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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서문원 기자
  • 문화
  • 입력 2023.05.09 16:54

한국무용의 개척자 한상근 10주기, 여전히 살아 숨쉬는 그의 작품들

지난달 29일 한상근 10주기를 맞아 서울 동교동 스튜디오에서 시사 토크 열어

한국무용가 한상근의 생전 모습(뉴미디어댄스 H포럼)
한국무용가 한상근의 생전 모습(뉴미디어댄스 H포럼)

[스타데일리뉴스=서문원 기자] 민주주의의 꽃은 문화다. 그 꽃을 중심으로 산업화와 함께 성장한 케이팝도 본질을 살펴보면 무용(춤), 음악(사운드디자인), 패션(무대예술)이 한데 어우러져 창조된 하나의 세계관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세계 어딜가도 볼 수 있는 케이팝의 문화적 토양인 한국창작무용은 어떨까. 

지금은 뿌리가 됐으나, 한때 줄기였으며 열매였던 한국무용은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서구에서 들어온 여러 문화장르에 비해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8,90년대는 한국전통무용과 음악, 그리고 현대무용의 융합이 시도되던 시대. 하지만 국악, 영화, 가요, 팝송에 비해 대중적이지 못했다. 당시 대중의 문화 인식 수준이 그 정도에 도달 못했던 것.

막 시작한 풀뿌리 민주주의가 사회 전반에 자리를 잡기 전까지 서구문화를 받아들이기 바빴던 시기였다.

이 글은 한국 문화의 과도기였던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 전통춤을 현대무용과 한아름 담아 성장하는 한국 문화의 뿌리로 만들고자 한평생을 바쳤던 한국창작무용가 한상근 선생(1953~2013)의 이야기다.

'적색경보' 공연 컷(뉴미디어댄스 H포럼)
'적색경보' 공연 컷(뉴미디어댄스 H포럼)

한상근의 아방가르드 '적색경보'는 현재진행형

1987년 종로 대학로 바탕골 소극장에서 초연된 '적색경보'는 방사능 오염과 환경파괴를 다룬 전위예술로 안무가 한상근의 역작으로 꼽힌다. 

이는 패전국의 좌절과 허무주의를 토대로 부토(가부키와 현대무용의 융합)을 탄생시킨 전위예술가 히지카타 다쓰미의 '호소탄'과 같은 진혼제를 연상하기 쉽다. 

전위예술 영상 '호소탄'은 유럽의 전후 세대들의 저항체인 68운동을 모방했으나 미래를 지향하지는 못했다. 전후 파괴된 디스토피아를 공연의 시나리오로 매듭지었다. 즉, 과거형이다.

반대로 한상근 선생의 전위예술 '적색경보'는 36년전 과거에 완성된 현대문명의 위기를 표현했다. 36년 뒤에 다가올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당시 한국 무용가가 경고했던 것이다.

'적색경보'는 기존의 동양적 현대 무용으로 알려진 부토가 품은 레퀴엠을 버리고, 부활을 향한 생명체의 몸부림을 선택했다. 즉, 미래형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그의 추종자 미시마 유키오가 과거 도금시대를 버리지 못해 근대 탐미주의로 천착한 일본 문화의 6,70년대는 히지카타 다쓰미의 안무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한 마디로 과거 제국주의의 영광을 꿈꾸는 그들에게 미래란 없었다.

그런데 한상근 선생은 8,90년대 동양정서로 통칭된 진혼제(유교)와 가부장적 사회를 '적색경보', '꽃신', '무초', '우화동선', '갑사로 가는 길'로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해학과 풍자가 담긴 한국전통 춤을 현대무용에 과감히 접목하면서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갔다.

한국창작무용가 한상근은 주요무형문화제 강령 탈춤의 이수자로 1978년 서울시립무용단에 오디션을 거쳐 입단해 1988년까지 활동했다.

그는 첫 창작 공연무대 '무초'(1983)를 발표하며 기존 전통 한국무용의 틀을 벗어나 현대사회의 패러다임을 담아냈다. 한국무용의 융합이 시작되었던 것.

그 뒤에 공연된 '적색경보'(1987)는 환경파괴로 야기된 인류 위기와 죽어가는 생명의 부활이라는 서사적 접근을 시도했고,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관객의 눈과 귀를 자극하는 사운드디자인을 공연무대에 적용했다. 

이후 한상근 선생은 프랑스 '에콜 드 스펙타클'에서 연수를 마치고 서울시립무용단에 복직해 '적색경보'를 시각적으로 확장한 '비행'(1992)을 홍경희 안무가와 공동으로 기획 공연했다. 

쿼르트 유스(Kurt Jooss)의 세계관을 발전시켜 유럽 컨템퍼러리 공연무대를 빛냈던 무대예술(Buehnenkunst)을 적용해 황폐화 된 메트로폴리탄을 표현한 공연 '비행'을 선보였다.

그뒤 '갑사로 가는 길', '부가부가', 가부장적 사회를 벗어나 여성해방(Emancipation)을 조명한 '꽃신', '사랑한다는 것, 일곱가지 빛깔', '우화등선'을 선보였다.

한상근의 '명작을 그리다'는 진행형 

이처럼 서울시립무용단 수석무용가 한상근의 왕성한 활동과 업적은 2001년 대전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을 맡으며 사라지는 듯 했다.

2000년대의 시대상은 민주주의의 꽃을 더 확장시키기 보다 그 열기를 이용해 산업화라는 용광로로 유도하며 모두를 녹여내기 시작했던 것. "권력은 이미 재벌에게로  넘어갔다"라는 과거 유명 정치인의 발언이 결코 농담이 아니었던 셈.

그럼에도 한상근 선생은 좌절 없이 2006년까지 대전시립무용단에서 근무하며 후학양성과 지역문화 성장을 위해 공연기획자로 안무가로 헌신했고, 한국전통무용의 현대화를 일관되게 밀어붙였다.

그뒤 2013년 "류(流)와 파(派)의 경계를 허물고"라는 슬로건으로 한국 전통춤과 창작무용을 적용해 '명작을 그리다'를 탄생시킨다.

하지만 한상근 선생은 이 공연을 끝으로 지병으로 별세했다. 이를 대전 시립무용단 단원들과 그와 함께 했던 안무가들이 모여 계승하며 '명작을 그리다'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상근, 동시대적이고 현대성을 품었고 극장주의를 추구

'2023년 오늘, 영상. 토크로 만나는 한상근의 춤세계'(뉴미디어댄스 H포럼 제공)
'2023년 오늘, 영상. 토크로 만나는 한상근의 춤세계'(뉴미디어댄스 H포럼 제공)

지난 달 29일 10주기 추모기념행사가 1부와 2부로 나눠, 서대문구 신촌 아카데미인에서 펼쳐졌다.  

이날 추모 행사 강연은 김채현 무용평론가(전 한예종 교수)와 한상근 선생의 부인 이공희 감독이 맡았고, 원본 영상이 상영된뒤 한상근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추억담으로 마무리됐다. 눈여겨 볼만한 대목은 한국창작무용가 한상근에 대한 세 가지 정의다.

김채현 평론가는 한평생 한국 무용과 현대 무용을 오래된 미래로 이끈 한상근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동시대적, 현대성, 그리고 극장주의.

10년전 고인이 된 한상근을 단순히 추억하기 보다 지금도 그의 작품과 인터뷰들을 생생히 직관하며 '2023년 한상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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