휘력은 개인의 무력으로 바뀌어 각자의 독특한 무기를 들고 직접 맞서 싸우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개인의 무력으로만 해결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책사들의 계략이 마치 마법처럼 사용되기 시작했다. 딱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그리고 제한된 무대에서 최대한 구현하기 편하도록 재구성된 결과였다.

MBC의 월화드라마 <계백>의 전투장면을 보고 있으면 항상 드는 생각이다. 아니 어쩌면 삼국지의 전투장면들이 그런 식으로 구성된 데에는 민중의 이해력이나 잡극이라는 제한된 환경 이외에도 작가 자신의 무지가 한 몫 하지 않았겠는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전체 전장의 모습에 대해서는 굳이 직접 사람을 동원해 촬영해서 쓸 것이 아니라 CG등 다른 수단을 통해 재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장지도를 가져다 놓고 그 위에 각각의 진형의 움직임을 그래픽으로 처리해 보여주고, 최소한 부분적인 장면에 대해서만 배우를 동원해 찍은 편법도 가능하다.

"남문을 주공으로 하되 먼저 동문에 공세를 집중함으로써 적을 오판케 하도록 한다. 적의 방어가 동문에 집중되면 적의 힘이 빠지기를 기다려 동문과 남문에서 병력을 추가로 이동하여 남문에서 주공을 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에 맞게 성을 중심으로 병력을 배치하고, 그 병력의 움직임에 맞춰 각 지휘관들의 움직임이 보여지고, 여기에 적절히 부분적인 전투장면을 삽입할 수 있다. 어차피 더 큰 전장에서 더 많은 병력과 장비를 동원해 전투를 재현하는 것이 드라마라고 하는 여건상 불가능하다면, 최소한의 필요한 세트만을 갖춰두고 전체의 일부로써 국지적인 전투장면만을 집중해서 퀄리티를 높여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아마 많이 쓰이는 기법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문제는 그러자면 당연히 공성전에 대한 최소한의 기본적인 지식과 이해가 갖추어져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과연 당시 공성전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겠는가. 당시 지휘관들은 어떤 식으로 적의 성을 공략했으며, 방어하는 쪽에서는 어떤 식으로 그러한 공격에 맞섰는가. 그러나 말했든 그 자체가 어렵고 성가신 일이기 때문에, 더구나 그다지 표도 나지 않기에 제작진 입장에서도 보다 쉬운 길을 선택하고 만다. 계백(이서진 분)과 김유신(박성웅 분)이 직접 칼을 맞대고, 왕자 의자(조재현 분)이 칼을 들고 적을 베는 것과 같은. 온천을 막았던 말뚝을 뽑으니 온통 성안이 물바다가 되고 생구들의 내응으로 손쉽게 성은 떨어진다.

조금은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한 나라의 왕자인데 직접 적진에 잠입해 모략을 꾸미려 하다니. 그러다가 만일 왕자가 잡히기라도 하면 - 실제 결국 들켜서 잡히고 말았다. - 남은 장수나 병사들은 도대체 어쩌라는 것일까. 왕자 자신이 아무리 자기는 상관 말고 공격하라고 말한다고 왕자의 목숨을 걸고 모험할 수 있는 사람은 왕 정도에 불과하다.

사택왕후(오연수 분)조차 자신의 지시로 시작된 공격으로 왕자가 목숨을 잃으면 그에 따른 정치적인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자칫 사택씨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 반대파가 결집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사택왕후가 아무리 의자왕자를 죽이고 싶어 한다고 해도 그런 건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들키지 않도록 최대한 수단을 동원해서 그리 하는 것이다. 하물며 아직 사택왕후가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자기 아버지인 무왕(최종환 분)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윤충이 지휘관으로 있는 상황에 그런 무리수를 둔다?

하지만 그래야 의자왕자의 영웅적인 모습이 부각될 테니까. 그래야 의자왕자가 극적으로 계백과 지회하고 성충(전노민 분)과도 만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허술한 전투장면이 의자왕자 영웅만들기를 위해 다시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누덕누덕 기운 구멍투성이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고나 할까? 무장들은 칼을 들고 필마단기로 전장을 휩쓸고, 책사들은 천기를 알아 마치 마법처럼 계략을 부리는 삼국지의 그것처럼.

하기는 비단 <계백>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어지간하면 사극 보면서 그래서 전투장면은 거의 건너뛰며 본다. 도저히 전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전장의 긴박감이나 치열함 그 어느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전혀 생명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인형극과도 같다. 순전히 보여주기 위한 과장된 액션의. 한 마디로 중국의 잡극의 전통을 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생각해 보면 드라마는 바로 그러한 개인의 영웅담이기도 할 터이니. 딱 그에 어울리는 연출이었다.

등이 채찍질로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도 무리없이 칼을 휘두르는 계백과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 계책을 준비하는 성충, 그리고 용감무모하게 그들과 직접 만나 일을 꾸미려는 의자. 그리고 의자를 뒤쫓아 한 자리에 모인 사택왕후까지. 그야말로 전통 민담에 나올 버반 영웅물로는 손색이 없는 모습들이라 할 수 있었다. 오히려 그에 비하면 어설프게 전장을 재현하려다 완성도만 떨어뜨리고 만 전투장면은 눈엣가시랄까?

기존의 사극 가운데서도 말만 전쟁이지 부분적인 전투만으로 나머지를 모두 채우려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왕에 전투장면을 재현하려 했다면 철저하게 하던가. 그도 아니면 아예 기존의 사극에서처럼 최소화해서 목표로 한 영웅담만 남기고 넘어가던가. 이도 저도 아닌 것이 가장 큰 패착이었다. 한 마디로 어설펐다.

결국에 신파조의 대사들. 나를 죽여라. 죽을 수 없다. 죽이면 아버지가 야단칠 것이다. 그리고 위험을 감수하며 돌아가 살리려 했던 생구 동료는 웃으며 싸우던 도중 목숨을 잃고. 그야말의 한바탕의 연극 - 오래전 저자에서 사람들이 즐기던 통속극의 느낌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너무 전형적이다. 그런데 전형적이지 않으려 하는 게 문제다. 신파란 그 감정선이 전형적이라는 뜻일 텐데, 마치 아닌 척 폼을 잡으려 드니 균형이 무너진다. 전투장면의 경우처럼 이도저도 아닌 어설픔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큰 문제라 할 것이다. 무엇이든 확실한 한 가지를 잡아야 한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그러나 그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한의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가. 무엇을 집중해 투자해야 하는가. 아쉬운 것이다. 고민이 필요하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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